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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귀환-813화 (810/1,567)

813화. 모가지 딱 대라, 이 새끼야! (3)

하늘에선 기름의 비가 내리고, 땅에서는 검은 화살이 끝없이 솟구친다.

소림의 무승들이 뿜어내는 권력이 황금빛 용처럼 절벽을 오가고, 무당의 검수들이 그려 낸 검막이 절벽 면을 희게 뒤덮는다.

‘이게 대체 뭐야?’

백천의 두 눈이 파르르 떨렸다.

전투 와중이니 응당 침착한 마음을 유지해야 하겠으나, 이 광경을 두 눈으로 본 이라면 절대 백천을 탓할 수 없을 것이다.

백천을 비롯한 화산의 제자들은 물론이고, 심지어는 이를 상대하고 있는 만인방의 무사들까지도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압도적이라는 말로도 부족한 광경이었다.

힘과 계략.

정과 사.

강호의 전장을 이루는 모든 것들이 격렬하게 맞부딪친다. 장일소의 말대로 이곳엔 도리도, 협의도 존재하지 않았다.

존재하는 것은 오직 상대를 반드시 죽이겠다는 끔찍한 살의와 악의. 그리고 무슨 수를 써서라도 살아남고 말겠다는 강렬한 생존욕구.

끓는 기름 냄새, 코를 찔러 오는 피 비린내와 화약 냄새, 그리고 뭐라 설명할 수 없는 진득한 악취까지 더해져 머리를 뒤죽박죽 어지럽혔다.

‘이게 전장……!’

몸속에 무언가 찐득하고 묵직한 것들이 들러붙는 느낌이다. 숨이 잘 쉬어지지 않고, 머릿속에 안개가 낀 것처럼 내내 멍했다.

백천 역시 그동안 청명을 따라 여러 전장을 누볐다. 그의 실력이야 아직 일천할지 모르나, 경험은 결코 일천하다고 할 수 없는 수준이다.

하지만 이건 백천이 겪어 왔던 그 어떤 전장과도 달랐다.

맞부딪치는 힘의 규모가 다르고, 그 충돌에 실린 의지가 다르다. 무엇보다 서로에게 쏟아지는 악의가 그 차원이 달랐다.

“올라가라! 기어올라!”

두 눈에 핏발이 선 소림의 제자들과 무당의 제자들이 이를 갈아붙이며 절벽을 기어올랐다. 끓인 기름이 살에 닿아 피부를 지져 대도 이를 악물고 꾸역꾸역 위로 향했다.

그리고 그 광경을 보는 사파 놈들도 기름을 붓는 속도에 더욱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

아니, 이제는 기름뿐만이 아니다.

점점 더 위로 올라오는 정파를 보고 다급해진 이들은 명령이 떨어지지도 않았는데 스스로 바윗덩어리를 집어 던지고, 옮겨 온 돌무더기에 내력을 쏟아부었다.

퍼어어억!

검막이 채 다 걷어내지 못한 돌이 절벽을 오르던 무승의 이마를 강타했다.

머리가 깨지며 피가 주르륵 흘러내린다. 한차례 휘청한 무승은 이를 갈며 위쪽을 노려보았다.

“이…… 마귀 놈들이!”

중의 얼굴이라기엔 악귀의 것과 비슷했다. 그는 절벽에 튀어나온 돌을 콱 움켜잡고 다시 위로 올랐다. 더 이상 그의 얼굴에는 자비심도 온화함도 없었다. 오로지 상대에 대한 악의만이 가득할 뿐이다.

‘이게 진짜 전장!’

사람은 목숨이 경각에 달했을 때, 본성이 나오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이 전장이야말로 인간의 본성이 있는 그대로 내보이는 곳. 이곳에는 저들이 그토록 소리 높여 외쳐 대던 정도도 협의도 보이지 않는다.

‘아니, 아니야!’

아직 아니다. 이건 진정한 무인의 전장이라 할 수 없다.

“사숙!”

“그래.”

윤종 역시 그와 같은 것을 느낀 모양인지 격앙된 목소리로 외쳤다.

그들은 그동안 몇 번이나 보지 않았던가. 이건 그냥 초입에 불과하다. 무인의 전장이 진짜 시작되는 때는…….

“움직인다!”

조걸의 고함 소리와 함께 남궁황과 허도진인이 눈부신 속도로 절벽을 타고 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발 늦게 법계 역시 소림의 장로들을 이끌고 승천하는 용처럼 절벽을 뛰어올랐다.

백천이 까마득한 위를 바라보며 눈으로 한 사람을 빠르게 찾아 헤맸다.

“모가지 딱 대라! 이 새끼야!”

쩌렁쩌렁 울리는 목소리와 함께, 청명이 독 오른 뱀처럼 절벽을 질주했다. 마침내 그가 본격적으로 움직이는 것이다.

‘이거다!’

백천이 이를 악물었다.

지금까지는 무인들의 전장이라기보다는 군인들의 전쟁에 가까웠다. 하지만 무인과 군인의 싸움을 가르는 가장 결정적인 요소가 바로 이것이다.

절대고수.

일 검으로 전장을 뒤집고, 일 권으로 지형을 바꿔 버리는 절대고수의 존재들.

이들의 움직임에 따라 전장의 향방이 결정 난다.

‘청명아!’

절벽을 질주하는 청명과 그를 노리며 뛰어내리는 만인방도들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

그 광경을 본 순간 백천의 머리보다 입이 먼저 움직였다.

“사숙! 사숙조!”

“오냐!”

“여긴 우리가 맡으마!”

운검과 현상의 대답이 떨어지기 무섭게 백천이 앞쪽의 만인방도에게 크게 검을 휘두르고는 포효했다.

“이설! 윤종! 조걸!”

“네.”

“예, 사숙!”

“준비됐습니다!”

“저, 저는요!”

당소소의 다급한 외침에 백천이 지체 없이 대답했다.

“소소는 본대를 지원해라! 한 사람도 죽게 둬서는 안 된다!”

“예!”

“가자! 청명이 놈을 호위한다!”

“예!”

백천을 비롯한 네 사람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절벽 아래로 몸을 날렸다.

단번에 십여 장 아래로 뛰어내린 백천이 절벽에 발끝을 가져다 댔다.

치이이이이익!

속도가 살짝 죽는 그 순간!

타아아앗!

백천이 절벽을 박차며 광속으로 앞으로 짓쳐 달려 나갔다.

“가십시오, 사형!”

“이 새끼들아, 이게 화산파다!”

일사불란하게 절벽을 질주하는 오검의 모습에 화산파의 진영에서 커다란 함성이 연이어 터져 나왔다.

경신법으로 따지자면 그들보다 뛰어난 이들이 얼마든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절벽 위에서라면 말이 다르다. 세상 어느 문파가 절벽 위에서 운신하는 법을 당연하게 익히겠는가?

“이깟 절벽 따위는 화산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백천은 이내 미끄러운 절벽 위를 평지처럼 달려 청명을 뒤쫓았다.

다른 이를 상대하고 있는 청명의 머리 위로 떨어지는 만인방의 무사가 보였다. 그가 직접 달려가 막아 내기에는 늦었다.

하지만 걱정할 건 없었다. 이곳에는 단 한 명, 그와는 비교도 안 되는 경신법의 소유자가 있으니까.

“사매!”

“네.”

그 순간 백천의 뒤에서 달리던 유이설이 절벽 면을 박차고 올랐다. 백천은 달리던 속도를 유지하며 그대로 검을 앞으로 내밀었다.

몸을 회전시킨 유이설이 백천의 검 위로 떨어졌다. 발이 검면에 닿는 순간 백천이 단번에 검을 휘두르며 유이설의 몸을 빠르게 앞으로 밀어 날렸다.

쇄애애애액!

쇄도하는 유이설은 흡사 절벽을 타고 나는 비조 같았다.

“죽어라아앗!”

그사이, 거의 청명의 머리 위쪽에 거의 다다른 만인방도들이 도를 힘껏 휘둘렀다. 어떻게든 청명을 공격해 함께 떨어지기라도 하겠다는 각오!

하지만 청명은 시선을 올려 그들을 보기는커녕 앞으로만 돌진했다.

“이놈!”

무시당했다는 생각에 그들이 도에 더욱 내력을 밀어 넣는 그 찰나였다.

파아아앗!

단숨에 날아든 유이설이 검을 펼쳐 내며 회전했다. 검 끝에서 뿜어져 나온 선홍빛의 검기가 청명을 노리던 만인방도들을 일거에 휩쓸었다.

“엇!”

불시에 날아든 검기에 만인방도들이 기겁하여 몸을 물렸다. 한 명이 다급하게 회수한 도로 날아드는 검기를 막아 내는 데는 성공했지만, 이미 청명은 그들을 지나쳐 앞으로 달려간 뒤였다.

“이년이!”

만인방도가 눈에 핏발을 세우며 유이설을 향해 도를 휘둘렀지만, 절벽을 두어 번 박찬 그녀는 순식간에 그들의 머리 위로 솟아올라 다시 앞으로 쏘아져 갔다.

“뭐, 뭣?”

만인방도들이 눈을 부릅떴다.

‘이 절벽 위에서?’

바닥을 박차고 사람의 머리를 뛰어넘는 것 따윈 그리 대단한 일도 아니다. 눈에 보이지도 않을 빠른 속도로 움직였다는 건 인정할 만하지만, 어쨌든 여기 모인 이들 중에선 그만한 신위를 보여 주지 못할 이를 찾기가 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이곳은 절벽 위가 아닌가?

카각! 카가가가각!

소득도 없이 아래로 떨어지던 그들은 다급하게 절벽 면에 도를 박아 넣었다. 어찌어찌 몸을 세우는 데는 성공했지만, 그때는 이미 청명과 유이설이 그들을 따돌리고 멀어진 뒤였다.

“쪼, 쫓아…….”

“어딜 쫓아, 이 망할 놈들아!”

그 순간 절벽을 달려 뒤따라온 윤종과 조걸이 그들에게 무서운 기세로 달려들었다.

만인방도가 두 눈을 부릅떴다.

‘아, 안…….’

서걱!

절벽에 도를 꽂아 겨우겨우 몸을 세운 그들이 등 뒤에서 날아드는 공격에 제대로 대응할 수 있을 리 없었다. 앞쪽에 있던 이들은 순식간에 몸이 꿰뚫려 피를 뿌리며 바닥으로 추락했고, 뒤쪽에 있던 이들은 대항을 포기하고 아래로 몸을 날렸다.

순식간에 십여 명의 만인방도들을 정리해 버린 윤종과 조걸이 이미 지나쳐 저 앞으로 달려가는 백천을 향해 소리쳤다.

“바로 뒤쫓겠습니다!”

“알았다!”

백천이 이를 악물며 달려 나갔다. 그의 눈에 절벽을 질주하는 청명과 그런 청명을 호위하듯 그 위를 달리는 유이설의 모습이 들어왔다.

“청명이 놈의 발을 멈추게 하지 마라!”

그의 고함에 호응하듯 아래에서 솟구친 권력이 청명의 머리 위쪽으로 연이어 날아든다.

혜연 역시 그들의 움직임을 완벽하게 보조해 주고 있었다.

“저, 저거…….”

이를 악물고 절벽을 기어오르던 구파의 제자들은 그 광경에 경악을 감추지 못했다.

화산오검의 명성이야 익히 들었다. 하지만 그래 봐야 겨우 이대제자와 삼대제자에 불과한 이들이라 여겼다.

그런 이들이 절벽을 평지처럼 달리고, 날다람쥐처럼 튀어나온 바위를 가볍게 뛰어넘는 것만으로도 어이가 없는데, 절벽 위에서 저런 묘기까지 부린다고?

목숨이 열 개가 아니고서야 어디 가능한 일인가?

진현이 이를 악물었다.

‘빌어먹을, 화정검……!’

종도관에서 그를 처음 보았을 때만 해도 그와 백천 사이의 차이는 그리 크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백천이 보여 주고 있는 모습은 그가 감히 흉내를 낼 수도 없었다. 당장 그는 절벽을 기어서 간신히 오르고 있고, 백천은 아예 맹금처럼 날고 있지 않은가?

‘대체 무엇 때문에 이리 차이가 벌어졌단 말인가?’

그의 두 눈에 핏발이 섰다.

하지만 그가 느끼는 분노는 남궁도위가 느끼고 있는 것에 비한다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이…….”

아래에서 청명을 바라보던 남궁도위는 전신의 피가 거꾸로 솟는 느낌에 꽉 문 입술에서 피가 나는 것조차 모르고 있었다.

“화산신룡!”

청명은 정말 신룡처럼 절벽을 누비고 있다. 하지만 그는 단악검이라는 별호가 무색하게 산을 가르기는커녕 절벽에 들러붙어 끙끙대고 있지 않은가?

“으아아악!”

발작적으로 악을 쓴 남궁도위가 과격한 움직임으로 절벽을 올랐다.

“도위, 진정해라!”

“위험하다!”

가문의 어른들이 황급히 외쳤지만, 남궁도위는 되레 큰 소리로 따지고 싶었다.

‘위험하다고?’

그럼 저들은 위험하지 않다는 말인가?

남궁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만큼 작은 문파의 후기지수들이 이 전장을 지배하고 있는데, 그가 어찌 잠자코 일신의 안위만 챙길 수 있겠는가?

“창궁검대는 나를 따라라! 가주님을 엄호하러 간다!”

“예!”

남궁의 젊은 무인들이 기합이 잔뜩 들어간 목소리로 답했다.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지만, 그들의 눈 역시 투지로 불타고 있다. 남궁도위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화산에는 절대 지지 않는다! 위험을 각오하고 속도를 높여!”

남궁세가의 무인들이 오르는 속도를 더해 가니 무당과 남궁이 서로 얽히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때.

타아아아아앗!

“오오오오오오오!”

남궁황이 절벽을 박차며 용처럼 솟아올랐다.

‘어린놈들이!’

화산이 활약은 그의 눈에도 똑똑히 보였다.

그의 반도 채 살지 않은 이들이 목숨을 걸고 활약하는데, 한 문파의 장문인 그가 안전을 논할 수는 없는 노릇.

“장일소오오오!”

마침 머리 위로 쏟아지는 거대한 기름 덩어리를 일 검에 쳐 날려 버린 남궁황이 마침내 절벽 위로 막 솟구치려 할 찰나였다.

“애송이 놈이 용썼구나!”

하늘과 맞닿은 듯한 절벽이 일순 검은 그림자에 뒤덮였다.

마치 검은 해가 떠오르는 것처럼.

‘흐, 흑룡…….’

“받아 보아라!”

흑룡왕의 언월도가 단숨에 휘둘러졌다. 먹빛의 도기가 폭포처럼 쏟아졌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

천신의 창처럼 절벽을 가르며 쏟아진 흑룡왕의 도기가 남궁황을 향해 일직선으로 날아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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