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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귀환-801화 (798/1,567)

801화. 야! 거기 남는 술 좀 챙겨라! (1)

“마, 막아라! 내부로 진입하게 두어서는 안 된다!”

흑룡채로 모여들었던 각 수채의 채주들이 고함을 내질렀다. 하지만 아무리 고함을 지르고 발악을 해도 도무지 명이 먹히질 않았다.

완전히 겁에 질려 버린 수적들은 혼비백산하여 뱃머리를 돌리기에 바빴다. 시시각각 빠르게 다가오는 남궁세가의 배에서 어떻게든 멀어지려 하는 것이다.

“이 빌어먹을 놈들! 내 말이 들리지 않느냐!”

이곳이 육지라면 당장 달려가 배를 돌리려는 놈들의 모가지를 부러뜨려 버릴 테지만, 안타깝게도 이곳은 장강 위였다. 그가 아무리 용빼는 재주가 있다고 해도 물 위에서, 심지어 이 아수라장에 다른 배로 달려갈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돌아와라, 당장! 이 개 같은 놈들!”

악을 쓰던 와곤채의 채주는 얼굴이 시뻘게진 채 이를 갈아붙였다.

“쏴라! 쏴! 빌어먹을 쏘란 말이다!”

그가 탄 배는 아직 그의 통제에 따르고 있다. 수적들이 난간에 달라붙어 작살을 쏘아 댔다.

투우우웅! 투웅! 투웅!

사람 몸 길이만 한 커다란 쇠작살들이 남궁세가의 배를 노리고 맹렬히 날아들었다. 하지만 단 하나도 배에 닿지 못했다.

카앙!

배를 호위하며 자맥질하고 있던 남궁세가의 무사들이 물에서 뛰어올라 작살을 쳐 내고, 배에 타고 있던 이들이 깔끔하게 검을 휘둘러 작살을 완전히 튕겨 내고 있었다.

가공할 기세로 날아간 작살들이 저 얇디얇은 검에 맞아 맥없이 튕겨 나가는 광경은 비현실적이기까지 했다.

“이…….”

“아, 안 됩니다! 채주! 작살은 통하지 않고 물속에서 접근하는 이들은 도륙이 나고 있습니다! 방법이 없습니다!”

으드득.

이를 갈아붙인 채주의 두 눈에 핏발이 섰다.

“전진해라!”

“예?”

“지금 겁을 먹고 달아나는 배들까지 합세해 사방에서 덮치면 저놈들이 아무리 대단해도 모두 막아 낼 수는 없다! 우리가 선두에 서서 용맹하게 달려들면 다른 배들도 생각을 바꿀 것이다!”

“하, 하지만 채주! 보, 보셨잖습니까! 방금…….”

“닥쳐라! 저놈들이 아무리 남궁세가라고 해도, 우리는 장강수로십팔채다! 이 장강 위에서 정파 놈들에게 겁을 먹고 꽁무니를 빼란 말이냐!”

“…….”

“작살이 통하지 않으면 배를 붙이면 된다. 놈들 배에 구멍을 내 버리면 돼! 저놈들이 아무리 대단하다고는 해도 수공을 익힌 이들이 아니다! 배만 없으면 별것도 아니란 말이다!”

“채, 채주……. 다시 한번 생각을…….”

채앵!

와곤채의 채주가 커다란 아미자를 뽑아냈다.

“이놈, 그 주둥아리에 작살이 꽂혀야 말을 들어 먹겠느냐? 당장 타를 돌리지 못해?”

“아, 알겠습니다!”

수하가 황급히 움직였다. 채주의 얼굴이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이 의리도 없는 놈들.’

사실 아랫놈들이야 달아나 버리면 그만이다. 하지만 그에겐 도주가 허락되지 않는다.

수채를 버리고 흑룡채로 온 정도는 어떻게든 용인받을 수 있다. 상황이 그만큼 좋질 않았으니까. 하지만 흑룡채를 버리고 달아났다는 건 절대 용서받을 수 없는 일이다.

‘흑룡왕께서 절대 나를 살려 두지 않으실 것이다!’

심지어 흑룡왕의 집요한 성정을 감안한다면 천하의 어디도 안전할 리가 없다.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마찬가지다! 노를 저어라! 측면에서 들이받는다!”

“예!”

어차피 수적들 역시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마찬가지였다. 지금 저 명을 거부한다면 채주의 아미자가 그들의 심장을 꿰뚫을 것이다.

이를 악문 이들이 방향타를 돌리고 노를 저어 댔다. 배가 물살을 가르며 남궁세가 쪽을 향해 빠르게 돌진했다.

“들이받아라!”

악에 받친 수적들이 함성을 내지른 바로 그때였다.

파아아아앗!

가장 선두에 있는 남궁세가의 배 위에서 백색의 검기가 뿜어져 나와 그들의 배에 틀어박혔다.

콰드드득!

채주가 두 눈을 부릅떴다.

배끼리 들이받을 일이 많은 수적선의 특성상, 평범한 목재보다 두 배는 더 단단한 것으로 만들어진다. 그런데 저 검기는 그런 목재를 두부처럼 갈라 버렸다.

“이게…….”

갑판이 반 장이나 길게 갈라졌다. 시커멓게 뚫린 구멍을 보고 있자니 등골을 타고 식은땀이 줄줄 흘러내렸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파아아앗! 파아아아아앗!

백색의 검기가 연이어 쏟아졌다. 난간 쪽에 선 이들이 무표정한 얼굴로 그들을 향해 검을 휘둘러 대고, 그 검이 휘둘러질 때마다 반월형의 검기가 매섭게 날아들었다.

콰득! 콰드드득! 콰드득!

수적선은 순식간에 기세를 잃고 걸레짝이 되어 버렸다.

“이, 이게 대체 뭐냔 말이다!”

채주는 거의 비명을 질렀다.

그도 그럴 게, 검기는 아무나 뽑아 낼 수 있는 게 아니다. 특히나 이 먼 거리를 날아와 이 단단한 배를 썰 만큼의 검기를 쓰는 이라면 절정고수라는 말을 듣기에 부족함이 없다.

그런데 저 배 한 척에 얼마나 많은 절정고수들이 타고 있으면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단 말인가?

‘나, 남궁세가!’

채주의 얼굴이 삽시간에 희게 질렸다.

‘이 정도였단 말인가?’

눈으로 보고서야 알게 되었다.

구파일방과 오대세가. 너무도 익숙하고, 강자라는 호칭이 실로 당연한 이들.

하지만 그렇기에 오히려 과소평가되고 있었던 것이다.

어째서 저들이 지난 긴 세월 동안 강호를 지배할 수 있었는지를 지금에야 그는 두 눈으로 똑똑히 확인하고 있었다.

“채, 채주!”

“배, 배가 가라앉는다! 탈출해라!”

“벌써 물이 들어찹…….”

서걱!

하지만 말을 다 잇기도 전에 백색의 검기가 수적의 목을 갈랐다. 갑판 위로 붉은 피가 줄줄이 뿜어졌다. 그와 동시에 한쪽 면이 걸레짝이 된 채 간신히 버티던 배가 기우뚱 기울었다. 갑판 위로 푸른 물이 어마어마한 속도로 차올랐다.

“저 괴물 같은 놈들…….”

채주는 망연자실하여 질린 눈으로 남궁세가의 배를 보았다.

이 패배보다도 더 굴욕적인 것은, 남궁의 배가 더 이상 그들에게 관심을 주지 않고 있다는 점이었다. 남궁의 배들은 선두의 배를 따라 그들을 내버려 둔 채, 골짜기로 진입하고 있었다.

“채, 채주!”

“당장 배를 버리고 물로 뛰어들어라! 뒤쪽 배에 합류한다!”

명령을 내린 와곤채의 채주는 문득 제 손을 내려다보았다.

가여워 보일 만큼 형편없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

가물치가 아무리 사납고 포악하다 한들, 범과 용이 날뛰는 곳에선 한 끼 식사거리밖에 되지 않는다. 자신의 한계를 절절하게 실감한 그는 처참한 마음으로 눈을 질끈 감고 몸을 돌렸다.

“따라붙어라!”

법계가 목소리를 높였다.

그의 침중한 두 눈은 앞서가는 남궁세가의 배에 고정되어 있었다.

‘제왕검 남궁황. 나름 힘을 키웠으리라 생각은 했지만…….’

물론 기껏해야 조무래기들을 상대한 것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 모습만으로도 남궁세가는 자신들이 가진 힘을 확실하게 보여 주고 있었다.

“아미타불.”

지금 남궁세가가 보여 주고 있는 것처럼, 본디 지금 저 자리에서 문파의 힘을 과시해야 했던 곳은 다름 아닌 소림이다. 하지만 무당과 청성의 견제 때문에 결국 남궁이 제 명성을 높이는 걸 구경만 하고 있다.

‘어찌 이리 탐욕스럽단 말인가!’

장강의 악적을 물리치는 일이건만, 제 문파의 안위만을 도모하다니.

강호의 일에 함부로 손을 대선 안 된다는 방장의 거듭된 당부를 이제야 확연히 이해할 수 있었다.

“속도를 높여라! 거리가 벌어져서는 안 된다!”

“하지만 장로님. 적당히 거리를 두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뒤쪽이 포위되기라도 한다면…….”

“포위라니.”

법계가 눈살을 찌푸렸다.

“뒤를 막는다고 다 포위가 아니잖으냐? 아무리 에워싼들 저들이 우리를 막을 수 있겠느냐?”

“그건…….”

혜진은 대답을 선뜻 하지 못하고 우물댔다.

병법 상으로 보자면 어떤 상황에서건 퇴로는 반드시 확보가 되어야 한다. 하지만 지금 이 말도 틀린 말은 아니다. 저 남궁세가가 단숨에 뚫어 낸 길이다. 그런 길을 소림이 뚫지 못할 리가 없잖은가?

이건 단순히 자존심을 세우는 게 아니다. 이치가 그러하다. 남궁세가가 훌륭한 모습을 보인 것은 사실이지만, 이쪽은 다른 곳도 아니고 소림이다.

“뒤쪽에 남은 이들이 퇴로를 확보하면 된…….”

그때 법계가 말을 하다 말고 입을 다물었다.

그들과 나란히 전진하던 무당파의 배들이 순간 속도를 높이며 앞쪽으로 빠르게 나아가고 있었다. 저쪽은 이미 계산을 끝낸 모양이다.

“이, 이런!”

법계의 목소리가 좀 더 커졌다.

“뒤쪽은 청성이 맡아 줄 것이다! 서둘러라! 무당보다 뒤쳐져서는 안 된다!”

“예!”

무당이라는 이름이 나오자 혜진도 안색을 굳혔다.

남궁세가에게 선봉을 내어 준 것이야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무슨 일이 있어도 저 무당에게 공을 빼앗기는 일은 있을 수 없다.

그럴 바에야 차라리 남궁세가가 공을 독점하는 게 나을 판 아니던가?

‘허도진인!’

법계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저쪽이 조금 판단이 빨랐을 뿐이다. 하지만 그 덕에 무당의 배들은 벌써 그들과 십여 장 이상의 차이를 내며 앞서 나가고 있다.

‘방장께서 오셨다면 그대의 행동을 용인했을지 모르지만, 나는 결코 좌시하지 않을 것이오!’

주먹을 가볍게 움켜쥔 법계가 이를 지그시 악물었다.

선두에 있는 남궁세가의 배 뒤로 어느새 바짝 다가온 무당의 배가 따라붙었다. 그리고 그 뒤로 소림과 청성의 배들이 속도를 높였다.

긴박하게 진영을 바꾸는 모습이 일사분란하게 이루어졌다면 나름 장관이었겠지만, 그건 웅장하다기보다는 일견 혼란 그 자체였다.

구파일방과 오대세가라는 명성에 걸맞지 않은 모습이기도 했다.

이를 뒤쪽에서 지켜보던 화산의 제자들은 할 말을 잃은 듯 잠깐 침묵했다.

“……청명아.”

“왜?”

백천은 내내 의아하게 앞을 보다 물었다.

“……남궁세가의 위용에 수적들이 물러나는 건 분명 대단한 광경이었다. 한데 결국 저리 해 버리면 강 위에 있는 수적들은 모두 달아나지 않겠느냐?”

“그렇지.”

“그리되면 수적들의 수는 딱히 줄어들지 않을 텐데. 그럴 바에야 두 문파 정도는 남아서 저 수적들을 정리하는 게 맞지 않을까? 어차피 흑룡채와 싸우는 건 두 문파만 있어도 충분하고 남을 것을.”

“그렇지, 그렇지.”

“그런데 왜들 저러는 거냐?”

청명이 피식 웃는다.

“누가 남아서 처리할 건데?”

“누구든 괜찮잖아. 그래 봐야 수적이고, 저들은 구파일방인데.”

“조무래기들 잡아 처리한다고 명성이 오를 리가 있겠어?”

“…….”

“먼 길을 온 건 마찬가진데, 제일 큰 공적을 넘겨주고 싶은 이는 아무도 없지. 장강에 수적이 남든 말든 저들은 흑룡왕의 목만 따 가면 되는 거야. 아니면 흑룡채를 괴멸시키거나.”

백천이 안색을 굳힌다.

“양민들을 도우러 와서 공적만 탐한다는 말이냐?”

“사숙.”

“……왜.”

“잘 봐 둬. 이게 구파일방이니 오대세가니 하는 놈들의 습성이니까. 이곳에 한 문파만 왔으면 저 위에 있는 수적 놈들을 모조리 정리하고, 태세를 갖춰서 안으로 진입했을 거야.”

“…….”

“하지만 두 개 이상의 문파가 한곳에 모이는 순간. 작전이고 뭐고 없어. 저놈들은 절대 양보하지 않아.”

청명이 입꼬리를 뒤틀었다.

지겹다 못해 지치도록 보던 광경이다.

‘하지만 나는 저게 틀렸다고 할 수 없다.’

저 짓거리에 염증을 느낀 그와 화산은 이득과 명성을 논하지 않고 마교에 맞서 싸웠다. 그 대가가 무엇이었던가?

청명이 돌아오지 않았다면 화산은 끝끝내 빚더미에 짓눌려 멸문했을 것이고, 저들은 모든 공과 이득을 독점한 채, 천하의 명문으로 여전히 무서울 것 없이 이름을 날리고 있었을 것이다.

알아주는 이 없어도 싸운다?

개소리다. 이제는 안다.

알아주는 이 없이 죽은 자의 무덤엔 잡초만 무성한 법이다. 청명은 절대 과거의 전철을 밟을 생각이 없었다.

“……냉정하고도 가혹하군. 구파일방이라는 이들이.”

“그리고 치열하지. 그래도 저들의 꼴이 우습다 욕하지 마. 선후가 잘못됐어. 저들이 구파일방이인데도 악착같은 게 아니라, 저리 악착같기에 구파일방이 되었고, 오대세가가 된 거야.”

“…….”

그 말에 느낀 바가 있는지 백천 역시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네가 잘 보라고 했었는데, 이렇게 되면 저 안에서 뭔 일이 벌어지는지는 지켜볼 수 없겠는데?”

“에이, 설마. 다 방법이 있지.”

“응?”

“저기 오네.”

청명이 저 옆쪽을 향해 턱짓했다.

뿔뿔이 흩어지는 수적선들의 반대편에서 웬 배들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저게 뭐냐?”

“우리 배.”

“응?”

백천이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우리 배라고? 저게?”

“응. 혹시 몰라서 남는 배 좀 몰고 오라고 했지. 좀 늦게 출발해서 못 써먹을 줄 알았는데, 저 등신들이 아웅다웅하느라 시간을 끌어 준 덕분에 써먹을 수 있게 됐네.”

“…….”

청명이 의기양양하게 씨익 웃었다.

“가자. 저놈들이 들어간 곳이 보물이 널려 있는 곳인지, 호랑이 아가리 안인지 눈으로 확인해야지.”

“……못 당하겠네, 진짜.”

백천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골짜기 안으로 진입하는 배들을 보았다. 표정이 서서히 굳어졌다.

이상하게 그의 눈에는 이 광경이 더없이 불길하게만 느껴졌…….

“야! 거기 남는 술 좀 챙겨라!”

“…….”

아니.

그냥 착각인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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