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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귀환-800화 (797/1,567)

800화. 잘생기고 재수 없으면 진가 놈인데. (5)

현종의 두 눈에도 경악이 어렸다.

‘남궁황.’

조금 전 문파의 수장들이 모인 자리에서 그가 보여 준 모습은 솔직히 눈살이 찌푸려졌다.

물론 그가 화산에 가지고 있을 악감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나, 아무리 그렇다 해도 천하제일세가라 불리는 남궁세가의 가주의 격에는 분명 맞지 않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지금 남궁황이 보여 준 모습은 그런 현종의 생각을 일거에 날려 버리기에 충분했다.

‘격?’

남궁황이 그에게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강호에선 포용력이니, 인화력이니 그따위 자질구레한 것은 중요하지 않다고 말이다. 남궁세가의 가주에게 필요한 것은 그 이름을 등에 짊어지고 나아갈 수 있는 강함. 그것이면 족하다고.

“……저게 절대고수.”

백천의 손바닥이 식은땀으로 축축이 젖어들었다.

‘주교와 비교하면 어떻지?’

비교가 어렵다.

주교는 정말 무시무시할 정도로 강했다. 하지만 그때 백천은 주교의 강함을 재단할 수 있는 능력이 없었다. 그저 죽을 각오로 온 힘을 다해 달려들고, 남은 것은 청명이 놈에게 맡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상황이 아니다.

냉정하게 한발 떨어진 곳에서 절대고수가 뿜어내는 신위를 두 눈으로 목격하고 있자니, 등골이 저릿하고 손이 떨릴 지경이었다.

‘구파일방. 그리고 오대세가.’

백천은 그 순간 깨달았다.

자신이 그동안 그 이름을 얼마나 우습게 보고 있었는지.

“꾸르르르륵!”

장강의 푸른 물이 순식간에 붉게 물들었다.

물속으로 뛰어든 창궁검대는 수적들을 일방적으로 주살하고 있었다.

패도가 어린 검결은 남궁황처럼 강을 갈라 내지는 못했지만, 물살 정도는 어렵지 않게 갈라 버렸다. 게다가 어릴 적부터 단단하게 쌓아올린 내력은 물속에서도 그들의 움직임을 밖에서와 다름없이 유지시켜 주었다.

그렇다면 남는 것은 어마어마한 실력차뿐이었다.

촤아아악!

물살을 가른 검이 수적의 심장에 틀어박혔다. 빠르게 접근했던 이들이 더 빠르게 튕겨 나가며 물속으로 가라앉았다.

“흥!”

남궁황은 그 광경을 보며 검을 크게 한 번 휘둘렀다.

“평화가 길어지다 보니 하찮은 수적 놈들이 감히 남궁의 깃발을 보고도 달려드는 꼴을 보는구나!”

그렇다면 알려 줘야 한다.

그들이 지금까지 사파 놈들을 지켜보기만 했던 건, 결코 힘이 부족해서가 아님을 말이다.

고오오오오오오오!

남궁황의 검에 다시 어마어마한 검강이 어리기 시작했다. 그 단전 안에 얼마나 큰 내력이 담겨 있는지 감히 짐작도 할 수 없을 만큼 놀라운 기세였다.

“저……. 저거…….”

지켜보던 백천이 경악한 듯 말하자 청명이 싸늘하게 말했다.

“사숙.”

“으응?”

“눈 똑바로 뜨고 잘 봐 둬.”

청명이 남궁황이 타고 있는 배를 향해 턱짓했다.

“남궁세가가 왜 천하제일가인 줄 알아?”

“……왜?”

순간 백천의 머릿속에 여러 가지 생각이 스쳤다. 세력이 강해서, 태어나는 후손들의 자질이 좋아서, 그 어마어마한 재력으로 영약을 퍼부어 댈 수 있고, 안정적으로 수련에만 전념할 수 있고…….

하지만 그 어느 것도 청명이 원하는 답이 아니라는 걸 백천은 알고 있었다.

청명이 나지막이 말했다.

“남궁세가는 멍청한 놈들만 모여 있는 거야. 사실 패도를 추구하고 싶다면 검을 들 게 아니라, 도를 드는 게 낫지. 그래. 하북팽가처럼.”

백천이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강검을 쓸 거라면 얇고 낭창한 검이 아니라 두껍고 강한 도를 쓰는 게 훨씬 수월하니까.

“하지만 저놈들은 패도를 추구하면서도 검을 놓지 않은 놈들이야. 강함과 정교함이라는 양립하기 힘든 두 가지를 욕심쟁이처럼 양손에 쥐고, 마침내는 그걸 양립하는 데 성공한 놈들이지.”

“…….”

“사숙도 검수라면 저 인간의 검을 똑똑히 지켜봐. 화산과는 다른 검을 볼 수 있을 테니까.”

“알았다.”

백천의 얼굴에 한층 더 진중함이 깃들었다. 고개를 끄덕인 그는 남궁황을 뚫어져라 보았다. 두 사람의 대화를 들었는지 다른 제자들도 모두 진지하게 남궁황을 주시했다.

청명은 그 모습이 흡족하여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사실 청명이 뒤로 물러나겠다고 생각했던 건, 저들과 어울려 싸우고 싶지 않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화산의 제자들에게 부족한 건 경험이다.

그런데 경험이란 제 손으로 싸우고, 몸으로 겪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다른 이들이 어떻게 싸우고 어떤 무학을 쓰는지 두 눈으로 보고 고민하는 것 역시 훌륭한 경험이다.

화산, 무당, 남궁세가.

청명이 매화검존이던 시절에는 그 세 문파가 나란히 천하 삼대 검문으로 불렸다. 그리고 각 문파의 최고수는 천하삼대검수라는 이름으로 지칭되지 않았던가?

화산은 화려한 환검. 무당은 부드러운 유검. 그리고 남궁세가는 검이라는 병기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강력한 강검과 패검을 추구한다.

‘화산의 검은 최고다.’

하지만 최고가 곧 완벽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남궁황의 검에서 무언가를 더 얻어 낼 수 있다면 화산 제자들의 검은 더욱 완벽해질 것이다.

“타아아아압!”

남궁황의 검이 다시 한번 크게 휘둘러졌다.

강이 좌우로 솟구쳐 올랐다. 마치 장강에 산다는 전설 속의 교룡(蛟龍)이 용틀임을 하는 것 같은 모양새였다.

강을 가르며 날아든 검강은 이내 거대한 배를 삽시간에 집어삼켰다.

콰아아아아아아앙!

화포 따위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파괴력이었다. 배를 통째로 터뜨리고는 연이어 몇 개의 배를 더 부수어 댔다.

빽빽하게 들어찬 수적의 배들 사이로 일직선의 길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말 그대로 제왕지도(帝王之刀).

제왕은 앞으로만 걷는 법. 전진해 나아갈 줄은 알지만, 물러설 줄 모르고 우회할 줄도 모른다.

그리고 남궁의 검은 제왕의 검이다. 제왕의 검이란 막아서는 모든 것을 부순다.

“모조리 죽여라! 감히 주제도 모르고 남궁의 앞을 막는 이들에게 그 대가를 치르게 해 주어라!”

“충!”

남궁황이 탄 배를 보좌하며 좌우로 따르던 배들이 속력을 높여 앞으로 나아갔다.

스르르릉.

남궁황은 천천히 납검을 하고는 슬쩍 고개를 돌렸다.

“흥.”

애초에 앞을 가로막는 수적들 따위는 그의 안중에 없었다. 그가 예의주시하고 있는 건 어느새 배에 올라 뒤를 따르고 있는 무당과 청성, 그리고 소림이었다.

싸늘한 눈으로 그들을 응시하던 남궁황은 문득 강변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두 눈을 부릅뜬 채 이곳을 바라보는 화산파의 모습이 보였다.

‘흥.’

면면에 떠오른 경악의 빛이 확연했다.

‘멍청한 놈들 같으니.’

명성 좀 얻었다고 저들이 뭐라도 된 줄 알고 설쳐 대는 조무래기들. 남궁황은 그래서 화산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무릇 진정한 강자는 함부로 움직이지 않으며 묵묵히 힘을 키워 나가야 하는 법이다.

“똑똑히 봐 둬라. 남궁세가의 힘을.”

“흐음.”

허도진인이 입꼬리를 슬쩍 비틀며 웃음을 흘렸다.

“남궁가주께서 아주 신이 난 모양이로군.”

“아무래도 그렇지 않겠습니까? 검을 쓸 일이 없는 무인이란 허무한 법이니까요.”

“그렇지.”

너무 오랜 시간 동안 평화가 이어졌다.

과거 마교와의 전쟁 때 소진했던 힘을 보충하고도 남을 만큼……. 아니, 그 이상의 힘을 응축하고도 남을 만큼의 시간이 흘렀다.

힘을 모은 이는 반드시 그것을 증명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강호에서는 그럴 방법도, 계기도 없었다. 힘의 증명이란 결국 적이 있어야 가능하다. 내 무학의 경지를 증명하기 위해 대로변에 뛰쳐나가 검무를 출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그나저나 남궁가주의 무위가 생각 이상이로군요.”

“그렇구나. 남궁세가 역시 이를 갈아왔다는 거겠지. 우리처럼.”

허도진인의 눈이 차게 빛났다. 속이 살짝 끓어오르는 느낌이었다. 저 검의 완성도는 논외로, 호쾌하기 짝이 없는 검기엔 사람을 자극하는 면이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아―미―타―불!”

우측에 있던 배에서 웅혼한 불호 소리가 우렁우렁 들린다 싶더니, 황금빛 권강이 뿜어져 나왔다.

마치 황금의 폭포가 강변으로 쏟아지는 듯한, 어마어마한 권력! 그에 휩쓸린 수적선들이 순식간에 짓뭉개지며 형체를 잃었다.

남궁황의 검격처럼 호쾌하게 부수어 터뜨리는 공격은 아니다. 다만 그 엄청난 무게로 배 자체를 찌부러뜨리는 일격이다.

방식이야 다를지 모르지만, 실린 힘만은 남궁황의 검격에 견주어도 결코 밀리지 않는다.

“아무래도 법계 대사는 법정 대사만큼 수양이 깊지 못한 모양이로군.”

“스님이라 한들 무인 아니겠습니까. 호승심이 일 만하지요.”

허도진인이 나지막이 웃었다.

법정이 여기에 있었다면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남궁황이 날뛰는 것을 느긋하게 지켜보았을 것이다. 하지만 법계는 아무리 뛰어나다고는 해도 결국 장로에 불과하다. 자신이 이끌고 출정한 소림이 남궁에 뒤처져서는 안 된다는 조급함이 있을 수밖에 없다.

“어쩌시겠습니까?”

“무대가 안 좋다.”

허도진인은 조금 쓰게 입맛을 다셨다.

실력이 부족한 것은 결코 아니지만, 무학의 결이 다르다. 그들이 아무리 힘을 써 댄다고 해도 저 호쾌하기 짝이 없는 검격과 권력이 보여 주는 파급력을 따라가긴 어렵다.

‘무리를 한다면 안 될 것도 없겠으나, 굳이 지금 그럴 필요는 없지.’

이곳은 그들을 위해 준비된 무대가 아니다. 진짜 무대는 바로 저 골짜기 안쪽이니까.

“남궁과 소림이 길을 열 것이다. 우리는 안으로 진입하는 즉시 하선하여 수적들을 몰아친다.”

“예, 장문인!”

때마침 선두로 치고 나간 남궁황의 배가 드디어 일직선으로 길을 뚫어 내었다.

수를 믿고 굳건히 포진해 있던 수적선들이 겁을 먹고 좌우로 뱃머리를 돌리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흑룡채를 잃으면 미래가 없다는 것쯤이야 그들도 알고 있겠지만, 당장 눈앞에서 검격을 날려 대는 남궁황의 신위는 이성을 날려 버리고 공포를 심어 주기에 충분했다.

딱 두 번의 검격.

그 두 번의 검격만으로 남궁황은 물이 보이지도 않을 만큼 모여든 배들 사이에 거대한 길을 만들어 내는 데 성공한 것이다.

“조무래기들은 신경 쓰지 마라! 뒤따르는 문파들이 정리할 것이다. 우리는 길을 뚫고 흑룡채로 진입한다!”

“충!”

남궁황이 미소를 지었다.

‘선두를 내어 주셨다?’

저들도 나름의 계산이 있으니 순순히 남궁세가를 선봉에 세운 것이겠지만…….

‘너희의 오산은 남궁의 힘을 과소평가했다는 것이다.’

뒤따르는 이름이 공을 올리도록 해 줄 생각은 추호도 없다. 저들이 있는 이상 퇴로가 막힐 일은 없을 터. 단숨에 진입하여 대번에 모조리 부숴 버릴 것이다.

이 장강에 오직 남궁의 이름만이 울려 퍼지도록.

“도위!”

“예, 가주님!”

남궁황이 남궁도위를 슬쩍 돌아보았다. 얼굴이 상기되어 있는 것이, 이미 싸울 준비가 모두 되어 있었다.

“하선하게 되면 선두로 나서라. 네가 잃은 명성은 네 손으로 되찾아라!”

“반드시 그리하겠습니다!”

“좋다!”

이제 남궁황의 눈앞으로 골짜기로 향하는 길이 펼쳐져 있었다.

“속도를 높여라! 단숨에 진입한다! 함정 따위는 신경 쓰지 마라! 내가 이 손으로 부수어 주겠다!”

“충!”

사기가 머리끝까지 오른 남궁세가의 무사들이 일제히 함성을 터트리니 골짜기 입구가 쩌렁쩌렁 울렸다.

수많은 배들이 장강의 물살을 가르며 깊고 어두운 골짜기로 단번에 밀려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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