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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귀환-786화 (783/1,567)

786화. 개처럼 살든가, 늑대처럼 죽든가. (1)

“이, 이런 미친!”

개방 거지가 들고 온 서찰을 읽으며 홍대광의 얼굴이 참혹하게 일그러졌다.

“왜요?”

“나, 난리가 났다, 화산신룡!”

“뭔데 그래요?”

안색이 검게 죽은 홍대광과 달리 청명은 태연자약했다.

소식을 전한 거지는 대조적인 두 사람을 보며 슬그머니 미간을 찌푸렸다.

‘아니, 저 양반은 분타 놔두고 왜 여기서 죽치고 있는 거야?’

홍대광의 분타는 아니라지만 이곳에도 개방 분타가 있지 않은가. 명색이 개방 소속 거지라면 분타에 와서 일을 처리해야지, 왜 수적이랑 산적들이 진을 치고 있는 곳에…….

아니, 그 전에 화음 분타주가 왜 여기까지 와 있는가?

“남경(南京), 태주(泰州), 천호(芜湖), 황강(黄冈), 악양(岳阳) 할 것 없이 모조리 전쟁이다!”

“……뭔 소리래?”

“전쟁이 났다고! 장강 지류에 있는 도시에서 사파 놈들과 정파 간에 전쟁이 벌어진 모양이다!”

“엥?”

자못 심각한 상황이다 보니 홍대광의 낯빛도 어두웠다.

“그냥 싸움박질하는 정도가 아니라, 서로 완전히 끝장을 볼 기세로 싸워 대고 있다는구나.”

옆에서 듣고 있던 현종이 눈살을 찌푸리며 되물었다.

“분타주. 그 소식이 확실하오?”

“부, 분명합니다, 장문인. 개방 본단에서 온 전갈입니다.”

“……본단에서 온 정보라면 분명 확인을 거쳤을 텐데, 어이하여 이리 갑자기…….”

홍대광이 마른침을 삼키고는 입을 열었다.

“아시다시피 사람이 많은 도시에는 정파와 사파가 어느 정도 공존하고 있습니다.”

“그렇지.”

“정파 세력이 워낙 강한 하남에는 사파 놈들이 발을 붙이지 못합니다. 하지만 다른 성은 그렇지 않습니다. 당장 화산이 자리한 섬서만 해도 사파들이 꽤 있잖습니까?”

“그렇지요.”

“종남과 화산이 있는 섬서에도 사파 놈들이 존재하는데, 다른 곳은 오죽하겠습니까? 대부분은 사파 놈들이 마음에 들지 않지만, 서로 죽고 죽이는 전쟁을 벌여 봐야 남는 것이 없으니 적당히 묵인해 주는 처지지요.”

이와 반대로 구파일방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 강남 지역에는 정파가 발을 붙이기 힘들다. 특히나 만인방이 자리한 광서성이나 광동성 쪽, 그리고 환락가가 상권의 중심을 이루는 절강성 쪽은 완전한 사파의 영역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화산이 빠진 뒤 해남도에 위치한 해남파가 구파일방에 들어간 데에도, 이 사파들을 견제하려는 이유가 반쯤은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렇듯 서로 확실한 영역을 주장할 수 있는 곳이 아니라면 대개 정파와 사파가 서로 적당히 어우러지기 마련이었다.

“그런데 왜 갑자기?”

“소림과 무당 때문인 것 같습니다.”

“으음.”

“소림과 무당이 장강으로 몰려와 수적들을 토벌하고는 있는데, 문제는 이들이 다른 문파들에게 그 의도를 미리 알리지 않았다는 거지요. 그러니 장강 주변에 위치한 다른 문파들에겐 이것이…….”

현영이 선수를 쳤다.

“구파일방과 오대세가가 손을 잡고 장강에 있는 수채의 씨를 말리겠단 심산으로 보인다?”

“바로 그렇습니다.”

“허허……. 그래. 나 같아도 그리 생각하겠군.”

소림과 무당은 구파일방에서도 수장 격의 문파들이다. 그 두 문파에 오대세가의 수장이라고 할 수 있는 남궁세가가 힘을 합쳤다.

물론 그 세 문파의 힘을 합친다고 한들 전 중원 정파가 가진 힘의 삼 할이나 되겠냐마는, 옆에서 지켜보는 이들의 시선에서는 거의 모든 정파들이 힘을 합쳐 나서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가만 듣고 있던 청명이 피식 웃으며 입을 뗐다.

“실제로 그들이 장강을 완전히 토벌한다면 좋은 거고, 그렇지 않다고 해도 그 대단한 문파들이 장강에 있는 틈을 타서 꼴 보기 싫은 것들을 싸그리 정리해 버리겠다?”

“그, 그럴 수도 있지!”

모든 문파가 한마음 한뜻으로 움직이는 게 아니니 저들의 저의를 완벽하게 파악할 수는 없다. 다만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움직임의 이유는 확연했다.

누군가가 중얼거렸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지금까지 아무 일이 없다가, 이리 갑자기…….”

한두 문파가 아니다.

홍대광이 언급한 도시들만 해도 몇 곳이었는가. 자그마치 벌써 다섯 곳에서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는 의미다. 굳이 언급할 필요가 없어 말하지 않았거나, 긴급 첩지에 쓸 만한 가치가 되지 않는 작은 문파들까지 포함한다면 수십 곳에서 전투가 벌어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말 그대로 전쟁이 들불처럼 퍼져 나가고 있다는 의미다.

“다, 다르지요. 저들이 보기에 지금은 확연하게 다릅니다.”

“소림과 무당이 움직였기 때문에?”

“그 두 문파는 물론이고 남궁세가도 수십 년 동안 제 영역에서 출정을 떠난 적이 없습니다.”

“……그러고 보니.”

“거대 문파가 출정을 나간다는 건 보통 일이 아닙니다. 화산이야 워낙 일만 터졌다 하면 어디든 달려가니 이상한 걸 모르시겠지만…….”

청명이 눈을 뾰족하게 치떴다.

“뭐야. 지금 우리 엉덩이가 가볍다는 거야?”

“그런 뜻이 아니잖으냐…….”

“맞는 것 같은데?”

진땀을 뻘뻘 흘리기 시작한 홍대광을 보며 현상이 한숨을 내쉬었다.

“분타주. 청명이 놈 말은 무시하고 그냥 하던 말 하시게.”

“……그러고 싶은데 후환이 두려워서…….”

“장문인이 막아 주실 걸세.”

그 와중에도 자기가 막아 준다는 말은 하지 않는 현상이었다.

“여하튼…… 마교대전 이후로 거대 문파들은 거의 제 영역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출정을 한다는 것은 지금까지와 같은 평화로운 강호가 더는 이어지지 않는다는 의미일지도 모릅니다.”

“흐음.”

“게다가 그 출정의 대상이 같은 정파가 아니라 사파이지 않습니까? 힘이 찰 만큼 찼으면 사파 토벌부터 벌어지는 건 지금까지의 무림사를 바탕으로 증명된 사실입니다. 그래서 보통은…….”

“하하. 산적부터 조지지요.”

“…….”

모두의 시선이 일제히 임소병에게로 돌아갔다. 그의 두 눈에서 맑은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짜잔! 벌써 세 곳 정도의 산채들이 습격을 당했다는 소식이 들어왔습니다! 아이쿠야, 정파의 협사님들께서 이렇게 의욕적이시니 아주 개박살이 나겠…….”

“울지 말고 이야기해.”

“아, 아니. 울 거면 울든가 웃을 거면 웃든가.”

“웃퍼서 그럽니다, 웃퍼서…….”

임소병이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었다.

“일단은 맞서 싸우지 말고 누가 쳐들어오면 옆 산채로 다들 도망치라고 이야기해 뒀습니다. 그나마 업종 전환한 곳들은 주변 정파 쪽에 미리 언질을 주고 도시 쪽에서 영업도 좀 했으니 망정이지…….”

“영업을 했단 말이오?”

“홍보가 반입니다! 홍보가! 먹고살려면 해야지요.”

“…….”

산적이 산을 내려가 도시에서 영업을 했다고?

“……이 인간도 대체 머리에 뭐가 든 건지…….”

“장문인. 말로 나와 버렸습니다. 생각으로 하셔야죠.”

“크, 크흠. 내가 실수를 그만…….”

임소병은 고개를 저었다.

“물론 영업이야 직접 한 게 아니라 도시의 상인들에게 의뢰한 겁니다. 여하튼 그런 곳은 어찌어찌 살아남겠지만, 이 격류에 산채도 휩쓸리진 않을 수 없을 테니 몇이나 또 박살이 날지…….”

말끝을 흐린 그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자 청명이 뚱한 얼굴로 말했다.

“뭘 한숨을 쉬고 있어? 도적놈들 박살나면 좋은 거지.”

“……제가 도적이라 그래요. 제가 도적이라.”

“업보지 뭐. 이참에 싹 갈아엎어.”

헛소리를 듣고 있던 홍대광이 헛기침을 하고 말을 이었다.

“그 움직임만으로도 이변을 알아차리기에 충분할 텐데, 여기 다른 문파도 와 있잖습니까.”

“무슨 문파?”

“……사파 갈아 먹기는 천하제일이요. 이제는 구파일방과 오대세가에도 대거리하는 곳이 있잖습니까?”

“천우맹?”

“화산?”

“……바로 그렇습니다.”

현영이 허 하고 탄식을 내뱉었다.

“그럼 다른 정파인들이 보기에는 이 상황이 천우맹과 구파일방, 오대세가가 합작하여 장강수로십팔채를 갈아 마시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건가?”

“그렇지 않겠습니까?”

어딜 봐도 그렇다.

그들이야 화산 소속이고 천우맹 소속이니, 천우맹과 구파일방간의 사이가 어쩌면 사파와의 관계 이상으로 좋지 않다는 것을 알지. 다른 중소 문파들은 그렇게까지는 생각하지 못할 것이다.

그럼 당연히 장강수로채를 상대하기 위해서 힘을 합친 것처럼 보이겠지.

“큰 문파는 주변에 영향력을 끼칩니다. 거대 정파가 자리한 곳에 사파가 발을 붙이지 못하는 이유는 그 거대 정파들이 직접 영역 관리를 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 거대 정파를 등에 업은 문파들이 사파의 씨를 말려 버리기 때문이지요. 속가든, 아예 다른 문파든 말입니다.”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당장 화영문이 진출한 섬서 서안에 사파가 없었던 이유도 거기에 종남이 있기 때문이다. 종남파의 위세를 등에 업은 문파들이 사파가 발을 붙이기도 전에 싹을 잘라 버린다.

애초에 만인방의 무력대가 서안을 습격한 것 역시 종남이 봉문 했기 때문이 아니던가?

“그리고 이건 사파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다시 말해 지금까지 장강 주변의 사파들이 장강수로채의 위세를 등에 업고 패악질을 부리고 있었다는 겁니다. 그러니 지금까지 참아 왔던 정파들이…….”

“수로채가 갈려 나갈 게 보이니까 반격을 시작했다?”

“예. 제 생각에는 그렇습니다.”

“허어…….”

현종이 길게 탄식했다.

‘이거 큰일이로구나.’

당장 이곳에서 벌어지는 전투는 별게 아닐지 모른다. 문제는 그 싸움이 점점 확장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정파들이 주로 자리한 강북과 사파들이 주로 자리한 강남이 장강을 기점으로 나뉘어 있었구나.”

“예. 여기는 정과 사의 경계선 같은 곳입니다. 그런데 그 경계선이…… 지금 흐트러지고 있습니다. 심지어 이어 버리기까지 하니…….”

모두의 고개가 한 사람에게로 돌아간다.

“왜요?”

“…….”

“아니, 강남에 사파가 있든, 강북에 정파가 있든 내가 알 게 뭐예요. 나는 장사해 먹고살려는 건데! 돈 앞에 사파가 어디 있고 정파가 어디 있어요?”

맞는 말이긴 하나 도사의 입에서 나올 말은 아니었다.

“이보게, 분타주.”

“예, 장문인.”

“자네가 보기에는 이 일이 어찌될 것 같은가? 보아하니, 단순히 이러다 끝날 일 같지는 않은데? 혹여…….”

현종은 차마 뒷말을 입 밖으로 내지 못했다.

이 불씨가 정사 간의 커다란 전쟁으로 화할 가능성이 큰가를 물을 셈이었지만, 너무도 불길한 말이라 입 밖으로 꺼내기도 저어된 것이다.

하지만 홍대광은 눈치 좋게 그가 하려던 말을 알아챘다.

“제 생각에는 그렇게까지는 가지 않을 것 같습니다.”

“왜 그리 생각하는가?”

“저들이 사파기 때문입니다.”

“음?”

“정파야 무당이 공격받으면 소림이 도와주고, 종남이 공격받으면 화산이…….”

“같이 공격하지.”

“……이건 예가 조금 잘못됐네요. 아무튼 그게 당연한 일이지만, 사파는 서로 돕지 않습니다. 수로채가 공격을 받으면 돕기는커녕 그 세력을 뜯어먹겠다고 뒤쪽에서 달려들 확률이 높습니다.”

“허허. 아귀 같군그래.”

“그러니 사파 아니겠습니까?”

홍대광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래서 제 생각에는 강북의 자잘한 사파들이 정리되고 수로채 역시 큰 피해를 입고 끝날 확률이 높습니다. 다른 문파라면 모를까 소림과 무당, 남궁세가를 상대로 싸우겠다고 나설 사파가 있겠습니까?”

“……확실히 부담이 되는 이름이로군.”

“어허! 화산은 왜 빼는가?”

현영의 너스레에 홍대광이 쓴웃음을 지었다.

“문제는 이 일로 인하여 정파와 사파가 전쟁을 벌인다는 인식이 퍼져 나가는 것이겠지요. 그 인식이 한번 퍼지기 시작하면 언제 어디서 일이 터질 줄 모르는 일 아니겠습니까?”

“그렇지. 그렇겠지. 예전 같았으면 참았을 일도 더는 참지 않을 테니까. 이쪽이든 저쪽이든.”

“예. 그게 문제기는 한데……. 어쨌든 지금 당장에야 이 일이 더 번지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그럼 다행이로군.”

그런데 그때 팔짱을 끼고 있던 청명이 피식 웃었다.

“과연 그렇게 될까?”

“응?”

홍대광이 그게 뭔 소리냐는 듯 바라봤지만 청명은 굳이 가타부타 설명해 주지 않고 생각에 잠겼다.

‘결국은 사파 놈들이 어떻게 나오느냐란 말이지…….’

현실적으로 생각한다면야 홍대광의 말이 맞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이 사태를 처음부터 예측하고 제 손안에서 굴려 댄 놈이 있다면?

그럼 그놈은 반드시 이 사태를 기반으로 이득을 취하려 할 것이다.

“사람이란 절대 상식대로만 움직이지 않거든. 특히나 그런 놈은 말이야.”

“그런 놈?”

청명이 입꼬리를 비틀었다.

‘그래서 귀신이나 괴물보다 사람이 더 무서운 거지.’

청명의 시선이 머나먼 남쪽을 향했다.

욕망의 화신 같은 인간이 웃으며 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을, 그곳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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