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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귀환-783화 (780/1,567)

783화. 어디 뒈지게 한번 놀아 보죠. (3)

“완성했다!”

“으아아아아아아!”

“눈물 날 것 같아!”

화산의 제자들이 글썽거리며 앞쪽에 완성된 선착장을 바라보았다.

선착장이라고 해 봐야 돌과 바위, 그리고 흙을 퍼부어 강을 조금 메운 것에 불과하지만……. 아니, 오히려 그래서 더 대단한 곳이다.

“……허리 부러지는 줄 알았어.”

“세상에……. 산도 깔 수 있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는데, 설마 진짜로 산 하나를 까 버릴 줄이야…….”

그 말을 들은 화산 제자들의 시선이 일제히 뒤쪽으로 돌아간다.

선착장에 인접해 있던 작은 동산 하나가 통째로 사라져 휑하니 비어 있었다. 그 산을 이루던 흙과 돌들을 저 강에 모조리 들이부은 것이다.

“……뭔가 뿌듯한데.”

“뭔가 서글프기도 하고.”

살짝 복잡하고 묘한 표정으로 선착장을 보던 화산 제자들은 일제히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더 서글픈 사실은 지금쯤이면 강 건너편에서 똑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을 거란 점이었다. 그러니까 선착장도 두 개. 사라진 산도 두 개…….

“저쪽도 대충 끝난 것 같은데?”

화산 제자들의 시선이 섬 쪽으로 향했다. 건너편 섬에서부터 뻗어 나온 배다리가 거의 형태를 갖췄다. 녹림도들이 들러붙어 해낸 것이었다. 배와 배를 서로 잇고 갑판 위쪽으로 거대한 목재를 놓아 다리를 만들었다.

“……섬에다가 나무다리를 놓는다는 게 사람이 할 발상이냐고!”

산의 돌과 흙, 바위들이 물속으로 처박혔다면 그곳에 있던 나무들은 다 어디에 갔겠는가?

그들이 뽑아낸 나무는 녹림도들의 손에서 잘 다져져(?) 목재로 가공되어 다리를 만드는 데 쓰였다.

“배를 엄청 엮어 놨다지만, 저만한 무게를 잘도 버티네.”

“말도 못 하게 튼튼하겠다.”

“튼튼하면 뭐 하냐? 불화살 하나면 모조리 다 불탈 텐데.”

“재, 재수 없는 소리 하지 마!”

“이 새끼가 부정 타게!”

“적벽대전이 따로 있나. 그날로 구강대전 열리는 거지.”

“…….”

불타오르는 배들을 머릿속에 그려 본 모두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하지만 곽회는 그 말을 듣고도 오히려 코웃음을 쳤다.

“꿈같은 소리 하고 있다. 저놈이 어디 그럴 놈이냐?”

“응?”

“청명이 제 돈과 노력이 들어간 걸 그리 쉽게 불타게 놔둘 놈이냐고?”

“일단 첫째로 여기에 그놈 돈은 한 푼도 안 들어갔고, 노력이라고는 주둥아리 턴 것밖에 없는 것 같은데?”

그 말에는 곽회도 말문이 막혀서 움찔했다.

“여, 여하튼 그럴 일은 없을 거다. 듣자 하니 당가에서 특수한 약품을 가져와 배에 칠한다고 하더라. 불이 붙지 않게 해 주는 약이라던가?”

“……그런 게 있어?”

“사천당가인데 뭔들 없겠어. 한철검도 만들어 주는 곳인데.”

“그건 그렇지.”

사천당가 자체가 일리라는 듯 모두 일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다 끝난 건가? 배는 다 엮었고, 선착장도 다 만들었고, 사람들 실어 나를 배도 따로 빼 놨잖아.”

“수적들은 덜 끝난 모양이야.”

“왜?”

“……화포 한 문 아직 못 찾았대.”

“…….”

“없어?”

청명이 두 눈을 부라리자 수적들이 움찔한다.

그들의 턱을 타고 차가운 강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물에 빠진 생쥐 같은 측은한 꼴을 보면 지옥의 아수라도 동정심을 느낄 만하건만, 눈앞의 이 도사는 지옥의 아수라보다 더 지독한 놈이었다.

“아니, 하는 짓이라고는 물속에 들어가 자맥질하는 것밖에 없는 수적 놈들이! 어? 바늘도 아니고! 그 커다란 화포를 못 찾는다는 게 말이나 되는 소리야!”

“도, 도장님. 강바닥까지 샅샅이 뒤졌으나……. 도무지…….”

“정말입니다! 미, 믿어 주십시오. 가라앉은 배 안을 모두 뒤져 봤는데 정말 없습니다!”

청명의 눈이 점점 분노로 번들대기 시작했다.

“못 찾았다?”

“예. 저, 정말입니다. 최선을 다했으나…….”

확실히 수적들의 몰골을 보면 최선을 다하다 못해 영혼까지 끌어다 쓴 것 같았다. 며칠 내내 물속에서 거의 나오지 못하고 바닥을 훑고 다니느라 얼굴에는 핏기 하나 없었고, 두 볼은 한 달 가까이 굶은 사람처럼 핼쑥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청명에겐 조금도 먹히지 않았다.

“찾으면 어쩔래?”

“예?”

“내가 찾으면 어떻게 할 거냐고?”

“그, 그건…….”

“야, 나와!”

응? 누굴 보고 하는 말이지?

갑작스러운 말에 수적들이 영문을 모르고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런데 그 순간 청명의 상의가 꿈틀꿈틀 움직이더니 곧 앞섶에서 새하얀 솜뭉치 같은 것이 불쑥 튀어나왔다.

톡.

바닥에 내려선 백아가 허리를 꼿꼿하게 세우고 우렁차게 울부짖었다.

“키이이이!”

물론 객관적으로 보기에야 그렇게 큰 소리는 아니었지만.

“들었지?”

백아가 비장하게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가서 찾아와.”

획!

새하얀 담비가 섬전 같은 속도로 달리더니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그 광경을 본 수적들이 눈을 끔뻑였다.

‘뭐여, 씨벌.’

‘내가 지금 뭘 본 거야?’

‘족제비가 물에 왜 들어가? 물개도 아니고?’

여하튼.

저놈의 화산파 것들은 사람이고 짐승이고 멀쩡한 것이 없다.

하지만 정말 놀랄 일은 조금 뒤에 벌어졌다.

파아아아아앗!

갑자기 물 안에서 뭔가 시커먼 것이 튀어나왔다.

“뭐야?”

“용?”

“가, 가물치네! 뭔 가물치가 저렇게 커?”

“그런데 가물치가 물 밖으로 왜……. 어?”

퍼덕! 퍼덕!

물 밖으로 끌어내진 가물치가 연신 몸을 뒤틀며 퍼덕거렸다. 자세히 보니 그 뒤쪽에서 백아가 제 몸보다 열 배는 더 큰 가물치를 툭툭 쳐서 뭍으로 끌어내고 있었다.

‘주인은 잔포흑어를 잡더니…….’

‘애완동물은 흑어를 잡네.’

뭐 저런 똑같은 것들이…….

저 작은 족제비가 저 큰 가물치를 잡는 게 말이 되나 안 되나 하는 문제야 이제 아무래도 좋았다.

“아니, 근데 이 새끼가? 화포 찾아오라고 했더니 밥이나 챙겨 와?”

청명이 빽 고함을 지르자 백아가 화들짝 놀라 격하게 고개를 내저었다. 그러더니 앙증맞은 앞발을 쭉 내밀어 물가를 가리켰다.

“아, 찾았어?”

끄덕끄덕.

“애들 데리고 가서 건져 와.”

끄덕끄덕.

백아가 토도독 소리를 내며 달리더니 앞쪽에 있는 수적의 몸을 삽시간에 타고 올라 머리 위에 앉았다. 허리를 꼿꼿하게 펴고 앞발을 쭉 내밀었다. 흡사 장군의 기세였다.

“키이!”

“…….”

누가 봐도 저건 ‘가자 노예 놈들아’였다.

‘그 주인에 그 애완동물이라더니.’

‘뭔 놈의 족제비가…….’

“빨리 안 가?”

“가, 갑니다요!”

“지금 갑니다! 지금!”

청명이 또 엉덩이를 걷어찰 기세로 화르륵 달려오자 수적들이 기겁하며 앞다투어 물로 뛰어들었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현종이 끙 하고 앓는 소리를 냈다.

‘분명히 괴롭히고 있는 거긴 한데.’

도사의 신분으로 사람을 괴롭힌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저들이 수적이라는 게 문제다. 강도짓으로 남의 눈에서 피눈물 나게 해서 벌어먹고 살던 이들이라면 당연히 벌을 받는 게 맞으니, 그들을 구박하는 청명이 놈을 마냥 혼내기도 애매했다.

“장문인.”

“음?”

“청명이 놈의 말이 맞는 모양입니다. 준비가 거의 끝나 가는데 수적들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습니다.”

“저기 있잖느냐?”

“……저들 말고 말입니다. 수로채가 쳐들어올 줄 알았는데…….”

“어렵겠지.”

현종이 중얼거리며 침음했다.

그들 역시 홍대광에게 소식을 전해 들었다.

“구파의 수장인 소림과 무당, 오대세가의 수좌인 남궁세가다. 거기에 청성이라니…….”

강물을 물끄러미 응시하는 현종의 얼굴은 더없이 굳어 있었다.

“근래에 그들의 이름을 들을 일이 많이 있어서 실감하지 못하는 듯하나, 그 정도면 구파일방의 절반이 움직인 것이나 다름없는 전력이다.”

현상이 잠시 침묵하다 말했다.

“무슨 말씀을 하시려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현상아. 우리는 최근 들어 소림을 꽤 자주 보지 않았더냐?”

“그렇지요.”

“그럼 그들이 싸우기 위해서 출정하는 것을 본 적이 있더냐?”

잠시 무어라 말하려던 현상이 입을 다물었다.

그제야 현종이 하고자 한 말이 무엇인지 이해한 것이다.

‘소림이 전장에 나섰다.’

그 말이 가지는 지독한 무게가 현상을 짓누르기 시작했다.

“소림과 무당이 위에서 장강을 압박하고, 좌우에서 남궁세가와 청성이 움직인다. 이 드넓은 장강이 그 네 문파의 공격에 삼면에서 포위된 형국이구나.”

“장문인…….”

현종이 고개를 내젓는다.

“마교와의 전쟁 이후로 백 년이다.”

“…….”

“크고 작은 소요는 있었지만, 저 구파의 수장들과 오대세가의 수장이 저리 한 번에 움직인 적은 없었다.”

현상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인다.

“이 일의 의미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구나.”

현종은 복잡한 시선으로 흐르는 강물을 응시했다.

가득 채워진 잔은 언젠가 흘러넘친다. 영원히 이어지는 평화는 없다.

그뿐 아니라 강호의 모두가 이 지루한 평화가 언젠가는 깨어질 거란 사실을 예측하고 있었다.

‘그게 지금은 아니기만을 빌어야겠구나.’

현종의 입에서 낮은 한숨이 새어 나왔다.

“그건 그렇고…….”

“예?”

현종이 슬쩍 눈을 돌렸다. 강물을 보며 삿대질을 해 대는 청명에게로 시선이 꽂혔다.

“도통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가 없으니…….”

“어쩌겠습니까. 원래 그런 놈인데.”

“끄응.”

그야 그러니 어쩔 수는 없지만…… 답답하고 걱정스러운 마음은 어찌할 수 없는 현종이었다.

* * *

“채, 채주!”

“…….”

무한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와류채(渦流寨)의 채주, 남적(南積)의 볼이 푸들푸들 떨리고 있었다.

“채, 채주! 밀립니다!”

밀릴 수밖에.

그들은 아직 장강수로십팔채에도 들지 못한 수채였다. 하지만 지금 저기서 밀려오고 있는 이들은 다른 곳도 아닌, 그 명성 높은 무당파였다.

새하얀 무복을 입은 무당파의 제자들이 일제히 밀려오는 모습은 마치 태풍이 몰아치는 날 덮쳐 오는 커다란 파도와도 같았다.

“이…… 이…….”

남적의 두 눈에 핏발이 섰다.

“이 빌어먹을 도사 놈들이! 왜 갑자기 우리를 공격한단 말이더냐! 그동안은 장강에 코빼기도 비추지 않더니!”

“채주! 결단을 내리셔야 합니다!”

“빌어먹을! 달아난다! 모두 뿔뿔이 흩어져서 달아나라고 해라!”

아직 십팔 채에는 들지 못했다지만 어쨌든 장강에서 악명을 떨치는 수채의 채주다. 그런 그가 이리 맥 빠지는 결단을 내렸다. 하지만 누구도 남적의 말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남적이 포악하기 때문이 아니다. 그들이 아무리 용을 쓴다고 해도 작정하고 밀려드는 무당을 감당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걸 모두가 알기 때문이었다.

“후퇴! 후퇴하라! 빌어먹을! 모두 도망쳐라!”

남적이 있는 힘껏 고함을 내지르는 찰나였다.

“무의미한 짓을 하는군.”

그의 등 뒤에서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

순간 움찔한 남적이 고개를 돌렸다.

어느새 등 뒤에 누군가가 소리 소문 없이 다가와 서 있었다. 무당파의 상징인 태극이 그려진 무복을 입고 한 손에 검을 쥔 채 늘어뜨린 초로의 검수.

“너…….”

“죗값이란 언제고 결국엔 치르게 되어 있지. 그만 가거라.”

“이 개 같…….”

서걱.

일 검. 단 일 검이었다.

장난처럼 휘두른 일 검이 아무렇지도 않게 남적의 목을 갈랐다.

“끄륵…….”

깔끔하게 목젖이 베인 남적은 두 손으로 목을 부여잡은 채 뒤로 주춤주춤 물러났다. 핏발 선 두 눈에 경악만이 가득했다.

하지만 그의 목을 벤 이가 내뱉은 말을 듣는 순간 남적의 모든 의혹은 깨끗이 사라졌다.

“내가 무당 장문인 허도다.”

“…….”

남적의 몸이 스르르 무너져 내렸다.

적어도 저승에서 누가 너를 죽였느냐는 묻는다면, 떳떳하게 그 이름을 밝힐 수 있겠다는 것이 숨이 끊기기 전의 마지막 생각이었다.

털썩.

일 검에 채주를 베어 버린 허도의 시선에 온기라고는 없었다. 그는 가차 없이 검을 휘둘러 덜덜 떨고 있는 수적들을 하나하나 베어 냈다.

스릉.

잠시 후 피 한 방울 남지 않은 검을 검집에 밀어 넣은 허도진인이 제자들을 향해 차갑게 일갈했다.

“저항하지 않는 이는 죽이지 마라! 우리는 도인이다!”

“예!”

“하나 저항하는 이에게는 자비를 베풀지 마라! 악을 참하는 것 역시 우리가 짊어져야 할 일이다!”

“예!”

우렁찬 대답과 함께, 무당의 제자들이 수적들을 쓸어 나갔다. 이 광경을 보는 허도진인의 눈이 한층 더 어두워졌다.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