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9화. 인생은 원래 고통이라오. (3)
“크하아아아아아앗!”
먼지투성이가 된 도사가 힘겹게 발을 옮겨 구강에 들어섰다.
“여, 여기가 구강인가!”
도사.
현종이 재빠르게 주변을 살폈다.
‘얼마나 고초가 많았을꼬!’
청명이만 제때 도착했다면 위험할 일이야 없었겠지만, 그렇다 해도 상대는 저 장강수로채다. 몇 되지 않는 수로 감당할 수 있는 이들이 아니다.
“어서들 오거라!”
“예! 장문인!”
하지만 이제 그들은 더 이상 소수가 아니다.
섬서에서 끌고 온 화산의 주력들이 지금 막 그와 함께 이 구강에 도착했으니까!
물론 화산파 단독으로 저 장강수로채 모두를 상대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지만, 수채 한둘 정도야 쉽사리 쓸어버릴 수 있다. 이제 화산은 더 이상 섬서의 나약한 삼류 문파가 아니니까!
뒤에 든든하게 버티고 선 제자들을 본 현종의 두 눈에 강렬한 정광이 빛났다.
“아이들을 건드렸다면 그 대가를 치르게 해 줄 것이다! 가자!”
“예, 장문인!”
화산파의 제자들이 흉흉한 기세를 내뿜으며 보무도 당당하게 구강으로 진입했다.
“……뭐라 했는가?”
“아. 벌써 다 끝났습니다, 장문인.”
“벌써……?”
“예. 모조리 다 쓸어버렸답니다.”
“…….”
현종이 멍하니 두 눈을 끔뻑였다. 말을 전한 거지는 조금 안쓰러운 얼굴로 그런 그를 바라보았다.
“……혹시 그 수채가 아주 작은 곳이었는가?”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장강수로십팔채 중 하나인데.”
“그렇지?”
“그 수로채 중에서도 나름 이름이 있는 대경채라는 곳입니다.”
“대별채?”
“대별채는 녹림이잖습니까! 대경채요, 대경채!”
“……왜 산채고 수채고 이름을 다 그렇게 짓는가? 소채볶음도 아니고.”
“그거야 뭐……. 별생각 없이 지어서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누가?”
“글쎄요. 모르지요.”
넋을 놓은 현종과 대화하려니 답답했던 거지가 손을 휘휘 저었다.
“여하튼 그 대경채가 박살이 났습니다. 심지어 대경채뿐 아니라 새로 생긴 수채 하나도 박살을 내 버렸습니다. 지금 구강은 그 일 때문에 난리도 아닙니다.”
현종이 다시 두 눈을 끔뻑였다.
“……걔들이?”
“예.”
“수채를?”
“아, 그렇다니까요!”
“어찌된 일인지 설명을 좀 해 보게나.”
“아. 그게 어찌 된 일인가 하면……!”
잠시 후, 개방의 거지로부터 저간의 사정을 모두 들은 현종은 입을 쩌억 벌렸다.
“……녹림도들을 끌고 왔다고?”
“예. 그렇지요, 장문인.”
“……녹림도를?”
“예. 그렇습니다.”
현종의 벌린 턱은 아예 금방이라도 빠질 듯 덜컥거렸다.
그러니까…… 도사가 산적들을 끌고 와서 수적들을 때려잡았다?
‘이게 대체 무슨 소리냐?’
아니, 이해는 가는데…… 그놈이 청명이라는 걸 감안하면 이해가 가긴 하는데…….
이해 안 되는 이해를 억지로 해 보려는데 등 뒤에서 수군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역시 청명이네.”
“사실 그쪽이 좀 더 어울리지 않나?”
“좀? 아니지, 많이 어울리지!”
“어차피 도사나 산적이나 산에서 먹고사는 건 똑같지 뭐.”
똑같긴 뭘 똑같아, 이놈들아!
속이 터질 것 같은 황당함과 그 와중에 이상하게 차오르는 뿌듯함 사이에서 갈 곳을 모르던 현종은 그가 온당히 가장 먼저 물어야 했던 말이 무엇이었는지를 기억해냈다.
“그래서 아이들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아. 그게 말입니다…….”
뭔가 떨떠름해하는 거지의 표정을 본 현종의 얼굴에 묘한 불안감이 감돌았다.
* * *
“…….”
현종은 저 멀리 건너편에 보이는 섬을 응시했다. 눈빛에 뭐라 말할 수 없는 혼란이 깃들어 있었다.
“저게…… 뭘 하는 것이더냐?”
“뭘 짓고 있는 것 같은데요.”
“아니, 배들이 몰려 있는 것도 같고.”
“굳이 저기서 왜?”
“뭐…… 보나마나 또 말도 안 되는 짓을 저지르고 있는 거겠지.”
이럴 때는 젊음이라는 게 참 부럽다.
화산의 제자들은 저 괴이한 광경을 보면서도 딱히 놀라지 않았다. 이미 청명을 알 만큼 알았고, 이해할 만큼 이해했기 때문이다.
‘왜 나는 여전히 적응이 안 되느냔 말이다.’
그때 건너편에서 배 한 척이 이쪽을 향해 다가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배네요.”
“아니, 배가 아닐지도 모르겠는데? 보통 배가 저런 속도로 움직일 수 있나?”
이윽고 가공할 속도로 다가오고 있는 배의 선수에서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장문이이이인!”
“으……. 으음. 그래, 백천아.”
백천은 아예 배에서 훌쩍 날아올라 현종의 바로 앞에 착지하더니 깊은 공경을 담아 예를 표했다. 얼굴에 반가운 기색이 가득했다.
“장문인을 뵙습니다.”
“고생이 많았구나. 다친 데는 없고?”
“장문인께서 걱정해 주신 덕분에 제자들 모두 무탈합니다.”
“그래. 참으로 다행이다. 참으로…… 그래, 다행인데…….”
현종이 말끝을 흐리자 백천이 슬쩍 눈치를 살폈다. 무슨 말을 하실지야 그도 알고 뒤에 있는 이들도 모두 알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현종이 가볍게 턱짓하며 물었다.
“저건…… 뭐 하는 짓이더냐?”
“……그게…….”
백천도 할 말을 고르다 차마 설명을 하지 못했다.
“직접 가서 보시는 게…….”
“……그래. 그러자꾸나.”
현종도 딱히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그나마 화산에서 청명을 말릴 수 있는 백자 배가 백천과 유이설이라고는 하지만, 그건 그냥 말 그대로 말려 보는 것에 불과하니까.
“저 배에 타면 되느냐?”
“예. 장문인. 우선은 탈 수 있는 인원만 타면 됩니다. 배가 또 올 것입니다.”
현종이 힘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배가 가까이 접근하자 현종을 비롯한 몇몇 제자들이 지체 없이 올라탔다. 그러자 배가 제자리서 획 회전하더니 섬을 향해 빠르게 나아갔다.
물에 나와 본 경험이 그리 많지 않은 현종이지만, 적어도 이 배의 움직이는 속도가 범상치 않다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다.
“……바람도 안 부는 것 같은데 어째 속도가…….”
“아래에서 사람들이 노를 젓고 있습니다. 하나같이 무인이라 그런지 속도가 굉장히 잘 납니다.”
백천의 설명에 현종은 슬쩍 난간 너머로 고개를 내밀어 아래를 보았다. 과연 노가 어마어마한 속도로 움직이고 있었다. 게다가 그들이 젓는 노는 아무리 봐도 나무로 만든 목로가 아니라 쇠로 만든 철노다.
“……저걸 젓는 게 다들 무인이라고?”
“예, 장문인.”
“…….”
그 많은 무인들이 왜 배아래서 노를 젓고 있는지 현종은 차마 묻지 못했다. 이제는 그 정도는 대충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단련된 무인인 그의 귀에는 아래에서 들려오는 신음과 고통의 소리가 똑똑히 들렸다.
“저어라! 빨리 저어라, 이놈들아! 늦으면 진짜로 맞아 죽는다!”
“귀신은 뭐 하나! 그 새끼 안 잡아가고!”
“귀신이 지금 뭐 하는지는 모르겠는데, 늦으면 우릴 잡아갈 거란 건 알겠다! 닥치고 빨리 저어!”
“용왕이시여! 제발 그 새끼 좀! 으아아!”
현종이 슬쩍 고개를 뒤로 빼고는 눈을 감았다.
‘나는 아무것도 못 들었다.’
환청이었겠지.
그래, 환청…….
질끈 감았다 뜬 현종의 눈에 섬의 모습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아니 정확하게는 섬의 모습이 아니라, 섬 앞쪽에 줄 맞춰 정박한 배들의 모습이 보인다.
그건 굉장히 기이한 광경이었다.
배가 정박하면 보통은 섬 주변을 타고 서 있기 마련이건만, 지금 현종의 눈에 보이는 배들은 섬에서 강쪽 방향으로 곧게 일자로 줄을 지어 서 있다.
그것만으로도 괴이하건만, 그 줄지어 선 배들은 하나같이 커다란 사슬로 칭칭 묶여 있었고, 그 선박들 사이로는 커다란 나무판들이 마치 다리처럼 놓여 있었다.
“저, 저게…….”
괴이한 배다리의 끝자락에선 한 무리의 사람들이 개미처럼 달라붙어 고함을 질러 대고 있었다.
“야! 이익, 거기 꽉 잡으라니까!”
“확실하게 이으라고, 확실하게! 사슬로 엮고 거기 나무못을 박으란 말이야!”
“이거 흔들리면 우리 목숨도 같이 흔들리는 거야!”
모두 웃통을 벗어젖힌 남자들로, 배와 배를 이으려는 듯 그 사이에서 꽉 움켜쥔 채 고래고래 소리를 쳤다. 어떻게든 배를 붙여 고정하려는 모양이었지만 워낙 급류가 심한 곳이라 파도가 한 번 칠 때마다 선체가 요동을 쳤다.
“으아아아아아악! 떨어진다!”
“아아아아악!”
결국 간신히 조금 붙여 뒀던 배와 배 사이가 훅 멀어지면서 고정하고 있던 이들이 우수수 강으로 떨어졌다.
풍덩! 풍덩! 풍덩!
“아아아아아악! 살려 줘어어어어어!”
“떠내려간다아아아아!”
물에 빠진 이들이 급류에 휩쓸려 비명을 지르며 멀어져 갔지만, 배에 오른 이들은 익숙한 일이라는 듯 그쪽으로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좁혀! 좁혀! 사슬 당기라고!”
“아, 꽉 잡으라니까! 이번에도 떨어지면 두목이 우릴 물에 처넣는다 그랬어!”
“끄아아아악! 빨리! 빨리 당겨! 팔 떨어지기 전에!”
배 두 개를 양손으로 죽을 둥 살 둥 움켜잡은 이들이 악을 쓰면 배가 좁아진 틈을 타 사슬을 든 이들이 배를 옮겨 타며 어찌어찌 두 척을 서로 엮었다.
“저게…….”
현종이 뭔가 말을 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할 말이 없었기 때문도 아니고, 당황했기 때문도 아니다.
그보다 더한 일이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푸와아아아아아아앗!”
“히이이이이익!”
“수, 숨이……”
격하게 흐르는 강물 속에서 또 다른 무리의 사람들이 솟아오르더니 십 년은 숨을 쉬지 못했던 것처럼 격하게 헐떡거리기 시작했다.
“더는 못……. 꼬르륵.”
“저, 정신 차리게! 여기서 정신을 잃으면 정말 빠져 죽어!”
“교, 교대! 제발 교대 좀 해 줘! 제발……. 추워 죽을 것 같아…….”
“어머니…….”
목불인견.
그 끔찍한 참상을 목도한 현종은 말없이 눈을 끔뻑이다가 고개를 돌려 백천을 바라보았다.
백천의 시선은 이미 저 먼 어딘가로 돌아가 있었다.
“……백천아.”
“예, 장문인.”
“저분들은?”
“수적들입니다.”
“…….”
아, 수적이구나.
수적이 물에 빠져 죽으려고 하네. 허허…….
“지금 저게 뭐 하는 것이더냐?”
“……두 가지 일을 하고 있습니다.”
“두 가지?”
“예. 하나는 물 아래에서 닻을 단단히 고정하는 일입니다. 이곳은 물살이 워낙 세다 보니 평범한 닻으로는 배가 고정이 안 돼서…….”
“…….”
“그래서 강바닥을 파내 특수 제작 한 닻을 심고 있습니다. 그 닻과 사슬을 연결해 배를 고정하는 거죠.”
“……또 하나는?”
“전에 해상전을 하며 침몰한 배 속에서 필요한 물품들을 건지는 중입니다.”
“…….”
현종의 시선이 수적들에게로 향한다.
물에 빠진 생쥐……. 아니, 생쥐는 좀 과하고 물에 빠진 개……. 아니, 이것도 그렇고…….
여하튼 물에 빠진 무언가가 된 수적들의 얼굴은 물귀신처럼 새파랗게 질려 있었다. 심지어 저들조차도 자신들이 물속에서 저런 꼴이 되리라고는 단 한 번도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수적들을 그…… 일을 시키고 있다고?”
“예. 하나하나가 다 소중한 노동력이라고…….”
그래, 그럴 수 있다. 살다 보면 그럴 수도 있다. 청명이라면 더더욱 그럴 수 있다.
하지만 그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산적과 도사에게 붙잡혀 강제 노동을 하는 수적들이 아니라 그들의 발부터 섬까지 연결된 반짝이는 무언가였다.
“하면, 백천아.”
“예. 장문인.”
“저분……들은 왜 다리에 저런 걸 차고 있는 것이냐?”
“아, 그게…….”
이 얘기는 차마 장문인의 얼굴을 보고는 할 수 없는 듯, 백천은 시선을 내리깔았다.
“청명이 놈이 수적들을 물에다 그냥 풀어놓는 건 도망가라고 응원해 주는 거나 마찬가지라고, 도망치지 못하게 해야 한다고…….”
“그래서 사람 다리에 저런 사슬을 묶어 놨다?”
“……그렇습니다.”
현종은 더 이상 묻지 않고 말없이 푸른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오늘따라 하늘이 아주 오지게 맑고 푸르렀다.
“허허허……. 허허……. 사람들이 노예가 되지 않도록 구하라고 보냈더니, 수적이랑 산적들을 노예로 부리고 있구나. 허허……. 허허허허…….”
한참을 실성한 듯 웃던 현종이 한결 산뜻해진 얼굴로 백천을 바라보았다. 백천은 오히려 흠칫했다. 저 편안한 얼굴이 더 무서웠다.
“대충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는 알았단다.”
“예, 장문인.”
“그러니 근본적인 물음으로 돌아가자꾸나.”
“……예.”
“대체 이 짓을 왜 하고 있는 것이냐?”
이번에는 백천이 말없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수려한 두 눈에 맑은 물기가 차올랐다.
장문인.
그건…… 그건 제가 제일 궁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