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8화. 인생은 원래 고통이라오. (2)
작은 향로에서 백색 연기가 끊임없이 흘러나왔다. 그리하여 실내는 새하얀 연기로 꽉 차 앞이 보이지도 않을 정도였다.
나른한 숨소리가 느리게 울렸고, 술 냄새가 지독하게 풍겼다.
인세의 것이 아닌 듯한 기묘한 분위기가 희미한 등이 밝혀진 방 안을 떠돌았다.
저벅. 저벅. 저벅.
그때 분위기와는 어울리지 않는 단호한 발소리가 밖에서부터 들려오더니 이내 짧고 냉한 음성이 문을 뚫고 들어왔다.
“방주. 임무를 마치고 복귀했습니다.”
대답은 없었다.
한참 동안 기다리며 침묵을 지키던 이가 짧게 명을 내렸다.
“열어라.”
“하, 하지만 방주께서…….”
“열어.”
“……예.”
굳게 닫혀 있던 문이 활짝 열리자 방 안을 꾸역꾸역 채운 새하얀 연기가 훅 밀려나왔다.
코끝을 자극하는 향에 호가명이 슬쩍 눈살을 찌푸렸다.
“음.”
연기가 조금 가시고 나니 방 안에 여러 사람이 제멋대로 퍼질러져 자고 있는 광경이 보였다. 엎질러진 술과 정신을 잃은 사람들 사이에서 작은 화로가 연신 연기를 뿜어 대었다.
그리고 그 중앙, 조금 부자연스럽게 배치된 커다란 금침 위에 그가 익히 아는 사람이 곯아떨어져 있었다.
호가명은 나지막이 한숨을 내쉬었다.
“일어나라.”
널브러져서 깊이 잠에 빠진 이들은 그의 말을 듣지 못한 듯 미동도 없었다.
“목이 떨어져도 계속 자고 있을지 두고 보지.”
용케도 그 말만은 들은 것일까?
하나둘 고개를 든 이들이 문 앞에 선 호가명을 발견하고는 사색이 되어 몸을 떨었다.
“구, 군사님…….”
“꺼져라.”
“예!”
그들은 기겁하며 허겁지겁 자리에서 일어났다. 술이 덜 깬 듯 휘청대는 몸을 이끌고 필사적으로 움직이려다 보니 바닥을 구르고, 저들끼리 뒤엉켜 엎어지고 아주 난장판이 벌어졌다.
그들이 방 밖으로 우르르 빠져나가는 걸 확인한 호가명은 한숨을 내쉬고는 명했다.
“화로를 치워라.”
“예, 군사님.”
그를 따라온 이들이 방 안으로 들어가 화로를 조심스레 들고 나왔다.
그러더니 이미 여러 번 해 본 일인 듯 능숙하게 바닥을 치우고 창과 문을 활짝 열어 환기했다.
“됐다.”
“예!”
호가명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허리를 깊이 숙인 그들은 일사불란하게 방에서 빠져나갔다.
마침내 안으로 들어선 호가명이 금침 앞에 섰다.
“방주님.”
“…….”
“방주님.”
“으음?”
한없이 푹신해 보이는 금침 위에 누워 있던 장일소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눈살을 찌푸리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가명아.”
“예, 방주님.”
“추워. 문 좀 닫아.”
장일소가 이불을 끌어 올려 몸을 꼼꼼히 덮었다. 호가명의 입에서 다시 깊은 한숨이 밀려 나왔다.
“방주님. 자꾸 대낮부터 이러시면 방주로서의 위엄이 살지 않습니다.”
“……오자마자 잔소리네.”
“그리 말씀을 드렸는데…….”
“모르는 소리를 하는구나. 나는 지루한 게 싫다. 기다려야 한다는 걸 알고 있어도 기다리는 게 싫단 말이지.”
“일어나셔야 합니다.”
“끄응.”
호가명이 왔으니 자는 건 다 글렀다는 듯이 장일소가 구시렁대던 걸 멈추고 이불을 걷으며 그 자리에 앉았다.
그러자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시비들이 조심스러운 걸음걸이로 안으로 들어섰다. 가장 앞서 들어온 시비가 양손으로 조심스레 곰방대를 바치자 장일소가 받아 들고는 입에 물었다.
“몽연(夢煙)에 너무 심취하시면 안 됩니다.”
“알았다. 알았어.”
“방주님을 걱정해서 드리는 말씀이 아닙니다. 저따위 연기가 방주님을 어찌할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다른 놈들은 다릅니다.”
“알았다지 않니. 끄응. 넌 어째 갈수록 잔소리만 느는구나.”
장일소가 손을 휘휘 저으며 진저리를 쳤다.
그러자 호가명이 송구하다는 듯이 고개를 숙였다.
그 와중에도 시비들은 장일소의 곁에 붙어 부지런히 그를 단장시켰다. 대야에 떠 온 깨끗한 물에 비단을 적셔 장일소의 얼굴을 닦아 내고, 흐트러진 그의 머리를 꼼꼼히 빗어 내렸다.
시비가 조심스레 장일소의 눈두덩을 비단으로 닦을 때였다.
“아파. 살살 좀 해라.”
“바, 바, 방주님! 주, 죽을죄를…….”
순간 안색이 파랗게 질린 시비가 사시나무처럼 떨며 애걸했다. 그 모습에 장일소가 기가 찬다는 듯 허, 하고 탄식했다.
“왜 그렇게 떨고 그래. 왜? 누가 잡아먹기라도 한대?”
“자, 잘못했습니다! 한 번만 용서해 주십시오. 제발…….”
“……새로 왔니?”
“예?”
장일소가 한숨을 푹푹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대체 새로 뽑은 아이들은 밖에서 무슨 말을 듣고 오기에 내가 헛기침만 하면 경기를 일으키는지 모르겠구나.”
“무얼 들었겠습니까? 있는 그대로 들었겠지요.”
“그럼 겁이 날 리가 있니. 얘야, 겁먹지 말거라. 나는 자상한 사람이란다.”
“예! 예, 방주님. 정말 감사합니다…….”
장일소는 가볍게 웃으며 살아난 기쁨에 눈물 흘리는 시비의 머리를 톡톡 두드려 주었다. 그리고는 천천히 양팔을 벌렸다. 뒤쪽에서 대기하던 시비들이 그가 걸친 백색의 나삼을 벗겨 내었다.
“…….”
호가명은 순간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보며 낮은 숨을 토했다.
실로 완벽한 육체였다.
평소 몇 겹의 비단옷으로 가려져 있어 웬만해서는 볼 일이 없는 장일소의 맨몸은 완벽이라는 말 외에는 설명할 길이 없었다.
살짝 마른 듯한 육체는 누군가 조각한 것처럼 조화로웠고, 군살 하나 보이지 않는 육체에 자리 잡은 탄탄한 근육은 수많은 무인을 보아 온 호가명조차 감탄하게 만들었다. 몇 번을 보아도 경이로웠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육체를 처음 보는 이라면 아무도 그런 것에 관심을 두지 않을 것이다. 아니, 그런 것에 관심을 주지 못할 것이다.
그보다 먼저 저 육체에 빈틈도 없이 자리한 흉터들에 눈이 갈 테니까.
지독한 흉터로 뒤덮인 모양새는 얼핏 보면 마치 수십 마리의 검은 뱀이 뒤엉켜 달라붙은 것 같았다. 짐승의 발톱에 패인 것 같은 흉터. 날카로운 무언가에 꿰뚫린 흉터. 그뿐이랴. 검에 베이고, 도에 잘리고, 조에 긁히고, 손에 뜯기고…….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종류의 흉터가 그 육체 곳곳에 온전히 아로새겨져 있었다.
일부러 새겨 넣은 문신 같아 보이기까지 하는 흉터를 몸에 걸친 장일소가 나른한 눈을 느리게 깜박이며 호가명을 응시했다.
가공할 압박감이었다. 이미 십 년이 넘도록 장일소를 모셔 온 호가명도 순간적으로 숨을 멈출 정도였다.
화려한 비단옷 뒤에 가려진 패군 장일소의 진면목.
그의 흉터 하나하나에 지금까지 장일소가 걸어온 가시밭길이 오롯이 새겨져 있다. 배경이 없어서 도와주는 이도 하나 없이 맨손으로 패군이라는 이름을 쟁취했고, 만인방을 세웠으며, 그 만인방을 신주오패의 일원으로까지 끌어올린 그 장일소가 걸어온 길이 말이다.
장일소의 몸을 비단으로 부드러이 닦아 낸 시비들이 옷을 입히기 시작했다.
황금용이 수놓인, 피처럼 붉은색의 장포를 입고, 머리 위에 금관을 올린다. 그리고 양쪽 손목과 손가락에 패물들을 착용한다. 마침내 붉디붉은 입술연지까지 바르고 나서야 호가명이 익히 아는 패군 장일소의 모습이 완성되었다.
“흐음.”
평소와 같이 화려한 차림새로 침상에 비스듬히 기대앉은 장일소가 호가명을 지그시 보았다.
“그래. 어찌되었다고?”
“화산이 수채 하나를 괴멸시켰습니다.”
“하하하하하핫.”
장일소가 한 손으로 입을 가볍게 가리며 낄낄 웃어 대기 시작했다.
“참 그 아이들은 성질도 급하단 말이야. 올 줄은 알았지만, 이리 빨리 움직일 줄이야.”
“덕분이 일이 앞당겨졌습니다. 대경채를 괴멸시킨 화산신룡이 흑사채마저 괴멸시켰습니다.”
“……그렇게나 빨리?”
“예상과 조금 다른 일이 벌어졌습니다. 화산신룡이 화산이 아닌 녹림을 끌고 온 모양입니다.”
“세상에, 그놈은 진짜 뭘 먹고 자란 거지?”
몇 마디 되지 않는 보고로도 저간의 사정을 짐작한 장일소는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정말 독사 같군, 독사 같아. 잘못 다루면 나조차 물리겠어. 흐음. 그래, 뭐 좋아. 뒷마무리는?”
“깔끔하게 처리했습니다.”
장일소가 혀를 차며 손을 내밀자 기다리고 있던 시비가 술을 채운 잔을 조심스레 쥐여 주었다. 정말 안타깝다는 듯 혀를 차던 그가 고개까지 가볍게 저으며 탄식했다.
“흐음. 정말 안타까운 일이야. 고향에 돈은 넉넉히 보내 줬니?”
“일가가 평생 떵떵거리며 먹고살 만한 거금을 주었습니다.”
“잘했구나.”
장일소가 술을 한 모금 머금더니 입꼬리를 비틀었다.
“실상 한 푼도 안 되는 것이 사람의 목숨이잖니. 한데 천금을 받는 대가로 목숨을 내어 놓았으니 그리 억울하지는 않겠지. 그렇지?”
“응당 그럴 것입니다, 방주.”
“혹 돈이 생겼단 소문이 돌면 날파리들이 낄지도 모르니, 애들 몇몇 보내서 단속하라고 해.”
“그리하겠습니다.”
호가명이 살짝 고개를 숙이며 답했다.
이게 장일소의 방식이다.
그는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 누군가를 희생시키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하지만 그 셈만은 과할 정도로 치른다. 그리고 계산이 끝났다 싶으면 그 사실조차 깔끔하게 잊어버린다.
이 계획을 위해 희생된 이들에 대한 생각은 지금 이 순간 장일소의 머리에서 깨끗하게 사라졌을 것이다. 그는 과거를 돌아보지 않으니까.
“예상보다 빠르지만, 예상보다 더 깔끔해. 좋아. 이래야 화산이지. 하하하하하핫!”
재미있다는 듯 웃던 장일소가 돌연 벌떡 몸을 일으켰다.
“가명아!”
“예.”
“준비한 전갈을 보내라!”
“바로 시행합니까? 제 생각에는 아직 조금 더 기다려야 할 것 같습니다만.”
“그래, 확실히 술은 익을수록 값이 나가지. 하지만 때로 너무 익히면 신선한 맛이 사라진단 말이야. 모든 일에는 적당한 시기가 있는 법이다.”
장일소가 검지 끝으로 제 입술을 천천히 훑었다.
“부족한 시간이야 전갈이 도착할 때쯤에는 채워져 있을 것이다. 지금이 적기로구나.”
“그리하겠습니다.”
“하하하핫!”
장일소의 두 눈이 바람맞은 등불처럼 거세게 일렁였다.
“오래도 기다렸어. 오래도……. 이 한순간을 위해서. 이제 기다리는 건 신물이 난다.”
미소 짓는 장일소의 붉은 입술 새로 이 가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기다림만큼 그를 고통스럽게 하는 것도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는 천하의 누구보다 깊이 인내할 수 있는 이였다.
찰나의 성급함으로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게 된다면 기다림의 고통 따위는 아무것도 아닐 만큼 더욱 괴롭게 될 테니까. 장일소는 기다림을 싫어하는 사람이지만 원하는 것은 반드시 손에 넣어야 하는 사람이기도 했다.
그리고 마침내.
이 긴긴 기다림을 끝낼 시간이 왔다.
“화산 덕분에 계획이 십 년은 더 당겨졌구나. 어찌 어여쁘지 않겠느냐? 그래야지. 그래야 배 속에 들어온 놈을 뱉어 고이 살려 보내 준 보람이 있지! 으하하하하하하하핫!”
터져 나온 광소가 전각이 떠나가라 울려 퍼졌다.
심지어 그의 몸에 달린 패물들이 짤랑대는 소리까지 더해지니 한층 더 기괴하고 괴이했다.
그 모습을 보는 호가명의 입가에도 옅은 미소가 피어났다.
‘세상은 짐작조차 하지 못할 것이다.’
아니 설령 알게 된다고 해도 상관없다.
수날, 수십 날 산을 불태우는 거대한 불도, 시작은 작은 불씨일 뿐. 그 불씨를 마른 수풀에 던져 넣는 것만으로도 산을 통째로 불태워 버릴 수 있다.
일단 불이 붙어 버리면 중요한 건 불을 끄는 것이지, 누가 불을 질렀느냐가 아니다.
이제 곧 불이 붙을 것이다.
강호라는 수풀은 지금 작은 불씨 하나만으로도 활활 불타오를 만큼 바싹 말라 있으니까.
“다음 계획을 시행하겠습니다.”
“흐음.”
장일소의 눈빛이 묘하게 빛난다.
“가명아, 가명아.”
“예, 방주.”
“화산신룡은 지금 뭘 하고 있느냐?”
“……그 섬에 박혀서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주시해라.”
“예?”
뜻밖의 명에 호가명이 고개를 들어 의중을 가늠하듯 장일소를 보았다.
“무슨 짓을 할지 모르는 놈이야. 혹여 그 때문에 일이 틀어질 수도 있으니 손끝도 놓치지 마.”
호가명의 눈에 기이한 빛이 떠올랐다.
‘화산의 역할은 이걸로 끝이 아니었던가?’
그들이 해 줘야 할 일이 있어 내버려 두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제 그들은 더 이상 해 줄 일이 없다. 그런데 어째서 장일소의 입에서 그 이름이 다시 나오는가?
지나간 일은 결코 돌아보지 않는 이가 장일소일진대.
‘그럼…….’
장일소에게 있어서 화산은……. 아니, 화산신룡이란 이름은 제 역할을 마치고 사라진 게 아니란 말인가?
“대답은?”
“……그리하겠습니다, 방주.”
“좋아. 그럼 오늘은 꽃놀이나 가 볼까?”
장일소는 자리에서 일어나 콧노래를 부르며 휘적휘적 걸어 나갔다. 그 뒷모습을 보는 호가명의 눈은 다소 가라앉아 있었다.
‘알 수 없구나.’
저 거인이 그려 낼 그림을 완전히 짐작하기에 그는 너무도 작은 존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