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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귀환-777화 (774/1,567)

777화. 인생은 원래 고통이라오. (1)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아이고……. 아이고, 도사님들 덕분에 살았습니다!”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윤종이 얼른 고개를 내저었다.

“은혜라니요. 당치도 않습니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정말 너무 감사합니다. 어떻게든 보답을 해야 할 텐데!”

“정말 괜찮습…….”

“크으! 보답? 보답 좋죠! 보답 누가 말씀하셨어요, 보답!”

청명이 윤종을 밀치더니 앞에 있는 노인의 손을 덥석 잡았다.

“보답이라고 하셨죠?”

“예? 아……. 예…….”

윤종이 얼굴을 와락 일그러뜨렸다.

“수적 털어 먹었으면 됐지, 왜 피해를 보신 분들에게까지……!”

“그럼 여기서 나가시면 화산파가 수적들을 무찌르고 여러분을 구했다고 소문 많이 내 주세요.”

“……예?”

“소문이요, 소문! 저희가 구해 줬다고! 수채도 두 개나 작살을 냈다고 있는 그대로만 소문 내 주시면 되요! 그럼 정말 큰 보답이 되거든요?”

“그, 그걸로 되겠습니까?”

“아이고, 그게 진짜로 큰 보답이에요. 대신에 정말 적극적으로 해 주셔야 돼요. 아시겠죠?”

“그게 정말로 도움이 된다면야, 최선을 다해 말하고 다니도록 하겠습니다.”

“크으. 아주 그냥 말이 잘 통하시는 분이셔.”

청명을 타박하려던 윤종은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입을 닫고 말았다.

저건 보답이라고 할 것도 없는 일이니까.

“그럼 저희는?”

“일단 기력이 많이 상하신 분이 없는지부터 확인하고, 괜찮으신 분들은 바로 뭍으로 보내 드릴게요.”

“무, 뭍이면…….”

“아, 걱정하지 마세요. 가까운 항구에 내려 드릴 테니까. 아니면 원래 가려던 곳으로 보내 드릴까요?”

“그, 그렇게까지 폐를 끼칠 수는 없지요.”

“에이, 뭘요. 제가 배 모는 것도 아닌데.”

“예?”

“헤헤. 그냥 그렇다고요.”

청명이 낄낄대며 웃었다.

노인은 손이 잡힌 채로 어안이 벙벙하여 그런 그를 바라보았다.

“양민들은 모두 배에 태워 보냈습니다.”

윤종의 말에 조걸이 불안한 얼굴로 물었다.

“괜찮을까요? 수적 놈들이 모는 배잖아?”

“녹림도들을 같이 보냈으니 괜찮을 거다.”

“……수적이랑 산적을 같이 보냈으니 괜찮은 거군요.”

뭔가 잘못됐다.

뭐가 잘못됐다고 꼬집어 말하기는 참 어려운데, 이건 분명 뭔가 잘못됐다.

“포로로 잡힌 이들 중에 유령문도 둘을 발견했습니다. 전에 발견된 한 사람까지 합하면 한 사람을 제외하고는 모두 찾은 것 같습니다.”

“그럼 그 한 사람은?”

“아마도…….”

윤종이 무거운 얼굴로 말끝을 흐리자 백천이 한숨을 쉬었다.

이만한 일이 있었으니 모두를 찾아 구하기란 어려운 일이지만, 그래도 마음 한구석이 무거운 건 어쩔 수 없다.

“백상.”

“예, 사형.”

“심문해 본 결과는 어떻더냐?”

“……딱히 알아낸 건 없습니다. 대부분이 다른 수채에서 도망친 놈들이거나, 멋모르는 어중이떠중이들, 돈을 받고 고용된 낭인들이더군요.”

“낭인?”

“예. 장강 쪽에는 낭인들이 꽤 많다고 합니다. 그런 이들은 소속도 없고 알음알음 고용되기 때문에 미리 알기가 어렵다고 하더군요.”

“흐음.”

백천은 표정을 굳히며 생각에 잠겼다.

‘낭인이라.’

수채를 만드는 데 낭인이라니…….

그는 이윽고 조승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수채를 처음 만들 때 낭인을 고용하는 일이 흔히 있소?”

“……저도 처음 듣는 이야깁니다. 그럴 돈이 있으면 왜 수적질을 하겠습니까?”

“하긴, 그야 그렇겠지.”

뭔가 정황이 묘하다.

‘아니, 뭐 그리 중요한 일은 아니지.’

어쨌건 모조리 소탕해 버렸으니, 이들이 뭘 하려 했건 이제는 의미가 없다. 중요한 것은 화산의 친구를 건드린 이들을 제대로 응징했다는 사실이고, 이건 장강의 다른 수적들에게도 명백한 경고가 될 것이다.

“이제 정리하고 돌아가면 되겠네.”

백천이 조금은 개운해진 얼굴로 드넓은 장강을 바라보았다.

일도 많고 탈도 많았지만, 어쨌든 배운 것이 참으로 많은 여정이었다.

“이제 물이라면 꼴도 보기 싫습니다, 사형.”

“저는 화산에 돌아가면 한동안 세수도 안 할 겁니다.”

“조걸 사형은 원래 잘 안 씻잖아요.”

“무슨 소리야! 나 자주 씻어!”

“그런 것치곤 맨날 땀 냄새 풀풀 나는데.”

“씻고 바로 또 수련해서 그런 거지! 와, 이건 진짜 억울하다!”

화산의 제자들도 나름 활기를 되찾았다.

저마다 반성할 일이야 있었지만, 그렇다고 계속 풀죽어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넘어졌으면 다시 일어나 달리면 될 일.’

백천은 마음을 가다듬으며 입을 열었다.

“그럼 마무리를 하……. 근데 청명이 이놈은 어디 갔느냐?”

“응? 여기 있지 않았어요?”

“……이 새끼 어디 갔지? 안 보이면 불안한데?”

화산의 제자들이 고개를 쭉 빼고 급히 좌우를 둘러보았다. 여긴 너른 평지라 딱히 숨을 곳도 없었다. 이내 물가에 서 있는 청명을 발견한 그들은 부리나케 그가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너 여기서 뭐 하냐.”

“사숙.”

길쭉한 섬의 옆쪽 끄트머리에 서서 건너편 육지를 바라보던 청명이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 입을 열었다.

“여기서 저기까지 거리가 얼마나 될까?”

“응?”

뜬금없는 질문에 당황하면서도 백천은 우선 대답부터 했다.

“한…… 백 장? 아니지, 삼백 장쯤 될 것 같은데?”

새삼 장강이 얼마나 넓은지 알 것 같다.

보통 폭이 삼 장만 되어도 강이라 불리는데, 무려 삼백 장이라니.

심지어 이것도 중간에 있는 섬에서 본 거리니 그 정도이다. 실제 강폭은 이 두 배는 된다는 소리가 아닌가?

“가깝지?”

“응?”

가까워?

“왜 수적 놈들이 그동안 여길 내버려 뒀는지 알겠어. 여긴 육지에서 너무 가까워. 겨우 삼백 장만 건너면 도착할 수 있다는 거잖아?”

“너 단위 개념이 좀 이상한 것 같다?”

삼백 장이 겨우를 붙일 만한 거리가 아니거든? 더군다나 강에서?

“너무 눈에 잘 띄는 데다가 육지에서 공격해 올 때 삼백 장만 도하하면 되지. 그나마 주변이 급류라 좀 버틸 만한 거지, 여긴 냉정히 따져 보면 육지로부터 공격받기가 너무 쉬워.”

“듣고 보니…….”

청명의 말을 듣고 주변을 둘러보던 백천이 얼굴을 와락 일그러뜨렸다.

“아니, 그럼 강줄기 따라서 육로로 이동한 다음에 배를 탔으면 삼백 장만 도하하고 공격할 수 있었단 얘기잖아. 그럼 왜 배를 타고 왔는데! 그놈의 멀미 때문에 다들 얼마나……!”

“아, 그건 중요한 게 아니고.”

청명이 입가를 쭉 말아 올린다.

“어때?”

“응?”

“좋지 않아? 육지에 가깝고, 배로 공격해 오기는 애매한 곳.”

“뭐가 좋다는 건데?”

“여기만 점령하면 수적 새끼들이 접근하기 힘들지 않겠어?”

“……어?”

잠깐. 이 새끼가 지금 뭐라고 했지?

점령?

“……청명아?”

“보면 볼수록 괜찮단 말이야. 저 수적 놈들은 멍청해서 여기에 자리 잡은 건데, 우리 입장에서는 나쁘지가 않아.”

“……너, 너 뭐 하려고?”

“여기 우리가 먹자!”

“…….”

백천이 멍하니 청명을 응시하다 뒤를 돌아보았다. 과연 그의 사제들도 그와 똑같은 얼굴로 서 있었다.

‘그치? 내가 이상한 거 아니지?’

확신을 얻은 백천이 고함을 내질렀다.

“야, 이 미친놈아! 여기를 우리가 왜 먹어? 여긴 섬서도 아니고 장강이잖아!”

“장강이면 못 먹는다는 법이라도 있나? 수적 새끼들도 점거하고 수채 차리는데?”

“……그런 법은 없지.”

“쉽게 납득하지 마십시오, 사숙!”

“말려드시면 안 됩니다!”

“그, 그렇지!”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였던 백천이 재빨리 정신을 되찾고 다시 물었다.

“우리가 여길 점령해서 뭘 할 건데? 수적질이라도 할 거냐?”

“쯧쯧쯧. 이렇게 머리가 안 돌아가서야.”

“응?”

청명이 못마땅하게 눈살을 찌푸렸다.

“애초에 우리가 여길 왜 왔는데?”

“그야…… 은하표행의 특표들이 공격당해서 온 거지.”

“그런 일이 또 안 벌어진다는 보장이 있어?”

“…….”

청명이 조승을 가리켰다.

“한 번이 어렵지 두 번은 쉬워. 봐 봐. 특표들이 습격당했다는 소문이 퍼지자마자 어중이떠중이가 다 달라붙었잖아. 덕분에 사숙이 헛고생도 했고.”

“……대경채가 여기보다 큰 수채였는데요. 어중이떠중이는 좀…….”

“그래 봐야 수적 놈들이지.”

“…….”

살짝 억울한 마음에 항변했던 조승은 일격에 침몰해 입을 닫았다.

“또 이런 일 벌어지면 그때도 장강까지 뛰어와서 수적이랑 싸우려고? 그러다가는 장강수로채를 몰살시키기 전까지는 심심할 틈도 없이 뛰어와야 할걸?”

“……맞는 말이기는 하다.”

수적이 존재하고, 장강 건널 일이 있는 이상은 피할 수 없는 위험이다. 게다가 특표는 특성상 고가의 물건을 나르기에 언제든 군침 도는 먹잇감이 될 수 있다.

평지에서야 빠른 발로 위험을 피할 수 있겠지만, 배 위에서는 아무런 힘도 쓰지 못하는 게 특표들 아니던가?

“그래서 여길 먹자고?”

“어차피 그럴 거면 차라리 우리가 직접 사람을 날라 버리는 게 낫지. 여기 봐 봐. 저쪽이랑 이쪽이 가깝잖아. 그럼 육지에서 섬으로 왔다 갔다 할 배 두 척만 가져다 놔도 해결이 된다니까?”

백천이 어떻게 좀 해 보라는 듯 사제들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그 눈빛을 읽은 조걸이 단호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구강이면 위치도 나쁘지 않네!”

“야, 이 미친놈아! 동조하면 어쩌자고!”

“아, 아니. 이게 그리 틀린 말은 아니잖습니까?”

“특표 하나 나르자고 이런 짓을 해?”

“그럼 다른 상인들도 날라다 주면 되죠. 뱃삯이랑 통행료 받으면 되잖아요.”

저 새끼 누가 상인집안 막내아들 아니랄까 봐. 왜 이럴 때만 계산이 빠삭한데?

“절대 안 된다, 절대! 네가 말했잖아. 여긴 공격받기가 너무 쉽다고, 수적들 몰려오면 어떻게 할 건데?”

“배에서 지들이 뭘 어쩔 건데? 상륙해야 할 거 아냐.”

“응?”

“수적이 상륙하면 그냥 삼류지 뭐. 물 위에서 안 싸우면 괜찮아.”

“…….”

뭔가 점점 설득되기 시작한 백천이었다.

“그리고 좋은 것도 있잖아.”

“좋은 것?”

“백뢰포.”

“…….”

“저놈들이야 약탈하러 다니니까 배에 실은 건데, 우리는 배 타고 나갈 일이 없잖아. 그 백뢰포 섬 가장자리에 배치하고 수적 놈들 올 때마다 쏴 버리면 돼. 접근도 못 할걸?”

“아, 아니…….”

백천이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망했다.’

저 말도 안 되는 소리가 그럴싸하게 들리기 시작했다.

“아니, 근본적으로! 우리가 그걸 하자고 여기에 붙어 있을 수는 없잖아.”

“사숙은 바보야?”

“응?”

“우리가 왜 해? 여기 사람이 한둘도 아니고. 이 기회에 녹림도 장강에 진출하라고 해. 뱃삯 반으로 나눠 가지면 되지.”

“…….”

이야아……. 이쯤 되면 미리 계획하고 여기까지 온 것 같았다.

저 망할 논리를 공격할 방편이 보이질 않자 초조해진 백천이 손톱을 물어뜯을 때쯤.

“좀 불안해.”

“응?”

그나마 정상인인 유이설이 반대 의견을 펼쳤다.

“백뢰포의 사거리. 강의 폭. 강 중간을 배가 점거하면 고립돼. 역시 너무 멀어.”

“그, 그래! 그렇다고 해도 삼백 장이다! 무리야!”

“그럼 이백 장으로 줄이면 되지.”

“응? 무슨 수로?”

“다리 놔.”

“……물 위에?”

“응.”

“이 거리를?”

“응.”

청명이 해맑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야, 이 미친놈아. 그건 나라에서도 못 해!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장강에 다리가 놓였다는 말은 살면서 한 번도 못 들어 봤다.”

“에이. 다 놓을 필요 없어. 그리고 고정할 필요도 없지. 지금 남는 배 천지잖아. 우리는 배 타고 나갈 일이 없으니까.”

“응?”

“물 위에다 배 고정하고, 그 위로 다리 놓으면 되지. 배와 배를 서로 이어서 다리처럼 만들고, 그 위에다 백뢰포 배치하고, 배가 정박할 선착장처럼 만들면 돼.”

“…….”

“그럼 다리 위에서 화살도 쏠 수 있고, 화포도 쏠 수 있고, 상륙하는 놈들 있으면 그 위에서 싸울 수도 있고! 크으. 이건 내가 생각해도 끝내준다! 이거 내가 알기로는 옛날에 유명한 책사가 생각한 계략이야. 그러니까 틀림없을 거야.”

……그 엮은 배 위에 있었던 사람들 불화살 맞고 싹 다 타 죽었어! 이 미친 새끼야! 심지어 그 장소가 여기서 별로 멀지도 않아! 이 강 위였다고!

“낄낄낄낄. 이거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끝내주는데? 이 수적 새끼들이 우리 쓰라고 필요한 건 다 가져다 놨네! 그럼 또 고맙게 잘 써 줘야지!”

“처, 청명아?”

“일단 배부터 엮어 보자! 으히히힛! 재밌을 것 같다! 그치?”

“청명…….”

“야! 폐병쟁이! 어디 있냐?”

청명은 더 들어 볼 생각도 없는 듯 그들을 내버려 두고 쌩하니 달려가 버렸다.

그런 그를 향해 망연히 손을 뻗은 백천의 어깨에 누군가 손을 얹었다.

“……스님?”

혜연이 빙그레 웃었다.

“아미타불. 백천 시주. 그거 아십니까?”

“……뭘요?”

“인생은 원래 고통이라오.”

“…….”

참…… 고맙습니다.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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