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3화. 뒤처지면 다 뒈진다고 해! (3)
“죽어어어엇!”
“으아아아! 이 수적 놈!”
“죽인다!”
화산의 제자들이 눈을 까뒤집고 달려들었다.
“뭐, 뭐야?”
“이 새끼들 왜 이래?”
적을 상대로 기세를 올리는 것이야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기세를 올리는 것과 원독에 찬 것에는 큰 차이가 있다. 화산의 제자들은 마치 부모의 원수를 만나기라도 한 듯 수적들에게 달려들었다.
“으아아아아! 이 새끼들아!”
“왜, 왜들 이러냐고!”
수적들이야 당황스럽겠지만, 화산 제자들의 입장에서 본다면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그동안 그들이 얼마나 열심히 수련해 왔던가?
무당과의 비무 이후로 자신들의 부족함을 절감했기에 침식을 잊어 가며 수련에 전념했었다. 거기에 기어코 자하신공까지 익히지 않았던가?
아직은 그 화후(火候)가 부족하여 제 위력이 나오는 것은 아니었지만, 어쨌거나 자하신공은 자하신공이다.
익힌 것이 크고, 노력한 것이 큰 만큼 이번 전투에서 크게 활약할 수 있을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런데…….
“배째로 질질 끌려 다니고!”
“그물에 걸려서 퍼덕대고!”
“독 퍼먹고!”
“이게 사람이 할 짓이냐! 이 개 같은 놈들아!”
물론 이들이 한 짓은 아니다. 하지만 그리 깊이 있는 인생을 살아오지 않은 화산 놈들에게는 그 수적이나 이 수적이나 그저 같은 수적일 뿐이었다.
마치 청명처럼 눈을 까뒤집은 화산파 제자들이 검을 휘둘러 댔다. 그 검의 기괴망측한 궤도와 맹렬한 기세를 보고 있으면 정파가 아니라 사파 놈들이 쳐들어와 세력 싸움을 벌인다고 해도 믿을 정도였다.
“으하아아아앗!”
조걸의 검이 사람을 갈아 버리겠다는 듯 회전했다.
“미, 미친놈들!”
“못 당한다! 뛰어내려!”
“어딜 가, 이 새끼들아!”
화산의 제자들이 거의 흰자위를 내보이며 무섭게 달려들었지만, 수적들은 필사적으로 달려 가까스로 강에 몸을 날렸다.
“도망을 쳐?”
“야! 건너가, 건너가! 다음은 저쪽 배다!”
“간다!”
그들의 돌아 버린 눈빛을 보며 녹림도들은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거슬리지 말자.’
‘쟤들도 산에 살아서 그런가……. 저기에 대면 우린 별것도 아닌 것 같은데.’
‘화산파 놈들한테는 절대 시비 걸지 말라고 모두에게 알려 줘야지.’
저어기 앞에서 홀로 날뛰고 있는 두령(?)놈이야 말해 무엇 하겠냐마는, 그 수하(?) 놈들도 여간 사나운 게 아니었다.
여기 있는 놈들만으로도 대충 가죽 하나씩 뒤집어쓰면, 커다란 산 하나는 집어삼킬 수 있을 것이다. 그럼 녹림의 판도 자체가 바뀔 텐데…….
“건너가! 건너가!”
“저기 수적 새끼들이 많다!”
“다 쳐 죽여 버려!”
“저, 저기 도장님들……. 조금 진정하시는 게…….”
“뭐요?”
“아, 아닙니다…….”
누가 산적이고 누가 도사인가.
다행이자 불행인 점은 이곳에는 그 사실을 따져 물을 만한 간 큰 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으라차아아아!”
쿠르르르릉!
그 와중에 전방에선 청명이 또 한 척의 배를 침몰시키고 있었다.
앞에서는 그가 비조처럼 날아다니며 배를 부수어 대고, 뒤쪽에서는 스님을 포함한 백천 무리가 산적들을 이끌고 배를 타넘고 다니면서 수적들을 휩쓸었다.
“크아아아아악!”
“제, 제기랄!”
배를 버리고 달아나는 수적들의 얼굴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애초에 수적들은 머릿수로 밀어붙이지 않으면 화산 제자들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 오검은 이제 웬만한 명문대파의 중견 고수들보다 더 강해졌으니까.
그들이 일단 배에 올라 버리면 수적들의 입장에서는 답이 없다. 한정된 공간인 배 위에서는 수의 이점을 활용하기도 어렵고, 이런저런 무기들을 사용하기도 쉽지 않다.
그러니 오로지 실력으로 맞붙어야 하는데, 아무리 발밑이 흔들린다 한들 이 정도 수의 수적에게 애를 먹을 화산 제자들이 아니었다.
더구나.
“으아아아! 두목들을 따라라!”
“화산! 화산! 화산채!”
“화산채가 아니라 화산파야, 이놈아!”
“뭔 상관이야!”
강한 자만 보면 일단 덮어놓고 좋아하는 산적 놈들이 화산 제자들의 기세에 휩쓸려 덩달아 함성을 내지르고 수적들을 몰아치고 있다.
건너오지 않고 배의 선수에 선 채 그 과정을 지켜보던 임소병은 부채로 뒷머리를 슥슥 긁었다.
“이게…….”
그의 고개가 슬그머니 옆으로 삐딱하게 꺾였다.
“이게 말이 되나?”
물론 불만이 있는 건 아니다. 오히려 아주 기껍다고 해야 할 상황이 분명하다. 하지만 황당함은 어쩔 수가 없었다.
‘이게 전투가 이런 양상으로 흐를 만한 상황이 아닌데.’
저쪽은 자신들이 유리한 지형을 잡고, 가장 현명한 방식으로 전투를 걸어왔다. 비슷한 전력을 가지고 임소병이 직접 지휘해 싸운다 하더라도 일정 이상의 피해는 감수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적어도 배가 반파되는 정도는 감수해야 했을 텐데.’
백병전을 벌이기 위해 접근하는 동안 화포의 공격을 받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가 아니라 공명이 살아 돌아온다 하더라도 피해를 줄일 수는 있을지언정, 상황을 뒤바꾸기는 어렵다.
그런데 저 말도 안 되는 인간이 혼자서 훌쩍 뛰어들더니 전장의 판도를 뒤바꿔 버린 것이다.
“하하핫. 돌겠네.”
그가 익혀 온 모든 것들이 부정당하는 순간이었지만, 임소병은 화가 나기보다는 오히려 즐거웠다.
“그래. 이래야 화산신룡이지!”
저 인간은 적당히 맛이 가 있는 쪽이 좋다.
“충각을 뽑아내라! 다음 배를 공격한다!”
“예!”
촤악!
임소병이 펼친 부채를 크게 휘둘렀다.
“기세를 떨어뜨리지 마라! 단숨에 밀고 들어가 지원한다! 궁수! 뭐 하고 있느냐! 물에 빠진 놈들을 모조리 쏴 죽여라!”
“예!”
호각이 귀를 찢으며 울리자, 각 배에 타고 있던 궁수들이 화살을 쏘아 대기 시작한다.
“끄아아악!”
“화, 화살이다! 잠수해!”
“아, 안 돼!”
이곳의 물살은 거칠기가 더없다.
“아아아아악!”
화산에 꿰뚫린 이들은 처절한 비명을 내질렀다. 목이 꿰뚫린 이들은 단숨에 절명해 가라앉았지만, 팔다리가 꿰뚫린 이들도 안심할 순 없었다.
가파른 물살이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그들을 단번에 휩쓸어 깊은 와류로 끌고 들어갔기 때문이다.
“사, 살려 줘!”
“살려 줘어어어! 제바아알!”
강 위에서 벌어지는 참상을 보며 조승이 혀를 찼다.
“강을 우습게 보면 저리되는 법이지.”
그래서 제대로 수적질을 해 먹기 위해서는 수공이 필수이다.
“그…… 녹림왕이시여.”
“왜?”
조승이 송구하다는 듯 말했다.
“소인의 짧은 소견으로는 배 가장자리에 창을 쓰는 이들을 배치하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창병을?”
“예……. 사람은 물에 빠지면 뵈는 게 없어서 적선이고 뭐고 신경 안 쓰고 기어오릅니다. 일단 살고 봐야 하니까.”
“호오.”
임소병이 재미있다는 듯 조승을 바라보았다.
“좋은 의견이로군. 그리하지.”
“감사합니다!”
조승이 재빨리 허리를 숙였다.
대경채의 채주인 잔포흑어에게도 이리 깍듯하게는 굴지 않았던 조승이지만, 임소병은 잔포흑어 따위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거물이다. 장강의 황제나 다름없는 흑룡왕과 동급이지 않은가?
녹림왕이 의견을 받아 주었다는 것만으로 황송해 몸이 달을 지경이다.
“꽤 똑똑하군.”
“가, 감사합니다.”
“채주가 그리 영민해 보이지는 않던데. 고생이 많았겠지?”
“……조금은…….”
“내 밑에서 일해 볼 생각은 없는가?”
“예? 그래도 됩니까?”
“아, 참고로 자네에게 선택권은 없을 걸세. 아마 내 밑으로 들어오지 않으면 저 양반한테 끌려가서 평생 지옥을 보며 살 확률이 높을 테니까.”
임소병의 말에 조승은 멍하니 시선을 돌렸다. 배 위로 솟아올라 노호성을 내지르며 날뛰는 청명의 모습이 보였다.
“으하하하하핫! 뒈져! 뒈져, 이 새끼들아!”
“…….”
무표정하게 다시 고개를 돌린 조승은 그 자리에 넙죽 엎드렸다.
“받아만 주신다면 각골난망하겠나이다.”
“판단이 빨라서 좋군. 그럼 옷부터 갈아입지. 저 양반은 사람 얼굴을 잘 기억 못 해서 보자마자 패 버릴지도 모르니까.”
“…….”
“쯧쯧쯧. 저리 포악무도해서야.”
산적 두목이 도사를 보며 포악무도하다고 힐난하는 사태가 벌어졌지만, 배 위의 누구도 그게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참으로 서글픈 일이었다.
“후, 후퇴하라!”
“수채로 돌아가라! 여기서는 절대 못 당한다!”
살아남은 이들이 몸을 실은 배가 온 힘을 다해 뱃머리를 돌리기 시작했다.
수적들이 산적과 산에 사는 도사들을 피해 뭍으로 달아나는 말도 안 되는 광경이 바로 이곳에서 실제로 벌어진다.
“이, 이 새끼들아!”
“우리도 데리고 가!”
“세상에…….”
물에 빠져 화살 세례를 받던 이들은 절망 어린 눈으로 멀어지는 배를 바라보았다. 후퇴야 전세가 불리하면 언제든 벌어질 수 있는 일이지만, 반수에 가까운 이들이 물에 빠져 있는데 그걸 버리고 달아난다는 게 어디 사람이 할 짓이던가?
“이, 이제 우린 다 죽었어…….”
방법이 없다.
살기 위해 적선에 기어오르던 이들은 즉각 창을 맞고 떨어져 내린다. 이제는 물에 빠져 죽든 화살에 맞아 죽든 둘 중 하나뿐이다. 용케 강변까지 헤엄쳐 가는 이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래 봐야 소수에 불과할 것이다.
수적들의 두 눈에 절망이 내리깔린 바로 그 순간.
“저 새끼들이 도망을 쳐?”
악에 받친 목소리가 강 위로 폭발했다.
“쫓아! 저것들 쫓아가!”
“잔당부터 확실하게…….”
“확실이고 나발이고 저것들 쫓아가라고! 빨리 안 움직여?”
“가, 갑니다. 전부 이놈들을 내버려 두고 저 배들을 뒤쫓는다! 아니! 그만 쏘라고 이놈들아! 쫓아라!”
접혔던 노가 다시 내려오고 배들이 전진하기 시작한다.
“뒤처지면 다 뒈진다고 해! 따라붙어!”
“예!”
녹림도들이 탄 배가 침몰하는 배 사이로 빠져나가 전속으로 전진하기 시작한다. 그 와중에 적선에 올랐던 녹림도들 역시 재빠르게 제 배에 다시 올라탔다.
“굼벵이를 삶아 처먹었어? 왜 이렇게 느려?”
“지, 지금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최선? 아니, 하는 일이라고는 노략질이랑 노 젓는 것밖에 없는 놈들이 그것도 제대로 못 해? 그러면서 밥은 먹고 살겠다고? 왜, 이제 그만 먹게 해 드려?”
“지, 지금 바로 속도를 높이겠습니다!”
“서둘러!”
수적이 부리나케 달려 선실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선실 안에 설치된 봉을 잡고 단번에 바닥까지 내려간 수적이 버럭 소리쳤다.
“빠, 빨리 저어! 빨리, 이놈들아! 저분이 노실(櫓室) 안으로 내려오면 우린 다 맞아 죽는다!”
‘저분’이 누구인지 모를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히이익!”
“고수(鼓手), 빨리 북을 쳐라! 빨리!”
둥! 둥! 둥둥둥둥! 둥둥둥둥둥둥!
노실 가장 앞에 앉은 고수가 북을 치는 소리가 점점 빨라지기 시작했다. 그러자 노를 잡은 노수들이 그 소리에 맞춰 점점 더 빨리 노를 저었다.
노를 젓는 것은 상상 이상의 중노동이라 힘겹기 그지없지만, 그래도 나름 내공을 익힌 무인들이다 보니 그 속도가 괴이할 정도로 빨랐다.
“빨리! 더 빨리!”
“으아아아아아!”
“끄아아아아아아아!”
심지어 공포까지 더해지니 노를 잡은 수적들은 거의 피를 토할 기세로 노를 저었다. 노에서 연신 부러지는 듯한 소리가 나며 배가 가공할 속도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좋아!”
청명이 흡족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달아나는 배들과의 거리가 점점 좁혀지고 있었다.
“가자아아아아!”
가장 선두에 있는 배에 오른 청명이 검을 뽑아 앞을 가리켰다.
곧 달아난 배들이 갈대 가득한 섬에 거의 들이받듯 정박하는 모습이 보였다.
“응?”
쿠우우우웅!
쿠우우우우우웅!
모래톱을 생짜로 들이받은 배들은 천둥 같은 소리를 내며 기우뚱기우뚱 넘어갔다.
“자, 잠깐! 야, 줄여! 속도 줄여! 멈추라고, 이 새끼들아!”
물론 이미 속도가 붙은 배는 단번에 멈출 수가 없다.
“추, 충돌한다!”
“꽉 잡아! 꽉, 아니, 차라리 뛰어내려!”
“으아아아! 이게 무슨 짓이야, 미친!”
노가 필사적으로 내려졌지만, 배를 멈출 수 있을 리 만무했다.
빠른 속도로 가까워지는 적선을 보며 청명은 흐뭇하게 웃었다.
“거 좀 과했나?”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청명이 탄 배가 적선의 뒷면을 그대로 들이받으며 말 그대로 박살이 났다.
“으아아아아아! 이 개새끼야아아아!”
충돌의 여파를 이기지 못하고 하늘로 솟구쳐 오른 조승이 남긴 처절한 목소리가 흐르는 강물 위로 아련하게 울려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