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2화. 뒤처지면 다 뒈진다고 해! (2)
파아아아앗!
포탄이 허공을 날고, 인간 포탄이 반대편에서 날아들었다.
단숨에 몇십 장을 좁힌 청명이 물 위를 박차며 다시 솟구쳤다.
“뭐냐? 저건?”
“어떻게 사람이!”
포탄을 쏘아 대던 수적들은 당황하여 입을 쩍 벌렸다. 하지만 개중에는 나름 침착한 이도 있는 모양이었다.
“뭣들 하느냐! 쏴라! 격추해 버려!”
“예!”
배를 노리던 화포들이 청명 쪽으로 일제히 포구를 돌렸다.
“쏴라!”
콰아아아아앙!
백뢰포들이 연달아 불을 뿜었다.
물 위를 달리는 청명에게로 시커먼 포탄들이 비처럼 쏟아졌다.
“어쭈?”
그 광경을 올려다본 청명이 입꼬리를 뒤틀었다.
스슷.
물 위에서 매화보를 펼친 그의 몸이 낙하하는 꽃잎처럼 이리저리 불규칙적으로 흔들리기 시작했다.
퍼어어엉! 퍼어어엉!
포탄들은 그가 지나간 물 위로 떨어졌고, 십 장이 넘는 거대한 물기둥이 솟아올랐다. 흐르는 장강 위로 순식간에 수십 개의 물기둥들이 솟구치는 광경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쏴라! 계속 쏴라!”
청명을 이전에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이들이지만, 저 물 위를 뛰어오는 놈이 그들에게 무사히 도착할 경우 무슨 일이 벌어질지 짐작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정체 모를 수적들은 필사적으로 백뢰포를 쏴 대었다.
“아니! 저 새끼들 화약을 얼마나 챙겨 놓은 거야? 관부 새끼들은 다 처자빠져 자나?”
청명도 딱히 관부의 입장에 동조하는 건 아니지만, 저 화포를 상대해야 하는 게 본인이다 보니 꼭지가 돌 지경이었다.
하지만 지금 느긋하게 관부 놈들을 씹어 댈 시간이 없었다. 그 와중에도 포탄이 쉴 새 없이 날아들었다.
속도를 높여 단숨에 앞으로 치고 나간 청명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끄으응.”
아무리 그라고 해도 물 위를 지속적으로 달리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 순간!
“청명아!”
등 뒤에서 백천의 목소리가 크게 울렸다. 청명은 더 생각할 것도 없다는 듯이 수면을 박차며 솟아올랐다.
탁! 탁! 타악!
이윽고 뒤쪽에서 날아든 나무판자를 연이어 밟으며 앞으로 나아갔다. 쏘아지는 포탄들을 보는 청명의 눈이 번뜩 빛났다.
“타아앗!”
그의 몸이 허공에서 빙글 회전하더니 앞쪽으로 쏘아졌다.
타다다닥!
그리고 포탄들을 박차며 섬전 같은 속도로 이동했다.
“뭐, 뭐야?”
“저 미친!”
공격해 오던 수적들은 턱이 빠져라 입을 쩍 벌렸다.
물 위를 달려오는 것도 신기였지만, 포탄과 포탄 사이를 박차며 이동하는 것은 그 이상으로 기괴한 일이었다.
눈으로 보고도 믿기질 않았다.
“으라차아아아!”
어느새 선두의 배 바로 앞까지 날아든 청명은 허공에서 검을 뽑아 들었다.
이내 그의 검이 무시무시한 굉음을 내며 허공을 가르더니 붉은 검기를 줄줄이 뿜어내었다.
파아아아앙!
반월형의 붉은 검기들이 수면과 맞닿은 배의 밑창을 향해 날아들었다.
콰가가각!
단단한 목재로 만들어진 밑창이 종잇장처럼 베여 나갔다.
“저, 저저…….”
콰아아아아아!
목재들이 조각조각 찢겨 나가기 무섭게 차가운 장강의 강물이 배 안으로 과격하게 밀려들기 시작했다.
“가, 가라앉는다!”
“빌어먹을, 뛰어내려!”
맨몸으로 뛰어들면 자맥질이라도 할 수 있지만, 배 안에 탄 채 가라앉는다면 목숨을 보장할 수 없는 게 당연지사.
수적들은 뒤도 보지 않고 장강에 몸을 던졌다.
“읏차!”
선두에 있는 배의 선수에 내려선 청명이 지체 없이 배를 박차며 다음 배를 향해 뛰어올랐다.
“또 쏴 봐, 이 새끼들아!”
파아아아앗!
검에서 뿜어져 나온 길쭉한 검기가 갑판을 파고들었다. 배를 완전히 꿰뚫어 버린 것이다.
“공격해라! 다른 배로 못 가게 해!”
청명이 꿰뚫은 배 위로 내려서자마자 수적들이 괴성을 내지르며 달려들었다.
하지만 상대가 나빠도 너무 나빴다.
콰아아앙!
가장 앞에서 달려오는 이를 지체 없이 걷어차 선실 안으로 처박아 버린 청명은 두 눈에서 불을 뿜으며 중얼거렸다.
“근데 이 새끼들이?”
물론 청명은 그동안 여러 적들을 상대해 왔다.
열받기로 따지면 저 종남만 한 놈들이 없고, 짜증 나기로 따지면 무당이 제일이다. 그리고 뱃속부터 분노가 치미는 것은 만인방이며, 마교? 그 새끼들은 말할 것도 없다.
하지만 이건 그런 것들과는 다소 결이 다른 빡침을 선사했다.
“어디 사파 새끼들이 감히 내 앞에서 눈을 부라려? 눈알 뽑아 버릴라! 내가, 이 새끼들아!”
콰앙!
검 손잡이에 턱주가리를 가격당한 이가 걷어차인 공처럼 튀어올라 드넓은 장강을 향해 날아갔다.
“대화산의!”
콰앙!
얼굴을 밟힌 수적이 두터운 목재로 만들어진 갑판을 사람의 형상 그대로 뚫어 내며 보이지 않는 저 아래로 사라졌다.
“매화검존이시다아아아아!”
들을 놈도 없으니 괜찮겠지.
응? 여기도 사람이 있다고?
아냐, 아냐. 얘들은 어차피 뒈질 놈들이니까 숲에 자란 대나무나 마찬가지지.
간만에 속 시원하게 진실을 냅다 질러 버린 청명은 폭풍처럼 갑판 위를 휩쓸었다.
“괴, 괴물!”
“도, 도망쳐라! 달아나, 당장!”
적이 있든 말든 일단은 살고 봐야 하는 게 인지상정. 순식간에 전의를 상실해 버린 수적들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난간을 넘어 물 위로 몸을 던졌다.
“어딜 가, 이 새끼들아! 이리 안 와?”
청명은 몸을 던지는 수적 하나의 발목을 낚아채 획 끌어당겼다.
“히이이익! 사, 살려 주십시오! 저는 죄가 없습니다!”
“이 수적 새끼가 머리를 육지에 두고 왔나? 수적한테 죄가 없다는 게 말이 돼?”
“히이이익!”
발목째 수적을 번쩍 들어 올린 청명은 크게 한차례 팔을 휘둘러 수적을 갑판에 내리꽂았다.
콰아아아앙!
갑판이 부서지며 배가 아주 박살이 났다.
“다음!”
청명은 눈을 희번덕대며 옆쪽의 배를 향해 훌쩍 뛰어올랐다.
“이게 수공이다, 이 새끼들아!”
아니다.
“와…….”
“끝내주네…….”
“우욱…….”
“아, 토할 거면 좀 저리 가서 토해!”
화산의 제자들은 선불 맞은 멧돼지처럼 날뛰는 청명을 보다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청명이 예전보다 더 강해 보이는 것?
그건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다. 저놈은 원래 말도 안 되게 강했고, 그런 주제에 화산에서 제일 과격하게 수련을 해 대던 놈이다. 수련이라면 나름 정평이 나 있는 백천도 청명의 수련을 따라하다가 며칠 앓아누운 경험이 있을 판이니 오죽하겠는가?
그러니 당연히 더 강해지겠지.
문제는…….
“왜…… 성질머리도 날이 갈수록 더 지랄맞아지는 걸까?”
“……누군들 알겠습니까?”
“화산이 터가 안 좋은가…….”
청명의 난동은 정말이지 미쳐 날뛴다는 말이 딱 어울렸다. 수적들이 불쌍해 보일 지경이었다.
‘아니, 아니지.’
생각해 보면 이도 이리 쉽게 풀릴 일은 아니었다.
저 백뢰포인지 뭔지 하는 걸로 거리를 유지하며 사격을 해 댔다면 아마 꼼짝없이 당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저 수적들도 운이 없다. 건너편 배에 타고 있는 놈이 물 위를 달리고 포탄을 밟고 뛰어서 단숨에 배들을 박살 낼 거라고 누가 감히 상상할 수 있었겠는가?
상식의 영역에서 생각하는 이는 비상식의 영역에서 날뛰는 인간을 감당할 수 없는 법이다.
“정신 못 차릴 때 덮쳐야겠군요. 속도를 올리라고 해!”
“예!”
임소병이 부채로 앞쪽을 가리켰다.
“배로 들이받아라! 충돌하는 순간 건너가 쓸어 버린다!”
“예!”
부채를 살랑살랑 흔드는 임소병의 모습에서 책사로서의 품격이…….
“우우웨에에엑! 야! 그렇다고 속도 너무 급하게 올리지는 말……. 우웨에에엑! 쿨럭!”
……보일 리는 없겠지.
“자, 잠시만요. 지금 가까이 가는 건 그리 좋은 선택이……. 으응?”
그때 난간을 붙들고 있던 조승이 고개를 갸웃했다.
“왜?”
“아, 아니 잠시만…….”
앞쪽의 모습을 유심히 살피더니 묘한 표정으로 임소병에게 말했다.
“가도 될 것 같습니다.”
“왜 이랬다 저랬다 하는가?”
“……원래는 수적들이 물에 빠진 곳으로는 함부로 접근하는 게 아닙니다. 수적이란 물속을 물 밖보다 편안히 여기는 편이라 물에 빠졌다고 해서 무력화 된 게 아니거든요. 괜히 가까이 갔다가는 물속에서부터 배에 구멍을 뚫어 버리기도 합니다.”
“음?”
거기까지 생각하지 못했던 임소병이 순간 움찔했다.
“그런데 가도 된다니? 반역이냐?”
“그, 그런 게 아닙니다. 저길 보십시오. 놈들이 자맥질을 제대로 못하지 않습니까?”
임소병이 가늘게 뜬 눈으로 가라앉는 배에서 뛰어내린 수적들을 바라본다. 과연 첨벙대는 꼴이 뭔가 어색했다.
“수공을 익히지 않았다?”
“그런 것 같습니다.”
“수적 놈들이 수공을 익히지 않다니. 그게 말이나 되나?”
“그, 그게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기도 해서…….”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조승이 마른침을 꿀꺽 삼키고 대답했다.
“날 때부터 수적인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보통은 무학을 익히다가 수채에 합류하거나 먹고살 길이 없어서 수채에 들어와 수적이 되는 거지요. 그럼 수공은 그때부터 배우게 됩니다.”
“그럼 수채가 생긴 지 얼마 안 됐으면 수공이 미흡해도 이상하지 않다?”
“그렇습니다. 아마도 다른 곳에 있다가 이쪽으로 옮겨 온 수적들은 아닌 모양입니다. 정말 새로 생긴 수채일 확률이 높습니다.”
조승의 얼굴은 나름 필사적이었다.
저들과 자신들의 관계를 부정하려는 의도인지, 화산과 수로채의 관계가 악화되는 것을 막으려는 의도인지는 알 수 없지만 말이다.
“흐음…….”
임소병이 고개를 끄덕였다.
“뭐 그런 것까진 내가 신경 쓸 일이 아니고, 어쨌든 가까이 접근해도 별문제는 없다는 뜻이로군. 그럼 됐지. 모두 전속으로 전진해라!”
화산의 제자들과 산적들을 태운 배가 물살을 가르며 앞으로 나아갔다.
청명 하나 때문에 혼란에 빠져 버린 적의 배들은 그들의 접근을 미처 알아채지 못한 채 우왕좌왕하다가 거의 바로 앞까지 도달하고서야 상황을 알아챘다.
“피, 피해라!”
“무립니다! 충돌합니다!”
쾌속선 앞에 달린 커다란 충각이 배의 옆면을 그대로 들이받았다.
콰아아아아아아앙!
옆면을 들이박힌 배가 뒤집힐 듯 기울며 밀려났다. 하지만 옆구리를 뚫고 들어간 화살촉 모양의 충각은 선체를 단단히 잡고 쉽사리 놓아주지 않았다.
“걸어라!”
산적들이 수채에서 노획해 온 갈고리 사슬들을 집어던져 배와 배를 잇고 단단히 결박했다.
챙! 챙! 챙!
화산 제자들이 검을 뽑아 들고 단숨에 앞으로 달려 나갔다.
“가자! 우선 수적들부터 처리한다!”
“오오!”
명문대파 화산파의 제자들이 앞장서고, 그 뒤를 녹림의 산적들이 뒤따랐다. 조합만 따지고 보자면 괴이하기 이를 데 없으나 그 위세는 두말할 필요가 없었다.
배와 배 사이를 뛰어넘어 적선에 오른 화산의 제자들은 날카롭게 검을 휘둘러 수적들을 순식간에 베어 넘겼다.
“크아아악!”
“이, 이놈들이!”
당황하여 우왕좌왕하다 이를 악물고 반격해 오는 수적을, 백천은 일격에 가슴을 베어 쓰러뜨렸다. 그리고 호연지기를 가득 담아 고함을 내질렀다. 아니, 내지르려 했다.
“협의를……!”
“아오, 우리가 니들 때문에!”
“무슨 꼴을 당했는지나 알아?
“뒈질 뻔했잖아! 이 수적 놈들아!”
“죽어어어어엇!”
“…….”
얘들아? 목적이 조금 이상한 것 같지 않니?
“다 살을 발라 버려!”
“예!”
산적들을 이끌며 앞만 보고 달려 나가는 화산의 제자들을 백천이 멍하니 바라보았다.
어…….
허허. 그래, 아무려면 어때.
잘 싸우면 그만이지.
“다 엎어 버려!”
백천도 그 괴이한 광경에 미련 없이 합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