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1화. 뒤처지면 다 뒈진다고 해! (1)
촤아아아아아!
커다란 배들이 줄지어 장강의 물살을 가르고 나아간다.
더없이 맑은 하늘. 불어오는 차가운 강바람. 그리고 포말을 만들어 내며 전진하는 선단들까지.
겉보기에야 더없이 멋진 광경이지만, 실상은 그리 아름답지 못했다.
“더 빨리 몰란 말이다!”
“이 수적 새끼들이 물에 빠지고……. 아니, 배에 거꾸로 매달리고 싶은 거냐?”
산적.
본디 물을 가까이 하지 않고, 산과 숲을 사랑해야 할 우락부락한 놈들이 배에 올라 수적들을 닦달하고 있었다.
“더 빨리 저어라! 배가 늦으면 우리한테도 불똥이 튄단 말이다!”
“북을 쳐라! 속도를 높여라!”
“끄으으으응!”
선실 바닥에서 수적들이 오만상을 찌푸리며 노를 당겨 댔다. 움직일 때마다 온몸의 근육이 비명을 지르는 듯 부풀었다.
덕분에 배는 장강의 거친 물살을 가르며 쭉쭉 나아갔다.
“어허. 시원하다.”
청명이 바람을 맞으며 빙그레 웃었다. 기본적으로 강보다는 산을 선호하지만, 이런 날은 강바람도 그리 나쁘지 않은 것 같았다.
물론 이 바람이라는 게…… 강보다는 사람이 만들어 내고 있는 것에 가깝지만 말이다.
“흐음. 시원……. 음……. 시원…….”
편안히 풀려 있던 청명의 얼굴에 짜증이 살살 오르기 시작했다. 그러다 급기야 왈칵 일그러졌다.
“아니! 피죽도 못 먹었나! 왜 이렇게 느려 터졌어!”
“……충분히 빠른 것 같습니다만?”
“내가 몰 때는 다섯 배는 더 빨랐어.”
“……평범한 사람으로는 이게 최선입니다.”
“여하튼 요즘 것들은 근성이 없어, 근성이! 더 빨리 못 몰아?”
그러자 뒤쪽에서 눈치를 보던 녹림도 하나가 기죽은 얼굴로 조심스레 말했다.
“그…… 수적 놈들을 쥐어짜고는 있습니다만, 다친 놈들이 많아서 사람이 부족합니다.”
“그게 뭔 소리야? 사람이 부족하다니.”
“그러니까 전투 때…….”
“아니, 그 말이 아니고!”
“예?”
청명이 의미심장한 눈으로 산적을 지그시 응시했다.
그의 시선을 받은 산적이 어리둥절한 얼굴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혹시 저희요?”
“그럼 누가 또 있나?”
“……저희는 산적인데요?”
“산적은 손 없어? 노도 못 잡는 모양이지?”
“아, 물론 저희도 손이 있으니 노는 저을 수 있습니다.”
“응?”
경쾌하게 들려온 대답에 청명이 눈을 끔뻑였다. 이 산적 놈들이 왜 이리 협조적이…….
“저런 상태만 아니면요.”
“우웨에에에에에에엑!”
“꾸웨에에엑!”
“끄으……. 위장……. 위장까지 나온다…….”
“사, 살려 줘…….”
“…….”
산적 놈들이 하나같이 난간을 붙들고 속에 든 것을 게워 내고 있었다.
“아, 아니, 뭔 무인이란 놈들이…….”
“……뱃멀미는 그거랑 별개라서요.”
“쯧쯧쯧. 약해 빠져서는! 녹림왕은 어디 갔어?”
“저기 있잖습니까?”
“어디?”
“저기. 토하는 애들 가운데요.”
“…….”
과연 난간을 부여잡고 있는 우락부락한 등들 사이에 상대적으로 왜소해 보이는 등짝이 하나 껴 있었다.
“우에에에에에에에엑! 쿨럭! 쿨럭! 끄윽……. 폐병이 다시……. 쿨럭! 쿨럭! 우웨에에에엑!”
맥이 탁 풀린 청명은 고개를 돌려 버렸다.
“이놈이고 저놈이고…….”
멀쩡한 인간이 하나도 없다.
“헤헤. 저희는 애초에 산을 타는 사람들이라 배에 탈 일이 없습니다. 그리고 웬만큼 배를 탄 사람들도 이만큼 흔들리면 답이 없을 겁니다.”
“그냥 니들이 허약한 거 아니고?”
“에이, 저기 보십시오.”
“뭘?”
“반대편이요.”
청명의 시선이 임소병과 산적들이 들러붙어 있는 난간 반대편으로 돌아갔다.
“우웨에에에에에엑!”
“꽤애애애액!”
“주, 죽는다! 이러다 죽는다!”
화산의 제자들이 저마다 난간을 붙잡고 죽어라 속을 게우고 있었다. 청명은 양손으로 얼굴을 푹 덮었다.
아니. 저것들은 그렇다 치자.
저 민머리는 왜 또 토하고 있냐고! 속 터지게!
“우웨에에에엑!”
그때 거의 내장을 뱉을 기세로 들썩이던 조걸이 난간에 머리를 짓찧으며 실성한 듯 중얼거렸다.
“으……. 머리야. 어지러워……. 사형……. 이러다 싸우기도 전에 죽겠습니다.”
“저, 전에는 이렇게 심하지 않았던 것 같은데.”
“속도 좀 늦추라고 하십쇼, 속도!”
“소소야. 혹시 멀미약 같은 건 없니?”
“……있겠어요?”
“끄응.”
배도 타 봐야 익숙해지는 법 아니던가?
안타깝게도 이곳에 모인 이들은 강이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는 사천 출신과 있는 거라고는 산밖에 없는 섬서 출신들이었다.
무인이다 보니 작은 뱃멀미 정도는 이겨 낼 수 있지만, 뱃사람들도 힘겨워할 만큼 격렬하게 흔들리는 배 위에서는 어찌할 도리가 없는 것이다.
“섬! 대체 그 망할 섬 어디 있냐고!”
“제발……. 제발 싸우게 해 주세요.”
“발만 땅에 댈 수 있으면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다! 제발!”
본디 사람은 잃어 봐야 소중함을 안다. 화산의 제자들은 그간 너무도 당연하게 여겨 왔던 땅의 존재를 한없이 그리워하고 있었다.
“끄으으으…….”
그때 새하얗게 질리다 못해, 새파랗게 변한 임소병이 어기적어기적 청명을 향해 걸어왔다.
“너…….”
“예?”
혹시 불똥이라도 튈까 숨죽이고 있던 조승이 임소병의 손짓에 화들짝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임소병은 꺼져 가는 목소리로 물었다.
“섬……. 섬은 어디냐? 멀었냐?”
“정확한 위치는……. 저도 확실하게는…….”
“몰라?”
“아, 아니요. 알긴 아는데…….”
미적지근한 대답에 임소병의 두 눈에 핏발이 섰다.
“껍데기 벗겨서 소금 뿌려 볼까? 네가 얼마나 덩실덩실 춤을 잘 추는지?”
“사, 살려 주십시오!”
새삼 이자가 녹림왕이라는 것을 떠올린 조승은 사색이 되어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게, 이쯤 오면 보여야 할 텐……. 저, 저깁니다! 저기요! 엉엉! 저기 보입니다!”
“끄응. 어디?”
“저기요!”
살 구멍을 찾은 조승이 다급하게 앞쪽을 가리켰다.
과연 저 너머 강 가운데에 작은 무언가가 떠 있는 게 보였다.
“……근데 저게 섬이라고?”
“지금은 너무 멀어서 작아 보이지만, 저게 절대 작은 게 아닙니다. 저희 수채가 있던 곳보다 오히려 더 큽니다.”
“뭐라고?”
“오히려 더 크다고…….”
“아니, 그 전에. 뭐? 너무 멀다고?”
“…….”
“우욱! 우우욱!”
“아! 여기서 토하지 마! 더럽게!”
청명이 황급히 임소병의 뒷목을 잡아 난간 쪽으로 집어 던졌다. 그리고 손을 탁탁 털어 내며 저 멀리 있는 섬을 바라보았다.
“흐음.”
갈대가 울창하게 돋은 모양으로 안쪽이 잘 보이진 않았지만, 확실히 저 정도 크기면 수채 하나 정도는 충분히 들어가고도 남을 것 같았다.
“신기하네. 강 가운데에 섬이라니.”
청명은 중얼대며 턱을 만지작거리다 문득 멈칫했다.
“음?”
그의 입가에 슬그머니 미소가 맺혔다.
“어이, 물귀신.”
“……옙!”
“아무래도 저쪽에서 마중을 나오시는 모양인데?”
“예?”
조승이 고개를 빼고 섬 쪽을 살폈다.
“어엇?”
아니나 다를까.
멀리 보이는 섬 주변으로 작은 점 같은 것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물 위에 떠 있는 점이라면 무엇일지 짐작하기 그리 어렵지 않다.
점들은 가까워질수록 선명히 배의 형체를 갖추기 시작했다.
“저, 적선이다! 전투 준비!”
“저, 전투?”
“이런 상황에서?”
산적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속이 뒤집어진 건…… 그래, 좀 꼴사납더라도 토하면서 싸울 수도 있다. 하지만 두통과 어지러움은 어쩌라는 건가? 제대로 서 있기도 힘든데.
“끄응. 죽겠네.”
산적들은 그제야 일전의 전투가 얼마나 유리했는지 알았다. 수적들과 땅 위에서 싸울 수 있는 상황은 뭍으로 끌어올려진 상어와 싸우는 것과 다름없다.
굳이 범까지 갈 것 없이 고양이만 돼도 바둥대는 상어를 여유롭게 뜯어 먹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장소가 강이라면 상황은 역전된다. 고양이가 아니라 범이라고 해도 물에선 상어의 한 끼 식사일 뿐이다.
‘이래서 수로채를 함부로 건드리지 못하는 거구나.’
“끄응. 이해를 못 하겠군. 저곳은 완전히 천혜의 요새 같은데.”
어느새 다시 다가온 임소병이 창백한 낯으로 말했다.
“왜 수채들이 저런 곳을 방치하고 있었던 거지?”
“저긴 수채가 있을 만한 곳이 아닙니다.”
“왜?”
“일단 너무 눈에 띄잖습니까?”
“……그건 그러네.”
“게다가 저 주변은 섬 때문에 물길이 제멋대로 날뛰는 곳입니다. 유속이 두 배는 더 빠르고, 물길이 뒤섞여 순식간에 와류가 만들어집니다. 아무리 능수능란한 조타수가 모는 배라도 아차 하는 순간에 뒤집힙니다. 그런데 그런 곳에 어떻게 수채를 만들겠습니까?”
“쟤들은 했잖아?”
“……그건 저도 잘…….”
조승이 맹한 얼굴로 머리를 긁적였다.
“어쨌든 저 새끼들이라 이거지?”
청명이 두 눈에 쌍심지가 켜졌다.
“일단 다 물고기 밥으로 만들어 놓고 생각하자! 모두 전투 준…….”
콰아아아아아아앙!
“어?”
그런데 그 순간 벼락 치는 소리와 함께 그들 옆에 있던 배가 박살이 났다.
“화, 화포?”
청명이 눈을 휘둥그레 뜨고 건너편에서 접근하는 배들을 휙 돌아보았다. 검고 흰 연기가 뒤섞여 퍼져 나오는 모습이 똑똑히 눈에 들어왔다.
“화포를 쓴다고? 저 새끼들 미쳤나?”
화약은 관에서 금지하는 무기다. 다시 말하자면 화약을 쓰는 순간부터 관의 추적을 받게 된다는 뜻이다. 소금과 화약은 관에서 가장 이를 갈며 쫓아 대는 물건이니 절대 함부로 건드려서는 안 되는 것 아니던가?
그래서 수적들도 소량의 화약을 기관 장치와 섞어서 작살이나 날려 대는 것인데, 저건 아무리 봐도 진짜 화포였다.
“저거…… 아무래도 백뢰포(百雷砲) 같은데요?”
임소병의 말에 청명이 고개를 획 돌렸다.
“백뢰포? 그게 뭔데?”
“그…… 예전 한창 날리던 벽력문이라는 곳에서 제작한 화포입니다.”
“……벽력문이면 문파야?”
“예. 화약을 주로 쓰던 문파죠.”
“미친놈들인가? 그런 애들이 있는데 관이 보고만 있어?”
“보고 있었겠습니까? 그래서 망했죠.”
“…….”
“그런데 그놈들이 제작한 화포와 폭탄들은 아직도 은밀히 거래되고 있습니다. 아마 저 수적 놈들이 그걸 입수한 모양인데…….”
콰아아아아앙!
또 한 척의 배의 선두가 통째로 날아갔다.
“으아아아아! 빠진다아아아!”
“어푸! 어푸! 살려 줘! 나는 수영을 못한다고!”
“무, 물속 조심해! 수적 새끼들이 노리고 올 수도 있어! 판자라도 잡고 올라가! 아니면 옆 배로 오르라고, 이 새끼들아!”
순식간에 아비규환이 펼쳐졌다.
“자, 작살! 우리도 작살 있잖아?”
“……에이. 저기까진 닿지도 않습니다.”
손사래를 치던 조승이 눈을 끔뻑였다.
“어? 쟤들 속도 줄이는데요?”
“응?”
“이대로 거리를 두고 하나하나 부술 생각인 모양입니다.”
“아니! 이 새끼들이 비겁하게! 무인이면 정정당당하게 붙어야지!”
“……수적인데요.”
필요할 때만 나오는 정정당당이지만, 그마저도 수적들 앞에서는 무의미했다.
콰아아아아아앙!
“으아아아아악!”
또 한 척의 배가 박살이 난 순간 청명이 눈을 까뒤집고 말았다.
“근데 이 새끼들이 보자보자 하니까?!”
“오?”
임소병이 살짝 감격한 눈으로 청명을 돌아보았다.
화산의 제자들은 이 배에만 타고 있었다. 부서진 저 배들에는 산적들만 타고 있다는 이야기다. 그런데도 저렇게나 화를 내는 걸 보면 청명이 그래도 녹림도들을 진정 동료로 생각해 준다는 의미가 아니겠는가?
“저희는 괜찮…….”
“저 배가 다 얼마짜린데 이 새끼들이!”
“…….”
아……. 그걸 벌써 재산목록에 넣으셨군요.
훌륭하십니다. 도적으로서 부끄럽네요.
“오냐! 화포를 쏜다 이거지?”
그 순간 청명이 훌쩍 난간 위로 뛰어올랐다.
그리고!
“배에도 대가리가 있다는 걸 내가 알려 주마! 으라차아아아아!”
콰아아앙!
난간을 걷어차 박살 내며 쏘아진 포탄처럼 튕기듯 날아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