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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귀환-764화 (762/1,567)

764화. 사숙! 자꾸 환청이 들립니다! (4)

“이, 이게 뭐야!”

“피해라아아아아!”

눈앞에 붉은 매화의 화원이 펼쳐진다. 소담스레 피어오른 꽃이 금세 화려하게 만개하더니, 불어온 바람에 흩날리듯 사방으로 점점이 번져 나갔다.

믿을 수 없는 광경에 수적들은 기겁하며 뒤로 황급히 물러섰다.

하지만 물러나는 속도보다 밀려오는 속도가 배는 더 빨랐다. 어어 하는 사이에 날아든 꽃잎이 날카롭게 수적들을 휩쓸어 버리기 시작했다.

“아아아아아악!”

매화검기에 꿰뚫린 수적들의 일각이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

“무, 무슨 이런 검법이…….”

이미 한차례 견식을 했으나 이번에는 또 달랐다.

화산의 제자들이 기세를 올려 일거에 쏟아내는 매화는 검법이라기보다는 마치 성난 해일(海溢) 같았다.

심지어 그게 끝이 아니었다.

“읏차!”

허공으로 뛰어오른 청명이 몸을 빙글 뒤집더니 허공을 세게 걷어차며 쏘아진 포탄처럼 수적들을 향해 날아들었다.

“으라차아아아!”

콰아아아아앙!

그리고 내려서는 것과 동시에 발을 뻗어 전방에 있던 수적의 명치를 가격했다.

얻어맞은 수적의 몸이 팽그르르 회전하며 뒤쪽에 있던 수적들을 쳐 날리고 튕겨 나갔다.

“이, 이!”

실로 입이 쩍 벌어지는 광경이었다. 하지만 수적들은 겁을 집어먹고 달아나는 대신 청명을 향해 작살을 내지르고 조를 휘둘러 대며 달려들었다.

매화검기에 가려 어디를 어떻게 공격해야 할지 감도 안 잡히는 이들을 상대하는 것보다는 실체를 앞에 분명히 드러낸 이를 공격하는 쪽이 현실적이었기 때문이다.

“죽어라!”

“꼬치로 만들어 버려!”

날아드는 장병기들을 본 청명의 두 눈이 섬뜩하게 빛났다.

카강!

금세라도 청명의 몸에 구멍을 내 버릴 듯 날아들던 병기들이 날카로운 쇳소리와 함께 허공에서 서로 맞부딪히며 얽혔다.

‘아니?’

‘어디…….’

바로 그 순간이었다.

“으아아아아악!”

공격해 들어갔던 이들이 하나둘 처절한 비명을 내지르며 그 자리에 고꾸라졌다. 그들은 하나같이 제 발을 부여잡고 있었다. 발목 뒷부분이 깊게 베여 붉은 피를 쭉쭉 내뿜고 있었다.

파파파팟!

“뭐, 뭐야!”

“밑이다!”

“아아아아아악!”

밀려들던 수적들이 낫으로 베어 낸 벼처럼 우르르 쓰러지기 시작했다. 자세를 낮춘 청명이 저공비행을 하는 제비처럼 전진하며 수적들의 발목을 베고 있었다.

서걱! 서걱! 서걱!

발목 뒷부분이 잘려나간 수적들은 흡사 짐승처럼 참혹한 비명을 지르며 나가떨어졌다.

“무, 물러나!”

“빌어먹을! 물러나지 말고 찌르라고, 이 병신 새끼들아!”

“아아아악!”

달아나려는 수적들과 달려들려는 수적들이 뒤엉키며 금세 아비규환이 펼쳐졌다. 그리고 그런 그들의 머리 위로 화산의 제자들이 날린 매화검기가 구름처럼 피어올라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읏차!”

청명이 바닥을 밀듯이 걷어차며 앞으로 쏘아졌다.

전방에 있던 수적들은 모두 사색이 되어 황급히 피하려 했지만 그 수라장을 뚫고 달아날 수 있을 리 없었다.

타다닥!

청명은 수적의 무릎, 배, 어깨를 연이어 밟으며 위쪽으로 솟구쳤다.

콰앙!

마지막 발이 얼굴에 틀어박힌 순간, 밟힌 수적은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허물어졌으며 청명은 몸을 회전시키며 까마득히 높이 솟았다.

“타아아압!”

암매검이 허공을 휘저었다. 그 끝에 붉은 매화가 맺혀 들었다.

지금까지 본 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선명한 매화가 꿈결처럼 피어올라 산적들의 머리 위로 쏟아졌다.

서걱! 서걱! 서걱! 서걱!

꽃잎이 산적들의 육체를 사정없이 베어 냈다. 여기저기 피와 비명이 난무하는 잔혹한 광경임에도, 더없이 아름다웠다. 그 괴리감에서 오는 섬뜩함에 지켜보는 이들은 모두 전율했다.

“괴, 괴물…….”

“어디서 저런 놈이…….”

탁.

그때 바닥에 착지한 청명이 좌우로 고개를 꺾어 댔다.

“슬슬 몸이 풀린 것 같은데.”

“…….”

“자…….”

청명이 입꼬리를 기이하게 뒤틀며 웃었다.

“계속하자고.”

그리고 다시 한번 섬전처럼 돌진했다.

“오오오오오오!”

혜연을 위시로 한 화산의 제자들이 그 뒤를 악귀 같은 모양새로 따랐다.

파아아앗!

검의 움직임이 그야말로 경쾌하다.

몸속에서 스며드는 독 때문에 손끝은 저릴지언정, 검은 조금도 흐트러지지 않았다.

서걱!

“끄르륵…….”

가슴을 꿰뚫린 수적이 피거품을 게우며 그 자리에서 허물어졌다. 검을 회수하며 피를 털어 낸 백천이 허리를 곧게 쭉 폈다.

저 앞쪽에선 청명이 수적들에게 포위되어 있었다.

아니, 사실 저건 포위되었다고 표현하기에는 애매한 광경이다. 범이 토끼들에게 둘러싸여 있다고 토끼에게 포위되었다고 하지는 않으니까.

“이 새끼들이 어디서 싸가지 없이 작살질이야!”

심지어 청명은 눈을 희번덕대며 수적들을 말 그대로 박살 내고 있었다.

‘망할 놈!’

백천은 가만히 입술을 꽉 깨물었다.

저 광경이 너무 당연하여 평소에는 그 중요성을 가슴 깊게 실감하지 못했다. 하지만 청명 없이 제자들을 이끌어 보고 가장 앞에서 싸워 보니 뼈저리게 알 수 있었다. 저게 얼마나 굉장한 광경인지를.

청명이 싸우는 곳은 언제나 적이 가장 주목하는 곳이고, 전장의 맥이 흐르는 곳이다. 그는 늘 가장 위험한 곳에서 온갖 시선을 다 끌며 적의 공격을 받아 낸다. 저곳에 청명이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뒤따르는 이들에게 쏟아지는 공격은 반으로 줄어든다.

완벽한 계산? 아니면 천부적인 감각?

그건 알 수 없다. 백천이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만한 일이 아니다. 단 하나 확실한 것은 저놈이 언제나 가장 위험한 곳을 자처해 싸우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그 사실을 알고 나니 새삼스레 얼굴이 절로 달아올랐다.

‘입만 살아서는.’

백천이 청명에게 입버릇처럼 하던 말이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지금 속으로 읊조린 이 말은 백천이 자기 자신에게 하는 말이었다.

‘나는…….’

“어디서 딴생각이야! 집중 안 해?”

“…….”

그때 귀신같이 귀를 파고드는 소리에 백천이 재빨리 고개를 털어 잡념을 날렸다.

“오냐, 이 새끼야!”

이를 악문 백천이 다시 검을 꽉 쥐고 수적을 향해 달려들었다.

“채주님!”

“으음.”

잔포흑어의 두 눈이 미세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뭐냐? 저놈은?’

전장의 분위기가 달라졌다. 그저 한 놈이 추가되어 힘을 받은 느낌 따위가 아니다.

따지자면 전장은 약동하는 용과 같다. 찰나에도 변하고 뒤틀리는 곳이 바로 전장이다. 그런데 저놈이 등장한 순간부터 전장의 흐름이 저쪽으로 일방적으로 끌려간다.

‘저놈들도 움직임이 달라졌다.’

아니. 애초에 저 화산의 제자 놈들은 절대 약하지 않았다.

가끔 수채를 노리고 오는 정파의 고수 놈들을 제압하기 위해서 특수하게 제작한 묵철 그물을 잘라 버린 것만 봐도 그 실력을 짐작할 수 있지 않은가?

애초에 수채라는 곳은 언제나 습격에 노출되어 있다.

적을 살펴 일단 길을 막을지 말지부터 가늠할 수 있는 산적들과는 달리 그들은 배에 오르기 전까지는 누가 타고 있는지를 전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때때로 장강을 오가는 고수들과 문제가 생기기 마련이고 그럴 때마다 막대한 피해를 입게 된다. 조금 전 그들이 사용한 묵철 그물은 바로 그런 고수들을 제압할 때 사용하는 물건이다.

그 그물을 제작하는 데 들인 돈이 얼마던가?

하지만 묵철 그물은 거금을 투자할 가치가 있는 물건이다. 일반 철보다 열 배는 더 무겁고 단단하기에 검을 귀신처럼 다루는 검귀들도 쉽사리 자르지 못한다. 저 그물 아래서 꼬치처럼 꿰어 죽어 간 고수들의 목숨 값만으로도 제작하는 데 드는 비용은 회수하고도 남았다.

그런데 그런 그물을 잘라 내는 애송이들이라니, 애초에 애송이라고 부를 수도 없다. 강하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아무리 무력이 강하다고 해도 경험이라는 것은 쉽사리 채워지는 것이 아니다. 경험이 일천한 이일수록 찌를 틈은 반드시 있다. 그 예로 조금 전까지만 해도 이쪽의 압도적인 승리가 너무도 당연해 보이지 않았던가?

그런데 저 망할 놈이 나타나면서 모든 게 달라졌다.

“이런 빌어먹을…….”

잔포흑어가 이를 갈았다.

장강의 협곡은 실로 무서운 곳이다. 물이 좁아지는 길목에서는 물길이 서로 맞부딪히며 와류를 만들고 흐름이 제멋대로 엉켜 든다. 커다란 배가 아니면 감히 진입할 엄두조차 내지 못할 정도이다.

그래, 마치 순간순간 불타오르는 전장처럼.

하지만 장강에서 살아가는 이들은 간간이 보게 된다. 평생 동안 장강과 함께 살아온 늙은 뱃사공들이 금방이라도 가라앉을 듯한 작은 나룻배로 요동치는 와류와 급류 사이를 귀신처럼 빠져나가는 광경을 말이다.

그건 이치로는 파악할 수 없다. 평생 물길을 봐 온 이만이 손끝으로 잡아챌 수 있는 감각의 영역이었다.

그런데 지금 전장을 누비는 저 어린놈의 움직임에서 그 손끝이 보인다.

‘이게 말이나 되는 소린가?’

천재? 웃기지도 않는 소리. 저건 한낱 천재성만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저건…….

“채주님!”

상념에 잠겨 있던 잔포흑어는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야 퍼뜩 정신을 차렸다.

“으…….”

그리고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입술을 짓씹었다. 지금은 한가롭게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뭣들 하느냐, 이 쓸모없는 놈들! 당장 저놈부터 처리해라! 당장!”

“예!”

잔포흑어의 뒤쪽에서 만반의 준비를 하고 대기하던 이들이 일제히 청명을 향해 뛰어올랐다.

“음?”

이를 포착한 청명이 시선을 슬쩍 돌렸다.

“노오오오옴!”

거무튀튀한 작살이 새파란 경기를 싣고 무시무시한 속도로 날아들고 있었다.

사람의 몸은 물론이고 바윗덩어리마저 꿰뚫어 버릴 듯한 기세.

이곳이 그저 평범한 수적들이 모인 곳이 아니라 천하를 지배하는 신주오패 중 하나, 장강수로십팔채의 수채라는 것을 증명하는 일격이었다.

쇄애애애액!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매섭게 울렸다. 순간 청명의 눈빛이 어둡게 가라앉았다.

파앗!

이윽고 암매검이 섬전과도 같은 속도로 내뻗어졌다.

착!

그리고 이내 가공할 기세로 날아드는 작살의 옆면에 붙었다. 그와 동시에 청명이 뒤로 훌쩍 뛰어오르며 검을 부드럽게 비틀었다.

투웅!

순간 작살의 궤도가 미묘하게 옆으로 틀어졌다. 내력을 실은 작살은 청명의 옆구리를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가며 옷자락을 길게 찢었다.

찢긴 옷 사이로 드러난 청명의 옆구리에 붉은 선이 생겨났다. 하지만 정작 작살을 휘두른 장본인은 결코 그 사실에 기뻐할 수 없었다.

뻗어진 작살보다 더 가까운 곳에서 어느새 다가온 청명이 섬뜩하게 웃고 있었기 때문이다.

서걱! 서걱!

삽시간에 손목이 베이며 피가 뿜어져 나왔고 팔꿈치 안쪽의 근육이 모조리 끊어졌다.

“크아아아악!”

참을 수 없는 고통에 끔찍한 비명을 내지른 수적은 뒤쪽을 향해 필사적으로 몸을 날렸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그가 상대하는 이는 물러나는 적을 그대로 보내 주는 법이 없었다.

파아아앗!

물러나는 수적을 쫓아 돌진한 청명의 검이 독사처럼 휘었다. 수적의 무릎이 깨끗하게 베여 나간다.

“끅…….”

인대가 통째로 베인 수적이 비명을 내지르며 바닥을 굴렀다.

“후욱……. 후욱……. 훅…….”

저벅. 저벅.

검을 늘어뜨린 청명이 천천히 다가오자 수적의 두 눈이 절망에 휩싸였다.

공포로 얼룩진 수적의 눈과 감정 하나 실리지 않은 청명의 눈이 허공에서 마주쳤다.

“사, 살려…….”

패애애애애앵!

애원이 말이 무색하게도 청명의 검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주저앉은 수적의 목을 날렸다.

허공으로 솟구친 머리가 바닥에 떨어져 구를 때까지 생전의 자세를 유지하던 몸뚱이는 잠시 후에나 붉은 피를 뿜어내며 옆으로 털썩 쓰러졌다.

촤악!

피를 털어 낸 청명은 저를 둘러싼 수적들을 쭉 둘러보았다.

“이놈이…….”

수적들이 뭔가 말을 하려는 순간, 청명의 발이 다시금 땅을 박찼다.

전투에 대화는 필요 없다는 듯, 청명의 입가엔 기괴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이윽고 전방으로 솟아오른 그의 검에서 매화검기가 쏟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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