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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귀환-763화 (761/1,567)

763화. 사숙! 자꾸 환청이 들립니다! (3)

아무리 봐도 돛 하나 없이 양손으로 노를 저어 나가는 작은 나룻배였다.

하지만 일 장이 넘는 물보라를 일으키며 제비처럼 수면을 나는 걸 두고 고작 나룻배라 칭해도 되는 걸까?

콰콰콰콰콰콰콰!

달려오는 기세만 보면 장강을 갈라 버릴 듯했다. 고작 나무로 만들어진 작은 배가 어떻게 저 속도를 버티는지도 의문스러웠다.

그 기막힌 광경에 화산의 제자들의 얼굴엔 뭐라 형용할 수 없는 묘한 감정이 어리기 시작했다.

“……내가 헛것을 보고 있나?”

“쟤가 왜 여기 있지?”

“처, 청명…….”

윤종의 목소리가 감격에 겨워 살짝 떨렸다. 하지만 그때.

“아오, 씨바! 진짜 더럽게 힘드네! 아니, 장강에 나왔으면 얌전히 물 위에서나 싸움박질할 것이지! 뭘 주워 처먹겠다고 여기까지 기어와서 이러고 있냐고. 싹 다 물에 처박아 버릴까 보다, 콱 그냥!”

잠깐 열렸던 윤종의 입이 다물렸다. 그리고 흐뭇한 미소가 스쳤다.

“청명이 맞네.”

“성질 더러운 걸 보니 빼박이네.”

“……대체 여길 어떻게 알고 왔지?”

“아미타불……. 지옥이 따로 있는 게 아니올시다.”

당황한 것은 화산의 제자들뿐만이 아니었다. 수적들 역시 당혹감을 숨기지 못했다. 장강에서 평생을 살면서도 저런 기상천외한 광경은 단 한 번도 본 적 없었던 탓이다.

“저, 저게 뭐야…….”

그때 조승이 버럭 고함을 내지른다.

“뭘 구경하고 있느냐! 작살을 쏴라! 침몰시켜 버려!”

“예!”

조승의 명을 들은 수적들 중 일부가 부리나케 안쪽으로 달려가 커다란 수레를 몇 대나 끌고 나왔다. 그러더니 수레에 실린 커다란 화포를 돌려 나룻배를 겨누었다.

“쏴라!”

콰아아아앙!

커다란 작살이 허공을 가르고 청명이 탄 나룻배를 향해 날아들었다.

“어?”

콰드드드드득!

작살들이 나룻배를 말 그대로 박살 냈다. 수면에 거대한 물보라가 일었다.

“해치웠다!”

“꼴좋다, 이놈!”

수적들이 커다란 환호를 내질렀지만, 정작 그 광경을 바라보는 화산 제자들의 얼굴에 걱정이나 우려 따윈 한 올도 없었다.

그저 뚱한 얼굴로 솟구친 물보라를 바라볼 뿐이었다.

“그걸로 죽을 놈이면 이 고생도 안 하지.”

“……그러니까요.”

아니나 다를까.

촤아아아아악!

일 장 넘게 치솟은 물보라 사이에서 한 사람이 가공할 속도로 튀어나왔다. 그 광경에 화산 제자들의 눈이 툭 튀어나왔다.

“저…… 저…….”

“미친…….”

왜 이런 반응이냐고?

저 정도로 청명이 죽지 않을 거라는 것쯤이야 당연히 예상했다. 저 정도 공격으로는 청명의 몸에 생채기라도 내면 천운이다. 목숨 줄 하나만큼은 고래심줄보다 더 질긴 게 바로 청명 아니던가?

그런데도 그들이 놀란 이유는, 그가 가공할 속도로 이쪽을 향해 ‘뛰어’오고 있기 때문이었다.

“달리네.”

“네.”

“물 위를 달리네.”

“……네.”

“허허허허. 내 살다 살다 별…….”

청명이 발을 내뻗은 자리마다 물이 폭발하듯 솟구쳤다. 워낙 빠르게 달리다 보니 청명의 뒤로는 수십 줄기의 물보라가 마치 폭죽처럼 솟아올랐다.

“아오 씨! 진즉에 이럴걸! 노 젓는다고 힘만 뺐네! 머리가 나쁘면 몸이 고생이라더니!”

백천이 양손으로 얼굴을 감싼다.

아니야……. 아니야, 청명아. 그게 아니다…….

너는 몸이 너무 좋아서 머리가 고생을 안 하는 거야, 이 미친놈아…….

“저, 저게 뭐야……?”

“사, 사람이 물 위를 달린다고?”

그 광경을 본 수적들도 하나같이 두 눈을 부릅떴다.

물론 그들도 무인이다 보니 물 위를 걷는 수상비(水上飛)라는 경공이 있다는 건 알고 있다. 하지만 그걸 두 눈으로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수채의 고수들이 간간이 물을 한차례 밟고 뛰어오르는 신기를 보여 주기는 했어도, 그건 말 그대로 밟고 뛰는 정도였다.

그런데 지금 나타난 저 괴이한 자는 말 그대로 물 위를 달리고 있지 않은가?

“무, 물 위를 달…….”

“아오!”

“달…….”

경탄하던 수적들이 입을 다물었다.

경쾌하게 물 위를 달리던 청명이 점점 아래로 가라앉는다. 어느 순간부터는 발목까지 잠겨서, 달린다기보다는 미끄러지는 것에 가까워지더니 금세 허리까지 잠겨 들었다.

“빠, 빠진다!”

그때였다.

촤아아아악!

청명이 머리까지 물에 잠겨들더니 물 흐르듯 부드럽게 헤엄을 치기 시작했다. 마치 원래 그러려고 했던 것처럼 매끄러웠다.

“……자연스러웠어.”

“십 점.”

“…….”

놀랍다면 놀랍고, 괴이하다면 괴이하여 대체 무슨 말로 표현해야 할지 알 수 없는 광경이었다. 그러니 모두가 넋을 놓고 지켜볼 뿐이었다.

촤아악! 촤아아악! 촤아악!

인어처럼 재빠르게 헤엄친 청명이 물가에 도착해 몸을 세웠다.

터덜. 터덜.

물에 빠진 생쥐 꼴로 터덜터덜 몇 발짝 뗀 청명은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아이고…… 허리야. 뒈지는 줄 알았네. 끄으으응.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자고 이 짓까지 해야 하나.”

그러더니 내내 구시렁거리며 허리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말없이 그 양을 바라보던 화산의 제자들의 시선이 자연스레 저 먼 하늘로 향했다.

‘솔직히 좀 감동할 뻔했는데.’

‘바랄 걸 바라야지.’

그때 청명의 근처에 있던 수적이 용기를 내어 그에게 달려들며 작살을 찔렀다.

“이놈! 어디서 감히!”

어?

화산 제자들의 고개가 획 돌아갔다.

아, 안 되는…….

“아오, 씨!”

청명은 앉은 자세 그대로 수적의 배를 걷어차 버렸다.

콰아아아아아아앙!

사람이 얻어맞는 소리라기에는 너무 엄청난 굉음이 울렸다. 달려들던 수적은 화포에서 쏘아진 작살보다 더 빠르게 뒤로 튕겨 나갔다.

패애애애애앵!

바람을 가르고 날아간 몸은 몰려 있는 다른 수적들의 머리 위로 날아 절벽 한가운데에 그대로 처박혔다.

쿠우우우우웅!

정적이 흘렀다.

모든 수적들의 고개가 천천히 뒤로 돌아갔다. 깔끔하게 절벽에 처박혀 버린 동료를 확인하고 다시 돌아온 그들의 얼굴엔 현실을 보고도 믿지 못하는 기색이 가득했다.

청명이 투덜거렸다.

“힘들어 뒈지겠는데 예의 없게 창을 찔러 대? 뒈지고 싶냐?”

아니야, 청명아. 저건 이미 죽었다고 봐야 해.

저러고도 살면 오히려 그게 예의가 아니지…….

“끄응. 별 거지 같은 놈들이…….”

개방의 거지들이 들었으면 게거품을 물 발언을 태연하게 한 청명이 비척이며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오검을 향해 고개를 획 돌렸다.

움찔.

“아니……!”

청명이 막 잔소리 폭격을 준비하려는 순간이었다.

“어떻게 왔냐!”

“응?”

백천이 재빠르게 선수를 쳤다. 순간 말문 막힌 청명이 고개를 갸웃했다.

“화산에 있어야 할 네가 여기에 어떻게 왔냐고.”

“아. 장문인이 보내서 왔지.”

그 대화를 들으며 화산의 제자들은 마음속으로 박수갈채를 보냈다.

‘역시 사숙이다!’

‘물 흐르듯이 넘겨 버리는 거 보소. 보나마나 저거 완전 뒤집어졌을 텐데.’

‘능수능란.’

“장문인께서?”

“그렇다니까. 보나마나 다들 여기서 개고생하고 있을 테니!”

청명이 의기양양하게 배를 쭉 내민다.

“나보고 가서 구해 주라고 하시더라고. 하, 귀찮아서 원.”

“…….”

“근데 왜 여기까지 기어 들어와…….”

“저 새끼들이 끌고 왔다. 배에 사슬을 걸고 당기는데 도리가 없더라! 우리 탓이 아니다.”

“저 새끼들이?”

청명의 살벌한 시선이 획 수적들을 향해 돌아갔다.

그렇게 깔끔하게 청명의 관심사를 돌려 버린 백천은 몰래 제자들을 바라보며 엄지를 척 하고 내밀었다. 그러자 모두가 일제히 그를 향해 함께 엄지를 치켜세워 주었다.

청명이 못마땅한 얼굴로 구시렁거렸다.

“뭔 수적 새끼들 하나 감당 못 해서 쩔쩔 매고 있어?”

“저 새끼들이 독을 써서.”

“뭐, 독? 그런 건 다 근성이 없어서 당하는 거야! 나 때는 말이야, 독 묻은 칼빵 한 다섯 대 맞아도 ‘아, 오늘은 허리가 뻐근한데 차라리 허리 쪽으로 긁어 주지’ 했다고! 하여튼 요즘 것들은!”

“네가 제일 어리다, 청명아…….”

“아, 맞다. 그렇지?”

청명이 제 이마를 톡 치더니 어깨를 으쓱했다.

“어쨌거나 할 말은 많지만…….”

청명은 길게 숨을 내쉬며 수적들에게로 시선을 틀었다. 대경채 채주 잔포흑어가 황당한 눈으로 이쪽을 보고 있었다.

우둑, 우둑.

목을 좌우로 꺾은 청명은 허리에 찬 암매검을 천천히 뽑아 들었다.

“일단은 저 수적 새끼들부터 모조리 강에 처박아 버리고…….”

“쟤네 헤엄 잘 치더라.”

“그럼 절벽에 처박아 버려야지!”

“하핫.”

청명의 명쾌한 답에 백천은 저도 모르게 웃어 버렸다.

사실 딱히 달라진 것은 없다. 겨우 일곱이 여덟로 바뀌었을 뿐이다.

하지만 그 여덟은 결코 일곱과 같지 않았다.

몸을 파고드는 독기는 여전하지만 더는 이전처럼 어지럽지 않은 느낌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꾸욱.

검을 잡은 손에 절로 힘이 들어갔다.

옆에 선 다른 제자들도 비슷한 심정인 모양이었다. 조금 전까지 비장함만 가득했던 얼굴에 여유가 돌아온 걸 보니 말이다.

묻고 싶은 것은 많고도 많다.

대체 어찌 알고 왔는지. 대체 어떻게 섬서에서 이곳까지 이리 빨리 도착했는지, 그리고 그들이 있는 곳은 어떻게 알아냈는지…….

하지만…….

‘지금 그런 게 중요한 게 아니지.’

두 걸음 앞으로 나선 청명이 곧은 자세로 섰다. 그 작고도 넓은 등을 보는 순간 백천의 입가에 미소가 환하게 피어났다.

“오냐. 일단 수적 새끼들부터 처리하…….”

“으라차아아아!”

“말은 좀 듣고 나가, 이 새끼야!”

별안간에 앞으로 벼락같이 튀어 나간 청명은 선두에 선 수적을 향해 어마어마한 속도로 달려들었다.

“어?”

콰아아아아아앙!

선두에 서 있던 수적은 제가 무슨 꼴을 당하는지도 모르고 걷어차였다.

퍼어어억! 퍼억!

날아간 몸뚱이가 뒤쪽에 밀집해 있던 수적들을 숱하게 튕겨 냈다. 마치 아이가 던진 공에 나무토막들이 맥없이 튕겨 나가는 듯한 모양새였다.

“뭐, 뭐야!”

“이놈이!”

“이놈이 뭐? 뭐, 이 새끼들아!”

청명은 두 눈으로 불을 뿜으며 앞의 수적을 움켜잡더니 이마로 얼굴을 그대로 들이받아 버렸다.

콰앙!

“내가!”

쾅!

“니들 때문에!”

쾅!

“섬서에서 여기까지 뛰어왔다, 이 새끼들아!”

“아아아아아아악!”

수적들은 흡사 폭풍에 휘말린 가랑잎처럼 여기저기 나부끼며 날아갔다.

“내 쌓인 원한을……. 아니, 화산의 친구를 건드린 대가가 뭔지 내가 똑똑히 보여 주마!”

“본심 나왔어, 이 새끼야!”

오검도 다급히 그의 뒤를 쫓아 달려 나갔다.

생각지 못한 상황에 당황한 수적들이 퇴각을 고민하며 갈팡질팡하는 찰나, 오검은 이미 그들에게 다가와 검을 찔러 넣고 있었다.

“여하튼 저 새끼 성질 하나는!”

“못 말려.”

분위기가 일거에 반전되었다. 검이 더없이 가볍다. 보법을 밟는 발 역시 더없이 경쾌하다.

“빌어먹을!”

백천이 탄성 같은 욕을 기분 좋게 내뱉었다.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눈앞에 저 등이 있으면 힘이 난다. 마치 누군가가 든든히 잡아당겨 주는 듯이.

절망적이기까지 했던 수적들의 수가 이제 더는 대단해 보이질 않는다.

‘청명…….’

“이게 어디서 싸가지 없이 작살질이야! 내가 물고기냐, 이 새끼야?”

수적의 작살을 빼앗아 엉덩이에 사정없이 찔러 넣는 청명의 모습에, 백천은 눈을 질끈 감았다.

‘좋은 것만 보자. 좋은 것만.’

“아니! 나 오기 전에 단체로 굼벵이라도 삶아 먹었어? 빨리 안 와?”

“간다! 간다고, 이 새끼야!”

“땡중!”

“예!”

청명이 가타부타 말도 없이 그 자리에서 뛰어올랐다.

그러자 혜연이 지체 없이 그가 솟아올라 만들어 준 공간으로 권력을 발출했다.

“오오오오오!”

패(覇)가 아닌 중(重).

부수는 힘이 아니라 무거움을 담은 권력이 부챗살처럼 퍼져 나가며 밀집해 있던 수적들을 단숨에 밀어 냈다.

“지금이다!”

“예!”

오검이 빛살처럼 앞으로 쇄도했다. 그들의 검 끝에서 각양각색의 매화가 피어났다.

깎아지른 절벽과 드넓은 강.

그 가운데서 붉디붉은, 더없이 아름다운 매화가 화려하게 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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