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0화. 죽으면 죽었지! (5)
화살이 비처럼 쏟아진다.
단순한 과장이나 수사가 아니라, 화살이 정말 말 그대로 비처럼 쏟아졌다.
“걸아!”
“야 이 미친놈아!”
“히이이이이익!”
조걸이 검을 들어 올리려다 움찔했다.
아무리 봐도 저 흉흉한 화살들을 검으로 다 막을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뛰어내려 인마! 물속으로!”
“아!”
조걸이 지체하지 않고 강으로 몸을 날렸다.
풍더어엉!
커다란 물보라를 만들어 내며 강물 속으로 뛰어 들어간 조걸이 아래로 또 아래로 필사적으로 헤엄쳐 내려갔다.
본능적으로 고개를 돌린 조걸의 눈에 화살들이 수면을 뚫고 아래로 날아드는 모습이 보였다.
그 기세가 약해지긴 했지만, 부글부글한 기포를 만들어 내며 날아드는 화살의 모습은 어떤 면에서는 물 밖에서 볼 때보다 더 위협적이었다.
‘히익!’
조걸이 재빨리 팔다리를 놀려 더욱더 아래로 내려간다.
‘으아아아! 살려 줘!’
조걸이 개구리처럼 팔다리를 팔딱대며 속도를 높였다.
다행히 늦지 않았는지, 그의 뒤통수까지 부근까지 날아들었던 화살들이 힘을 잃고 물 위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와……. 뒈지는 줄 알았네.’
조걸의 입이 벌어지며 새하얀 거품이 보글보글 흘러나온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던 조걸이 흠칫하며 고개를 돌렸다.
탁한 장강의 물속.
화산의 계곡과는 다르게 시야가 거의 확보되지 않는 뿌연 물속에서 무언가 움직이는 것이 느껴진다.
‘물고기?’
아니. 그렇다기에는 너무 크고 너무 빠르다.
시커먼 무언가가 자신에게 일직선으로 달려드는 것을 포착한 조걸이 반사적으로 검을 휘둘렀다.
“끄르르륵.”
기다란 아미자를 들고 조걸을 찔러 오던 수적이 조걸이 휘두른 매화검에 베여 경련했다.
희뿌연 강물에 수적의 가슴에서 흘러나온 붉은 피가 연기처럼 번져 갔다.
‘하핫!’
조걸이 경쾌하게 검을 회수했다.
‘감사합니다! 장로님!’
현영이 이런 상황을 미리 예견하고 수련을 시킨 건 아니었겠지만, 화산의 계곡물 아래서 검을 휘두르는 수련을 해 오다 보니, 이제는 물속에서 검을 휘두르는 게 자연스러워진 조걸이었다.
시선을 옮기니 저 멀리 푸르스름한 형체가 보인다.
수적 놈들이 입고 있던 푸른 무복이 분명했다.
‘수적 놈들이 아무리 세다고 해도! 이젠 나도 지지 않는다! 얼마든지 와라!’
조걸이 자신만만한 얼굴로 검을 부여잡았다.
그런데…….
‘응?’
푸르스름한 형체 뒤에 또 하나의 형체가 나타난다.
‘둘!’
그 정도야!
‘셋?’
조금 부담되지만 그래도 이 정도는…….
‘넷? 다섯? 여섯? 열? 스물…….’
엄마야!
부그르르르르!
기겁을 한 조걸의 입과 코에서 기포가 솟구쳤다.
‘뭐가 이렇게 많아?’
아무리 그가 물속에서 검을 휘두르는 법을 터득했다지만, 저만한 수적들을 홀로 상대하는 것은 물 밖에서도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저들은 수공을 전문적으로 익혀 물 밖에서보다 물 안에서 더 강하지 않은가?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직감한 조걸이 재빨리 수면 위로 솟구치려 했지만, 수적들이 헤엄쳐 오는 속도는 그가 예상한 것보다 배는 더 빨랐다.
부글부글한 기포를 잔상처럼 남기며 날아든 수적들이 조걸의 전신으로 작살을 찔러 댔다.
쇄애애액!
푸른 기운이 어린 작살이 더없이 섬뜩한 기세로 날아든다.
물속에서도 물을 가르며 작살이 날아드는 소리가 선명하게 들릴 정도였다.
“큭!”
조걸이 반사적으로 검을 휘둘렀다.
퉁! 투웅!
작살이 검에 밀려 뒤로 튕겨 나간다. 평소와 같은 검초. 하지만 물속이다 보니 평소보다 미세하게 느릴 수밖에 없었다.
서걱!
그 미세한 속도 차이 때문에 미처 쳐 내지 못한 작살 하나가 조걸의 어깨를 스치고 지나갔다.
겨우 스친 정도에 불과했지만, 내력을 잔뜩 실은 작살은 그의 어깨에 긴 자상을 남겼다.
‘아악! 빌어먹을!’
현영의 수련이 아니었다면 작살이 스친 게 아니라 벌써 몇 군데에 구멍이 뚫리고도 남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 수련의 성과가 있음에도 물속에서 수적들을 상대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오냐 이 새끼들아! 내가 화산의 조걸이다!’
조걸이 눈에 불을 켜고는 검을 고쳐 쥐었다.
“으핫!”
하지만 그 결의는 얼굴 바로 옆을 스치고 지나간 작살에 금세 눈 녹듯 사라졌다.
‘주, 죽는다.’
이놈들은 너무 능수능란하다.
공격이야 그렇다 치고, 이동속도가 그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그는 조금 빠른 사람에 불과했지만, 이놈들은 마치 인어 같다.
물속에서의 움직임이 물 밖에서의 움직임보다 더 쾌속한 것 같았다.
게다가 조걸의 검은 화산에서도 가장 빠르고 날렵한 검.
속도가 느려지면 가장 타격이 큰 검이다.
다시 말하자면 화산의 제자 중에서 물속에서 싸우는 게 가장 불리한 이가 조걸이라는 의미였다.
지금도 그렇다.
원래 같으면 십여 개의 잔영을 만들어 내며 독사처럼 적에게 파고들었어야 할 그의 검이 겨우 다섯 개의 잔영밖에 만들어 내지 못했다.
날아드는 속도도 평소의 반도 되지 않는다.
‘빌어먹을!’
이럴 줄 알았으면 수련할 때 요령 피우지 말고 최선을 다하는 거였는데!
그 순간에도 수적이 휘두른 커다란 새 발톱 모양의 조(爪)가 조걸의 얼굴을 긁으려 들었다.
조걸이 필사적으로 몸을 뒤로 빼 조를 피하는 순간, 어느새 등 뒤로 돌아간 수적이 득의양양한 미소와 함께 조걸의 등을 찔러 온다.
‘이건 못 피…….’
조걸이 이를 악물며 몸을 뒤틀었다.
피륙의 상처는 감수하더라도 급소만은 피하겠다는 심산이었다.
하나 그때!
“끄르르륵!”
작살을 찔러 들어오던 수적의 입에서 공기 방울이 보글보글 솟아오르더니, 붉은 피가 물속에 푼 먹물처럼 번져 나갔다.
‘응?’
등을 부여잡고 물 위로 떠오르는 수적의 뒤로 너무도 반가운 얼굴이 보였다.
“사수우우우……. 꾸르르륵!”
물속인 것도 잊은 채 소리를 내지르던 조걸이 목 안으로 밀고 들어오는 물을 한 바가지 들이마시고 목을 부여잡는다.
그 모습을 본 백천이 물속에서도 확연히 보이도록 고개를 내저었다.
그리고는 섬전 같은 속도로 앞으로 달려와 조걸의 옆을 스쳐 지나갔다.
‘달린다고?’
조걸이 깜짝 놀라 그런 백천을 바라보았다.
내력의 운용이 얼마나 능수능란하면 이 물살 속에서 마치 땅에 서 있는 것과 같은 움직임을 보일 수 있단 말인가?
그를 스치고 간 백천이 앞쪽으로 크게 검을 휘둘렀다.
강맹한 내력이 잔뜩 실린 검이 물을 베어 내자 커다란 와류가 생겨나며 빠르게 이동하던 수적들을 순식간에 휩쓸어 버린다.
“큭!”
“으읍!”
수적들이 순간 당황한 듯, 와류에 밀려났다. 그와 동시에 백천이 조걸의 어깨를 움켜잡고는 위로 솟구쳐 올랐다.
“푸아아아앗!”
단숨에 수면까지 솟아오른 백천이 물 위를 박차며 상선 위로 뛰어올랐다.
터엉!
갑판에 내팽개쳐진 조걸이 갑판 바닥을 부여잡고 헛구역질을 해 댔다.
“웨엑! 우웨에엑! 아오……. 죽는 줄 알았네.”
그 모습을 본 화산의 제자들이 일제히 고개를 내젓는다.
“저걸 살려 오시네.”
“사숙도 참 착하단 말이야. 죽여도 시원치 않을 텐데.”
“화산을 위해서도 그게 좋지 않을까요?”
조걸이 고개를 번쩍 들었다.
“사형! 물속에서 저 새끼들을 상대하는 건 무립니다! 제가 몸을 던져 알아 왔습니다.”
“그래……. 세 살짜리 애도 알 만한 일을 굳이 확인해 봐야 아는구나. 참 너답고 좋네.”
“…….”
윤종이 한숨을 푹 내쉬고는 앞쪽을 바라보았다. 사슬로 그들의 배를 꿰뚫은 용선이 빠른 속도로 배를 끌고 가고 있었다.
“사숙. 어떻게 합니까?”
“음…….”
백천이 선수에서 아래를 내려다봤다.
배 밑창을 뚫고 들어간 작살이 그의 눈에 선명하게 들어왔다.
‘뽑는 건 무리겠지.’
배에 대해서는 문외한인 그도 알 수 있었다.
저 작살을 뽑아내면 물이 들어찬다. 그럼 순식간에 배가 가라앉을 것이다.
수적들이 이리 깔려 있는 물속으로 가라앉는다면 사는 건 포기해야 했다.
“우선은 지켜볼 수밖에 없겠구나. 일단은 땅에 발이 닿아야 뭐라도 해 볼 수 있다.”
“……하지만 사형.”
백상이 그건 좋은 생각이 아니라는 듯 우려 어린 얼굴로 말했다.
“지금 이 배를 가라앉히면 저들이 훨씬 유리해집니다. 그럼에도 저희를 끌고 가는 건, 지금 가는 곳이 저들에게 이곳보다 더 유리한 곳이기 때문 아니겠습니까?”
“……그렇겠지.”
“그럴 바엔 차라리…….”
백상이 말을 더 이어 가지 못했다.
그 역시 딱히 대처법이 생각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저항을 한다면 결국 배가 가라앉을 테고, 그럼 그들은 양민들을 보호하며 물속에서 수적들과 싸워야 한다.
‘이것도 최악이긴 마찬가지다.’
방도가 없다.
백천 역시 같은 생각을 했는지, 굳은 얼굴로 사제들을 돌아본다.
“아무래도 대책을 세워야겠다. 백상! 소소!”
“네!”
“우리가 엄호해 주마. 지금 바로 배에서 내려 강가로 가라. 가서 개방에 알리고 주변에서 지원군을…….”
“싫어요!”
당소소가 버럭 소리를 내질렀다.
“소소야.”
“죽으면 죽었지! 그렇게는 못 해요!”
백천이 미간을 좁히자.
“지원군을 불러올 상황이 아니잖아요! 저희가 위험할까 봐 미리 보내려는 거죠?”
“소소야. 지원군을…….”
“절대로 안 해요! 제가 이럴까 봐 사형들만 자하신공 익히는 게 무서웠던 거예요. 한 번은 쉽죠! 그런데 그 한 번 물러나게 되면 다음부터 사숙은 저부터 뒤로 빼려고 할 거예요!”
“…….”
“싫어요. 절대 싫어요! 지원군은 절대 제때 못 와요! 그럼 저 혼자 살아서 사형들이 죽은 걸 볼 수도 있는 거잖아요!”
“소소야…….”
“그럴 바에는 혀 깨물고 죽는 게 나아요! 나중에 화산에 가서 매화동에 가두셔도 괜찮아요! 지금 그 명령은 절대 안 들을 거예요.”
백천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나는…….”
“절대 방해되지 않겠습니다.”
이번에는 백상이 굳은 얼굴로 말했다.
“동료를 두고 물러나는 화산의 제자는 없습니다. 멍청하고 어리석은 짓일지도 모르겠지만, 똑똑하고 이성적인 건 돈 계산을 할 때면 충분합니다.”
“…….”
백천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이 멍청한 놈들 같으니.”
“우린 원래 멍청해요.”
“사실 화산에 똑똑한 사람은 없죠. 똑똑하면 벌써 도망갔지.”
“…….”
그거 맞는 말이네.
“오냐. 알겠다.”
백천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몸을 획 돌렸다.
그의 눈에 웅장하기 짝이 없는 용선이 들어온다.
‘뭐가 옳은지 모르겠다.’
최선의 대처라는 건 너무도 힘든 일이다.
누군가가 이끌어 나갈 때 옆에서 지켜보며 지적하는 건 쉬운 일이지만, 막상 이끌어 나가는 입장이 되니 생각해야 할 일이 너무도 많았다.
‘놈은 이런 걸 일상적으로 해 왔다는 건가?’
어쩌면 청명에게 배워야 하는 건 무공만이 아닌지도 모른다.
지금 그들의 앞에 청명의 등이 있었다면 그의 뒤에 있는 사제들의 표정은 분명 지금과 달랐을 것이다.
‘놈은 여기 없어. 내가 해야 한다.’
백천이 입술을 깨물었다.
그 어떤 상황이 오더라도 이들을 반드시 살려 화산으로 돌아가야 한다.
백천이 굳은 다짐을 하던 바로 그 순간이었다.
“사숙! 저기!”
“음?”
“저긴 것 같습니다!”
백천이 윤종의 손짓을 따라 시선을 돌리자, 강 옆으로 늘어선 깎아지른 듯한 절벽들이 보였다.
천혜의 요새.
그 말이 더없이 어울리는 지형, 그 한중간이 오목하게 안으로 들어가 있었다.
“……이런 곳에.”
백천이 이를 악물었다.
이곳은 말 그대로 하늘이 내린 요새였다.
등 뒤로는 까마득한 절벽이 솟아 있고, 앞으로는 더없이 너른 강이 자리했다.
좌우로는 절벽 때문에 이동할 수 없으니, 저곳을 밟기 위해서는 강을 건너거나 절벽을 내려오는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움푹 패인 공간 안에 사람이 거주할 수 있는 전각들과 배를 댈 수 있는 선착장이 보인다.
“……수채구나.”
그 모습을 눈으로 확인하고 나니, 수적들이 왜 그들을 여기까지 끌고 왔는지 알 것 같았다.
저곳은 커다란 독이다.
달아날 수 없는 독.
그리고 그들은 이제 그 독 안에 든 쥐나 다름없었다.
백천이 저도 모르게 주먹을 움켜쥐었다.
어쩌면.
지금 그는 지금까지의 강호행 중 가장 최악의 상황을 맞이한 것인지도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