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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귀환-757화 (755/1,567)

757화. 죽으면 죽었지! (2)

까아아앙!

“커억!”

가슴을 찔린 수적이 단숨에 뒤로 튕겨 나가 갑판 위를 굴렀다. 하지만 깔끔하게 수적 하나를 처리했음에도 백천의 얼굴은 그리 밝지 못했다.

“조심해라! 옷 안에 쇄자갑(鎖子甲: 사슬갑옷)을 껴입고 있다!”

“예!”

우렁찬 대답이 돌아왔다.

‘쇄자갑이라.’

수적들이니만큼 물속에서 자맥질할 일이 많을 것이다. 몸에 쇄자갑을 걸치면 그만큼 자맥질하기 어려워지는 것이 당연지사. 그럼에도 저걸 걸치고 있다는 건, 이들의 수공(水攻)이 그만큼 뛰어나다는 의미일 것이다.

파아아앗!

다른 생각 할 틈을 주지 않겠다는 듯, 흉흉한 기운을 품은 작살이 백천의 얼굴을 노리고 날아들었다. 생각 이상으로 쾌속하고 날카로운 공격이었다.

카앙!

작살을 쳐 냄과 동시에 머리 위에서 갈고리를 단 사슬이 대여섯 개 동시에 날아들었다. 금방이라도 백천의 몸을 꿰고 감아 버릴 듯한 기세였다.

“하압!”

백천의 검이 순간적으로 빛살처럼 뻗어졌다.

십여 줄기의 붉은 검기가 동시에 발출되며 날아들던 사슬들을 정확하게 쳐서 날려 버렸다.

“이노오오옴!”

서걱!

백천의 검이 달려들던 수적의 가슴을 깊게 갈랐다. 상대가 쇄자갑을 입고 있다는 것을 알았으니 갑옷째 갈라 버리면 그만이다.

“끄륵…….”

가슴이 베인 수적은 덜덜 경련하다 그 자리에 고꾸라졌다.

촤악!

검을 휘둘러 피를 털어 낸 백천은 쓰러진 수적 뒤로 펼쳐진 광경을 바라보았다.

푸른 무복을 입은 수적들이 아직도 배 위로 연이어 뛰어오르고 있었다. 수적들이 타고 온 쾌속선이 그들이 탄 배보다 훨씬 더 큰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지금 들이치는 수를 보고 있으니, 대체 저 배에 어떻게 이 많은 수적들이 타고 있었는지 의문이 들 정도였다.

‘이러니 수적들을 상대하려 하지 않는 거지.’

확실히 부담스러운 상대임에는 분명했다.

하지만…….

“죽어라아아아아앗!”

파아아아앗!

틈을 노리고 달려드는 여럿의 공격에, 백천은 순식간에 검을 전방으로 십여 번 내질렀다.

“아아악!”

“아악!”

달려들던 수적은 물론, 거리를 두고 위협하던 이들까지 모조리 그 검세에 휩쓸리며 피를 뿌리고 나가떨어졌다.

‘이쪽도 만만하지 않다!’

이제 와 새삼 수적들에게 겁을 먹기에는 그들이 겪어 온 일들이 너무 많았다. 그도 그의 사제들도, 하나같이 수라장을 겪고 여기까지 오지 않았는가?

“단숨에 몰아쳐라!”

“예, 사형!”

“예, 사숙!”

모두 고함을 내지르며 앞으로 달려 나가 수적들을 맹렬히 몰아붙이기 시작했다.

카강!

날아드는 조(爪)를 쳐 내는 윤종의 얼굴은 침착하기 그지없었다.

‘흠.’

솔직히 생각보다 만만치는 않았다. 정확히는 상대하기가 껄끄러웠다.

우선 그들이 사용하는 병기가 일반적이지 않다. 중원에서 주로 사용하는 검이나 도, 창 같은 병기는 거의 없었다. 그렇다고 권장지각을 주로 쓰는 권호(拳豪)들도 아니다.

작살의 형태를 한 아미자(峨嵋刺)와 삼지창, 그리고 새의 발톱을 닮은 조(爪)가 대부분이었고, 거기에 사슬 끝에 갈고리나 섬뜩하게 벼린 낫을 단 사슬낫들까지 심심찮게 날아들었다.

한 번도 상대해 본 적 없는 병기들이 괴이막측한 궤도를 그리며 날아드니 웬만큼 강호 경험이 있는 이라고 해도 당황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카앙!

윤종의 검이 또 한 번 군더더기 없이 휘둘러졌다.

세 개의 조가 동시에 날아들고 뒤쪽에선 아미자가 찌르고 들어왔다. 머리 위에선 사슬낫이 떨어지고, 갈고리 사슬이 발목을 꿰뚫을 기세로 낮게 날아왔다.

실로 기괴하기 짝이 없는 합공이었다.

하지만 윤종의 두 눈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중심!’

카앙!

윤종이 차분하게 뒤로 한 걸음을 물러섰다. 정확하게 정수리를 노리던 사슬낫이 얼굴 바로 앞을 스쳐 지나갔고, 발목을 노리던 갈고리는 허무하게 허공을 가른 뒤 갑판을 긁었다.

깔끔하게 움직인 검이 날아들던 조와 아미자를 정확하게 후려쳐 뒤로 튕겨 냈다.

파앗!

찌르기가 연달아 이어졌다.

“아악!”

가슴 한가운데가 꿰뚫린 수적이 비명을 내지르며 그 자리에서 무너졌다.

수적의 가슴에서 검을 뽑은 윤종은 자연스레 다시 중검세를 취했다. 조금 전보다 조금 더 낮아진 자세였다. 호수처럼 고요한 기세에, 수적들은 순간 움찔하며 차마 섣불리 달려들지 못했다.

‘변칙은 변칙일 뿐.’

휘둘리지 않고, 현혹되지 않으면 다를 것은 아무것도 없다. 결국 어떠한 공격이든 내 몸에 닿아야 의미를 지닌다. 차분하고 착실하게 막아 낸다면 기회는 반드시 온다.

아름드리 거목처럼 단단하게 선 윤종이 나지막이 말했다.

“와라.”

“……이익!”

수적들이 이를 악물었다.

“이 어린놈이 어디서!”

“죽여!”

수적들이 살벌한 기세로 다시 한번 달려들었다. 윤종의 검에는 조금의 흔들림도 없었다. 마치 태산처럼 굳건하고 또 굳건했다.

“하핫!”

검이 바람처럼 허공을 갈랐다.

지나치게 날렵하고 경쾌하여 일견 경박스럽기까지 한 쾌검(快劍).

하지만 그 가벼운 검초 속에 분명히 정도(正道)가 담겨 있었다.

“이 개 같은 놈이!”

선두에 선 수적이 악을 쓰며 손에 쥔 삼지조(爪)를 휘둘렀다. 하지만 그 조가 채 휘둘러지기도 전에 검이 세 날의 중심을 정확히 찔렀다.

카강!

조가 뒤로 휙 밀려났다.

“이익!”

이를 악문 수적이 팔을 잠깐 물리고 다시 조를 휘두르려는 순간, 검이 다시 한번 같은 곳을 찌르고 들어왔다.

카앙!

순간 조를 잡은 쪽 팔이 뒤로 확 젖혀지며 어깨가 뒤쪽으로 뒤틀렸다.

“뭣!”

이어지는 쾌검.

푸욱! 푸욱! 푸욱!

가슴을 세 번 연거푸 찔린 수적이 비명을 내지르며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그가 물러나는 속도보다 화산의 검수가 따라붙는 속도가 더 빨랐다.

“으라차!”

그대로 날아든 화산 검수의 신형이 수적의 가슴을 걷어찼다.

콰아앙!

쏘아진 포탄처럼 튕겨 나간 수적은 뒤쪽에서 대기하던 제 동료들을 그대로 들이받아 버렸다.

순간적으로 얽혀 한 덩어리가 된 수적들이 엉망으로 나뒹굴었다. 들고 있던 병기들이 갈 곳을 모르고 저들의 몸을 서로 찔러 댔다.

“아아아악!”

“내 다리! 내 다리이이이!”

“이런 개 같은 새끼가……!”

가볍게 바닥에 내려선 화산의 검수, 조걸이 악랄한 얼굴로 씩 웃었다.

“거 사이들 좋네. 부럽다. 우리는 맨날 싸우는…….”

“누가 싸우는 와중에 입 열래!”

“…….”

찔끔한 조걸이 검을 고쳐 잡았다.

“와라! 내가 화산의 조걸이다!”

“……잘났다.”

하여튼 싸우는 와중에도 한시도 틈을 안 주는 윤종이었다.

“이, 이 빌어먹을.”

대경채의 수적들을 이끌고 온 방충(房忠)이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지금 배 위로 오른 수적의 수만 해도 물경 백을 훌쩍 넘는다. 하지만, 그 많은 수적들이 고작 열 명도 되지 않는 저 어린놈들을 감당하지 못해 뒤로 밀려나고 있었다.

‘뭔 놈들이!’

검의 기세가 장난이 아니다.

뜯어보면 같은 문파 출신들이라고 믿기지 않을 만큼 기질이 다른 검을 보여 주고 있지만, 공통점이 있다면 어이없을 정도로 강하다는 점이다.

방충이 이를 악물었다.

하지만 그들 역시 이 장강을 지배하는 장강수로채의 일원. 이 장강 위에서 순순히 승기를 내줄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뭣들 하느냐! 쏴라! 당장 쏴라!”

그 말과 동시에 난간 쪽에 선 수적들이 일제히 활을 들어 올리고 활시위를 먹였다.

고오오오!

내력이 잔뜩 실리며 활이 부러질 듯 휘어졌다.

투우우웅!

투웅! 투웅!

시위가 일제히 놓아지며 화살이 가공할 속도로 화산의 제자들을 향해 비처럼 날아들었다.

카강!

카앙!

화산의 제자들이 분분히 뒤로 물러나며 날아드는 화살을 쳐 냈다. 상처를 입은 이는 없었지만, 수적들을 몰아붙이던 기세는 한풀 꺾였다.

“쏴라! 벌집을 만들어 버려!”

이미 이런 식으로 싸운 경험이 꽤 있는지, 앞쪽에 선 수적들은 뒤를 돌아보지 않고 달려들었다. 등 뒤에서 화살이 날아들고 있는데도 결코 자신들의 등에 꽂힐 일은 없단 확신이 있는 듯했다.

그에 호응하는 듯 궁수들이 다시 활의 시위를 먹일 때였다.

쇄애애애애액!

푸욱! 푸욱!

“아아아아아아악!”

난간 위에 서서 시위를 먹이던 궁수들 몇몇이 비명을 내지르며 아래로 추락했다.

풍덩! 풍덩!

사람이 물에 빠지는 소리가 연이어 들려왔다.

“뭐, 뭐가……?”

푸욱!

당황해 주위를 둘러보던 수적이 끅 하고 신음을 흘리며 가슴을 움켜잡았다. 헤집는 듯한 날카로운 통증 탓이었다. 시선을 내려 보니 가슴 한중간에 어린아이 장난감 같은 소도(小刀)가 박혀 있었다.

순간 다리에 힘이 풀린 수적이 휘청대다 난간 뒤로 넘어갔다.

“이것들이 누구 앞에서 화살질이야!”

소도의 주인, 당소소가 두 눈에서 불을 뿜었다.

“쟤들은 제가 알아서 할 테니 걱정들 하지 마시고 싸우세요!”

“오냐!”

“역시 소소야!”

그 와중에 달려드는 수적 하나를 순식간에 베어 넘긴 그녀는 검을 갑판에 꽂고 양 소매에 손을 밀어 넣었다.

순간적으로 위로 뛰어오른 그녀의 양손에서 날카로운 비침들이 비처럼 뿜어져 나왔다.

“아아아악!”

“아악!”

난간 위에 있다가 너무도 잘 보이는 표적이 되어 버린 수적들이 비침에 고슴도치가 되어 분분히 배 아래로 추락했다.

“뭐, 뭐야!”

“검수 놈들이 왜 갑자기 암기를 던져!”

당소소의 출신을 알 도리 없는 수적들은 당황을 숨기지 못했다.

“뒤쪽에 있는 여자 먼저 노려라! 저 괴상한 차림의 여자를 먼저 노려!”

“뭐, 괴상? 이 새끼들이?”

당소소가 두 눈에서 불을 뿜은 바로 그 순간이었다.

파아앗!

무언가가 위쪽으로 빠르게 솟아오르더니 수적들이 밀집해 있는 사이로 유려하게 떨어져 내렸다.

“뭣!”

화들짝 놀란 수적들이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볼 수 있는 건 무표정한 여검수와 수십 개의 검영뿐이었다.

서걱! 서걱! 서석!

무정한 검이 순식간에 수적들의 급소를 베어 냈다.

“끄륵.”

목을 움켜잡은 이들이 썩은 짚단처럼 옆으로 맥없이 쓰러졌다.

탁.

바닥에 내려선 유이설이 학처럼 몸을 쭉 폈다.

“이게 여기가 어디라…….”

서걱!

운 좋게 살아남아 고함을 내지르려던 수적의 가슴이 유이설의 검에 꿰뚫렸다. 실로 섬전 같은 빠르기였다.

“끄윽…….”

탁.

검을 회수한 그녀는 가볍게 바닥을 박차더니 그 자리에서 팽그르르 회전했다. 동시에 발출된 검기들이 그녀를 둘러싸고 주춤대던 수적들을 일시에 휩쓸어 버렸다.

“아아아아아악!”

“으아악!”

빽빽하게 모여 있던 수적들이 우수수 쓰러지면서 갑판 위에 커다란 공간이 생겨났다. 마치 잘 자란 벼로 빼곡한 논 위에서 크게 낫을 휘두른 것처럼 말이다.

수적들은 당황을 숨기지 못하고 우왕좌왕하기 시작했다.

“뭐, 뭔 놈들이…….”

“이 새끼들…….”

강하다.

분전한다거나 실력이 뛰어나단 느낌 정도가 아니었다. 이들은 아예 격이 다른 고수였다. 그 사실을 실감한 순간 들끓던 용기는 가라앉고 두려움이 전신을 좀먹었다.

바로 그때였다.

쿠우우우웅.

커다란 굉음과 함께 배가 기우뚱 기울기 시작했다.

“음?”

백천이 흠칫하며 고개를 돌렸다.

방충이 어느새 난간 위에 올라서 있었다.

“훕!”

그가 제자리에서 살짝 뛰어오르더니 난간을 재차 강하게 내밟았다.

우지지직!

난간이 부러져 나가면서 배가 다시 크게 기우뚱했다.

“어어어엇!”

“허엇!”

배가 좌우로 크게 요동치며 모여 있던 승객들이 균형을 잡지 못하고 이리저리 넘어졌다.

방충은 그 광경을 보며 득의양양하게 웃었다.

“흐흐흐! 이 애송이 놈들. 배 위에서 싸운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내가 똑똑히 알려 주마. 뭣들 하느냐! 내가 배를 흔들 테니 본때를 보여 줘라!”

“예!”

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수적 몇이 백천을 향해 달려들었다. 백천이 조금 전처럼 침착하게 막으려는 순간, 배가 또다시 크게 요동쳤다. 그에 백천도 순간 균형을 잃고 휘청거렸다.

“죽어라아아아앗!”

그 틈을 노린 아미자가 섬뜩한 기운을 품고 백천의 목을 향해 일직선으로 날아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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