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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귀환-754화 (752/1,567)

754화. 제자는 괜찮습니다! (4)

“……예?”

등겸(鄧謙)이 커다란 눈을 끔뻑였다.

유령문의 이대제자인 그는 무한으로 특표를 배송하고 복귀하던 길에 들른 산채에서 당장 구강으로 가라는 상부의 명을 전해 듣고 이곳에 막 도착한 참이었다.

그런데 지금 그의 앞에 있는 양반들은 영 뜻 모를 이야기를 늘어놓고 있었다.

“소문을 내시면 된다니까요.”

“소문이요?”

“예. 표사님이 특급 표물을 가지고 배를 탄다는 소문을 내시면 됩니다.”

“……그걸 왜 굳이?”

물론 특급 표물과 은하표행에 대해 알리는 것은 특표들의 임무 중 하나다. 그렇기에 등겸도 이렇게 요란한 복장을 입고 다니지 않는가.

어떤 사업이든 홍보가 반이다.

아무리 특급표행이 유용하다 해도 그런 것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 자체를 사람들이 모른다면 누가 특표를 찾겠는가?

그렇기에 은하표행도 유령문도 특표의 존재를 알리는 것에 힘써 왔다.

‘하지만 이건 다른 문제가 아닌가?’

딱히 표행을 의뢰할 사람도 많지 않아 보이는 구강에 왜 그런 소문을 흘린단 말인가? 괜히 위험만 더할 뿐이다.

“너무 의식적으로 소문내는 티는 내지 않으면서, 또 잘 퍼지게! 그런 자연스러움이 중요합니다.”

말을 잃은 등겸은 눈앞에 서 있는 허여멀건……. 아니, 그냥 솔직히 생전 다른 데선 본 적 없을 정도로 잘생긴 청년이 빙그레 웃으며 강조하는 걸 멍하니 보기만 했다.

그리고 세상의 진리 하나를 실감했다.

‘하늘은 모두 주지 않으시는구나.’

얼굴을 준 대신에 머리를 좀 앗아 가신 것 같은데…….

“이해하셨습니까?”

“……예. 그 말씀은 이해했습니다만…… 굳이 이런 일을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렇잖아도 장강에 수적들이 들끓어서 표국에 난리가 났는데, 이러면 괜히 더 끌어들이는 것 아닙니까?”

“네, 바로 그겁니다.”

“예?”

“저희가 원하는 게 바로 그겁니다.”

환하게 웃는 남자, 백천을 보며 등겸도 마주 웃었다.

‘확실히 제정신이 아닌데.’

그러고 보니 화산 사람들은 강한 대신에 하나같이 제정신이 아니란 말을 어디서 들었던 것도 같은데…….

생각해 보면 이 양반, 전에 유령문을 방문했을 때도 장난 아니었고…….

“그럼 그 뒤에는요?”

“배를 타야죠.”

“……배를요?”

“예.”

“특표가 배에 탄다는 소문을 잔뜩 내서 수적들을 끌어들이고 진짜로 배를 탄다고요?”

“네, 그렇습니다. 하지만 걱정하실 건 없습니다. 저희도 같이 탈 테니까요. 특표께서는 손가락 하나 다치실 일 없을 겁니다. 저희를 믿어 주십시오.”

등겸은 대답 대신 시선을 좌에서 우로 천천히 움직였다.

화산 제자들이 모두 자신만만한 표정을 짓고 있는 걸 보자니 절로 미소가 피어올랐다.

“……이 근방에 특표가 저밖에 없습니까?”

“…….”

“괜찮으시면 다른 사람을 부르시는 게…….”

“허허허허. 농담도.”

“아니, 농담이 아니고…….”

“한시가 급합니다. 자, 자. 그럼 수고해 주십시오!”

“야, 이 양반들아! 목숨이 한 열 개쯤 되냐?!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결국 고함을 지르며 역정을 내는 등겸을 조걸과 윤종이 질질 끌고 나갔다.

그 모습을 보던 백천이 한숨을 쉬며 의문을 표했다.

“왜 이해를 못 하시지.”

“사숙.”

“응?”

당소소가 생글생글 웃으며 친절히 조언했다.

“화산에 돌아가면 한동안 청명 사형이랑 놀지 마세요.”

“…….”

“자주 보면 닮는다더니, 그게 정말 맞는 말인가 봐요.”

저거 욕인 것 같은데?

그치? 맞지?

* * *

붉어진 얼굴로 부들부들 떨던 당소소가 황급히 입을 틀어막았다.

“끅……. 끄윽…….”

웃으면 안 된다. 나름 필사적으로 준비한 이들의 노력을 폄훼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모, 못 참겠어!’

이건 정말 해도 해도 너무하지 않은가.

“아니, 이게 뭐냐고요!”

결국 참다 못해 외치자 다른 제자들이 서로를 돌아보았다. 그러더니 서로의 꼴이 어이없고 우스운지 헛웃음을 흘렸다.

조걸이 윤종을 보며 말했다.

“사형.”

“응?”

“……뭐, 어디 농사지으러 가십니까?”

어디서 적당히 구한 무명옷을 대충 걸친 윤종은 금방이라도 밭을 매러 갈 모양새였다.

“바지는 왜 둘둘 걷어붙인 겁니까?”

“……그냥 지나가는 사람 하나 보고 따라한 건데?”

“시전에 물건 팔러 나온 나무꾼이었나 보죠. 이렇게 감이 없으셔서야…….”

조걸이 안쓰럽다는 듯 혀를 차자 울컥한 윤종이 외쳤다.

“너는 인마!”

“제가 어때서요? 이게 요즘 항주에서 한창 유행한다는 비단옷입니다! 쯧쯧쯧. 제가 그래도 한때는 사천에서 먹어 주는…….”

“항주에 가 본 적은 있고?”

“…….”

색색의 꽃이 수놓인 비단옷을 걸치니 어디 돈 많은 집안의 자제가 아니라, 밤거리나 횡행하는 파락호처럼 보였다.

하지만 두 사람은 그나마 좀 나은 편이었다.

“사고…….”

당소소는 차마 유이설을 마주 보지 못하고 고개를 돌려 버렸다. 그래도 나름 돈이 있어 보이게 입고 오라는 말에 충실히 따랐는지, 옷감은 좋아 보였다. 상의는 노랗고, 바지는 파랗고, 피풍의는 빨개서 문제지.

보고만 있어도 눈이 돌아갈 것 같았다.

“사고, 이건…….”

유이설은 억울하단 눈으로 고개를 돌려 한 사람을 바라보며 말했다.

“나는 노력이라도 했어.”

그러자 모두의 시선이 한 사람에게 꽂혔다.

“어, 어쩌란 말입니까!”

시선을 한몸에 받은 그는 피맺힌 목소리로 울분을 토했다.

“다, 다른 옷을 입는다고 뭐가 되겠습니까! 애초에…….”

“대머린데.”

“그렇지, 대머리지.”

“젊은 대머리는 찾기 쉽지 않지.”

혜연의 두 눈에 눈물이 차올랐다.

아니, 막말로 중에게 돈 많아 보이게 변복하라는 게 말이나 되는 소리인가?

비단 옷을 입으면 비단옷 입은 대머리고, 가죽 모피를 입으면 모피를 입은 대머린데!

심지어 혜연은 계인까지 찍었다. 어떻게 변장을 해도 잘해 봐야 절을 뛰쳐나온 파계승이었다.

그러니 결국에는 소림의 황포가 아닌 평범한 회색 승복을 구해 입을 수밖에 없었다.

“탁발승도 있으니…… 괜찮지 않겠습니까?”

“뭐 어쩔 수 없죠.”

“스님은 이해합니다.”

다들 그런 혜연의 사정을 이해해 주었다. 당소소는 단호하게 딱 잘라 말했다.

“혜연 스님을 몰라도 다른 분들은 안 돼요! 다 다시 갈아입으세요.”

윤종의 얼굴에 난감하단 기색이 스쳤다.

“그런데 소소야. 나는 철들 때부터 화산의 도복 말고는 입어 본 적이 없다. 그래서 대체 뭘 입어야 할지…….”

“조걸 사형.”

“응?”

“가까운 상가에 가서 상인들이 입는 옷 몇 벌 돈 주고 사 오세요. 그냥 봇짐 하나씩 매고 상인인 척하면 되잖아요.”

“어……. 내가 그 생각을 못 했네. 나도 상인 집안 출신인데.”

“빨리 가세요.”

“넵!”

조걸과 윤종이 부리나케 달려 나가자 당소소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무학에 관련해서는 세상 누구보다 듬직한데, 평범한 일에만 관련되면 일반인보다 못하다.

그때였다.

“다들 준비했느냐?”

변복을 마친 백천이 문을 열고 들어섰다.

“…….”

“…….”

다들 대답도 못 하고 멍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백천이 조금 당황하여 물었다.

“왜? 뭐가 잘못되었느냐?”

“아니. 그…….”

당소소가 눈을 끔뻑이며 말을 골랐다.

의외로 백천은 그녀의 예상과는 달리 완벽하게 변복을 하고 왔다. 짙은 황토색 무명옷은 궂은일을 하는 사람이 입기에 적절해 보였고, 영웅건을 풀고 질끈 묶은 머리는 평범한 상인들에게서도 볼 수 있는 형태다.

그런데…….

“희한하네.”

“진짜 희한하지.”

“이게 이렇게까지 안 어울릴 수 있는 것도 재주네.”

옷과 사람이 영 따로 논다.

누가 봐도 있는 집 자식이 가출한답시고, 하인 옷을 뺏어 입고 밖으로 나온 모양새였다.

“진짜 세상 불공평하네…….”

억울한 듯 한숨짓는 백상을 제치고 나선 당소소가 고개를 저었다.

“사숙은 안 되겠어요. 상인은 포기합시다.”

“응?”

“어차피 이렇게 된 거, 거꾸로 가죠. 누가 봐도 장강에 유람 나온 귀한 집 자식으로 보이게 비단옷으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쫙 빼세요.”

“왜 그래야 하느냐?”

“……그 이유를 내 입으로 설명하긴 짜증 나니까 그냥 시키는 대로 하세요.”

“…….”

“오늘 낮에 배 타기로 되어 있으니까 다들 빨리 움직여야 해요! 아셨죠?”

“아, 알았다.”

“나는! 나는 왜 평가 안 해 주냐?”

백상의 말에 당소소가 피식 웃었다.

“사숙은 괜찮아요. 아무거나 입어도.”

“왜?”

“좋은 옷 입으면 귀공자 따라 나온 총관처럼 보일 거고, 험한 옷 입으면 머슴처럼 보일 테니까요. 그냥 백천 사숙 옆에 딱 붙어 있으세요.”

“…….”

삽시간에 영혼이 털리고 뼈와 살이 분리된 백상을 두고 당소소가 야무지게 손뼉을 짝 소리 나게 쳤다.

“뭐 해요? 빨리요! 어서 움직이세요.”

때마침 헐레벌떡 돌아온 조걸이 사 온 옷을 모두에게 나눠 주었다. 다들 주섬주섬 옷을 골라다 챙겨 입기 시작했다.

“끄응. 이게 뭐 하는 짓인지.”

“진짜 잘될까?”

“영 신뢰가 안 가서…….”

“이게 뭐 잘되겠어? 그냥 시키니까 하는 거지.”

여기저기서 쏟아지는 불만을 들으며 백천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청명아.’

내가 너를 이해하는 날이 오는구나.

솔직히 진짜 다 패 버리고 싶다…….

전부 다…….

* * *

“저기 있네.”

“탑시다.”

화산의 제자들이 배에 오르는 등겸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의외로 등겸은 제가 맡은 임무를 잘해 주었다. 덕분에 생각 이상으로 은하표행의 특표가 구강에 왔다는 이야기가 퍼진 상황이었다.

윤종과 조걸이 조용히 대화를 나누었다.

“눈치채지는 않겠지?”

“별문제 없을 겁니다. 그들이 이곳에 상주한다면 모를까, 수채 쪽에서 접할 수 있는 정보는 단편적인 것뿐일 테니까요.”

“으음. 그렇겠지?”

“사숙이 거기까지 고려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 새끼가?

듣고 있던 백천이 막 한 소리를 하려는 순간이었다.

“그럴 리가 있나.”

“소 뒷걸음질에 쥐 잡으셨겠지.”

“쥐도 운이 없어.”

콕콕.

위장이 아파 왔다.

그동안 저놈들과 같이 청명이 놈에 대한 불만을 털어놓을 때는 몰랐다.

이놈들이 이렇게 더럽게 불만만 많은 놈들이란 사실을 말이다.

‘다 죽었으면 좋겠다.’

진심으로……!

“이제 가시죠.”

“그래.”

백천이 앞장서서 걸음을 옮겼다. 그가 걸음을 뗄 때마다 화려한 비단 장포가 우아하게 휘날렸다.

“응?”

하지만 뒤에서 영 따라오는 소리들이 없어서 멈추고 돌아보았다.

“안 가?”

“먼저 가세요.”

“……왜?”

“사숙은 귀공자고 우리는 상인인데, 같이 가면 이상하잖습니까.”

“백상 사숙 데리고 먼저 타십시오.”

“…….”

백천이 살짝 떨떠름한 표정으로 물었다.

“같이 가기 쪽팔려서 그러는 건 아니지?”

돌아오는 건 깊은 침묵뿐이었다. 백천은 눈을 질끈 감고 몸을 돌렸다.

“가자, 백상아.”

“……예, 사형.”

부두에 정박된 커다란 배로 향하는 그의 얼굴에 살짝 긴장감이 어렸다.

‘딱히 상인들에게 큰 피해가 없었다는 건, 저들이 특표만을 노리고 일을 벌였다는 의미겠지. 내 생각이 맞다면 반드시 이번에도 올 것이다.’

물 위에서 수적들을 상대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건 부담스러운 일이지만…… 이대로 허송세월만 해선 죽도 밥도 안 된다.

‘녀석이었다면 어떻게 했을까?’

백천이 슬쩍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이럴 때마다 청명의 빈자리가 크게 느껴졌다. 지금까지는 백천이 생각할 틈도 없이 청명이 일을 벌였고, 그는 밀어줄지 말려야 할지만 결정하면 됐으니까.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잠시간 멈칫했던 백천은 이내 마음을 다잡고 고개를 저었다.

‘신중하되 망설이지 않는다.’

마음을 다잡은 백천이 배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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