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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귀환-751화 (749/1,567)

751화. 제자는 괜찮습니다! (1)

“으…….”

백매관에 모여든 청자 배들이 퀭한 눈으로 서로를 돌아보았다.

“……밥을 못 먹겠어.”

“소화불량이 너무 심합니다.”

“저는 지금 사흘째 악몽을 꿔서 잠을 제대로 못 자고 있습니다…….”

서로의 몰골을 돌아보던 그들은 일제히 한숨을 내쉬었다.

“대체…… 대체 왜 저러는 걸까요?”

“역시 미친 거 아닐까?”

“미치기야 원래 미쳐 있었잖습니까.”

“그건 그런데…….”

아니, 정확히는 미쳐서 문제인 게 아니라 미치지 않아서 문제다. 미치지 않아서 정말로 미친놈 같다.

“그래서 그 미친놈……. 아니, 그 정상적이신 분은 지금 뭘 하고 계신다더냐?”

“옥천원을 쓸고 닦고 있습니다.”

“옥천원을?”

“예. 그러니까…… 무릇 모든 문파의 근본은 조사전이니, 조사전을 제대로 돌보지 않는 문파는 선조를 제대로 공경하지 않는 문파라며 자신이 다시 한번 청결히 하겠다며…….”

양호(楊鎬)가 통탄하며 얼굴을 쥐어뜯듯이 감쌌다.

“아니, 왜 맞는 말을 하냐고……. 왜!”

잠깐 괴로워하던 그의 어깨가 다시 힘없이 축 처졌다. 옆에서 다시 증언이 쏟아졌다.

“소름 돋아 죽겠습니다. 제가 청소하는 걸 옆에서 좀 지켜봤는데, 혼자서 장문사형, 장문사형 어쩌고 하는데…….”

“장문사형? 백천 사숙을 말하는 건가? 아니, 장문사형이라는 호칭은 장문인과 같은 배분에 있는 사제들이 장문인을 지칭하는 호칭이잖아. 장로님들이 아니시면 그 호칭을 쓸 일이 없을 텐데?”

“그 속을 제가 어찌 알겠습니까? 정신이 아주 나간 것 같던데.”

“돌아 버리겠네. 진짜…….”

조사전을 광적으로 쓸고 닦으며 알 수 없는 말을 중얼중얼 늘어놓는 청명을 상상하니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그때, 슬쩍 주변의 눈치를 살핀 곽회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그런데 사형들, 사제들.”

“응?”

“침착하게 생각해 보면 그리 나쁜 일은 아닙니다. 보기에 괴이하고 머리로 받아들이기가 힘들어서 그렇지, 따지고 보면 청명이 놈이 착해진 게 아닙니까?”

“……그게 문제잖아.”

“아니. 문제는 맞는데…….”

곽회가 단호하게 말한다.

“적응만 하면 오히려 좋은 일 아니겠습니까? 사형들은 착한 청명이 놈이 좋으십니까? 아니면 미친 청명이 놈이 좋으십니까?”

“그걸 말이라고 하냐, 인마!”

벌컥 고함을 내지른 양호가 생각할 필요도 없다는 듯 말했다.

“미친 쪽이 낫지!”

“예?”

예상치 못한 반응에 곽회가 움찔하며 반문했다. 그런데 다른 이들도 양호의 말에 동의하는 듯 일제히 고개를 주억거렸다.

“청명이면 미친 쪽이 낫기는 하지.”

“적어도 그쪽은 익숙하기라도 하잖아.”

“맞아.”

곽회의 동공이 지진을 일으켰다.

아니, 그…….

듣고 보면 맞는 말 같기는 한데……. 어…….

“다 떠나서, 저 꼴을 계속 보고 있으면 당장 내가 속이 터져 죽을 거다.”

“제 말이요!”

“원시천존이시여. 왜 저희한테 이런 시련을 내리십니까.”

청자 배들이 절망 어린 얼굴로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도 좀 저러다 말겠지?”

“그게 벌써 며칠짼 줄 아십니까? 연기면 저렇게까지 못 합니다.”

“그럼 설마 계속 저런다고?”

“설마…….”

모두가 한차례 몸서리를 치고 일제히 한곳을 보았다. 청명이가 쓸고 닦는다는 옥천원이 있는 쪽이었다.

뽀드드득.

뽀드드드드득!

옥천원 한쪽에 마련되어 있는 옥황상제상에서 광채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얼마나 반질반질하게 닦았는지, 조금 전에 만들어 깔끔하게 기름을 먹인 새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뽀드드드득!

그 상제상의 얼굴을 청명이 깨끗한 면으로 닦아 냈다.

“음, 여기가 조금…….”

사각.

상제상에 살짝 튀어나온 부분을 살짝 힘주어 깔끔하게 다듬자 비율이 맞춰졌다. 청명은 해맑은 미소를 머금은 채 중얼거렸다.

“됐다.”

깔끔하다. 깔끔.

얼굴에 뿌듯함이 가득했다. 그는 새삼스러운 얼굴로 옥천원을 휘 둘러보았다.

옥천원. 평소에는 조사전으로 불리는 이곳은 화산의 역대 장문인들의 위패를 모셔 두고, 선조들의 넋을 기리는 장소였다.

“여기도 많이 달라졌네.”

그가 처음 화산에 들어왔을 때만 해도 옥천원에 남아 있는 것이 거의 없었다. 비싼 제기와 고풍스런 도가의 물품들은 물론이고, 화산이 모아 온 보물마저 모조리 팔아먹어서 위패들만 덩그러니 놓여 있지 않았던가?

하지만 화산이 재물을 모으고, 현영이 화산 내부를 정비하면서 옥천원 역시 과거의 모습을 어느 정도 되찾았다.

“뭐 백매화가 없는 게 여전히 좀 걸리기는 하지만…….”

자하신검과 함께 화산의 이대신물이었던 암향백매화는 아직 찾지 못했다. 은하상단과 개방을 통해 수소문을 해 봐도 종적이 묘연한 것이, 아무래도 수집벽이 있는 부잣집 창고에 박혀 있든가, 그 가치를 이해하지 못하는 이가 싸게 다시 팔아 버린 모양이다.

그래도 나름 신물이라 불렸던 물품을 되찾아 오지 못한 건 확실히 아쉬운 일이다. 하지만 딱히 중요한 일은 아니다. 신물보다 중요한 건 화산 그 자체니까.

청명은 조사들의 위패를 깨끗한 면으로 하나하나 닦기 시작했다.

“장문사형, 화산의 후예들이 참 많이 컸습니다. 보고 있으니 제가 다 뿌듯하네요. 이제는 다들 자립할 때가 된 것 같습니다. 사형과 제가 바라던…….”

- 개소리 집어치워! 이 새끼야! 대체 왜 이러는 거야!

“왜 소리를 지르고 그러세요. 저도 이제는 철 좀 들어야죠.”

- 헐…….

청명은 조심스러운 손길로 위패들을 하나하나 닦기 시작했다. 한참을 그러고 나서야 처음 청소할 때에 비해 비할 수 없이 깨끗해진 옥천원의 모습을 두 눈에 담았다.

“음, 좋아.”

만족스레 고개를 끄덕이고 무명천을 곱게 접어 정리했다.

“장문사형.”

그러다 문득 위패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생각해 보니 장문인의 말이 다 맞더라고요. 청진이 놈이 그랬었죠. 저는 화산에 뭘 남길 수 없는 사람이라고. 그건 제가 평범한 제자들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말이기도 했지만, 거꾸로 말하면 제 품 안에서는 제자들이 더 클 수 없다는 말이기도 하더라고요.”

청명이 있는 동안은 화산이 다른 문파의 등쌀에 시달릴 일은 없을 것이다. 과거의 화산이 그랬듯이.

하지만 청명이 사라진 뒤에는?

결국에는 남은 제자들끼리 화산을 이끌어 나가야 한다. 청명이 지금처럼 군다면 남은 화산의 제자들은 청명의 부재에 허덕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건 청명이 원하는 바가 아니다.

그가 사라진 후 화산이 처참하게 몰락하는 것을 이미 한번 겪어보지 않았는가? 청명이 원하는 것은 그가 함께하기에 강한 화산이 아니라, 그가 존재하지 않아도 강한 화산이다.

“애들도 지금은 좀 힘들겠지만, 결국은 자기들끼리 잘 해낼 수 있을 거예요. 조금 상처 입고 힘들 수는 있어도…… 그래야 내 소중함을 알……. 아니, 아니지. 그러면서 성장하는 거겠죠.”

- 너 본심 나온 것 같은데.

“에헤이. 뭘 또 꼬투리를 잡고 그러실까. 실숩니다, 실수.”

청명이 손을 휘휘 내저었다.

그리고 답지 않게 진지한 얼굴로 옥천원 밖으로 보이는 화산을 내다보았다.

“언젠가는 제가 조금씩 뒤로 물러나야 한다는 생각은 했어요. 그게 제 생각보다 조금 빨랐을 뿐이지. 이게 맞는 거겠죠. 현종 장문인도 그리 말하시고, 백천 사숙도 그렇게 말하는 걸 보면.”

물론 그렇다고 해서 청명이 정말 뒷방 늙은이로 물러나는 것은 아니다. 그동안 청명은 그 능력을 감안해도 화산의 모든 일에 과할 정도로 개입하고 있었다. 최근에는 개인 수련 시간도 일정 이상 희생해야 할 정도로 말이다.

이제 모든 것이 점점 제자리를 찾아가는 것뿐이다. 결국에는 과거의 화산이 그랬듯, 청명이 일일이 전면에 나서지 않아도 청명의 존재감만으로 화산이 힘을 받는 체제를 완성해 가야 한다.

“제자들을 좀 더 믿어 줘야죠. 그게 어른의 역할이니까요.”

청명의 표정이 조금 편안해졌다.

아장아장 걷던 자식이 뜀박질을 하며 품에서 멀어지는 기분이 조금 헛헛하긴 하지만, 그래도 이게 자연스러운 변화이자 순리이리라.

“그럼 다음에는 뭘 하지?”

청명은 면포를 담은 바구니를 들고 옥천원을 나섰다.

그리고 다음 목적지는 장문인의 처소 주변으로 정해 발을 옮겼다. 아니, 옮기려 했다.

“장문이이이이인!”

“엥?”

산문에서 커다란 목소리와 함께 한 사람이 어마어마한 속도로 쏟아지듯 달려왔다.

“응? 유령문주님?”

그게 도운찬임을 확인한 청명은 고개를 갸웃했다. 저 양반 아직 화음에 있었던가? 왜 복귀를 안 하고?

“장문인! 장문인 계십니까!”

그 커다란 고함에 장문인 처소 문이 벌컥 열렸다. 현종이 놀란 얼굴로 밖으로 뛰쳐나와 그를 맞이했다.

“문주님. 어인 일이십니까?”

“바, 발견했습니다!”

“예?”

도운찬이 희게 질린 얼굴로 소리쳤다.

“제, 제자! 표행을 나갔다가 실종되었던 제자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현종의 두 눈이 커다래졌다.

“사, 살아 있습니까?”

“예! 다행히 목숨은 건진 것으로 보입니다. 그 아이가 어찌어찌 서찰을 보내왔는데…….”

“예.”

“수적이 맞습니다. 습격을 당해 장강에 빠졌다가 구사일생으로 살아났다고 합니다.”

어느새 몰려든 장로들까지 포함하여 모두의 얼굴이 굳어졌다.

“으음. 좋지 않은 소식이군요. 하지만 그건 이미 예상한 바가 아닙니까?”

“중요한 건 그다음입니다.”

“예?”

도운찬이 잠깐 숨을 고르며 마른침을 삼켰다.

“그를 공격했던 수적이 화산의 귀에 이 소식이 들어가는 걸 막기 위해서 배에 타고 있던 이들을 모조리 납치해 갔다고 합니다.”

“……납치? 지금 납치라고 했소?”

“예. 장문인! 틀림없습니다.”

“……이게 무슨……!”

현종의 낯이 싸늘해졌다.

“죄 없는 양민들을 납치해서 대체 뭘 어쩌겠다는 거요?”

“듣기로는 수적들이 양민들을 납치해 외국에 노예로 팔아넘기기도 한다고…….”

“이런 미친놈들이 있는가!”

어지간해선 험한 말을 하지 않는 현종의 입에서 욕설이 터져 나왔다.

같은 강호인에게 악행을 저지르는 것과 양민들을 건드리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였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이 화산 때문에 벌어졌다는 소문이 퍼지기라도 한다면, 세상 사람들이 화산을 어찌 보겠는가?’

물론 화산은 죄가 없다. 사업을 벌인 것이 죄는 아니니까.

하지만 세상 민심이란 오묘한 면이 있어서, 반드시 상식적으로만 돌아가지 않는다. 화산이 벌인 사업 때문에 양민들이 큰 피해를 입었단 말이 돈다면 화산의 이름이 땅에 떨어질 수도 있다.

“장문인. 빨리 조치를 취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현영이 답지 않게 심각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 역시 이 사태의 심각성을 모를 리 없었다.

“으음. 한시라도 빨리 그들을 구출해야겠구나.”

현종이 단호히 고개를 끄덕였다.

“시기를 놓쳐 양민들이 노예로 팔려 나가기라도 한다면 그들을 구출할 길이 실로 요원해질 테니…….”

하지만 아무리 빨리 제자들을 더 파견한다 해도 도착하기까지 시간이 걸린다.

‘백천이에게 서찰을 보낸다 해도…… 그들만으로 수채를 상대하기는 어려울 테니…….’

역시 어쩔 수가 없는가…….

고민 끝에 결심을 굳힌 현종이 눈을 번쩍 뜨며 외쳤다.

“청명아!”

“예?”

어느새 다가와 대답하는 청명을, 현종은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래.

차라리 이편이 낫다. 저러고 있는 꼴을 보느니…….

“아무래도 네가 우선 장강으로 가 주어야겠다. 내가 운검이를 통해 다른 제자들도 보낼 터이니, 먼저 가서 수채가 양민들을 노예로 팔아넘기는 걸 막아 주거라.”

수채를 궤멸시키는 건 무리더라도, 청명의 능력으로 그 정도는 가능할 것이다.

그럼 그사이 화산의 본대가 도착할 테고, 그때 수채를 쓸어버리면 된다. 이 정도면 제법 완벽한 계산이라고, 현종이 내심 자찬하던 그때였다.

“장강이요?”

“그렇다!”

“제가요?”

“그래, 네가…….”

잠깐.

저놈이 지금 제가요?라고 했는가?

도무지 청명의 입에서 나올 것 같지 않은 말을 곱씹던 현종이 멍한 얼굴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그 순간, 현종은 보았다.

요 며칠 순하고 차분한 표정으로 일관하던 청명의 얼굴에 세상 온갖 심술이 다 담겨 있는 것을. 심지어는 그 고개가 옆으로 삐딱하게 꺾이는 광경을.

“제가 왜요?”

“…….”

아…….

이거, 망한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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