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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귀환-748화 (746/1,567)

748화. 누구도 나를 막을 수 없어! (3)

획.

번쩍!

획.

번쩍!

“아, 정신 사납게!”

내내 참던 조걸이 결국 소리를 빽 질렀다.

“뭘 자꾸 돌아보십니까! 뒤에 꿀단지라도 두고 오셨……. 악, 눈 부셔!”

혜연의 머리가 제자리로 돌아오며 다시 만들어 낸 강렬한 반사광에 조걸이 양손으로 눈을 가렸다.

“스님까지 왜 그러십니까!”

“……시주, 그게…….”

혜연이 떨떠름한 얼굴로 우물쭈물하다 반장을 하며 말했다.

“자꾸만 뒤통수가 신경이 쓰이는 걸 어쩌겠소.”

그러자 어이가 없다는 듯 그런 그를 보던 조걸이 한숨을 쉬며 윤종을 찾았다.

“끄응, 사형.”

“왜?”

“저는 아직 청명이를 따라가려면 먼 것 같습니다.”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야.”

“청명이 놈이라면 이럴 때, ‘네 뒤통수가 반질반질하니 자꾸 신경이 쓰이는 거겠지. 바람을 막아 줄 머리카락이 없으니까!’라고 말했을 게 분명한데 저는 차마 그렇게는 말을 못…….”

“스님 앞에서 무슨 망발이냐, 이 또라이야!”

빠악!

조걸의 턱이 깔끔하게 돌아갔다.

꽥 소리를 내며 조걸이 쓰러지자 윤종이 손을 털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리고 슬쩍 백천을 돌아보았다.

“……진짜 안 따라오는 걸까요?”

“그러게.”

백천 역시 불안한 건 마찬가지인지 다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하지만 윤종으로서는 그가 청명이 따라올까 봐 불안해하는 건지. 아니면 청명이 따라오지 않아서 불안해하는 건지 알 도리가 없었다.

“진짜 안 오나?”

“……그런 것 같은데요?”

“진짜?”

“…….”

백천이 몸을 부르르 떨며 말했다.

“윤종아. 너는 내가 괜한 걱정을 한다고 말할지도 모르겠지만…….”

“아닙니다, 사숙. 이해합니다.”

“나는 지금이라도 청명이 놈이 복면을 쓴 채, 옆에서 괴성을 지르며 나타날까 봐 자꾸만 불안하다.”

윤종이 대답 없이 슬쩍 주변을 돌아보았다. 말을 안 해서 그렇지, 그 역시 똑같은 불안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때, 유이설이 퉁명스레 말했다.

“안 따라와요.”

“응?”

백천이 돌아보자 그녀가 덧붙였다.

“그래도 나름 말 잘 들어요.”

“…….”

사매. 사매가 뭔가 오해하고 있는 모양인데.

걔는 그런 애가 아니야…….

“그리고 사질이 없어졌으면, 화산에서 더 난리.”

“아…….”

순간적으로 납득이 간 백천이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도 맞다.

청명이 놈이 따라 나설까 봐 전전긍긍하는 건 그들뿐만이 아니다. 오히려 그들보다 화산에 남은 이들이 더 걱정이 클 것이다.

그러니 만일 지금 청명이 놈의 모습이 화산에서 보이지 않는다면 산 위는 난리가 났을 것이다.

모두가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들어 저 구름 위로 보이는 화산의 정상을 바라보았다.

“별일 없는 것 같지?”

“조용한 것 같은데요.”

“애초에 여기서 들릴 리가 없잖습니까.”

의외로 조걸의 입에서 상식적인 말이 나왔다. 뭔가 정상적인 상태가 아닌 듯한 윤종과 백천이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입을 다물고 조걸을 돌아보았다.

조걸이 한숨을 푹 내쉬며 손뼉을 짝 쳤다.

“정신 좀 차리십시오, 두 분! 이제 장강으로 가서 조사해야 하는데 벌써 이러시면 어떡합니까?”

“……끄응.”

“에효.”

두 사람의 입에서 동시에 한숨이 푹푹 새어 나왔다.

산문을 나설 때까지만 해도 나름 굳은 의지가 가득했지만, 산을 내려오고 보니 그 망할 놈이 쫑알대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 게 영 불안했다.

사람이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더니 청명의 빈자리는 그들이 생각하는 이상으로 큰 모양이었다.

백천은 마지막으로 화산을 한번 돌아보고 걸음을 옮겼다.

“여튼…… 정말 안 오는 것 같으니까. 그만 출발하자.”

“예, 사숙.”

백천이 입맛을 다시고는 걸음을 옮겼다.

‘그럼 이제 내가 책임자로군.’

사실 그동안도 백천이 일행을 인솔해 왔지만, 모든 일을 책임진다는 생각은 스스로도 해 본 일이 없었다.

그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도 그리 생각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결국 결정권은 청명에게 있었으니까. 하지만 지금부터는 그들이 온전히 생각하고 온전히 책임을 져야 한다.

‘무겁구나.’

어깨 위에 커다란 짐이 얹힌 것만 같았다.

하지만 이 짐 역시 결국은 그가 감당해야 할 몫이었다. 그가 진정으로 화산의 장문인이 될 자격이 있는 이라면 말이다.

“자, 가자!”

“……그 가자만 벌써 한 다섯 번은 했습니다, 사숙.”

“윤종 사형도 좀 침착하십쇼. 다리 좀 그만 떠시고.”

“한심.”

조금 서글픈 눈으로 사제와 사질들을 돌아본 백천이 힘없이 걸음을 터덜터덜 옮겼다.

‘일단 저 망할 놈들을 잘 끌고 가는 것부터가 문제구나.’

갈 길은 구만리고, 한 걸음 한 걸음이 태산이었다.

* * *

화산은 묘한 긴장감에 휩싸였다.

모든 제자들의 이목이 청명에게로 쏠렸다. 장문인의 명으로 화산에 남은 그가 무슨 패악을 부릴지 알 수 없기 때문이었다.

사상 초유의 사태에 직면한 제자들은 잔뜩 긴장한 채 청명의 일거수일투족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전각 다 때려 부수는 거 아니야?”

“그럼 차라리 다행이지. 우리가 부서(?)지는 게 문제지.”

“나 너무 무섭다…….”

그 와중에 화산의 제자들은 새삼 오검의 소중함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 양반들이 언젠가부터 청명에게 동화되어 그들을 괴롭혔던 것은 사실이지만, 저놈이 미친 소처럼 날뛸 때는 몸을 던져 막아 주는 역할도 해 왔던 것이다.

순망치한(脣亡齒寒)이라고,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린 법이다.

막상 오검이 없어지니 저 청명이 놈의 패악질을 그들이 몸을 던져 막게 생겼다.

‘제발 상식선에서만 지랄했으면 좋겠다.’

‘온갖 꼬투리는 다 잡아 댈 텐데…….’

‘사형. 제발 빨리 다녀오십시오, 제발.’

하지만 의외로 그들이 생각하던 문제는 벌어지지 않았다.

대신 전혀 다른 문제가 벌어지기 시작했다.

식당에 앉은 화산 제자들은 하나같이 귀신이라도 본 것 같은 얼굴로 얼어붙어 있었다. 그들의 시선은 줄곧 한곳에 고정되었다.

꾹.

젓가락이 밥을 살짝 집는다.

오물. 오물. 오물.

입에 넣고 천천히 아주 천천히 씹기 시작한다.

사실 조금도 이상할 것 없는 광경이다. 조금 느리고, 과도하게 꼼꼼해 보이긴 하나 밥을 천천히 먹는 사람이야 흔히 있지 않은가?

하지만 그 광경을 보는 이들의 얼굴은 흡사 시체처럼 창백해졌다.

‘처, 청명이가…… 젓가락으로 밥을 먹는다.’

‘세상에, 마시지 않고 씹어 먹고 있어.’

열정적인 촵촵촵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식사도 전투라는 듯 눈앞에 있는 음식을 일단 입 안으로 털어 넣고 최소한으로 씹어 삼키는 게 기본이었던 청명이 젓가락으로 음식을 집어 꼭꼭 씹어 삼키고 있다.

그 광경을 지켜보는 화산의 제자들은 한 가지 사실을 뼈저리게 실감했다.

멀쩡한 사람이 갑자기 미친 짓을 하는 건 무서운 일이지만, 미친놈이 갑자기 정상적인 행동을 하는 건 그보다 몇 배는 더 괴기하고 무서운 현상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도대체 왜 저러는 거야?’

‘엄마, 나 무서워…….’

‘사람이 안 하던 짓을 하면 죽는다던데.’

‘차라리 패라, 이 새끼야!’

단순한 언행의 문제가 아니다.

평소 청명이 놈의 인상은 지옥에서 올라온 악귀가 겁먹고 달아날 정도가 아니던가?

축 처진 어깨와 아래로 내려간 눈 꼬리, 그리고 풀린 동공은 그들이 알고 있는 청명이 놈의 모습이 아니었다. 아니, 저건 청명이가 아니다.

탁.

그 순간 청명이 들고 있던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드르르륵.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터덜터덜 걸어가더니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탁.

문이 조용히 닫혔다.

그와 동시에 식당에 지옥 같은 침묵이 내려앉았다.

“봤어? 문을 손으로 여닫았어.”

“바, 발로 차지 않고…….”

“방금 들었어? 탁이야, 탁! 쾅이 아니었다니까?”

“워, 원시천존이시여…….”

청명이 닫고 나간 문을 멍하니 보던 화산의 제자들은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시선을 교환했다.

“이, 이게 무슨 일이야…….”

형용할 수 없는 공포가 화산 제자들을 휩쓸기 시작했다.

“후욱, 후욱!”

곽회가 필사적으로 목검을 휘둘렀다. 얼굴로 땀이 비 오듯 흘러내렸다. 검을 떨칠 때마다 땀이 사방으로 흩뿌려졌다.

다리가 후들거리고 양팔이 덜덜 떨렸지만, 그가 휘두르는 검은 조금도 멈추거나 느려지지 않았다.

‘이번에도 뽑히지 못했어.’

알고 있다.

그는 아직 감히 윤종이나 조걸에게 비할 만한 수준이 아니다. 최선을 다하고는 있지만 그들과의 차이는 여전히 현격하다.

그가 장문인이라고 해도 그들 대신 곽회를 보낼 생각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냉정하게 따지면 오검이 아니라 재경각의 중추가 되어 가고 있는 백상에게도 밀리고 있지 않은가?

‘더 열심히 해야 돼.’

그 사실은 스스로 더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실력 차이를 극복하는 방법은 뼈를 깎는 노력밖에는 없다는 것 역시 잘 알았다.

그럼에도 그가 초조함을 쉽사리 내려놓을 수 없는 이유는 단 하나였다.

‘정말로 나는 사형들을 따라가고 있는 건가?’

아니, 아마도 아닐 것이다.

차이는 좁혀지기는커녕 오히려 멀어지고 있다.

얼마 전까지는 조걸과 대련을 하면 그래도 한동안은 어우러질 수 있었는데, 최근에는 몇 합을 버티기도 어렵다. 정말 누구에게도 부끄럽지 않을 정도로 노력하고 있는데도 차이는 점점 멀어지고 사형들은 이제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는다.

‘이런 생각을 나만 하고 있는 건 아니겠지.’

그래서 무리한 일을 벌였다.

아직 실력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그럴 만한 자격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장문인께 자하신공을 익힐 기회를 달라고 간청했다.

욕심이 나서?

아니, 그런 게 아니다.

이대로 사형들만 먼저 자하신공을 익히게 된다면 그들을 따라잡을 기회가 영영 사라질 것 같아서였다.

그들이 강해지는 걸 시샘하는 게 아니다. 그저 그들이 곽회가 기준으로 세운 강함의 척도일 뿐이고, 그 스스로가 더 빨리 강해지지 못하는 것이 답답하여 애가 끓을 뿐. 아마 함께 장문인을 찾아간 이들 모두 같은 심정이었을 것이다.

‘어떻게 해야 더 빨리 강해지지?’

어떻게 해야 사형들처럼…….

“이익!”

분이 치민 곽회가 검을 격하게 휘둘렀다.

감정이 담긴 검은 귀신같이 제 궤도를 이탈했다. 덕분에 무게중심이 흐트러졌고 후들거리는 다리가 휘청이며 무너졌다.

“어엇?”

다행히 간격을 벌려 수련을 하고 있어서 옆으로 비낀 검에 누가 맞을 위험은 없…….

쿠우우웅!

그 순간 커다란 소리가 울렸고, 곽회의 눈이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떨렸다.

방향이 어긋나 옆으로 휘둘러진 그의 목검이 누군가의 머리에 닿아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끔찍한 사고였다.

하지만 곽회를 사시나무처럼 떨게 만드는 더 끔찍한 이유는, 그의 목검에 맞아 목이 옆으로 꺾인 이가…… 너무 낯익은 사람이란 점이었다.

“처, 처, 처, 청…… 청명아…….”

옆에서 수련하던 이들이 하나같이 주먹을 입에 물고 눈을 부릅뜬 채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벌써부터 도호를 외며 곽회의 극락왕생을 비는 이도 있었다.

“처, 청명아. 이, 이게 고의가…… 이게 절대 고의가 아니고……. 이게…….”

아니…… 왜 하필 여기에 청명이 놈이…….

아니, 그 전에 왜 이놈이 이걸 못 피했지?

어찌되었건 간에 그의 운명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차라리 깔끔하게 죽여 줘라.’

곽회는 자신의 운명을 직감하고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런데 그 순간.

“……체.”

“응?”

청명이 머리에 닿은 목검을 슬쩍 밀어 냈다.

“하체를 더 단련해. 생각이 흐트러져도 하체가 굳건하면 검로가 틀어지는 일은 없어.”

“어?”

“강해지고 싶으면 일단은 기본부터 해.”

“……어, 어. 알았다.”

곽회가 얼결에 답하자 청명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없이 가던 길을 갔다.

저 멀리 멀어지는 청명이 놈의 뒷모습을 곽회과 그의 사형제들이 멍한 얼굴로 바라보았다.

“……진짜 뭐지?”

“뭘 잘못 먹었나……?”

“아, 아니. 생각해 보면 상식적이기는 한데…….”

“그래서 문제인 거 아냐?”

“…….”

텅.

손에 들고 있던 목검을 힘없이 떨어뜨린 곽회가 작게 중얼거렸다.

“……화산이 망할 징조인가?”

세상 무너진 듯한 뇌까림이 정적으로 잠긴 연무장에 퍼져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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