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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귀환-747화 (745/1,567)

747화. 누구도 나를 막을 수 없어! (2)

“끄으으응. 이건 하극상이야.”

청명의 얼굴이 제멋대로 뒤틀렸다.

“아이고, 내 팔자야. 이제는 새파란 후손들한테 구박받고 마음대로 오가지도 못하는 처지가 됐네. 아이고오!”

한참을 푸념하던 그는 돌연 청진의 무덤을 획 돌아보았다.

“야, 어떻게 생각하냐?”

무덤이 말을 할 수 있을 리 없다. 청진의 무덤은 그저 고요히…….

“대답 안 해, 이 새끼야? 빠져 가지고?”

만일 청진이 선계에서 이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면 게거품을 물고 쌍욕을 퍼부을 것이다. 물론 청명을 가장 잘 아는 사람 중 하나이니 무덤을 걷어차지 않는 것만으로도 감사히 여길지도 모르지만.

“아오! 내가! 저…… 아우!”

청명은 복잡한 심경을 말로 다 표현하지도 못하고 연신 앓는 소리만 내었다.

따지고 보면 현종은 그에게 까마득한 후손이 아니던가?

아무리 화산의 장문인이라고는 하나, 실제 매화검존을 앞에다 두면 일단은 바닥에 납작 붙기부터 해야 할 배분이다.

그런데 지금은 되레 청명이 현종의 명령 때문에 하고픈 일을 못 하게 됐으니 이 어찌 괴이한 일이 아니겠는가?

“끄응. 다들 너무 컸어.”

예전에는 어? 다들 그냥 순진해 빠져서는 청명아, 청명아 노래를…….

“으……. 이것도 소름 돋네.”

청명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끄응. 다들 의견이 생긴 건 좋은데…… 그 말을 다 따라 주자니 내가 할 일을 못 할 것 같고…….”

- 사형이 할 일이라고 해 봐야 사고 치는 것밖에 더 있소?

“뭐 이 새끼야? 넌 누구 편이냐!”

- 허허허. 네 편은 아니겠지, 사람이면!

“아! 둘이 쌍으로 나오지 말라고!”

하나로도 속 터지는데 이제 둘이서 난리네, 둘이서!

굿이라도 해야 하나?

“끄응. 이게 문제가 아니지.”

청명이 팔짱을 꼈다.

사실 장난스럽게 말하기는 했지만, 이건 좀 민감한 문제다.

지금의 현종을 장문인으로서 존중하느냐, 아니면 후예로 보며 이끌어 나아가느냐.

지금까지는 적당히 중도를 지켜 왔다. 그가 이끌어야 할 부분도 있었지만, 그가 없던 사이 화산을 지키기 위해 평생을 바쳐 온 현자 배들에 대한 존중 역시 필요했다.

하지만 지금처럼 양쪽이 서로 충돌하는 일이 벌어질 일이 앞으로 늘어날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어찌 한다…….”

고민에 잠긴 채 하늘을 바라보던 청명의 입꼬리가 슬그머니 비틀렸다.

“모르겠다. 그건 나중에 생각하고!”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이번에는 안 되지. 누구도 나를 막을 수 없어!”

희희낙락하며 아래로 내려가는 청명의 모습을 풀이 돋아난 무덤이 말없이 지켜보았다.

* * *

“뭐지?”

왜 없지?

“분명히 여기다 뒀는데?”

청명이 장 안에 든 물건들을 밖으로 휙휙 내던졌다. 워낙 단출해 무복 몇 벌밖에는 없는 옷장이다 보니 물건을 던진 지 얼마 되지도 않아 금세 텅 비어 버렸다.

“이럴 리가 없는데?”

청명의 눈동자가 파르르 떨렸다.

“내, 내가 다른 데다 뒀나? 벌써 기억력이 나빠지는 건가? 이 파릇파릇한 나이에?”

전생까지 합치면 노망이 와도 이상하지 않을 나이지만, 어쨌거나 이 몸은 새것(?)이지 않은가! 그런데 벌써 건망증이…….

“이걸 찾냐?”

획!

돌연 들려온 목소리에 청명이 화들짝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방문 앞에 백천을 필두로 한 익숙한 이들이 서 있었다. 그리고 그 백천의 손에는 시커먼 옷가지가 달랑달랑 들려 있었다.

“내, 내 야행복!”

“네가 할 짓이야 빤하지. 이건 압수다.”

“압수?”

생각지도 못한 말에 청명의 눈이 회까닥 돌았다.

압수? 내 물건을?

충격이 이루 말할 수 없다 못해 입이 다 쩍 벌어질 정도였다.

전생과 이생을 통틀어 남의 물건을 빼앗아 본 적은 있어도, 제 물건을 남에게 뺏겨 본 적은 없는 청명이다. 그런데 압수라니.

“사숙.”

“왜.”

“사숙이 지금 감을 잃었나 본데, 나 청명이야.”

“안다, 이 새끼야! 아니까 이러지!”

백천이 얼굴을 와락 일그러뜨리며 호통 쳤다.

“눈 가리고 아웅도 아니고! 장문인이 가지 말라고 하시는데, 야행복 입고 따라붙는다고 해결이 되겠느냐, 어?”

청명이 멍한 얼굴로 할 말을 찾는 와중에 조걸이 피식 웃어 댔다.

“거보십쇼. 제가 이럴 거라고 했잖습니까.”

“……흠. 잘했어.”

윤종이 답지 않게 조걸의 머리를 두드려 주었다. 그러자 조걸의 얼굴에 뿌듯한 기색이 한껏 번졌다.

백천은 아예 눈에서 불이라도 뿜을 기세였고, 그 옆을 지키는 유이설 역시 단호하기 이를 데 없었다. 백천이 엄하게 말했다.

“그동안 네가 무슨 짓을 해도 나는 용인해 주었다!”

“아, 사숙. 그건 용인이라고 하는 게 아니고 손도 발도 못 댔다고…….”

꽈악.

“……아뇨. 용인 맞죠. 네, 용인 맞습죠.”

쓰다듬어 주던 윤종의 손이 조걸의 머리를 움켜쥐자 조걸이 재빨리 말을 바꿨다.

“하지만……. 이번만은 안 된다! 아무리 너라고 해도 장문인의 명을 무시할 수는 없다! 문파가 거꾸로 돌아가면 개판이 난다고 한 건 다름 아닌 너 아니냐! 장부가 한입으로 두말하지는 않겠지?”

“……난 세 말도 하는데?”

“…….”

아니……. 그거 자랑 아니라니까 자꾸 그러네.

“아니, 사숙!”

“왜!”

“진짜 나 없이 잘될 것 같아?”

“망할 수도 있겠지.”

“알면서 왜 그래? 그럼 사숙도 같이 나를 도와서 장문인을 설득을…….”

“그런데!”

백천은 단호하게 청명의 말을 끊었다.

“때로는 성공보다 실패가 더 나을 때도 있다. 장문인의 말을 무시하고 멋대로 이루는 성공보단 그 뜻에 따르고 맞는 뼈저린 실패가 화산을 위해서는 더 낫다!”

움찔.

청명은 저도 모르게 한발 물러섰다.

저 완벽한 논리에 천하의 청명조차 반박할 말을 찾을 수 없었던 것이다.

“설사 너를 데려가지 않아 목숨을 잃는다 해도 나는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지, 진짜?”

“…….”

순간 말문이 막힌 백천이 뭔가 얘기하려는 듯 입술을 달싹였다.

그러자 뒤쪽에 있던 오검들이 수군대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후회하실 모양인데?’

‘솔직히 후회하지, 저게 말이 되나.’

‘에이. 허세도 적당히 부려…….’

백천이 핏발 선 눈으로 획 돌아보자 청자 배들이 움찔하고 딴청을 피워 댔다.

“……물론 후회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이 선택이 옳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그러니 너도 그만 포기하고 장문인의 결정에 따르거라.”

“헐…….”

윤종이 백천을 거들었다.

“그래. 이번에는 사숙 말대로 하는 게 좋겠다.”

조걸도 재빠르게 윤종의 편을 들었다.

“그래, 이 새끼야! 아무리 그래도 장문인께서 명령하신 건데, 네가 그것까지 어기면 안 되지. 그래 놓고 다른 사형제들한테 말 잘 들으라고 할 셈이냐? 양심이 있어야지.”

유이설도 인상을 찌푸리며 말을 더했다.

“혼나.”

“…….”

“이번엔 많이 혼나.”

청명의 입에서 서서히 혼이 빠져나갔다.

‘현자 배만 문제가 아니었네.’

이제는 새파란 백자 배고 청자 배고 하나같이 대거리를 해 댄다.

사형! 장문사형!

내가 이 취급을 받고 참아야겠소? 예? 내가! 이 매화검존 청명이 저 새파란 것들한테……!

- 장문인 명이면 따라야지 새끼야! 전생에 그렇게 무시를 했으면 이번에라도 좀 들어야 할 것 아니냐!

“내가 언제 무시했어! 하란 건 다 했잖아!”

“갑자기 왜 소리를 질러?”

“……아, 아니 그게 아니고.”

청명이 당황하여 뭔가 말하려는 순간, 백천이 단호하게 상황을 정리했다.

“여하튼 이번에는 절대로 안 된다. 네가 몰래 따라온다면 우리는 즉시 이동을 멈추고 화산으로 복귀할 것이다. 그 뒤에도 네가 장문인의 명을 무시하고 혼자 장강으로 간다면, 내가 직접 장문인께 너를 참회동에 일 년 동안 가둬 두라 청할 것이다!”

“뭐? 사숙 미쳤어?”

“안 미쳤으니까 하는 말이다, 안 미쳤으니까! 미친 건 네놈이지! 한 문파의 장문인이 내린 명을 네 맘대로 어기다니! 기사멸조가 뭔지도 모르느냐?”

“기…사멸조(欺師滅祖: 스승을 속이고 선조를 능멸함)?”

“그래, 기사멸조!”

청명은 이제 속이 터지다 못해 문드러질 지경이었다.

야, 이 새끼들아…….

지금 너희들이 하는 게 기사멸조야. 너희들이 기사멸조를…….

아이고, 세상에.

“두 번 말하지 않는다! 쓸데없는 짓거리 말고 얌전히 자리를 지키거라!”

백천은 넋이 나간 청명을 두고 최대한 매정히 몸을 획 돌렸다.

그러자 윤종이 빠르게 따라붙어 속삭였다.

“괜찮을까요?”

“한 번은 해야 할 일이었다. 이제는 저놈도 지켜야 할 게 뭔지는 구분하겠지.”

백천이 과감하게 발을 옮겼다. 그러면서도 은근하게 신경이 쓰이고 뒤통수가 당겨 슬쩍슬쩍 곁눈질로 뒤를 돌아보았다.

“뭐, 이 정도로 기죽을 놈은 아니니까요.”

오검은 어깨를 으쓱하며 청명의 방에서 빠져나왔다. 그러자 차마 방 밖으로 나오지 못한 채 숨만 죽이고 있던 다른 청자 배들이 하나둘씩 나와 청명의 방 앞을 기웃거렸다.

넋을 완전히 잃고 침상에 망연히 걸터앉은 청명의 모습에, 그들은 혀를 차며 한마디씩 하고 돌아갔다.

“청명이도 이제 다됐네.”

“이제 힘 빠질 때도 됐지.”

“이젠 정말 사숙뿐이야. 미리미리 사숙한테 붙자고.”

“생각해 보면 차기 장문인은 백천 사숙이랑 윤종 사형이잖아. 쟤는 따지고 보면 권력도 없어.”

“그러네? 지금까지 왜 그 생각을 못 했지?”

사형. 장문사형…….

애들이 정말 많이 컸어요, 정말…….

그런데 왜…….

‘눈물이 나지?’

허허. 허허허.

화산. 그래, 화산파…….

확 망해 버려라! 빌어처먹을!

* * *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장문인.”

“그, 그래.”

현종이 무거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눈앞에 도열한 제자들을 바라보았다.

백천, 유이설, 백상, 윤종, 조걸, 당소소, 그리고 혜연까지.

익숙하다면 익숙한 조합이다. 외환이 있을 때마다 화산의 제자인 이들이……. 아니, 화산의 제자들과 타문의 제자 하나가 이렇게 외유를 나가곤 했으니까.

그런데 왜…….

‘왜 이렇게 낯설지?’

겨우 사람 하나 빠졌을 뿐인데, 뭔가 마음이 싱숭생숭하고 진정되질 않았다.

“그……. 어, 음……. 그…….”

현종은 뭔가 할 말을 찾는 듯 더듬대다 참지 못하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어디 갔지?’

왜 그림자도 보이질 않는 거지, 이놈이?

차라리 심통 난 얼굴이라도 확인하면 속이 좀 편해질 것 같은데, 이놈은 단단히 삐쳤는지 이 자리에 얼굴도 내비치지 않고 있었다.

단념한 현종이 표정을 관리하며 제자들을 바라보았다.

“알다시피 이 일은…… 무척이나 민감한 문제다 그러니…….”

“예, 장문인.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살피고 또 살피겠습니다.”

“그래.”

백천의 의지견정한 얼굴을 보니 마음이 더없이 든든해……져야 하는데. 분명히 그런데…….

현종은 저도 모르게 검지 손톱을 물어뜯을 뻔했다.

“호, 혹시라도 문제가 생기면 해결하려 들지 말고 바로 달아나거라.”

“예, 장문인.”

“수적 놈들은 더없이 간악하다. 항시 경계하고.”

“예.”

“절대 너희끼리 해결하려 해서는 안 된다. 개방에 언질을 해 두었으니 수시로 상황을 보고하고, 유사시엔 지원을 요청하고.”

“……예.”

“세끼 잘 챙겨 먹고. 괜히 물이 안 맞으면 배앓이를 할 수도 있으니 가려 마시고, 아, 그리고 풍토병에 걸릴…….”

“이러다 날 새우겠습니다!”

“……어, 그래.”

결국 터져 나온 현영의 짜증에 현종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아까부터 자꾸 얼굴이 달아오르고 심장이 두근대는 것이, 내내 진정이 되질 않았다. 마치 처음 제자들을 밖으로 내보내는 것처럼 말이다.

“장문인, 걱정 마십시오. 신중에 또 신중을 기하겠습니다! 저희를 믿어 주십시오.”

“그래.”

현종이 눈을 질끈 감았다. 제자들이 저리 말하는데, 장문인인 그가 어찌 믿지 않을 수 있겠는가?

“조심해서 다녀오거라.”

“예, 장문인!”

일제히 현종에게 읍을 한 이들이 몸을 돌려 산문을 벗어났다.

“잘 다녀오십시오, 사형!”

“조심하셔야 합니다!”

“몸 건강하게 돌아오십시오! 수적 놈들을 혼내 주시고요!”

백천은 돌아보며 고개를 끄덕이곤 그제야 주변을 슬쩍 살펴보았다.

“……안 보이는데?”

“없는 것 같은데요?”

“설마 몰래 따라붙는 건 아니겠죠?”

“에이. 그렇게까지 말했는데 그러기야 하려고.”

백천이 작게 한숨을 쉬었다.

‘청명이 없는 첫 외유구나.’

긴장이 되는 건 사실이지만,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들이 청명이 놈 없이도 홀로 설 수 있다는 것을 이번 기회에 증명해야 할 테니까.

‘너무 섭섭하게 생각하지 마라, 이놈아.’

화산의 정경을 두 눈에 담은 백천이 고개를 돌리고 단호하게 발을 뗐다.

“가자!”

“예!”

화산의 제자들이 보무도 당당하게 산문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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