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6화. 누구도 나를 막을 수 없어! (1)
현종은 가만히 눈을 감았다.
‘수로채라.’
쉬이 생각할 상대가 아니다. 현상이 말했듯, 수로채는 오히려 녹림보다 더 상대하기 껄끄러운 적이다.
천하의 많은 문파들이 수로채의 패악을 알면서도 그들을 쉽게 단죄하지 못하는 이유가 있었다.
육지에서 싸우는 것과 물 위에서 싸우는 것은 전혀 다른 종류의 싸움이다. 타 문파들도 그 사실을 알고 있으니 함부로 수로채와 일을 벌이려 들지 않는 것이다.
‘될 수 있으면 확전은 피해야 한다.’
수로채와 문제가 생기면 피해를 입는 것은 죄 없는 화산의 제자들이다. 문파의 명예와 자존심이 중하기는 하나, 그것을 위해서 제자들의 몸에 생길 상처를 감수해야 하겠는가?
‘생채기 하나만 한 가치도 없다.’
가급적 원만하게 해결하는 게 좋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는…….
“장문이이이이이이인!”
귀를 찌르는 소리에 현종이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저놈은 잠도 없나.’
굳게 닫힌 문 너머도 아니고, 아예 처소 지붕 위에서 귀곡성 같은 목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아니, 제가 가서 진짜 잘 해결할 수 있다니까요!”
현종이 언짢은 얼굴로 획 돌아누웠다.
“장문이이이이이인!”
“이놈아, 제발 잠 좀 자자! 잠 좀!”
벌써 시간이 자시 말(새벽 한 시)에 이르렀건만, 저 망할 제자 놈은 물러날 기미는커녕 지친 기색조차 없다.
“생각을 해 보십쇼! 말이 안 되는 일이 벌어졌는데 제가 어떻게 편히 잡니까! 속이 편해야 잠도 자는 거고, 그래야…….”
현종은 두 귀를 틀어막았다.
저 망할 놈은 회의가 끝난 뒤부터 지금까지 무려 꼬박 하루를 저리 쫑알대고 있다. 사람이 아무리 말이 많아도 저만큼이나 떠들어 대고 나면 지칠 만도 한데, 도무지 지칠 기미가 보이질 않는다.
“장문인! 장문이이이이인!”
“에이!”
현종은 아예 이불을 확 뒤집어썼다.
‘절대 안 돼!’
다른 일이라면 그도 청명을 결코 빼놓지 않았을 것이다. 솔직히 말해 청명 없이 제자들을 어딘가로 파견하는 건 그에게도 아직은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이번만은 아니다.
물론 청명은 무언가를 해결하는 사람이다. 그가 나서면 일이 깔끔해지기는 한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일이 어마어마하게 커지는 것을 감수해야 한다.
청명이 놈의 일처리 방식은 있는 문제, 없는 문제 모조리 들쑤셔 일을 최대한 부풀린 뒤 그걸 한 번에 뻥 터뜨려 모조리 쓸어버리는 쪽에 가깝다.
이번 일은 절대 그런 식으로 해결해서는 안 된다. 이건 전후사정을 일단 따져 본 다음 가장 원만한 쪽으로 해결해야 하는 일이다.
“아니, 장문인! 제가 가야 한다니까요! 제가 가서 일단 들쑤시면 제 발 저린 놈들이 알아서 실토를 한다니까요?”
“그래서 안 되는 거라고, 그래서! 으으, 이 새끼야!”
결국 울화통이 터진 현종이 이불을 뻥뻥 걷어찼다.
“장문이이이이이이인!”
“시끄럽다!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 아니, 아니! 흙이 들어가도 절대로 안 보내 준다!”
괜히 흙이 들어가기 전이라고 말했다가, 청명이 놈이 냉큼 두 눈에 흙을 들이부을까 봐 겁이 난 그는 재빨리 말을 바꾸었다.
“아, 제가 가야 된다니까요, 장문인! 제가 가서 그 수적 새끼들을 모조리 물에다 처박아 버리고 오겠습니다! 아니, 지들이 얼마나 자맥질을 잘하면 수적질씩이나 해 대는지 확인해 봐야 할 거 아니냐고요!”
“…….”
설득을 하면 할수록 더 역효과를 내는 것도 청명의 재주라면 재주였다.
“어쨌든 안 된다! 절대 안 돼!”
“장문이이이이이이인!”
현종은 눈을 질끈 감은 채 말없이 귀를 틀어막았다.
“아니이이이이이이이!”
현종의 처소 전각 지붕 위에 올라탄 청명이 달을 보는 늑대처럼 울부짖었다.
그리고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오검이 복잡 미묘한 얼굴로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지치지도 않네.”
“어떻게 생각하면 진짜 대단하지 않습니까? 아침부터 시작해서 새벽까지 저러고 있습니다.”
“……나는 저 집착이 가끔 무섭다.”
백천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장문인도 대단하시지. 저 찰거머리 같은 놈이 저리 발악을 하는데 문 한 번을 안 여시지 않느냐.”
“……열었다가 무슨 봉변을 당하려고요.”
“내 말이.”
모두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하지만 그 와중에 윤종은 다른 문제가 걸리는 모양이었다.
“그런데, 사숙.”
“응?”
“정말 청명이를 두고 갑니까?”
“…….”
백천은 쉽사리 대답하지 못했다. 그때 조걸이 윤종을 보며 피식 웃었다.
“왜요, 사형? 겁이 나십니……. 아니요. 그냥 물은 겁니다. 사형, 사형, 일단 그 주먹 내려놓고 말씀하시죠.”
삐딱한 눈으로 조걸을 바라보던 윤종이 말없이 주먹을 다시 내렸다. 그리고 다시 백천을 향해 말했다.
“물론 청명이를 데려갔을 때 벌어질 사태를 생각해보면……. 생각을……. 어…….”
윤종이 차마 말을 잇지 못하고 눈을 질끈 감았다.
- 으하하하하핫! 이 수적 새끼들아아아아아아!
- 죽어! 죽어어엇! 죽어!
- 뭐? 물장구를 잘 쳐! 그럼 들어가, 이 새끼야! 어디 대가리 한 번이라도 내밀어 봐! 무슨 일이 벌어지나!
눈앞에 벌어질 일들이 이미 한차례 본 것처럼 훤했다. 아무리 긍정적으로 생각하려 해도, 피로 물든 장강밖에는 떠오르지 않는다.
“그…… 예. 물론 그…… 좀 참혹하기야 하겠지만.”
“좀?”
“……많이 참혹하겠지만.”
다들 고개를 저었다.
청명이의 가장 훌륭한 점은 누구에게나 공평하다는 것이고, 청명이의 가장 끔찍한 점 역시 누구에게나 공평하다는 것이다. 상대가 무당이든 종남이든, 만인방이든 장강수로십팔채든 가리지 않고 후려 깐다는 게 제일 대단한 점 아니던가?
그런 놈을 조사란 명목을 대며 장강에 데려다 놓으면 벌어질 일이야 빤하다. 그건 조사라는 이름의 폭행이 될 것이고, 아마 장강 물길이 거꾸로 역류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질지도 모른다.
“여하튼 청명이 놈이 사고를 치는 게 껄끄러운 건 이해합니다. 그런데 다른 곳도 아니고 신주오패 중 하나인 수로채를 조사하는 일 아닙니까?”
“……그렇지.”
“그런 일에 청명이를 빼놓고 갈 수 있을지…….”
윤종이 말끝을 흐렸다. 얼굴에 걱정이 스쳤다.
물론 청명이 놈이 사고를 쳐 대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혹시나 모를 위기가 닥쳤을 때, 가장 의지할 수 있는 사람도 청명이 놈이다.
청명이와 함께 수많은 위기를 넘어온 오검은 그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니 윤종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오는 것도 충분히 이해는 할 수 있었다.
“네 말뜻은 알겠으나, 이는 이미 장문인께서 정하신 일이 아니더냐.”
“사숙…….”
백천이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나도 불안한 건 사실이다. 하지만 윤종아, 생각해 보거라.”
“예?”
“그런 식으로 생각하면 우린 청명이 녀석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윤종의 얼굴이 살짝 굳어졌다. 백천의 말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백천은 얼굴을 구기며 한숨을 쉬었다.
“인정하고 싶지 않은 사실이지만…… 정말 인정하고 싶지 않은 사실이기는 하지만……. 끄응. 진짜 인정하기 싫은데.”
“…….”
“청명이 놈이 있으면 안심이 되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도 언제까지 녀석에게만 의지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니더냐?”
“하나, 사숙.”
“네 말이 무슨 의미인지 안다. 신주오패 중 하나인 장강수로십팔채를 상대하는 일이니 다른 경우와 같게 여길 수 없단 말을 하고 싶을 테지.”
“그렇습니다.”
“윤종아. 앞으로 화산이 상대해야 할 적들은 더욱 강대해질 것이다. 그때마다 청명이 녀석만 바라보고 있겠느냐?”
물음을 던진 백천은 무거운 얼굴로 긴 숨을 내쉬었다.
잘난 듯이 말이야 했지만, 그 역시 불안하기는 매한가지였다.
‘새삼 우리가 저 녀석에게 얼마나 의지하고 있었는지 알겠구나.’
하지만 이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청명이 놈은 실력이나 판단력이 평범한 후기지수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높은 수준이 아닌가. 심지어는 강호에서 오래 굴러먹은 노강호인들조차 제 손안에서 가지고 노는 이가 청명이다.
그가 굳이 이 중에서 가장 강하지 않았다 해도 자연스레 모두가 청명을 의지하게 되었을 게 분명했다.
‘하지만 언제까지 그럴 수는 없지. 거꾸로 저놈의 부담을 덜어 주기 위해서라도.’
백천은 슬쩍 시선을 돌려 유이설을 바라보았다.
“사매는 어떻게 생각하지?”
그러자 그녀는 무표정한 얼굴로 청명을 슬쩍 바라보고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장문인의 결정.”
“…….”
“따라야 할 일.”
간명해서 좋다.
유이설의 말대로다. 그들의 생각과는 별개로 이건 현종이 장문인으로서 결정한 일이었다. 화산의 제자라면 응당 모두가 그 명에 따라야 한다.
“사숙. 제 의견은 안 물어보십니까?”
“으음. 사매의 말대로다. 이건 장문인의 결정이지.”
“사숙? 저도 의견이 있는데요.”
“그러니 왈가왈부할 일이 아니다. 제자 된 도리로 그냥 따르면 될 일.”
“사수우우우욱?”
옆에서 알짱대는 통에 결국 백천의 이마에 핏대가 섰다. 성가심을 이기지 못한 백천의 시선이 조걸에게로 향했다.
“……꼭 말해야겠느냐?”
“지금 사람 차별하시는 겁니까?”
“어.”
“…….”
조걸이 비 맞은 강아지처럼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백천이 ‘정말 싫다’는 감정을 팍팍 드러내며 말했다.
“말해 봐, 말해 봐! 들어 줄 테니까!”
“됐습니다. 옆구리 찔러서 절 받기도……. 하핫!”
그 순간 조걸이 옆으로 몸을 획 굴렸다. 덕분에 조걸의 멱살을 잡아채려던 윤종의 손은 허무하게 허공을 가를 수밖에 없었다.
“어쭈?”
“제가 언제까지 당하기만 할 거라고 생각하셨습니까! 저 조걸입니다! 화산의 맹수!”
“화산의 맹수는 백아고.”
“……어?”
듣고 보니?
조걸이 어색하게 웃으며 몸을 일으키더니 옷에 묻은 먼지를 대충 털었다.
“여하튼 제 생각에는 다들 지금 쓸데없는 걱정을 하고 계시는 거라고 봅니다.”
“응? 뭐가?”
“저 새끼가 장문인이 가지 말란다고 해서 안 갈 놈입니까?”
그 말에 모두의 시선이 일제히 전각 지붕 쪽으로 향했다. 정확히는, 여전히 울부짖고 있는 청명에게로.
“장문이이이이이이인! 아아아아아아!!”
조걸이 피식 웃었다.
“제가 아는 청명이는 앞에 산이 있으면 뚫고 가고, 강이 있으면 물길을 파내서 물길을 돌려 버릴 새끼입니다. 그런 놈이 장문인이 가지 말란다고 순순히 말을 들을 것 같습니까? 다들 저놈을 너무 쉽게 보시는 것 아닙니까?”
“과연…….”
“일리가 있어.”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하려는 찰나였다.
“글쎄요. 제 생각은 좀 달라요.”
“응?”
내내 잠자코 듣고만 있던 당소소가 뚱한 얼굴로 말했다.
“다들 사형에게만 너무 이목이 쏠려 있는데, 장문인도 절대 만만한 분이 아니시잖아요. 장문인께서 그런 사실을 모르실까요? 장문인도 이번만큼은 사형이 따라가지 못하게 온갖 대책을 다 강구하실걸요.”
듣고 보니 그 또한 옳은 소리였다. 그들이 알고 있는 것을 현종이라고 모를 리가 없잖은가.
“화산 최고의 창과 방패의 대결인 거죠. 누가 이길지는 두고 봐야 아는 거예요.”
당소소의 목소리가 퍽 의미심장했다.
하지만 백천의 가슴속에는 알 수 없는 비애가 흘렀다.
‘듣기에는 참 멋진 말인데.’
화산 최고의 창과 방패의 대결이라니, 마치 이야기 속에 나오는 수사 같지 않은가. 화산 최고수들이 서로의 모든 것을 걸고 비무라도 하는 것 같다. 말만 들으면!
“그런데 그 말이 왜 이런 상황에서 쓰이냐고, 망할!”
“장문이이이이이이인! 듣고 계세요?!”
“시끄러워!”
“아, 시끄러워 인마!”
현종과 백천의 고함 소리가 동시에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장강으로 가는 조사단의 파견을 앞두고, 하루도 곱게 넘어가지 못하는 화산의 밤이 어찌어찌 깊어 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