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귀환-740화 (738/1,567)

740화. 귀신이 나올지, 괴물이 나올지. (5)

장강.

중원의 중심을 가로지르는 젖줄이자 물류의 중심.

그러니 자연히 부두에는 배를 타고 강을 건너려는 이들과 장강 줄기를 따라 먼 지역으로 이동하려는 이들이 몰려들어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빨리 빨리 타십시오! 빨리! 곧 출발합니다!”

“밀지 마시오! 아, 떨어진다고!”

정박해 있는 커다란 배와 항구 사이에 놓인 널판 위로 사람들이 바삐 움직였다. 복장도 모두 각양각색이었다.

대충 모두가 배에 올랐다 싶을 때 돈을 걷던 선원이 고개를 쭉 빼고 우렁차게 외쳤다.

“더 없으시오? 더 없으면 출발하오!”

그러더니 널판을 걷어 내고 닻을 올렸다. 이내 돛이 펴지고 정박해 있던 배가 천천히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도도한 장강의 흐름을 타고 배가 강 중앙을 향해 점점 더 멀어지는 그때였다.

“잠까아아아아안!”

저 멀리서 누군가가 고함을 내지르며 쏜살같이 달려왔다.

“잠깐! 잠깐만 멈추시오! 내가 그 배를 타야 하오!”

기이할 정도로 커다란 목소리.

아니, 사실 소리 자체는 그리 크지 않은데, 이상하게도 선명하게 귀에 꽂히는 목소리였다.

뱃머리에 서서 점차 멀어지는 항구 쪽을 바라보던 이가 안타깝다는 듯 혀를 찼다.

“거 조금 일찍 오시지! 배는 못 돌리오! 다음 배를 타시오!”

배는 이미 항구에서 제법 멀어진 뒤였다. 한번 떠난 배를 다시 돌릴 수는 없는 노릇이니 선원의 말은 실로 온당했다.

하지만 달리고 있는 이는 그리 생각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럴 수는 없지!”

그는 속도를 늦추지 않고 강가를 향해 미친 듯이 달렸다.

“저, 저!”

“뭘 어쩌려고?”

배에 타고 있던 이들, 부두에 있던 이들 할 것 없이 모두 웅성거리며 놀란 눈으로 그가 하는 양을 보았다.

벌써 배는 강변에서 십여 장 이상 멀어진 뒤였다. 그런데 저 사내는 포기하지 않고 배 위까지 뛰어오를 기세가 아닌가?

“저러다 다칠 텐데…….”

“에이. 적당히 뛰어서 자맥질을 하겠지.”

“헤엄을 쳐서 무슨 수로 배를 따라잡나! 배가 서서 기다려 주는 것도 아닌데. 이미 돛을 펴지 않았는가!”

그때였다.

“타아아아아앗!”

뛰어오던 이의 속도가 단번에 높아지더니 이내 허공으로 새처럼 날아올랐다. 동시에 모두의 시선도 그를 향해 하늘로 따라갔다.

“우와아아아아!”

“세상에! 저게 뭐야!”

매처럼 솟아오른 그는 허공에서 한 바퀴 빙글 회전하더니 단숨에 십여 장의 거리를 따라잡아 배 위로 내려앉았다.

쿠우우우웅!

아슬아슬하게 배의 난간에 내려서기는 했지만, 어쨌거나 실로 대경할 일이었다.

부두에서 지켜보던 이들도 배의 갑판 위에서 구경하던 이들도 이 굉장한 광경에 저마다 입을 벌리고 박수를 쳐 댔다. 연신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사람이 새도 아니고.”

“굉장하네. 정말 굉장해! 강호인인가?”

그때 힐끔대던 이들 중 하나가 사내가 어깨에 동여맨 짐에서 특(特)이라는 글귀를 발견하고 화들짝 놀랐다.

“특표다! 은하표행의 특표야!”

“오? 그 은하상단의……?”

“이야! 이 사람이 그 바람과도 같다는 은하표행의 특표구나! 실제로 보는 건 처음이네!”

특표라는 말이 나오자 갑판의 사람들이 모두 웅성대며 사내의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사내는 빙그레 웃으며 주변의 사람들에게 포권 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다만 지금 표물을 운송 중이니, 너무 가까이 다가오지는 말아 주십시오. 부탁드립니다.”

정중한 부탁에 몰려들던 이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한두 발짝 뒤로 물러났다.

은하표행의 특표는 이용료가 비싼 만큼, 비싼 물건도 운송해 주는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었다.

천하에 수도 없는 표국들 중, 은하표행이 최근 들어 가장 큰 명성을 날리는 이유도 바로 저 특표의 존재 때문이 아니던가?

이 업에 몸을 담는 사람은 물론, 세상사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이라면 모를 수 없었다. 만 리 길을 한달음에 달려, 다른 표국은 엄두도 내지 못할 기간 내에 물건을 정확하게 배달하는 특표의 존재를 말이다.

“고생 많으십니다. 어디까지 가십니까?”

“하하. 그것도 말씀드릴 수 없는 점, 이해 부탁합니다.”

“역시 은하표행의 특표로군. 확실해.”

“그럼, 그럼. 북경의 고관대작들이 표행을 맡기려고 순번을 뽑아 기다린다지 않는가?”

“대단하네. 정말 대단해. 나도 한번 맡겨 보고 싶군.”

“그럴 만한 귀중품은 있고?”

“예끼, 이 사람아! 은하표행에 어디 특표만 있다던가? 평범한 표물도 맡길 수 있네.”

특표, 소정복(昭正福)이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이제는 어딜 가도 사람들이 알아보는구나.’

물론 그는 유령문의 문도였다.

문주의 결단으로 특급 표물을 나르기 시작한 지도 시간이 꽤 흘러, 이제는 천하 어디를 가도 은하표행의 특표를 알아보는 이들이 생겨났다.

‘정말 잘된 일이야.’

처음 문주가 표물 운송을 시작하겠다는 말을 했을 때 내부에서 반발이 얼마나 심했던가?

체면에 목숨을 거는 장로들뿐만이 아니었다. 막상 일에 투입되는 제자들 역시 문주의 명을 거역할 수 없으니 마지못해 따랐을 뿐, 내심 탐탁지 않게 생각하는 이들이 많았다.

하지만 이제는 표행을 나가지 않고 유령문에 남아 수련을 하는 이들이 되레 표행을 나가는 이들을 부러워하고, 빨리 자신의 차례가 돌아와 표행을 나갈 수 있기를 고대하는 상황이 되었다.

‘생각해 보면 나도 교대가 얼마 남지 않았구나.’

기간을 다 채우고 나면 그는 유령문으로 돌아가 다른 이와 교대하고 한동안 수련을 하며 지내야 한다. 다시 유령문으로 돌아갈 생각을 하니 한숨이 절로 나왔다.

예전에는 미처 몰랐다. 이리 직접 세상을 눈으로 보고 수많은 것을 겪는 게 얼마나 사람의 안목을 넓혀 주는지.

산골에 박힌 갑갑한 유령문에서 하루 종일 수련을 하는 생활에 비한다면, 가히 호사라 불러도 과하지 않다.

‘게다가 이번 표행까지 하면 목표했던 금액도 거의 모으고…….’

은하상단은 정말 배포가 컸다.

표행을 할 때마다 그들은 임금을 확실하게 지불했다. 물론 그들이 의뢰비로 받은 돈에서 일정 부분을 유령문에 지급하고, 거기서 다시 그들의 몫을 나눠 받다 보니 비율은 그리 높지 않지만, 그것만 해도 유령문도들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거액이었다.

굳이 무인으로서 실력을 키우고 명성을 날리지 않아도, 이 표행을 지속하는 것만으로도 강호에 이름을 날리는 것 이상으로 돈을 벌 수 있다.

아니, 금전적으로만 따진다면 비교도 할 수 없는 돈을 모을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니 유령문도들은 게으름을 부리지 않고 열심히 일했고, 덕분에 은하표행의 특급 표물에 대한 명성은 나날이 높아져만 가고 있었다.

게다가…….

- 으하하하하하핫! 곳간이 가득 차서 더는 넣을 데가 없구나! 창고를 증축해야겠다! 창고를!

“……거참.”

유령문도 나날이 바뀌어 갔다.

허름하기 짝이 없었던 전각들이 허물어지고 반듯한 새 건물들이 올라온다. 최근에는 문주님이 아예 유령문의 위치를 번화한 성안으로 옮길 생각까지 하고 있다지 않은가?

돈이라는 게 참 많은 것을 바꿀 수 있다는 걸 소정복은 매번 새로이 실감했다.

그때 사람들의 작은 속삭임이 귓가를 스쳤다.

“그런데 위험하지 않을까? 특표가 귀한 물건을 나른다는 건 세상 사람들이 다 아는 일인데, 저리 혼자 다니면…….”

“거 멋모르는 소리 말게나.”

“응?”

“특표 뒤에 화산이 있다는 소문이 파다하지 않은가? 아무리 돈이 궁한 강도 놈이라고 한들, 어디 화산파가 보호해 주는 표행을 건드릴 수 있겠는가? 사파 놈들에게는 화산파가 저승사자나 다름없는데?”

“아! 그, 그렇지. 그렇지! 화산파면 사파 놈들이 벌벌 떨 만하지.”

“내 듣기로는 화산파가 저번 대별채를 쓸어 버린 뒤로는 녹림의 산적 놈들도 감히 은하표국을 건드릴 생각도 하지 못한다더구먼. 그놈들도 목숨은 하나일 텐데 당연히 그래야 하지 않겠는가?”

“허허. 듣고 보니 웃기는군. 화산이 그럴 수 있으면 구파일방도 얼마든지 할 수 있을 텐데, 지금까지 손을 놓고 있었다는 말 아닌가?”

“협의지심이 다른 게지, 협의지심이! 뭐, 아무튼 그래서 특표가 안전한 것이고, 고관들도 믿고 맡기는 것일세. 은하상단도 그걸 믿으니 특표가 운송하던 물건이 잘못되면 어마어마한 돈을 배상해 준다는 조건을 내건 것이지.”

“과연, 이제 이해가 가네.”

소정복은 몰래 피식 웃었다.

저들은 모른다. 녹림이 화산에 겁을 집어먹어 그들을 건드리지 못하는 게 아니라, 화산과 손을 잡았기 때문이란 사실을.

이곳으로 오기 전에 그가 가까운 산채에서 푹 쉬고 든든하게 밥까지 얻어먹고 나왔다는 것을 알면 저들이 대체 어떤 표정을 지을 것인가 문득 궁금했다.

표물이 든 짐을 슬쩍 난간에 걸친 소정복은 습관적으로 좌우를 경계했다.

땅이 있는 곳이라면 누가 표물을 노리더라도 휑하니 피해 달아날 자신이 있었다. 유령문의 문도라면 누구나 경공에는 일가견이 있으니까.

하지만 이곳처럼 달아날 곳 없는 배 위에서는 평소보다 몇 배로 주변을 경계해야 한다.

‘배에서 내리고 사흘만 더 가면 목적지로군. 그럼 유령문 복귀 전까지 두어 번은 더 나갈 수 있겠어. 노는 거야 돌아가면서 적당히 즐길 수 있으니까…….’

소정복을 태운 배가 쉼 없이 앞으로 나아갔다. 장강의 물줄기를 따라 흘러가는 배의 좌우로 천혜의 절경이 펼쳐졌다.

그렇게 얼마나 갔을까.

사위가 어둑해질 무렵이 되었을 때, 선원들이 갑판으로 와 소리쳤다.

“밤에는 배에서 떨어질 수 있으니 난간 쪽에 있지 마십시오. 그리고 밤에는 강바람이 찹니다. 선실이 좁기는 하지만 이곳에 있는 이들이 잘 만큼의 공간은 충분하니, 안으로 들어가 주무십시오.”

지는 노을을 바라보던 세인들이 그 말을 듣고 하나둘 몸을 일으켜 선실로 향했다. 그런데 그때, 선수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자, 잠깐! 저기! 저, 저기!”

선원이 다급하게 선수를 향해 뛰어갔다.

“뭐야! 무슨 일이야?”

“저기! 저기 보십시오! 저 배 말입니다!”

“음?”

선원이 황급히 고개를 쭉 빼며 그가 가리킨 쪽을 바라보았다. 건너편에서 웬 배 한 척이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뭐가 문제야? 평범한 배구만?”

“바, 방향이 이상합니다. 이 정도 거리면 뱃머리를 돌려야 하는데, 우리가 뱃머리를 돌려도 자꾸 이쪽으로 따라붙습니다.”

“뭐?”

선원의 눈이 살짝 흔들렸다.

“그럼…….”

이 배를 향해 다가오고 있는 건 분명하니, 필시 용무가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대체 이 강 위에서 무슨 용무가 있단 말인가?

바로 그 순간이었다.

“혀, 형님! 저기!”

다가오던 배가 돛을 올렸다.

배가 돛을 올리는 게 이상한 일은 아니지만, 문제는 그 위에 그려진 문양이었다.

한눈에 보아도 위협적인 검은 용의 형상.

“수로채!”

“장강수로채다!”

“이런, 빌어먹을!”

장강에서 저 표식을 사용할 수 있는 곳은 오직 한 곳. 장강수로십팔채뿐이다.

“수, 수적이다!”

“수적이 온다!”

배에 탄 이들은 수로채라는 말을 듣고 혼비백산해 날뛰었다. 달아날 곳도 없는 이 너른 강 위에서 수적을 만난다는 건 말 그대로 최악의 사태였다.

하지만 이미 피하기에는 너무 늦었다. 흑룡기를 펼친 배는 점점 더 빠르게 접근해 오고 있었다.

소정복의 얼굴이 차게 굳어 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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