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9화. 귀신이 나올지, 괴물이 나올지. (4)
“히이이익!”
“히이익!”
수련장에서 내려오는 백천과 다른 제자들을 본 이들이 기겁하며 뒤로 물러났다.
“어, 얼굴이 왜 그러십니까!”
“누구한테 맞으셨습니까?”
백천의 얼굴이 핼쑥해진 건 이해할 수 있다.
물론 화산에서 제일 잘난 얼굴이 갑자기 십 년 이상 늙어 보이는 광경은 무척이나 충격적이었지만, 어쨌든 그가 망가지는 모습이야 나름 익숙하게 볼 수 있지 않은가.
그들을 진짜 충격에 빠트린 것은 바로 운검과 운암의 반쯤 썩어 있는 얼굴이었다.
“괘, 괜찮으십니까, 사숙?”
“사숙조! 세상에, 이게 무슨…….”
운암이 서글픈 얼굴로 뒤를 돌아보았다. 조금 전까지 그들이 있었던 장소를 바라보는 운암의 두 눈에 서러운 눈물이 찔끔 배어났다.
‘그래서 내가 안 한다고……!’
싫다는데! 어? 제 발로 빠지겠다는데!
그걸 굳이 꾸역꾸역 붙들고 괴롭히는 게 어디 도사가……. 아니, 사람이 할 짓인가!
“대체 뭘 겪으셨길래, 전에 장문인들과 같으……. 아…….”
횡설수설하던 제자들은 그제야 이해했다는 듯 탄성을 흘렸다. 그리고 슬프게 그들을 보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덕분에 운암은 한층 더 슬퍼졌다.
“걱…정 말거라……. 나는 괜찮……. 어억!”
“사숙조오오오오!”
“사수우우우욱!”
쓰러질 듯 휘청대는 운검을 향해 백자 배와 청자 배들이 황급히 달려들었다. 금방이라도 눈물을 뿌릴 듯 절절한 광경이었다.
사형제들의 진심 어린 대처에 윤종의 마음은 훈훈해졌다. 운검에게 달려드는 백자 배와 청자 배 제자들의 얼굴에는 더없는 진심이 담겨 있었다.
참 좋은 일이다. 참 좋은데…….
“저기…….”
“아, 비켜 보십쇼!”
“아니…….”
“나오라고, 인마!”
그의 어깨를 후려치듯 밀치며 너도 나도 운검에게로 달려가는 사형제들의 모습에, 윤종의 눈앞이 부옇게 흐려졌다.
‘나도…… 나도 아프다고.’
이쪽은 사람도 아닌가?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멀뚱히 서 있던 백천과 윤종, 그리고 조걸이 우울한 얼굴로 서로를 돌아보았다.
아픈 윗사람 챙긴다는데 뭐라 말도 못 하겠고…….
“괜찮으십니까, 사숙?”
“……그래, 너는?”
“예, 저는……. 예. 버틸 만합니다.”
아무도 챙겨 주지 않으니 셋이서 서로가 서로를 챙길 수밖에 없었다. 오가는 걱정 속에 쌓이는 우정……은 개뿔이, 뼈마디가 쑤셔 죽을 판이었다.
“끄응. 그런데…….”
“응?”
윤종이 새삼 놀랍다는 듯 말했다.
“이거 직접 해 보니 장난 아닙니다. 오장육부가 다 뒤틀리고, 뼈가 다 부러지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랬지.”
“이런 고통을 한 달이 넘도록 버텨 내신 장문인과 장로님들이 새삼 대단하다 싶습니다.”
“그렇지. 나도 또다시 존경심이 들더구나.”
하지만 조걸은 어쩐지 표정이 뚱했다.
“저는 생각이 좀 다른데요.”
“응? 뭐가?”
“저는 장문인과 장로님들이 대단한 것 이전에, 그분들 몸에다가 이런 짓을 할 생각을 한 청명이 놈에게 새삼 학을 뗐습니다.”
“…….”
“…….”
어…… 그도 그렇지. 그래. 생각하면 그거 진짜 미친놈이지.
‘노인 학대에도 정도가 있지.’
‘사람인가?’
이건 거의 고문에 가까운 일이었다. 현영 장로님들의 말에 따르면 그들이 하는 진기도인은 청명이 놈이 했던 것에 비해 굉장히 순화되었다 하니, 그 고통이 원래는 얼마나 컸겠는가?
“천인공노할 놈 같으니.”
백천이 매번 새롭게 놀라운 청명이 놈의 인성을 곱씹는 와중에 당소소와 백상, 그리고 곽회가 다가왔다.
“오…….”
백천이 반색하며 그들을 바라보았다.
모든 제자들이 다 그들을 꿔다 놓은 보릿자루 취급 하는 건 아닌 모양이었다. 하긴 생각해 보면 이 셋은 오검을 제외한 제자들 중에 그들과 유독 친한 이들이 아니던가?
그는 감격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걱정해 주니 고맙구나. 하지만 우리는 괜찮으니…….”
“아니, 됐고요.”
“……응?”
당소소가 단번에 그의 말을 잘랐다. 그리고 백상이 기다렸다는 듯 물었다.
“어떻습니까, 사숙? 자하신공은! 끝내줍니까? 예? 효과가 어때요?”
“…….”
어……. 우릴 걱정해 준 게 아니었니?
응? 얘들아?
“입 다물고 계시지만 마시고 말씀 좀 해 주십시오! 어땠습니까?”
“그…… 뭐라 말을 하려고 해도 오늘 처음 익힌 거라…….”
말문이 막힌 백천 대신 윤종이 떨떠름한 얼굴로 답했다. 그러자 곽회가 오만상을 찌푸렸다.
“말씀을 안 해 주시겠다?”
“아, 아니, 그런 게 아니라 진짜 오늘 처음 익혀서 잘 모르겠다. 거기다 오늘은 정말 기초만 했…….”
“흥! 자만하지 마십시오, 사형!”
“…….”
“지금이야 사형이 자하신공을 먼저 익혀 앞서 가시겠지만, 제가 어떻게든 따라잡을 겁니다! 이대로 끝났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맞아요! 이 특별계층들 같으니! 절대 안 질 거야!”
“이번에 떨어졌다고 다 끝인 줄 알고! 무슨 수를 써서라도 다시 합격해서 익히고 말 겁니다!”
“맞아!”
당소소와 곽회가 작은 강아지처럼 알알거리고 으르렁댔다.
너희…… 우리한테 왜 이러니…….
그때 당소소가 불퉁한 얼굴로 주변을 둘러보며 물었다.
“그런데 사고는 어디 갔어요? 사고 보러 왔더니.”
“……이설이는 좀 더 수련하겠다고 하더구나.”
백천이 답하자 그녀의 눈에 순간 커다란 감동이 스쳤다.
“아아. 역시 우리 사고, 얼마나 열심히 하시는지……!”
“…….”
사람이…… 사람을 이렇게 차별해도 되는 걸까?
정말 이래도 되는 걸까?
“뭘 봐요?”
“……아니다.”
“흥!”
그러더니 동시에 몸을 획 돌리고는 앞 다투어 달렸다.
“사숙조오오! 비켜 봐요! 내가 의원이야!”
“나도 도우마. 소소야!”
운검이 있는 쪽으로 두 사람이 획 가 버리자 정적이 흘렀다.
물벼락이라도 맞은 것처럼 넋을 놓은 윤종과 조걸을 보며 백천이 고개를 저었다.
“쯧쯧. 사형제간 우애가 저리 없어서야. 그렇지 않느냐, 백상아?”
“…….”
“백상아?”
하지만 믿었던 백상도 어쩐지 백천을 보는 얼굴이 영 뚱했다.
“사형.”
“응?”
“자하신공 익히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하하. 새삼스레…….”
“제 생각에는 화산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사형이 최선을 다해 수련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이를 말이겠느냐? 당연하지.”
백천의 답에 백상이 묵직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수련에 전념하실 테니, 한동안 돈 쓰실 일은 없겠지요.”
……응? 뭐라고?
“이번 달부터 봉록은 반만 나갈 테니 그리 아십시오. 다른 짓 하지 말고 최선을 다해 수련하시길 바라는 이 사제의 마음입니다.”
“백상아?”
“그럼.”
그 말을 끝으로 백상은 찬바람이 나도록 획하니 가 버렸다.
“……백상아?”
얼결에 허공으로 손을 뻗은 채 굳은 백천을 보며 윤종과 조걸이 안타깝다는 듯 말했다.
“쯧쯧쯧. 사형제간의 우애가.”
“저리 없어서야.”
“…….”
결국 또다시 그렇게 셋만 남겨졌다.
미묘하게 화산 내의 공공의 적이 되어 버린 세 사람이었다.
* * *
수련을 이끌어 내는 가장 강한 원동력은 사명감보다는 오히려 재미다. 실력이 쑥쑥 느는 것을 체감하고 나면 제 의지로 수련을 멈출 수 없게 되기 마련이다.
덕분에 현종을 비롯한 장로들은 수련에 불이 붙었다.
이제는 적지 않은 나이지만, 하루하루 나아지는 것을 체감하니 도무지 수련을 멈출 수가 없었다.
물론 각자 맡고 있는 일이 있어 하루를 온전히 수련에 할애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그런 와중에도 잠을 줄이고, 없는 짬이라도 내서 운공을 하며 검법을 익혀 나갔다.
그러다 보니…….
“왜에에에에에에에!”
현영이 입에서 불을 뿜었다.
“왜 진도를 이것밖에 못 나가는 것이냐! 어? 내가 분명 어제 잠 잘 생각 하지 말고 운공 하라 했을 텐데?”
그러자 두 눈이 퀭하게 들어간 조걸이 힘들게 손을 들었다.
“뭐?”
“……사람이 잠을 안 자면 죽습니다, 장로님.”
“아니지! 잠을 안 자면 죽는 게 아니라 죽으면 얼마든지 잘 수 있는 게지! 한번 확인해 볼 테냐?”
“……아니요.”
현영의 앞에 가부좌를 틀고 앉은 이들은 새삼스레 실감했다.
‘청명이가 낫지.’
‘아니, 그래도 그건 좀…….’
‘아냐. 확실히 나을지도 몰라.’
현영은 영 못마땅한 얼굴로 다시 고함을 쳤다.
“내가 이 나이에 네놈들 똥 기저귀까지 갈아 주어야겠느냐! 적당히 알아서 할 만도 하건만!”
“…….”
“에이이이잉! 안 그래도 시간도 부족한데, 네놈들을 가르치느라 내 수련을 할 시간이 부족하지 않느냐!”
백천은 허망한 눈으로 현영을 물끄러미 보았다.
‘백상이가 죽으려고 하던데.’
재경각주가 주판은 안 튕기고 내내 검만 휘두르고 있으니, 남은 이들은 거의 반쯤 죽어 가고 있었다. 그 와중에 또 해 놓은 일에 대한 확인은 확실한 사람이다 보니, 일은 늘어나는데 대충 할 수도 없는 것이다.
“잔말 말고 내일까지는 어떻게든 화후를 이 성까지 올려야 한다! 알겠느냐?”
“…….”
“왜 대답이 없어!”
장로님…….
그게 하고 싶다고 되는 게 아니잖습니까…….
모두 억울함을 드러내지도, 삼키지도 못하고 어쩔 줄을 몰랐다. 그때 현종이 허허 웃으며 앞으로 나섰다.
“현영아.”
“예, 장문인.”
“너무 닦달하지 말거라. 그게 그리 닦달한다고 되는 일이더냐?”
“……예. 제가 마음이 급해서…….”
“그리 화내고 윽박지르지 않아도, 우리 아이들은 다 열심히 할 것이다. 그렇지?”
“예, 장문인!”
“그래. 열심히 하면 사흘 내로는 이 성에 오를 수 있을 것이다.”
“…….”
예? ……사흘이요? 고작 하루 더 늘려 주신 겁니까?
“열심히 하면 말이다. 열심히 하면.”
“…….”
장문인?
사흘 내로 이 성에 다다르지 못한 이들은 열심히 하지 않은 놈으로 간주하겠다는 뜻인가요? 예?
“허허허허. 다들 할 수 있다. 나는 너희를 믿는다.”
“…….”
윽박지르든, 자상한 격려의 탈을 썼든 결론이야 같았다.
어떻게든 이 지옥 같은 상황에서 벗어나야겠다 생각한 백천이 슬며시 손을 들었다.
“저…… 장문인.”
“그래, 말해 보거라.”
“그…… 저희가 장문인과 장로님들의 가르침을 받기 싫다는 건 절대 아닙니다만, 그리 공사가 다망하시면 차라리 청명이에게 일을 넘기시는 것이…….”
“청명이?”
“예.”
“저거 말이냐?”
현종이 슬쩍 턱짓하자 가부좌를 틀고 앉은 모두의 시선이 일제히 뒤로 돌았다.
우드드득.
“아오, 씨바! 미치겠네!”
오도도독!
“목은 왜 또 돌아가!”
“…….”
뒤쪽에서 펼쳐지는 기괴한 광경을 말없이 바라보던 모두가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다시 고개를 제자리로 돌려놓았다.
“제 생각이 짧았습니다, 장문인.”
“그래. 알면 됐다.”
현종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는 그도 저 요괴 같은 놈이 뭔 짓을 하건 관심을 두고 싶지 않았다. 그래, 뭐 저러다 말겠지. 항상 그랬으니까.
“자, 그럼 다시 시작하자꾸나. 말했듯이 결코 급해서는 안 된다. 마음에 평온이 깃들어야 신공이 흔들리지 않는 법이다. 하지만 열심히 한다면 빨리 해낼 수 있다.”
“…….”
왼쪽을 보면서 동시에 오른쪽을 보라는 말과 다름없었다.
제자들의 얼굴이 검게 죽어 갔다.
‘진짜 뒈지겠다…….’
‘그냥 익힌다고 하지 말걸.’
‘엄마…….’
“자, 시작해라!”
“예!”
가부좌를 튼 이들이 내부를 관조하며 운기를 시작했다. 현상과 현영이 그들의 곁에서 혹여 문제가 생기지 않을지 지켜보았다.
현종의 입가에 미소가 맺혔다.
‘기특한 녀석들.’
결코 쉽지 않은 과정이라는 걸, 이미 겪은 그들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제자들은 입으로는 앓는 소리를 할 지언정 단 한 번도 수련을 건성으로 하지 않았다.
이런 아이들이 있으니 화산이 강해지는 거겠지.
그리고…….
저벅. 저벅.
뒤쪽에 있는 절벽 쪽으로 걸어간 현종은 아래로 펼쳐진 화산파, 그중에서도 대연무장 쪽을 바라보았다.
“타아아앗!”
“흐아아아아압!”
화산의 제자들이 땀을 뻘뻘 흘리며 수련에 전념하고 있었다.
‘저들도 기특…….’
“죽인다, 윤조오오오오옹!”
“조걸! 조걸! 조걸부터 잡는다! 조걸!”
“나는 원래 백천 사형이 마음에 안 들었어! 얼굴은 반질반질 기생오라비처럼 생겨 가지고!”
“와, 선 넘네?”
“절대 안 진다! 절대! 나도 익힐 거다, 자하신공!”
“으아아아앗!”
귀에 들려오는 소리에, 현종의 눈가가 살짝 떨렸다.
“음…….”
뭐, 어쨌든 열심히만 하면 되는 거지.
앞서 가는 이는 최선을 다하고, 따르는 이들은 앞서가는 이를 목표로 정진해 나간다. 언젠가 청명이 말했던 이상적인 화산의 모습이 지금 이곳에 있었다.
“좋구나.”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을 지나 화산이 마침내 여기까지 온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 더욱더 뻗어 나가겠지.’
선조들이 남긴 것을 이어 가며 스스로 그 뜻을 놓지 않는다면, 화산은 언제고 과거를 딛고 일어나 그 이상의 문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완벽하…….’
콰드드드드드드득!
“으아아아아아아! 씨바! 미치겠네! 진짜! 왜 안 되냐고오오오오오오오오!”
현종은 그 소리가 들린 방향을 아예 등지고 섰다. 그리하여 이 화산에 남은 유일한 흉한 것을 시선에서 치웠다.
‘선조시여. 화산을 보살피소서.’
“아아아아아아아아악! 빡쳐!”
그게 아니면…….
저 새끼라도 어떻게 좀 해 주시든가.
결국 깊고 깊은 한숨이 푹 새어 나왔다.
나아가는 자. 뒤따르는 자. 그리고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자.
그 모든 이들이 흘린 땀을 조금 서늘해진 바람이 식혀 냈다.
각자의 이상을 담고 수련을 거듭하는 나날이 계속되고, 또 계속되었고…….
어느새 화산에도 찬바람 부는 계절이 찾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