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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귀환-738화 (736/1,567)

738화. 귀신이 나올지, 괴물이 나올지. (3)

우드드득!

“어?”

콰드드드득!

“어어?”

우득! 우드득!

“켁!”

목을 옆으로 꺾은……. 아니, 목이 옆으로 꺾인 청명이 도무지 이해가 안 간다는 듯 머리를 쭉쭉 잡아당겼다.

“끄으으응. 이게 참…….”

귓가에 청진이 놈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 거 내가 뭐랬소! 예? 내가 뭐랬냐고!

“시끄러, 이 새끼야!”

확 지금이라도 쫓아가서 무덤 파 엎어 버릴라!

빠득빠득 이를 간 청명은 목이 뻐근한 탓에 머리를 받치듯 잡고 한숨을 내쉬었다.

‘이게 참 희한하게 잘 안 되네.’

무학을 만든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끄응. 칠매검 같은 간단한 검술이면 이 자리에서도 뚝딱뚝딱 만들어 낼 수 있는데.”

칠매검을 간단한 검술쯤 취급하는 것도 평범한 이들이라면 기겁할 노릇이지만, 과거의 매화검존이었고 화산 역사상 검술에 대한 이해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청명에겐 딱히 어렵지 않다.

하지만 신공, 그것도 자하신공쯤 되는 광세절학을 변형한다는 것은 천하의 청명에게도 까다로웠다.

보통 이런 복잡하고 난해한 무학을 변형할 때는 한 문파의 수뇌가 모조리 달라붙어서 오류를 검증하고, 시험하고, 몇 번이고 확인을 거친 뒤에야 조심스레 익혀 보기 마련이다.

그 과정을 거치고도 새로운 무학을 익히다 죽거나 반신불수가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절세무학을 창안하는 건 그만큼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그 모든 과정을 깔끔하게 건너뛰고 대충 변형한 무학을 다짜고짜 제 몸으로 익히기부터 했으니 주화입마가 찾아오는 것도 이상하지 않았다.

오도도도독!

“아오, 씨!”

척추가 뒤로 꺾이는 느낌을 받은 청명은 벌렁 드러누워 끙끙댔다.

- 내 그러다 뒈질 줄 알았지.

“이 새끼가?”

내가 뒈지면 너는 무사할 줄 알아? 너는 내가 오래 살길 바라야 돼. 아니, 니들 전부 내가 오래 살길 바라야 될 거다! 다 대가리 깨지기 싫으…….

- 뭐, 이 새끼야?

어……. 장문사형은 빼고요.

청명은 누운 채로 한숨을 연거푸 내쉬었다.

“끄응, 이 방법이 아닌가?”

다른 사람 같으면 죽어도 벌써 열 번은 죽었다.

청명이야 광활하게 뻗어 나갈 미래를 위해서 토대를 마련하는 데만 몇 년을 썼으니 이 정도 부작용만 겪고 끝나는 것이다.

기반이 부실하고 주춧돌을 제대로 심지 못한 건물은 조금만 기울어져도 무너지지만, 기둥을 단단하게 박고 기초공사에 공을 들인 건물은 조금 기울어진다고 해서 쉽사리 무너지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다.

새로운 몸으로 깨어난 이후, 쭉 기초를 다지는 데만 수년을 써 온 청명이다.

덕분의 그의 육체는 과거와는 비할 수도 없이 완벽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고, 몸 안에 흐르는 내력도 강호 역사상 유래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맑고 청정했다.

그러니 이 정도 부작용에서 끝난 것이지, 평범한 사람 같으면 벌써 기경팔맥이 뒤틀리고 전신이 꺾여 피를 토하며 골로 갔을 확률이 높았다.

“끄으으으응.”

청명의 두 눈에 고민이 어렸다.

‘어떻게 하지?’

지금이야 몸뚱이 덕에 버티고 있지만, 이러다 정말 뒈질지도 모른다. 차라리 지금이라도 그냥 자하신공을 원형대로 익히는 게…….

- 그래, 거 고집 부리지 말고 그대로 익히쇼. 그거 내가 고심해서 잘 정리해 둔 거요. 몇 번 말하지 않았습니까? 사형한테는 무리라니까 그러네. 낄낄낄낄.

이 새끼가?

청명의 두 눈에 불똥이 튀었다.

“오냐! 누가 이기나 한번 해보자!”

벌떡 일어난 그는 맹렬하게 내력을 끌어 올렸다.

“되는 대로 다 해 보다 보면 그중 하나는 얻어걸리겠지! 몸이 좋은데 머리를 왜 써! 빌어먹을 몸뚱이 믿고 간다!”

선계에서 청명의 사형제들이 이 말을 들었다면 다들 얼굴을 감싸쥐며 통탄하고 말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 말이 딱히 틀린 것도 없었다.

우드득!

“악!”

우드드드득!

“아아아아악! 빌어처먹을!”

그렇게 그날 밤이 새도록 청명의 처소에서는 뼈 부러지는 소리와 비명이 쉴 새 없이 울려 퍼졌다.

벽을 타고 전해지는 그 괴성에 백매관을 처소로 쓰는 이들 모두 잠을 설치며 악몽에 시달렸다는 것은 그리 중요치 않은 일이었다.

* * *

“흐음.”

현영이 뭔가 아쉬운 눈치로 앞에 선 이들을 훑어보았다.

그리고 그 시선을 받는 이들은 하나같이 반쯤 질린 눈으로 현영의 눈을 피했다.

‘또 뭘 하시려고.’

‘무서워 죽겠네, 진짜.’

‘차라리 청명이가 낫지.’

‘에이, 그건 아닙니다.’

입맛을 다신 현영이 마음에 안 든다는 듯 고개를 내저으며 중얼거렸다.

“두엇 정도는 더 떨어뜨렸어야 하는 건데.”

아무래도 여기에 남아 있는 이들의 수가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럼 제가…….”

“넌 입 다물어라.”

“……예.”

넌지시 손을 들었던 운암이 힘없이 손을 내렸다.

백천, 유이설, 윤종, 조걸, 운검, 운암.

살아남은 이는 딱 여섯이었다.

처음 현종과 장로들이 선별한 인원에서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결과적으로는 그들의 눈이 옳았다는 사실이 증명된 것이다.

백상과 당소소가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분전했고, 곽회는 근성 하나만으로는 합격점을 받았지만 결국 현영이 내민 기준을 통과하는 데는 실패했다.

“운자 배 둘, 백자 배 둘에 청자 배 둘이라. 짠 듯이 남았구나.”

그 말에 조걸이 슬그머니 손을 들었다.

“왜?”

“청명이도 청자 배인데요?”

“…….”

모두의 시선이 조걸에게로 꽂혔다. 한심하다는 시선이 가득가득 담긴 눈빛들에, 조걸은 시무룩하게 중얼거렸다.

“……틀린 말은 아닌데.”

“너는 제발 생각이란 것도 좀 하고 말해라.”

“아니, 될 수 있으면 그냥 말을 하지 마라.”

사람이 한번 미운털이 박히면 맞는 말을 해도 욕을 먹는다는 사실을 절절히 실감한 조걸이 찔끔 배어나는 눈물을 훔쳐 냈다.

“쯧쯧. 저 반편이 같은 놈.”

이제라도 저놈을 떨어뜨리는 게 맞지 않을까 고민하던 현영이 고개를 내저었다.

“여하튼 다들 고생이 많았다.”

“예, 장로님!”

“크흠.”

현영이 작게 헛기침하고 말을 이었다.

“알고 있겠지만, 자하신공은 현 화산파 최고의 기공이다. 아니, 지금뿐 아니라 화산이 생긴 이래 가장 훌륭한…….”

“현영아.”

그때 끼어든 목소리에 현영이 입을 닫고 슬쩍 그쪽을 보았다. 현종이 손을 휘휘 젓고 있었다.

“그냥 사설 떼고 본론만 하거라.”

“…….”

“어서.”

“눼.”

작게 구시렁거린 현영이 다시 제자들을 바라보았다.

“오늘부터 너희가 자하신공을 익히게 될 것이다. 화산의 제자들 중 처음으로 자하신공을 익히게 되는 것이니만큼, 다른 이들의 본보기가 되어야 한다. 다들 최선을 다하거라! 알겠느냐?”

“예! 장로님!”

우렁찬 대답이 흡족하여 현영은 작게 미소 지으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와 동시에 화산 제자들의 두 눈이 뜨겁게 타오르기 시작했다.

‘드디어!’

‘마침내!’

자하신공이다.

대대로 장문인들만이 익혀 왔던 화산최강의 신공.

그런 신공을 익힐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에 가슴이 절로 벅차올랐다.

그럴 만도 했다. 이 자격을 손에 넣기까지 얼마나 개고생을 했던가?

“……길었지.”

“지독했죠.”

“내가 근 한 달 동안 마신 물이 평생 먹은 물보다 많아.”

“저는 이제 물 안에서 낮잠도 잘 수 있습니다.”

돌이켜 보면 눈물이 앞을 가리는 고행이었다. 하지만 이곳에 있는 이들은 그 험한 길을 당당히 이겨 내고 결국에는 자하신공을 익힐 자격을 손에 넣었다.

“질문.”

현영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또다시 조걸이 제일 먼저 손을 들었다.

조금 걸쩍지근한 눈으로 시선을 준 현영이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해봐라. 헛소리는 하지 말고.”

“장로님! 신공을 익혀야 하는데 비급은 어디 있습니까?”

“흐음. 좋은 질문이다. 비급 말이지.”

현영의 입가에 미소가 어렸다.

“신공을 익히는데 비급은 당연히 필요하지. 물론 너희에게 나누어 줄 비급은 이미 준비되어 있다.”

“오!”

“오오!”

제자들의 눈에 기대가 어렸다.

자하신공의 효능은 이미 증명된 것이나 다름없다. 당장 지금 그들의 눈앞에 있는 세 사람이 그 몸으로 보여 주지 않았던가?

수련 내내 현영은 그들이 짊어지기도 벅차 하는 커다란 바윗덩어리를 한 손으로 번쩍번쩍 들어 댔고, 현상은 그들이 물속에서 숨이 꼴딱꼴딱 넘어갈 지경이 되어도 편안하기 짝이 없는 얼굴로 시범을 보였다.

물론 그건 현자 배의 높은 내력이 뒷받침되었기 때문이겠지만, 어쨌든 자하신공을 익히기 전에는 절대 보여 줄 수 없었던 신위였다.

그럼 그들이 자하신공을 익히면 얼마나 더 강해질 것인가?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뛰었다.

“그럼 비급은 어디에 있습니까?”

“음. 그래. 그 비급. 안 그래도 그것 때문인데.”

“예?”

백천의 눈이 의심으로 물들며 점점 가느스름해졌다. 현영의 묘한 미소가 그를 괜스레 불안하게 만들었다.

“너희도 알다시피…… 우리가 이미 청명이 놈과 함께 자하신공을 익혀 보지 않았더냐?”

“……예?”

청명이라는 이름이 나오는 순간 모두가 흠칫 몸을 떨었다. 저 이름이 나오는 일치고 좋게 풀린 기억이 없다.

“우리가 해 봐서 아는데.”

“…….”

저 말도 뭔가 불행의 상징 같은 말이었다. 누군가의 입에서 저 말이 나오고 일이 수월하게 풀린 적이 단 한 번이라도 있었던가?

“어설프게 구결만 가지고 운기 시작하는 것보다는 누군가가 진기도인(眞氣導引)을 해 주는 쪽이 훨씬 안정적이고 신속하게 기초를 다질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

“그러니 너희는 구결을 익히기 전에 먼저 우리의 도인부터 받자꾸나.”

아…….

백천이 더없이 흐뭇한 얼굴로 웃었다.

진기도인이란 더 높은 경지에 오른 이가 다른 이의 기운을 움직여 길을 열어 주고 이끌어 주는 것을 의미한다. 이끄는 쪽이 굉장한 심력을 소비하는 대신에 따르는 쪽은 한결 수월하게 기운을 운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저기…….”

“음?”

백천이 매우 떨떠름한 목소리로 말했다.

“제 기억에는…… 그러니까, 그…… 장로님들이 청명이 놈의 도인을 받으면서 거의…… 네. 그게…….”

더듬거리며 차마 말을 잇지 못하는 백천 대신 운검이 중얼거렸다.

“사람 몰골이 아니었지.”

“예. 그…… 그랬었던 것 같은데…….”

백천이 어색하게 웃으며 조심스레 물었다.

“그거랑은 다른 거죠?”

“흐으으음.”

장로님?

왜 그렇게 웃으십니까? 장로님?

현영이 히죽히죽 웃었다. 그뿐이랴. 심지어는 그 뒤에 있는 현종과 현상마저도 비슷한 얼굴이었다.

화산 권력의 정점에 있는 세 사람이 같은 얼굴로 웃는 모습은 바라보는 제자들을 공포에 질리도록 만들기에 충분했다.

“그야 뭐…… 겪어 보면 알 일 아니겠느냐?”

“예?”

“그게 뭐가 중요하더냐. 그럼 안 익히려고?”

백천은 꿀 먹은 벙어리처럼 말을 잃었다.

“허허, 때로는 모르는 게 약일 때도 있는 법이다. 그러니…….”

현영이 양 소매를 걷고 앞으로 나섰다. 그리고 현종과 현상도 소매를 걷어붙이며 다가왔다.

“누구부터 하겠느냐?”

“…….”

“괜찮아. 괜찮아. 걱정할 것 없다. 우리가 이미 청명이 놈에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제대로 배워 두었다.”

뭘 제대로요? 제대로 아프게 하는 법요?

장로님?

“시간 끌 것 없이 배분대로 하자꾸나. 운검이, 운암이. 그리고…… 그래, 백천이.”

현영의 말에 백천이 단호하게 손을 들었다.

“왜?”

“입문은 사매가 더 빨랐습니다.”

“……나와.”

“예.”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백천은 도살장에 끌려 나가는 소처럼 힘없이 걸음을 옮겼다.

현자 배 세 사람의 득의양양한 미소가 쏟아졌다.

청명이 자리를 비웠음에도 화산은 이미 과거로 돌아가기에는 너무 늦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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