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7화. 귀신이 나올지, 괴물이 나올지. (2)
“끄으으응.”
식당으로 향하는 백천의 걸음이 천근만근이었다.
‘죽겠네.’
전신이 물 먹은 솜처럼 무겁다. 아니, 겨우 그 정도가 아니라 어깨 위에 집채만 한 바위를 짊어지고 가까스로 걷는 느낌이었다.
- 뭐? 자하신공? 이따위 실력으로 자하신공을 익히겠다고? 선대 장문인들께서 보신다면 뭐라 하시겠느냐!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엔 꿈도 꾸지 마라, 이놈들아!
현영의 매서운 목소리가 귀에 선했다. 백천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마귀가 있어. 마귀가.’
화산에 마귀는 청명이 놈밖에 없는 줄 알았건만, 설마 그보다 더 오래된 마귀가 있을 줄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청명이 사람의 몸을 한계까지 몰아붙여 ‘과연 이러고도 몸이 버틸 수 있나?’를 고민하게 만드는 사람이라면, 현영은 사람의 정신력을 한계까지 몰아붙여 ‘과연 내가 끝까지 포기하지 않을 수 있을까?’를 고민하게 만드는 사람이었다.
“죽을 것 같습니다, 사숙…….”
“……나도 그렇다.”
옆에서 휘청대는 윤종을 보며 백천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물속에서 검을 휘두른다고 해서 과하게 힘든 것은 아니다. 물론 숨을 쉬지 않은 채로 내력을 운용하는 건 힘든 일이지만, 전신에 바윗덩어리를 주렁주렁 달고 절벽을 타는 것처럼 사람을 극한으로 몰아넣지는 않는다.
관건은 바로 자신의 의지로 버텨야 한다는 것.
절벽은 오르면 끝이다. 아무리 힘들고 위험해도 그 끝이 있다.
하지만 물속에서 검을 휘두르는 건 끝이 없는 일이다. 백천조차도 몇 번이나 발에 묶인 줄을 잘라 버리고 물 위로 솟구쳐 오르고 싶은 충동을 참아 내야 했다.
그렇기에 이 수련이 다 끝나고 나면 피곤함은 둘째 치고 머릿속이 안개라도 낀 듯이 무거웠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정말 합리적인 수련법이다.’
왜냐면 지금 그들은 강함을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자하신공을 익힐 수 있는 자격을 증명하는 중이니까.
신공이란 내공을 운용하는 방법과 마음을 다스리는 방법, 두 가지를 혼합한 것이다.
다시 말해 검을 잘 쓰는 것과 몸이 강건한 것은 신공을 익히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직 단단한 정신력과 굳건한 심지(心地)만이 신공을 익히는 바탕이 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수련법은 제자들이 얼마나 강한 정신력과 인내심을 지니고 있는지 판별하는 데 최적이라 할 수 있다.
그래……. 최적이긴 하지…….
‘당장 내가 뒈질 것 같아서 문제지.’
백천이 무거운 손을 미적미적 들어 식당 문을 열고 들어섰다.
“……못 먹을 것 같은데요?”
“그래도 먹어야지. 내일 수련을 버티려면.”
백천은 한숨을 쉬며 빈자리를 찾아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응?”
그러다 문득 뭔가 이상한 것을 깨달았다.
‘다들 뭘 보고 있는 거지?’
벌써 식당 안에 앉아 있던 다른 이들의 시선이 모두 한쪽으로 쏠려 있었다. 어째 표정들이 하나같이 뭔가 기이한 것을 보는 듯했다.
자연히 그쪽을 함께 바라본 백천은 이내 납득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청명이네.”
“네, 청명이네요.”
“새삼스러울 것도 없이 청명이야.”
모두가 납득한 얼굴로 고개를 돌리려 했다. 제자들이 청명이 놈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하는 일이 어디 어제오늘 일이던가. 보나마나 또 뭐든 사고를 쳤겠지.
평소 같으면 오검도 이 새끼가 또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파악하기 위해 바로 움직였을 테지만, 오늘은 당장 쓰러질 판이다 보니 그럴 엄두도 의욕도 나질 않았다.
정신 건강을 위해 깔끔하게 관심을 끊으려던 백천이 순간 움찔했다. 방금 뭔가 이상한 게 눈에 걸린 듯했다.
“어?”
청명을 향해 다시 천천히 시선을 돌린 그는 멍하니 입을 벌렸다.
허허.
녀석.
사숙이 왔으면 아는 척이라도 할 것이지. 못 볼 걸 본 것처럼 고개를 돌리고 있네.
그래. 고개를 완전히 뒤로 돌리고…….
청명아…… 너 왜 그러고 밥을 먹니?
목을 그렇게 돌린 채로 밥이 넘어가나?
“……저놈 왜 저러는 거냐?”
“내버려 두십쇼. 저놈이 미친 짓 하는 게 어디 하루 이틀입니까?”
“하루 이틀도 아닌데, 어떻게 매번 저렇게 색다르고 참신하게 미친 짓을 하지?”
백천의 두 눈이 가느스름해졌다.
건너편 식탁에 앉은 청명은 여전히 해괴한 자세로 밥을 먹고 있었다. 어깨까지는 반듯한데 목만 거의 뒤쪽으로 돌아가 있으니 기이하기 짝이 없었다.
“……다 흘리네.”
“입에서도 질질 흘러나오는 것 같은데?”
백천은 차마 더 보지 못하고 눈을 질끈 감았다.
‘청명아, 제발.’
네가 제정신이 아닌 건 이제 화산의 모든 사람들이 과할 정도로 잘 알고 있으니 굳이 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잖느냐?
결국 참다못한 백천은 청명을 향해 힘없이 터덜터덜 다가갔다. 하필이면 청명의 앞쪽으로 다가간 터라 그가 볼 수 있는 건 그놈의 뒤통수뿐이었다.
“청명아.”
“응? 사숙이야?”
……사람이 부르면 적어도 고개는 돌리고 말을 해야지.
백천은 떨떠름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그…… 이제 와서 새삼 이런 걸 묻는 것도 참 의미 없다 싶기는 한데…… 혹시 무슨 문제라도 있냐?”
“응? 뭐가?”
“문제가 있는 게 아니라면 그렇게 ‘나는 오늘부로 모든 세상을 외면해 주겠다’는 태도로 밥을 먹는 까닭이 따로 있느냐?”
“아아, 이거?”
청명이 씨익 웃……. 아니, 어쩐지 씨익 웃은 것만 같은 뒤통수만 보이며 말했다.
“별것 아냐. 그냥 조금 어…… 수련하다 주화입마가 와 가지고.”
“아, 그렇구나. 내가 쓸데없는 걸 물……. 뭐, 인마?”
대충 대답하며 돌아섰던 백천이 순간 벼락같이 다시 청명을 향해 다가갔다.
“지금 뭐, 뭐가 왔다고?”
“어, 가볍게 주화입마가 온 것 같은데……. 하, 씨. 다른 데는 다 괜찮은데 목이 안 돌아가.”
할 말을 잃은 백천이 입만 쩍 벌리고 있자 청명은 귀찮다는 듯 구시렁거렸다.
“이게 참, 그…….”
그러더니 대뜸 제 머리를 움켜잡고는 막무가내로 꺾고 돌리기 시작했다.
우드드드드득! 우드드드득!
“하, 하지……. 하지 마! 새끼야!”
목 부러지는 소리가 들리잖아, 이 미친놈아!
아니, 미친! 대체 뭘 하면 목이 돌아가는 주화입마가 와!
“거, 이상하네……. 분명히 제대로 된 것 같았는데, 어디부터 고쳐야 되지?”
“…….”
“끄응. 밥은 나중에 먹고 일단 이것부터 어떻게 해 봐야겠어.”
청명이 식탁을 더듬대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괘, 괜찮니?”
“보면 몰라? 멀쩡하지!”
“…….”
도대체 이놈의 ‘멀쩡’은 범위가 어디까지인가?
이정도면 팔다리 하나 없는 정도는 멀쩡하다고 취급해도 괜찮을 것 같은데…….
“걱정 마, 걱정 마. 이런 건 잘 자면 나아.”
“…….”
“하하하. 살다 보니 별일을 다 겪네. 하하하하.”
청명이 휘적휘적 걸어 입구로 향한다.
쿵!
“어. 입구가 여기가 아닌…….”
쿵!
“에이, 씨!”
쿵! 쿵!
벽에 두어 번을 더 처박은 뒤에야 문을 찾아낸 청명이 하하 웃으며 밖으로 나갔다. 식당 안에 정적이 흘렀다.
그 기경할 꼴을 멍하니 바라보던 백천의 옆으로 넋이 나간 얼굴의 조걸과 윤종이 다가왔다.
“괜찮을까요?”
“……이젠 하다하다…….”
백천은 덜 닫힌 문을 망연히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괜찮겠……지?”
“…….”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 * *
“…….”
“…….”
“…….”
청명을 바라보는 세 사람의 눈에서 영혼이 점점 빠져 나갔다.
“사숙, 사숙.”
“…….”
“와서 이거 좀 잡아 줘 봐. 하 씨, 이게 팔이…….”
풀렸던 백천의 눈에 간신히 초점이 돌아왔다.
다행히 뒤로 돌아갔던 청명의 목은 제자리를 찾은 모양이었다. 그건 참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다만 사소한 문제가 있다면…….
“……팔은 또 왜 그러냐?”
“어……. 그냥 별거 아냐. 좀 사소하게 주화입마가…….”
“사소한?”
“응. 사소한.”
“너 지금 팔이 어깨 뒤로 넘어가 있는데?”
오른팔이 머리 뒤로 넘어가 등에 닿아 있고, 반대쪽 다리가 완전히 뒤로 돌아가 발꿈치가 앞으로 와 있었다. 그러다 보니 허리는 또 완전히 옆으로 꺾여서 머리가 금방이라도 바닥에 닿을 것 같았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사람이 배배 꼬인 채로 꺾여서 흡사 낫의 모양새를 하고 있었다.
‘일부러 하라고 해도 저렇게는 못 하겠다.’
그런데 뭐? 사소한?
“아니, 이 미친 새끼야! 대체 무슨 짓을 하는 거야! 몸뚱이가 자꾸 왜 그러는데!”
“이상하다……. 이럴 리가 없는데. 분명히 완벽하게 했는데.”
청명이 안 괜찮은 모양새로 태연하게 고개를 갸웃했다.
“대추혈에서 명문혈로 내려가는 방향이 잘못됐나? 그것도 아닌데?”
“일단 의, 의약당에 가자, 청명아! 의약당에! 이러다 죽어!”
“에이. 그런 거 아니라니까. 이런 건 금방 나아.”
“…….”
“근데 옷 입기가 너무 힘들더라고. 쯧. 알았어, 사숙. 일단 내가 이거부터 고치고 올게.”
“…….”
“그럼 나중에 봐.”
밝게 인사하고 앞으로 걸어가려던 청명이 순간 기우뚱했다.
“으아아아아아!”
백천과 윤종이 하얗게 질린 얼굴로 달려들어 쓰러지는 청명을 붙잡았다.
그러자 청명이 이해가 안 된다는 듯 물었다.
“뭐지? 왜 앞으로 가려고 했는데 뒤로 가지?”
“야, 이 새끼야! 한쪽 발이 뒤로 뒤틀려 있는데 앞으로 가지겠냐!”
“아, 그러네!”
머쓱하게 웃은 청명은 다시 자세를 잡았다.
“하하. 걱정하지 마. 안 익숙해서 잠깐 실수한 거야.”
“실수 두 번 했다가는 사람 죽겠다! 그냥 지금 바로 의약당에 가자니까!”
“걱정할 것 없어. 내 몸은 내가 잘 안다니까. 이런 건 침 바르면 나아.”
“…….”
발을 슬쩍슬쩍 두어 번 내밀어 본 청명은 안 되겠다 싶었는지 멀쩡한 쪽으로 깨금발을 했다.
“좋아! 그럼 나중에 봐.”
콩! 콩! 콩!
강시처럼 콩콩 뛰며 청명이 저만치 멀어졌다.
혼백이 이탈한 얼굴로 그 광경을 바라보던 백천의 귓가에 풀죽은 조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정말…… 괜찮을까요?”
“…….”
백천은 양손으로 제 얼굴을 감싸고 흐느꼈다.
“제발…….”
“네?”
“제발…… 평범하게 좀 살 순 없을까? 응?”
“……포기하면 편합니다. 사숙.”
백천의 기름한 두 눈에서 맑은 눈물이 흘러내렸다.
* * *
백천과 윤종은 사뭇 긴장한 얼굴로 말없이 청명을 바라보았다.
‘멀쩡한 것 같지?’
‘겉으로 보기에는 괜찮아 보이지 않습니까?’
눈빛을 주고받고 다시 확인해도 다행히 오늘은 청명이 놈이 멀쩡해 보였다. 일단 겉으로는.
‘하지만 안심하기는 이르지.’
백천이 조심스레 그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두근대는 심장을 억누르며 넌지시 불렀다.
“청명아.”
그러자 청명이 환하게 미소 지으며 고개를 들었다. 백천은 그 모습을 보고 화색을 띠며 물었다.
“이제 괜찮으냐?”
그러자 청명이 더욱 환히 미소를 지었다.
“치료는 다 됐……. 청명아?”
더없이 밝은 미소.
하지만 그게 전부였다. 백천은 천천히 시선을 내렸다. 청명의 소매 아래에서 손이 파닥거리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뭔가를 잡고 써 대는 시늉을 하는 듯했다.
“걸아.”
“예, 사숙.”
“……지필묵 가져와라.”
“…….”
스윽. 스으윽.
손에 붓을 쥐여 주고, 앞에 종이도 깔아 주었다. 하지만 아무래도 팔이 앞으로 펴지지 않는 모양이었다. 종이를 바로 손앞에 가져다주고서야 청명이 놈이 무언가를 써 내려갔다.
[소리가 안 나옴(啞巴).]
“…….”
[앞으로 못 걸음(直進不可).]
백천의 눈두덩이 움찔움찔 경련을 일으켰다.
“야, 이…….”
뭔가 할 말을 찾던 백천이 결국 포기하고 머리를 쥐어뜯었다.
“그럼 여기까지는 어떻게 왔는데, 이 새끼야!”
청명이 싱긋 웃고는 다시 종이 위에 글씨를 휘갈겼다.
[걱정하지 마. 금방 나음.]
붓을 놓은 청명이 벌떡 일어났다. 그러더니 만면에 미소를 띤 채 갑자기 뒤로 넘어갔다.
“히이이익!”
백천이 화들짝 놀라 그를 잡으려 팔을 뻗었다. 하지만 청명은 이게 다 의도한 바라는 듯 머리 뒤로 손을 뻗어 몸을 지탱하더니 배를 위로 쭉 올린 자세 그대로 두 팔과 다리를 놀려 거미처럼 도도도 멀어져 갔다.
순식간에 멀어지는 그를 멍하니 바라보다 윤종이 힘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저쯤 되면 거의 요괴 아닙니까?”
백천은 그저 말없이 양손으로 얼굴을 감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