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귀환-734화 (732/1,567)

734화. 다 너희 잘되라고 하는 거다. (4)

“음.”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현종은 빙그레 웃었다.

뭐라고 해야 할까…….

뜨거운 열정.

흘러내리는 땀방울.

최선을 다해 가르치는 스승들과 그 가르침을 온 힘을 다해 따라가는 제자들.

그 아름답고 흐뭇한 광경을 보고 있으니 드는 생각은 단 하나뿐이었다.

‘괜찮을까?’

이거 진짜 이래도 되나?

집채만 한 바위를 들고 부들대는 제자들과 그 바위 위에 올라서서 일장 연설을 늘어놓는 현영을 보니 식은땀이 자꾸 흘렀다.

“발이 멈추지?”

“끄으으으으으으.”

“아으으으…….”

“보법을 밟으라고 했더니, 제자리에 서서 뭣들 하는 거냐? 응? 화산에 보법이 그런 초식도 있었나? 당장 움직이지 못해?”

바윗덩어리를 든 제자들의 전신에서 땀이 비 오듯 흘러내렸다. 밟고 선 땅이 젖어 색이 짙어 있을 정도였다.

“내가 다 너희 잘되라고 하는 거다. 이 정도도 못 해서야 어디서 밥값을 하겠느냐!”

바로 그때였다.

“으허어억!”

바위를 들고 발을 옮기던 종회가 더는 버티지 못하고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동시에 들고 있던 바위가 그의 머리 위로 떨어져 내렸다.

“아아악!”

“안 돼!”

쿠우우우웅!

종회가 두 눈을 질끈 감았다. 하지만 희한하게 각오했던 고통이 느껴지지 않았다.

‘벌써 죽었나?’

아니, 설마 그럴 리는…….

슬그머니 눈을 뜨니 앞에 빛을 등진 사람이 우뚝 서 있었다. 그를 올려다본 종회의 얼굴에서 서서히 핏기가 가셨다.

‘에이.’

차라리 죽을걸.

바위를 받쳐 들고 있는 현영의 얼굴은 사람이라기보다 악귀에 가까웠다.

한 손으로 바위를 들고 다른 한 손…….

응?

한 손?

쿠우우우우웅!

집채만 한 바위를 옆으로 던져 버린 현영이 무섭게 눈을 부라렸다.

“뭐 얼마나 했다고 벌써 힘이 빠져서는!”

“…….”

“에이이잉! 너는 안 되겠다! 사형!”

“오냐.”

“얘는 열외입니다! 정신교육 확실하게 시켜 주십시오.”

“알겠다.”

현상이 빙그레 웃으며 저벅저벅 다가왔다. 그러더니 종회의 뒷목을 탁 낚아채어 대롱대롱 들었다.

“허허. 너는 나랑 좋은 데 가자꾸나.”

“…….”

“허허허허.”

그리고 느긋하게 걸어 수풀이 우거진 쪽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그 안쪽에서 끔찍한 비명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아아아아아아아악! 아악! 장로님! 장로님! 잘못했습니다! 장로니이이이이이임!”

그 비명을 들은 제자들의 얼굴이 순간 핼쑥해졌다.

‘뭐, 뭘 당하는 거지, 대체?’

‘궁금하다. 하지만 절대 알고 싶진 않다.’

‘죽어도 떨어뜨리지 말아야지!’

현영은 아직 바위를 들고 있는 제자들을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그래, 그래. 잘하고 있구나. 장한 놈들.”

그러더니 청명을 보며 슬쩍 턱짓하더니 말했다.

“청명아.”

“네!”

“바위 하나씩 더 올려라.”

“……더요?”

“어서.”

“네.”

터덜터덜 바윗덩어리를 짊어지고 오는 청명을 보며 백천이 눈을 질끈 감았다.

‘청명아.’

왜 꼭 나부터냐.

이 나쁜 새끼야.

* * *

덜덜덜덜덜.

“…….”

백천은 젓가락에서 이탈해 흩뿌려지는 밥알들을 세상 서글픈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사제들은 이미 젓가락으로 밥을 떠먹는 걸 포기했는지 밥그릇에 아예 얼굴을 처박고 있었다.

“……얘들아.”

“예?”

“밥이 넘어가냐?”

“……모래 씹는 것 같긴 하지만, 그래도 먹어야 버티죠.”

백천은 눈을 내리깔며 한숨을 쉬었다.

맞는 말이다.

‘먹어야지. 먹어야 버티지.’

결국 백천도 밥그릇을 입에 가져다 대고 꾸역꾸역 밥을 퍼 넣었다.

‘진짜 모래 씹는 느낌이…….’

그때였다.

촵촵촵촵촵촵촵!

“…….”

촵촵촵촵촵촵촵!

백천이 힘없이 고개를 돌린다.

옆에 앉은 청명이 말 그대로 밥을 흡입하고 있었다. 밥 한 공기를 깔끔하게 비운 청명은 아예 앞쪽에 있는 돼지고기 볶음을 그릇째 들어 입 안에 탈탈 털어 넣었다.

“크으! 수련하고 먹는 밥은 역시 꿀맛이라니까!”

저 개새끼…….

밥을 잘 먹는 건 좋다. 하지만 꼭 이렇게 약 올리듯이 옆에서 밥을 처먹어야겠는가?

결국 백천이 얼굴을 와락 일그러뜨리며 물었다.

“맛있냐?”

“꿀맛!”

“……그래, 많이 먹어라.”

말해 뭐 하겠는가. 말해 뭐 해…….

뭐라 할 힘도 없었다. 백천이 고개를 내젓고 식사를 하려는데, 밥그릇에서 얼굴을 뗀 조걸이 힘없이 입을 열었다.

“야, 청명아.”

“응?”

“내가 이해가 안 가서 그러는데…… 갑자기 장로님들이 왜 저렇게 강해지신 거냐?”

백천의 귀가 꿈틀했다. 말을 안 해서 그렇지, 그 역시 궁금하던 차였다.

“자하신공이 그렇게 대단한 거냐? 우리도 익히기만 하면 저렇게 되는 거야?”

“꿈같은 소리 하고 있네.”

하지만 청명은 심드렁한 얼굴로 젓가락을 탁 소리 나게 내려놓았다.

“자하신공이 뭔 천도복숭아인 줄 알아? 익힌다고 무조건 강해지게.”

“……아, 아니. 장로님들은 엄청 세지셨잖아.”

“경우가 달라요, 이 양반들아.”

청명이 딱하다는 듯 혀를 찼다.

“물론 자하신공이 화산 최고의 기공인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야.”

이들은 자하강기만 익혀도 한 단계 이상의 상승을 기대할 수 있다. 자하강기만 해도 매화공이나 칠성공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신공이니까.

그러니 자하신공을 익힌다면 적어도 내력의 효용은 비약적으로 상승할 게 분명하다.

하지만 그게 장로들과 같은 효과를 본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그러니까 신공이라는 건 숙수 같은 거야.”

“숙수? 요리사?”

“그래.”

“……그건 뭔 말이야?”

꼭 풀어서 설명을 해 줘야 알아듣더라, 너네는? 청명은 귀찮은 얼굴로 구시렁거리다 본격적으로 말했다.

“요리사의 실력이 좋으면 같은 재료로도 더 맛있는 음식을 만들 수 있잖아. 그건 너무 당연하지?”

“그렇지.”

“그러니까 더 좋은 신공을 손에 넣으면 같은 내력으로도 더 강한 힘을 낼 수 있고, 더 정순한 내력을 활용할 수 있는 거지. 동일 내공 대비 출력이 강해지는 거야.”

“아…….”

조걸이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듣고 있던 윤종이 슬그머니 말을 보탰다.

“그럼 우리와 장로님들은 경우가 다르다는 말은 무슨 의미냐?”

“말했잖아. 신공은 숙수 같은 거라고.”

“응?”

“장문인과 장로님들이 내공을 수련해 온 게 대체 몇 년이라고 생각하는 거야?”

“……어, 그건…….”

사십 년? 오십 년?

정확한 햇수는 알 수 없어도 그들과는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오랜 시간 동안 수련해 왔을 것이다.

“내력이라는 건 지름길이 없어. 오직 얼마나 수련을 오래 해 오고 얼마나 꾸준하게 쌓아 왔는지로 고하가 갈리지.”

그때 유이설이 손을 번쩍 들었다.

“좋아, 질문해.”

“자소단.”

“맞아. 그걸 극복하게 해 주는 게 영단이지. 하지만 영단으로는 한계가 있어. 아무리 잘 만든 영단이라고 한들 제 힘으로 쌓은 내력에 비한다면 불순할 수밖에 없으니까.”

“자소단. 불순함.”

아니, 그런 건 아니고…….

하여튼 쟤 앞에서는 뭔 말을 못 한다니까.

“여튼.”

잠깐 당황했던 청명이 헛기침을 하고 다시 입을 열었다.

“지금까지 장문인과 장로님들은 수십 년간 경작해서 걷은 좋은 식재료를 형편없는 숙수에게 맡겨 요리하고 있었던 거지. 그런데 이번에 그 숙수가…….”

“황실요리사로 바뀌었다?”

“그래, 그런 느낌이지. 북경 최고의 주루가 요리해 주기 시작했으니 맛이 달라지는 건 너무 당연한 거 아니겠어?”

백천이 고개를 끄덕였다. 비유가 좀 이상하긴 하지만, 덕분에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오십 년이라…….”

“그래, 오십 년.”

무인에게 있어서 내공 수련은 하루의 시작과도 같다. 현종이나 현상은 당연히 오십 년간 꾸준히 내력을 수련해 왔을 테고, 현영도 검술은 포기했다 한들 내력 수련마저 놓진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못해도 일 갑자에 가까운 내력이 쌓였다는 말이다.

거기에 청명이 준 영단으로 쌓은 내력까지 합하면 내력만으로는 웬만한 구파일방의 장로들을 깔끔하게 초월해 버리는 수준이다.

지금까지야 그 내력을 활용하는 내공심법이 워낙 저열해 잘 티가 나지 않았지만, 내공심법을 바꾸고 청명이 기존의 내력을 자하신공에 맞게 조율해 주면서 힘을 발휘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래도 너무 과하시던데.”

“아까 집채만 한 바위 한 손으로 드시는 것 봤습니까?”

“……힘을 준 것 같지도 않았습니다. 뭔 돌멩이 드는 줄 알았다니까요?”

장로들의 힘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힘없이 퍼져 있던 화산 제자들이 하나같이 혀를 내두르며 말을 보탰다.

그럴 만도 했다. 화산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광경이지 않았던가.

화산 최고수로 자타가 공인하는 청명조차도 다른 제자들에 비해 내력이 압도적으로 높지는 않다.

그러니 바윗덩어리를 번쩍번쩍 들어 올리고, 젓가락으로 검기를 쏴 대고, 주춧돌에 박힌 기둥을 막대기처럼 들어 올리는 광경에 입을 쩍 벌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럼 장문인과 장로님들이 어마어마한 고수가 되신 거냐?”

“고수는 무슨.”

누군가가 마른침을 삼키며 던진 질문에 청명이 피식 웃었다.

“힘만 세다고 고수 됐을 거면, 지금까지 사숙이랑 사형들이 살아남았겠어? 녹림 새끼들한테 진작 맞아 죽었지.”

“아……. 그렇지.”

“아직은 아니야, 아직은. 그런데…….”

“응?”

말끝을 늘였던 청명이 씨익 웃었다.

“매화검결까지 익히고 나면 이야기가 좀 달라질걸? 거기에 칠성보와 매화보를 완벽하게 숙달해서 보법, 신공, 검법의 삼위일체가 이뤄지는 순간…….”

그리고 턱을 확 들어 올리고는 엄지로 제 목을 쭉 그었다.

“…….”

굳이 말로 듣지 않아도 그 동작의 의미를 너무도 잘 이해할 수 있었다.

백천은 웃으며 생각했다.

‘깝치지 말아야지.’

물론 지금까지도 감히 장문인께 대든다는 건 생각조차 해 본 적 없었지만, 이제는 그럴 엄두는커녕 꿈도 못 꾸게 되었다.

“그런데 그건 그렇고…….”

윤종이 도무지 이해가 안 간다는 듯 말했다.

“대체 현영 장로님은 어떻게 저리 사람을 괴롭히는 수련법을 잘 아시는 거죠?”

“……나도 그게 의문이다.”

상상도 못 했다. 물속에서 검을 휘두르고, 집채만 한 바위를 짊어진 채 보법을 밟는다니. 이게 멀쩡한 사람이 할 수 있는 생각인가?

심지어 저 청명이 놈도 그냥 우격다짐으로 힘들고 빡세게 수련을 시켰을 뿐이지, 이렇게 창의적으로 사람을 괴롭히진 않았다.

“더 무서운 건…….”

“예?”

“……이게 효과가 있다는 거다.”

화산의 제자들이 일제히 고개를 끄덕였다.

물속에서 검을 휘두르니 그들의 내력이 얼마나, 어떻게 돌고 있는지를 즉각적으로 알 수 있었다. 검을 휘두를 때마다 평소보다 더 큰 힘을 줘야 하니 초식의 잘못된 점이 확연하게 보였다.

게다가 바위를 짊어지고 보법을 밟으니 무게중심이 조금만 어긋나도 엎어지기 일쑤라 평소보다 더욱 예민하게 몸의 중심축을 유지할 수밖에 없었다.

“대체 이런 수련법을 어떻게 고안하신 건지…….”

모두가 살짝 질린 얼굴로 감탄하는데, 유이설이 가만히 입을 열었다.

“……을 테니까.”

“응?”

백천이 유이설을 보며 다시 물었다.

“뭐라 했느냐, 사매?”

“답을 찾을 수 없었을 테니까요. 평범한 수련법으로는.”

순간 모두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백천은 아랫입술을 깨문 채 젊은 현영의 모습을 머릿속에 그려 보았다.

종남이나 다른 구파일방의 상승절학에 갖다 댈 수도 없는 하위 무학만을 익혀야 했던 그가, 물속에서 검을 휘두르고 바윗덩어리를 짊어진 채 보법을 밟는 모습이.

어떻게든 더 강해져야 한다는 간절함이 그에게 그런 수련법을 고안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다른 제자들에게 권할 수는 없었겠지만 말이다.

잠깐 생각에 잠겨 있던 백천은 놓았던 젓가락을 다시 잡아 들었다.

“먹어라. 오후에도 버텨야지.”

“예!”

“저는 절대 탈락 안 할 겁니다!”

모두가 아까보다 힘 있게 꾸역꾸역 밥을 밀어 넣기 시작했다.

“여기 한 그릇 더요!”

“소소야. 세 그릇째다.”

“그럼 나는 두 그릇 더!”

배가 터지도록 밥을 밀어 넣는 그들을 보며 청명은 몰래 피식 웃었다.

‘좋구나.’

선대는 말없이 이끌어 나가고, 후대는 의심 없이 믿고 따른다.

아마도 이게 청진이 그렸던 화산이리라.

‘그렇지?’

응? 네가 생각한 거랑은 조금 다른 거 같다고?

‘어쩌라고.’

억울하면 다시 살아나시든지.

낄낄낄낄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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