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귀환-733화 (731/1,567)

733화. 다 너희 잘되라고 하는 거다. (3)

화산 깊은 곳에 있는 계곡.

작은 폭포가 청량하게 쏟아지는 모양이, 보는 것만으로도 사람의 마음을 깨끗하게 씻어 내는 듯했다.

폭포 주변으로 물보라가 잔잔히 허공으로 흩뿌려지는 모습은 그야말로 절경이었다.

부서지는 햇살 아래 흔들리는 수면으로 물거품이 보글보글 올라왔다. 실로 자연 그 자체이나 또 한편으로는 역동적이니, 이는 화산파와 꼭 잘 어울리는 광경…….

“푸아아아아아앗!”

그때 수면 위로 둥그런 것이 불쑥 솟구쳤다.

“헤엑! 헤엑! 헤엑! 이, 이러다 죽……!”

따아아아아아악!

…… 꼬록.

경쾌한 소리와 동시에 솟구쳤던 머리가 꼬로록 소리를 내며 물 안으로 다시 가라앉았다.

현영이 손에 든 막대기를 가볍게 흔들며 고개를 저었다.

“어허. 뭐 그리 힘들다고 자꾸 올라오느냐.”

“푸하하하하핫!”

따아아아악!

꾸르르륵.

물 위로 솟아오르는 머리가 현영에게 타작당하고 다시 가라앉기를 반복했다.

“에잉, 쯧쯧. 겨우 이 각도 버티지 못해서야!”

현영은 연신 혀를 차더니 옆을 돌아보았다.

“이래서야 어찌 큰일을 하겠느냐? 그렇지 않느냐, 청명아?”

“물론이죠, 장로님! 헤헤.”

근처 바위에 걸터앉은 청명이 죽을 맞춰 낄낄거렸다.

그는 간혹 기포가 올라오는 잔잔한 수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누가 보면 장로와 제자가 물놀이를 즐기고 있다 여길 만큼 평화로운 광경이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바깥의 이야기다. 저 수면 아래는 말 그대로 아비규환이었다.

‘죽는다! 이건 진짜 죽는다!’

백천의 코와 입에서 공기 방울이 줄줄이 새어 나왔다.

“끄읍!”

두 눈에 핏발을 세운 그는 필사적으로 입을 악다문 채 옆을 보았다. 그의 사제들이 그와 비슷한 꼴로 죽어라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이건 미친 짓이야.’

수련?

물론 할 수 있다. 아니, 당연히 하는 것이다. 검수가 검을 휘두르는 수련을 하는 게 뭐 그리 대단한 일이겠는가?

백천은 오히려 수련지상주의자에 가깝다. 청명으로부터 이식된 ‘사람은 굴리면 뭐든 하게 되어 있다’는 마음가짐은 백천에게 ‘눈앞에 산이 있으면 돌아가는 것보다 뚫고 가는 게 빠르다’는 가공할 가치관을 심어 주었다.

그러니 평소라면 수련을 마다할 백천이 아니다. 조금 무리하더라도 빠르게 목표에 도달할 수 있다면 오히려 반기며 가장 먼저 나섰을 것이다.

하지만.

‘그건 물 밖에서의 이야기고!’

대체 왜 수련을 물속에서 하냐고, 우리가 장강수로십팔채도 아니고!

좋다. 그래, 좋다!

물속에서 수련을 할 수도 있다. 강호에서야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까. 혹시 아는가? 강호행을 나갔는데 우연과 우연이 연이어 겹쳐 물속에서 검을 들고 싸울 일이 생길는지.

그러나 이건 아무리 좋게 생각해 보려 해도 수련이라 보기 어렵다.

발에 무거운 돌을 달고 물속에서 검을 휘두르는 게 무슨 수련인가! 그냥 괴롭힘이지!

그나마 다른 제자들은 체면이고 나발이고 올라가 얻어맞으면서라도 숨을 쉬고 돌아올 수 있지만, 대제자인 백천은 차마 다른 제자들보다 먼저 수면으로 갈 수도 없었다.

덕분에 수련을 시작한 이후로 지금까지 말 그대로 숨도 못 쉬고 이 고생을 하고 있었다.

‘더, 더는 못 버텨…….’

거의 눈이 뒤집어지려는 찰나, 다행히 그와 같은 생각을 한 이가 먼저 나왔다.

“으으으으읍!”

옆에서 검을 휘두르던 조걸의 볼이 터질 듯 부풀어 오른 것이다. 입에서 공기방울이 부루룩 솟아오른다 싶더니 이내 그는 위로 빠르게 올라가기 시작했다.

‘걸아!’

백천은 안타까운 눈으로 그런 그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가공할 속도로 수면을 향해 헤엄친 조걸은 이내 승천하는 용처럼 수면 밖으로 솟구쳤다.

그리고…….

따아아아아아악!

물속에서도 선명하게 들릴 만큼 대단한 타격음과 함께, 솟구쳤던 그의 몸이 다시 추락했다.

첨벙.

잠깐 가라앉았던 몸이 도로 둥실 떠올랐다.

등만 둥둥 떠다니는 모습이 바깥에서 보았다면 우스꽝스러웠을 것이다. 하지만 물속에서 보면 공포가 따로 없었다. 두 눈을 뜬 채 기절한 조걸이 물길을 따라 흘러가는 모습이, 마치 그들을 지켜보는 물귀신 같았다.

‘안 돼. 참아야 한다.’

위로 올라가면 저 꼴이 난다. 여기서 어떻게든 버텨…….

꼬록.

‘음?’

옆쪽에서 들린 묘한 소리에 황급히 고개를 돌려 보니, 옆에서 검을 휘두르던 종회가 공기방울을 줄줄이 내뿜으며 눈을 까뒤집고 있었다.

백천은 화들짝 놀라 그의 발목에 매달린 돌을 잘라 냈다. 그러자 종회가 수면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헤엄쳐 올라가는 게 아니라 떠오르는 것이다.

버티다 못해 결국은 기절해 버린 종회는 수면에 다다라 조걸의 옆을 둥둥 떠다니기 시작했다.

버텨도 뒈지고, 올라가도 뒈진다.

이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히는 상황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던 백천이 자신의 입을 급히 틀어막았다.

“끕…….”

꾸루루루룩!

더는 내뱉을 공기도 없는 입 안으로 물이 콸콸 밀려 들어왔다. 그는 양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꺽꺽대기 시작했다.

‘하, 한계…….’

더는 못 버티…….

쿵!

그때 앞쪽에서 발 구르는 소리가 들렸다. 검을 휘두르는 시범을 보이던 현상이 손가락으로 위를 가리켜 보이고 있었다.

‘으아아압!’

살았다는 생각에 백천은 미친 듯이 위를 향해 헤엄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발목에 달린 돌덩어리 때문에 아무리 팔다리를 휘저어도 마음같이 속도가 나질 않았다.

“끄읍! 끄읍! 끕!”

코와 입으로 물이 차고 심장이 금방이라도 터질 것처럼 뛰었다. 순간순간 눈앞이 아득하게 멀어지기까지 했다.

‘으아아아아아아!’

힘겹게 수면까지 도달한 백천이 이를 악물고 위로 솟구치려는 순간이었다. 아래에서 누군가 그의 허리춤을 콱 붙들었다.

‘응?’

그러더니 그의 어깨와 머리를 짓누르고 올라서고, 이내 얼굴을 짓밟으며 위로 훅 올라갔다.

꼬륵…….

불시에 습격을 당해 버린 백천은 필사적으로 올라왔던 것이 무색하게 물을 꼴꼴 마시며 아래로 서서히 가라앉았다.

‘유…….’

점점 흐려지는 그의 시야에 다급하게 수면 위로 떠오르는 범인의 뒷모습이 똑똑히 들어왔다.

‘윤종…….’

꼬륵.

“푸하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앗! 허억! 허억! 허억! 허억!”

“푸하하하하핫! 우웨에에에에에엑! 우웩!”

물 밖으로 나온 이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미친 듯이 숨을 들이켜고 마신 물을 게워 냈다.

“헤에에엑! 헤엑! 헤엑!”

“거, 걸아! 걸아, 눈 좀 떠 봐라! 괜찮으냐! 걸아?”

“종회야아아아아! 종회야! 죽으면 안 된다아아아아!”

겨우 정신을 차린 이들이 의식을 잃고 떠내려가는 사형제들을 부여잡았다.

그리고 자맥질해 어떻게든 물가에 도착했다. 축 늘어진 미역 같은 꼴로 나온 그들은 하나둘 바닥에 털썩털썩 쓰러졌다.

“꾸르르르륵.”

“우……웨에엑. 우웨…….”

옆으로 고개만 간신히 돌린 채 물을 울컥울컥 쏟아내는 모습이 누가 보아도 눈물을 흘릴 만큼 처량해 보였다.

‘죽을 것 같다.’

멍한 눈으로 하늘을 올려다보는 윤종의 입에서도 맑은 물이 졸졸 새어 나왔다.

‘진짜 죽을 것 같다.’

그동안 힘든 수련은 수도 없이 해 왔다. 저 망할 청명이 놈이 시키는 수련은 언제나 사람의 의지력과 체력을 한계까지 몰아붙이니까.

하지만 이건 그 궤가 다르다.

청명이 놈이 시키는 수련은 어쨌든 힘들면 멈출 수 있다. 물론 멈출 수 있는 수련을 제 의지로 이어 가서 끝까지 해내야 한다는 점이 정말 괴롭지만, 어쨌거나 잠시 쉴 틈이야 있는 수련이다.

하지만 이건 아니다.

물속에서 내력을 운용하며 이십사수매화검법을 펼치는 건 사람이 할 짓이 아니었다. 숨은 금방 목 끝까지 깔딱깔딱 차오르고, 팔다리는 천근만근이 된다. 가장 고통스러운 점은 물 위에서 버티고 있는 현종과 현영 때문에 달아날 곳조차 없다는 점이었다.

“이, 이걸 어떻게 하라…….”

“유운조오오옹.”

“응?”

그때 들려온 목소리에 윤종이 무거운 고개를 살짝 들어 그쪽을 보았다.

그러자 악귀 같은 얼굴의 청명……. 아니, 백천이…….

응?

사숙?

콰아아아악!

순간 벼락같이 달려든 백천이 윤종에게 달려들어 목을 움켜잡고 격렬하게 흔들어 댔다.

“케엑! 사, 사숙! 가, 갑자기 왜!”

“오냐! 오늘 너 죽고 나 죽자!”

“케엑! 켁! 켁! 사, 사숙! 목! 목목!”

물을 토해 내던 입에서 거품이 보글보글 올라올 때까지 목이 졸리니 윤종의 얼굴이 이내 새파랗게 질렸다. 윤종은 필사적으로 백천의 손을 제 목에서 떼어 내고 소리 질렀다.

“아, 아니. 왜 이러시는 겁니까?!”

“왜? 왜냐고? 네가 지금 이유를 묻냐? 이 새끼가! 사숙 얼굴을 짓밟고 올라가 놓고 왜? 왜에에에?”

“제, 제가요?”

윤종이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말했다.

“전 그런 적이…….”

“물에서 올라올 때가 기억은 나냐?”

“어……. 그러고 보니 어떻게 올라왔는지…… 잘 기억이…….”

백천이 흐뭇하게 웃었다.

“기억이 안 나?”

“예. 기억이 영 흐릿해서…….”

“그래. 그럼 됐다. 어차피 안 나는 기억, 내가 아주 깨끗하게 지워 주마!”

백천의 주먹이 윤종의 턱주가리를 깔끔하게 돌려 버렸다.

“께엑!”

윤종이 개구리처럼 철푸덕 나동그라지자 백천은 아예 그 위에 올라타 주먹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얌전한 고양이 부뚜막에 먼저 올라간다더니! 걸이도 안 할 만한 짓을 해 대? 죽어! 죽어, 이 새끼야!”

“아악! 사숙! 아악! 살려 주십쇼! 악!”

그 커다란 비명에 기절해 있던 조걸이 허억! 소리와 함께 눈을 떴다. 잠깐 정신을 못 차리고 눈을 끔벅이던 그는 윤종을 다지고(?) 있는 백천을 잠깐 보더니 힘없이 손을 들어 올렸다.

척.

그리고 깔끔하게 엄지를 들었다. 사형제의 불행을 아낌없이 기뻐해 주는, 실로 훈훈한 광경이었다.

“그만! 에잉! 그만하지 못하겠느냐!”

그때 들려온 목소리에 백천이 움찔하며 손을 멈추었다. 아쉬움이 남는 듯, 허공에 번쩍 들린 주먹이 떨리고 있었다.

윤종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간절하게 외쳤다.

“장로님, 사숙이……!”

“에라!”

빠아아아악!

결국 마지막 일격으로 윤종을 먼 곳으로 보내 버린 백천은 그래도 화가 풀리지 않는지 자리에서 일어나 씩씩거렸다.

조걸이나 청명이 놈이 그를 밟고 올라갔으면 화도 안 났을 것이다. 어차피 그런 놈들이니까. 하지만 그래도 윤종이 놈은 마음속으로 굳게 믿었건만!

‘뭔 놈의 문파가 믿을 놈이 하나도 없어!’

위기 때 본성이 나온다더니!

그때 현영이 다시 한번 언짢은 얼굴로 혀를 찼다.

“쯧쯧쯧. 한심한 놈들. 그것 좀 했다고 헥헥거리는 꼴이라니.”

화산 제자들이 아연실색하여 현영을 바라보았다.

“내가 한창 때는 물속에서도 한 시진씩 검을 휘둘렀다.”

장로님……. 그러면 주거요…….

“검을 아무리 잘 휘둘러 봐야 단단한 내력이 없으면 잡기에 불과한 게야! 잡기! 숨을 쉬지 못하고 내력만으로 버틸 때, 네놈들이 그동안 얼마나 꾸준하게 내력을 수련해 왔는지 드러나는 것이다!”

현영의 시선이 한곳으로 확 꽂혔다.

“칼 휘두르는 기교에만 정신이 팔려서 가장 기본이 되는 내력 수련을 등한시한 놈!”

조걸의 입에서 맑은 물이 쭉 뿜어져 나왔다.

“저 살기 급해서 사숙이고 나발이고 잡아끌고 올라서는 놈.”

“……쿨럭.”

다시 정신을 차린 윤종이 푸르딩딩하게 물든 눈두덩을 머쓱하게 매만졌다.

“평소에는 온갖 잘난 척은 다 하더니, 사질이 발 좀 잡아끌었다고 주먹질이나 해 대는 놈!”

“…….”

현영은 남은 이들을 쭉 훑어보다 일갈했다.

“나머지는 그것만도 못해! 그것만도!”

모든 화산 제자들이 일제히 움찔 목을 움츠렸다.

“이런 썩어 빠진 정신으로 그리도 거들먹거리고 다녔다니, 내가 너희를 너무 믿었구나!”

현상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그런 현영을 바라보았다.

‘잘한다, 내 사제.’

더 해라. 더, 더!

“뭐? 자하신공을 익힐 자격을 시험해 달라고?”

현영이 차게 피식 웃었다.

“오냐. 내가 뼛속까지 들여다봐 주마. 뭐 하고들 섰느냐. 쉴 만큼 쉬었으면 다시 들어가라.”

“예?”

“또요?”

“왜? 내 손으로 밀어 넣어 주리?”

현영이 손에 든 막대기로 바닥을 탁 하고 후려쳤다.

“내 미리 말하는데, 못 버텨서 기절하는 건 괜찮다. 맞고 기절하는 것도 괜찮다. 하지만!”

현영의 두 눈에 불꽃이 튀었다.

“제 입으로 포기한다는 소리 하는 놈들은 각오하는 게 좋을 거다! 궁금하면 어디 한번 해 보거라!”

“…….”

“이놈들이! 당장 들어가지 못해?”

현영이 막대기를 들고 제자들에게 달려들자 모두가 황급히 자리를 털고 일어나 물속을 향해 달렸다.

“히이이이이이익!”

“드, 들어갑니다! 들어갑니다!”

“엄마아아아아아!”

풍덩. 풍덩!

결국 마지막 하나까지 물속으로 다시 들어가는 모습을 보며 현영은 수염을 쭉 쓸어내렸다. 입가에 미소가 걸려 있었다.

“이 수련을 한 번은 해 보고 싶었지. 낄낄낄낄.”

한편, 그런 그의 뒤에서 이 광경을 바라보던 청명의 뒷머리는 식은땀으로 축축이 젖어 들었다.

풀지 말아야 할 보따리를 풀어 버린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허허.

허허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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