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귀환-731화 (729/1,567)

731화. 다 너희 잘되라고 하는 거다. (1)

삼십 일 차.

반질반질.

반짝반짝.

“…….”

현종을 바라보는 백천과 윤종의 눈에 숨길 수 없는 의혹이 차올랐다.

“사숙, 그…… 제 착각인지는 모르겠는데…….”

“……아무래도 착각이 아닌 모양이다.”

윤기가 돈다.

아직 살은 다 차오르지 않았지만, 분명 현종의 얼굴에는 이전에 없던 윤기가 돌고 있었다.

원래의 얼굴색을 회복했다 수준이 아니라, 갓난아기처럼 피부가 뽀얗게 빛이 나고 반들거렸다.

“악! 눈 부셔.”

마침 구름에 숨었던 해가 드러나니 햇살을 맞은 현종의 얼굴이 밝은 빛을 뿜어냈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도사가 아니라 부처라 착각하고도 남을 지경이었다.

“……사람이 저렇게 극단적으로 변할 수가 있나?”

열흘 전만 해도 목내이(木乃伊: 미라)가 따로 없을 정도로 피골이 상접했던 사람이 불과 열흘 만에 아기 같은 피부를 가지게 되다니, 실로 천지가 개벽할 일이었다.

현종뿐만이 아니다.

그 곁에 선 현상과 현영의 얼굴도 이전과는 판이했다.

“……분세수라도 하시나.”

“그럴 리가 있습니까?”

“너무 말이 안 되니까 그렇지.”

단순히 얼굴이 하얘지고 윤기가 도는 게 전부가 아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피로에 찌들고, 고통에 질렸던 얼굴에 알 수 없는 여유로움이 감돌았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지?’

귓가에 청명이 놈이 낄낄대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만 같았다.

삼십오 일 차.

“끄으으응! 아오, 이거!”

“거기 좀 잘 잡아 봐!”

“하……. 미치겠네!”

기둥에 달라붙어 용을 쓰는 제자들을 보며 운암이 눈살을 찌푸렸다.

“안 되겠느냐?”

“……사숙, 이거 진짜 꼼짝도 안 합니다.”

“하아…….”

운암은 갑갑한 마음에 한숨을 푹 내쉬었다. 제자들이 달라붙은 전각의 기둥 위쪽에는 크게 균열이 가 있었다.

“……곤란하구나. 이러면 해체하는 수밖에 없는데.”

“무슨 일이냐?”

“아, 장로님.”

그때 마침 다가온 현영의 물음에 운암은 재빨리 고개를 꾸벅 숙였다. 현영이 귀찮다는 듯 손을 휘휘 내저었다.

“예는 됐고. 뭐 한다고 저기에 저리들 다닥다닥 달라붙어 있는 것이냐?”

“아, 그게…….”

운암이 머리를 긁적이고는 말했다.

“전에 행사를 치른다고 저 전각 앞쪽을 증축하지 않았습니까?”

“그랬지.”

천우맹 개파식을 위해서 당가 사람들이 전각을 수리할 때, 이 전각만 높이가 낮아 모양이 살지 않는다고, 앞쪽에 아예 새로운 전각을 덧대어 올려 버렸다.

“그런데 아무래도 그 무게를 못 버티는 모양입니다.”

“응? 그럴 리가 있나? 당가 사람들이 그런 걸 예상 못 할 리가 없는데.”

“그게 원래대로라면 딱히 문제가 생길 일이 아닙니다만, 기둥이 조금 밀리다 보니.”

“아.”

현영이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기둥만 바로 서 있으면 증축된 무게를 충분히 버틸 수 있는 구조지만, 낡고 오래된 전각이 기둥이 비틀리며 점점 밀려나다 보니 균열이 간 모양이었다.

“해서, 기둥을 어떻게든 밀어 보려고 했는데 아무래도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러면 전각을 해체하고 다시 지을 수밖에 없는데…….”

“잠깐. 뭐? 뭘 해체한다고?”

“전각을…….”

순간 현영의 눈에서 불꽃이 튀었다.

“그게 뭔 말도 안 되는 소리냐! 저 전각이 어떤 건 줄 알고!”

운암이 갑갑한 마음에 참지 못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물론 저 전각이 선조의 흔적이 남아 있는…….”

“당가가 지어 준 것 아니더냐, 당가가! 그 사천당가의 장인들을 부리려면 천금도 모자란데 그런 이들이 지어 준 전각을 해체한다고? 네놈이 지금 제정신이냐?”

“…….”

아……. 그쪽이 문제였군요.

“그……. 어, 크흠. 저도 웬만해서는 전각을 그대로 보존하고 싶지만, 이대로 가다간 곧 무너집니다. 그럼 제자들이 다칠까 봐 우려가 되어서…….”

“무너지긴 뭘 무너진단 말이냐! 기둥만 바로 세우면 그만이지! 비켜 보거라!”

현영이 운암을 밀치고 기둥에 달라붙어 있는 제자들에게로 다가갔다.

“무작정 밀어 넣으려고 하니 안 되는 게 아니냐! 살짝 들어서 밀어야지.”

“예?”

“바닥에 걸려 있으니 당연히 밀리지 않지!”

현영의 말에 제자들의 얼굴에서 순간 핏기가 가셨다.

‘들라고?’

‘이걸?’

이 기둥에는 전각의 무게가 쏠려 있다. 그러니 결국 이걸 들라는 건 전각을 들어 올리라는 말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말이야 쉽지, 밀지도 못하는 기둥을 무슨 수로 들라는 건가?

“아, 안 될 것 같은데요?”

“돼.”

“자, 장로님. 진짜 안 될 것 같은데요.”

“쯧쯧. 다 된다. 다! 자, 다시 붙어 봐라!”

“이게 현실적으로…….”

“현실이고 나발이고 다 된다니까. 세상에 안 되는 게 어디 있느냐! 꾸물거리지 말고 어서 붙어라!”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 말이 통하는 사람과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

그리고 누가 봐도 현영은 명백히 후자에 속하는 사람이었다.

“끄응.”

“어흑.”

제자들이 눈물을 삼키며 기둥에 달라붙었다. 현영은 그 양을 지켜보며 힘차게 구령했다.

“자자! 하나, 둘! 들어!”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앗!”

“으랴아아아아아아아아앗!”

“더! 더! 더 힘을 줘라! 제대로!”

“으아아아아아아앗!”

이마에 핏대를 세운 제자들이 고래고래 악을 써 댔다. 있는 내력 없는 내력을 모조리 끌어냈지만, 기둥은 야속할 만큼 꿈쩍도 하지 않았다.

“더! 더! 피죽도 못 먹었느냐! 무인이라는 놈들이 이리 힘이 없어서야 어디다 쓰느냐! 더 들어라, 더!”

“아아아아아아악!”

“그만!”

털썩! 털썩!

용을 얼마나 썼는지 제자들은 기둥에서 손을 떼자마자 그 자리에 구겨지듯 풀썩 주저앉았다.

“아이고오…….”

“이, 이건 안 됩니다…….”

“쯧! 젊은 놈들이 이리 힘이 없어서야! 너 나와 봐라!”

“예?”

“비켜 보라고!”

현영이 기둥 옆에 주저앉은 이들 중 하나를 옆으로 잡아 뺐다. 그리고 손수 기둥을 움켜잡았다.

“자, 다시 붙어 봐!”

“자, 장로님! 무리하시면 안 됩니다.”

“그러다 허리 나가세요.”

“잔말 말고 붙어!”

화산의 제자들이 걱정 어린 눈으로 현영을 바라보다가 결국 마지못해 다시 달라붙었다.

“자! 힘준다. 하나, 둘!”

그 순간이었다.

우득! 우득! 꾸드드득!

그들끼리 붙어서 힘을 줄 때는 꿈쩍도 하지 않던 기둥이 움찔움찔하며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힘 더 줘라! 힘! 흐아아아아아아압!”

“끄아아아아아아악!”

“하아아압!”

걱정스레 바라보던 운암의 눈이 앞으로 툭 튀어나왔다.

‘뭐야, 저게 되네?’

소매를 걷은 채 기둥을 잡은 현영의 양팔에서 근육이 미친 듯이 꿈틀댔다. 아름드리나무만 한 기둥이 천천히 위로 들리기 시작했다. 기울어졌던 전각이 위로 세워지며 제 모습을 되찾아 갔다.

“저…… 저……?”

입을 쩍 벌린 채 멍하니 보기만 하던 운암이 화들짝 놀라 그들을 향해 달려가며 외쳤다.

“안쪽으로! 이제 옮기면 됩니다! 안쪽으로! 천천히, 천천히! 절대 급하게 옮기지 말고 천천히 딱 한 걸음만!”

번쩍 들린 기둥이 안쪽으로 천천히 이동한다.

“조금만 더, 조금만! 됐습니다! 아, 천천히 내려놔야 됩니다!”

쿠우우우웅!

마침내 기둥이 내려서는 소리가 울렸고, 동시에 제자들이 모조리 뒤로 널브려졌다.

“아이고, 죽겠다.”

“팔……. 팔이 떨어지는 것 같아.”

하지만 현영만은 별달리 힘을 쓰지도 않았다는 듯이 뒷짐을 진 채 기둥이 잘 섰는지 확인하고 혀를 찼다.

“쯧쯧. 젊은 놈들이 이리 힘이 없어서야! 그게 다 평소에 수련을 게을리한 탓 아니더냐!”

할 말을 잃은 제자들은 멍하니 현영을 올려다보았다. 현영은 먼지 묻은 소매를 툭툭 털며 운암에게 물었다.

“됐지?”

“예? 아……. 예! 장로님! 됐습니다.”

“거봐라. 이렇게 하면 될 것을, 멀쩡한 전각을 뭐 하러 해체한다고. 쯧쯧.”

헛기침을 한 현영이 휘적휘적 가던 길을 갔다. 위풍당당한 뒷모습을 넋 놓은 채 보던 제자들 중 하나가 중얼거렸다.

“……이게 뭐가 어찌된 일이지?”

그러자 운암이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왜들 그러느냐?”

“아, 아니. 아까도 분명 똑같이 전력을 다했는데, 정말 꿈쩍도 하지 않았거든요.”

“그야 장로님이 요령이 있으셔서 그런 것 아니더냐?”

“……뭘 드는 데도 요령이 있습니까?”

“…….”

“그리고 그게 요령으로 될 일이 아니었는데.”

“맞아. 나도 어떻게든 힘을 줘 보려고 하는데, 옆에서 장로님이 읏차 하는 순간 갑자기 기둥이 쑥 올라가더라…….”

“거참 귀신이 곡할 노릇이네…….”

운암은 놀란 얼굴로 다시 현영의 뒷모습을 휙 돌아보았다.

그는 뒷짐을 진 채 평소와 같은 걸음걸이로 걷고 있었다.

“……대체…….”

사십 일 차.

울룩.

꿈틀.

불룩.

나란히 선 세 사람이 가볍게 목을 꺾었다.

투둑!

하지만 무언가 찢어지는 소리가 울렸다. 현종은 눈살을 찌푸리며 의복 가슴팍을 슬쩍 들추었다. 내의가 찢어져 너덜거렸다.

“끄응. 옷이 작구나.”

“그래서 저는 진즉에 더 큰 걸로 바꿔 입었습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사형.”

현종이 허허 웃었다.

“이 나이에 새삼.”

껄껄 웃는 현종의 대흉근이 꿈틀댔다.

나이가 이만큼이나 들었으니 젊은 시절의 몸을 되찾는 건 요원하리라 여겼건만, 불과 한 달이 조금 넘는 시간 만에 노구는 온데간데없이 젊은 놈들도 박수를 칠 만한 몸을 가지게 되었다. 목 아래로 자리한 몸은 얼굴과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건장했다.

“……이게 될 줄이야.”

“그러게 말입니다.”

단순히 몸이 좋아진 정도가 아니다.

단전에서 약동하는 장강 같은 내력에 비한다면, 육안으로 보이는 육체의 변화쯤이야 미미한 정도에 불과했다.

그뿐이랴. 달라진 육체와 내력은 자신감을 불러왔고, 그 자신감은 현종의 표정부터 변화시켰다.

“청명아.”

“네?”

“그럼 지금 우리 경지가 어느 정도냐?”

“대충 어…….”

청명이 살짝 고민하는 듯하더니 말했다.

“이 성에서 삼 성 정도는 될 거예요. 이제 초입이라 할 수 있죠.”

“초입이라…….”

이게 초입이라면 대성에 가까워지면 대체 얼마나 더 강해진단 소리인가?

“……왜 자하신공이 화산의 장문인들만이 익히는 무학이었는지 내 이제야 알겠구나.”

“에이. 이제 시작인데요. 뭐. 그리고 다들 같은 효과를 보는 건 아니에요. 장문인과 장로님들께서는 워낙 오랜 시간 동안 내력을 단련해 와서 내력의 양 자체는 많았어요. 다만 그게 제대로 활용이 안 돼서 그랬던 거죠. 이번에 자하신공으로 기존의 내력이랑 세맥에 고여 있던 내력까지 모조리 끌어다 일통시켰으니, 이제는 수련하기 한결 편해지실 거예요.”

“그래, 그래!”

청명을 바라보는 현종의 눈에 정이 듬뿍 담겨 있었다.

자하신공을 전수하겠다고 했을 때만 해도, 그저 요식행위 삼아 그들에게 대충 가르쳐 주고 다른 제자들에게 집중할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설마 한 달이라는 시간을 통째로 세 늙은이에게 할애할 줄이야.

그 시간 동안 다른 제자들을 가르치면 더욱 효율이 좋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늘 그게 마음에 걸렸었다. 그럼에도 현종은 차마 그만하겠단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이제는 일선에서 물러난 입장이라고 해도 그와 장로들 역시 무인이다. 더 강해지고 싶다는 욕망이 없을 수는 없다. 그저 여건이 되질 않으니 참아 온 것에 불과하다.

한데 그 꾹꾹 눌러 놓았던 욕망을 이번에 청명이 녀석이 풀어 준 것이다.

“고맙구나.”

“네? 갑자기 뭐가요?”

청명이 고개를 갸웃했다. 현종은 그 모습에 빙그레 웃고 말았다.

“아무것도 아니다.”

청명이라면 그저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다고 대답하겠지.

“벌써 다 이룬 것처럼 생각하시면 안 돼요. 앞으로도 꾸준히 수련하셔서 최소 오 성은 달성해야 해요. 그래야 제 위력이 나올 거예요.”

“…….”

지금도 맨손으로 산을 부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인데, 오 성은 돼야 제 위력이 나온다고?

제 위력이 어느 정돈데?

“그리고 매화검결도 꾸준히 익히셔야 해요. 모든 내력엔 적합한 그릇이 있어야 해요. 이십사수매화검법으로는 이 내력을 온전히 담지 못하거든요.”

“물론이다. 내 어찌 태만할 수 있겠느냐?”

“그리고…….”

청명이 씨익 웃었다.

“이게 제일 중요한 건데요.”

“응?”

그 미소에 점점 더 사악한 기운이 번졌다.

“요즘 보아하니 사형들이랑 사숙들 배에 기름이 좀 낀 것 같더라고요.”

“…….”

“슬슬 운검 사숙이 직접 지도를 해 줘도 건성인 것 같고.”

“어허!”

“그런!”

“에잉! 그래선 안 되지!”

아주 빤한 연극 같은 대답이 적극적으로 돌아왔다. 청명은 히죽 웃으며 본론을 꺼냈다.

“그래서 말인데…… 이 기회에 새로 자하신공을 익힐 제자들을 장로님들과 장문인께서 직접 지도해 주시는 건 어떨까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그러자 세 사람이 동시에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네가 그리 말한다면. 크흠!”

“시간을 좀 내 볼 수밖에. 크흐흠!”

“무각주로서 거절할 수 없는 부탁이구나. 엣헴!”

그들은 주먹을 살짝살짝 쥐었다 폈다.

청명이 제자들을 가르치는 걸 지켜본 사람들은 누구나 한 번쯤은 생각해 보게 된다.

‘솔직히 한번 해 보고 싶긴 했지.’

‘드디어 이 날이 오는구나!’

‘아주 지옥같이 굴려 주마!’

화산 모든 제자들의 존경을 온몸으로 받는 세 사람.

현종, 현상, 현영.

그리고 이제 드디어 그들을 바라보는 제자들의 시선에 ‘경외’라는 감정을 심어 줄 때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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