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9화. 더 훌륭해질 수도 있지! (4)
이 일 차.
“……사숙. 솔직히 이런 말을 하는 게 큰 무례라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만…….”
“뭐가?”
“……저러다 진짜 등선하시는 거 아닙니까?”
그 말에 백천은 다 죽어 가는 얼굴로 산을 내려오는 현종과 장로들을 바라보았다. 눈빛에 안쓰러움이 가득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검게 죽어 있는 세 사람의 얼굴과 그 뒤를 따라 내려오는 청명이 놈의 반질반질한 얼굴이 너무 극명하게 대비되었다.
“……흡성대법이라도 쓰나?”
누가 봐도 청명이 놈이 세 사람의 기운을 모조리 빨아들이는 모양새가 아닌가.
“어제보다 안색이 더 안 좋으신 것 같은데…… 말려야 하는 거 아닙니까?”
“……말려? 무슨 수로?”
백천의 막막한 목소리에 윤종은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청명이 놈이 혼자 사고를 치고 돌아다니는 건, 물론 끔찍하지만, 어쨌거나 그놈만 말리면 끝나는 일이다. 그 과정이 숟가락으로 산을 파서 길을 뚫는 것보다 힘들다고는 해도, 어쨌거나 시도는 해 볼 수 있는 일이니까.
하지만 저 세 분은 다르다. 극도로 힘들다 해도 어쨌든 청명이 놈은 어떻게든 말려 볼 수 있는 존재인데, 저 세 분은 그들의 입장에선 손도 발도 써 볼 수 없는 존재다.
장문인과 장로를 말린다?
누가? 오검이?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차라리 저 망할 종남파 놈들을 말리지, 문파의 장문인과 장로를 한낱 이대제자와 삼대제자가 무슨 수로 말린단 말인가?
“……일단은 조금만 더 지켜보자.”
“하지만 저러다가 정말 큰일 치르겠습니다.”
“아는데…… 나도 아는데.”
백천이 한숨을 푸욱 내쉬었다.
“장문인과 장로님들이 하겠다 하시는데, 우리가 막아서고 나설 순 없잖느냐?”
“……지금쯤이면 생각이 바뀌지 않으셨을까요?”
백천은 검게 죽은 세 사람의 얼굴을 바라보다 천천히 고개를 내저었다.
“일단 며칠만 더 두고 보자.”
“……예.”
물론 그런 그의 두 눈에도 걱정은 여전했다.
‘별일 없어야 할 텐데.’
뒤쪽에서 따라 내려오는 청명이 놈의 뿌듯한 얼굴을 보고 있자니 어째 불안이 점점 더 증폭되어만 갔다.
사 일 차.
“자, 장문인! 괜찮으십니까?”
현종이 멍한 얼굴로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식탁 위에 조금 전 그가 쥐고 있던 젓가락이 널브러져 있었다. 그리고 젓가락을 들고 있던 손은 형편없이 푸들푸들 떨리고 있었다.
“……괜…찮다.”
‘안 괜찮은데?’
‘너무 안 괜찮은데?’
‘세상에, 젓가락질할 힘도 없으시다고?’
화산의 제자들은 모두 밥을 먹던 손을 멈추고 멍하니 현종을 보았다.
“……거 그렇게 기력이 없으셔서야.”
그때 옆에 앉은 현상이 피식 웃었다. 하지만 밥을 뜨는 그의 젓가락도 태풍 만난 사시나무처럼 격렬하게 떨리고 있었다.
‘밥알 다 떨어지네.’
‘뭘 드시긴 드시는 건가? 아까부터 흘리시는 게 구 할인 것 같은데.’
‘진짜 괜찮을까? 이래도 되는 건가?’
그래도 그나마 현상은 아직 장로로서의 체면을 잃지 않고 있는 것이었다. 현상의 반대쪽에 앉은 현영은 애초에 젓가락질을 포기하고 맨손으로 밥을 퍼먹고 있었다.
‘현실적이네.’
그래. 무척이나 현실적이다. 젓가락도 제대로 들지 못하는 현종이나, 품위 있게 공기만 퍼먹고 있는 현상에 비하면 정말 실리적인 방법이었다.
다만 저게 과연 한 문파의 장로로서 해도 될 행동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이 드는 것만은 어쩔 수 없었다.
“저…… 저희가 먹여 드릴까요?”
“……괜찮다.”
“……할 수 있다.”
“손으로 먹으니 먹을 만한데? 손으로 드십시오, 손으로.”
실로 참담한 그 광경을 망연히 보던 모두의 시선이 돌연 한쪽으로 돌아갔다.
촵촵촵촵촵촵!
꿀꺽! 꿀꺽! 꿀꺽!
“크아아아! 오늘 국물 누가 냈냐! 시워어어어언하네!”
“…….”
장문인과 장로님들이 식사를 제대로 하지 못하니, 화산의 제자들이라고 밥을 뜰 수 있을 리 없었다. 눈치를 운운하기 이전에 다들 세 사람을 걱정하는 마음이 한가득이니까.
그런데…….
“뭐야? 왜 안 먹어? 벌써 배불러?”
저 마귀 같은 새끼.
식당 내에서 유일하게 인간의 마음을 가지지 못한 놈이 앞쪽에 놓인 닭에서 다리를 뜯어내더니 호방하게 먹기 시작했다.
“크으. 역시 수련 뒤에 먹는 밥이 꿀맛이지! 이러다 살찌겠네.”
그의 요란스러운 식사를 보던 모두가 다시 죽어 가는 세 사람을 향해 안쓰러운 시선을 던졌다. 피골이 상접한 모습을 보고 있자니 어쩐지 눈가가 자꾸만 촉촉해졌다.
칠 일 차.
털썩.
화산 제자들의 눈이 툭 튀어나왔다.
“어?”
현종이 돌연 힘없이 옆으로 털썩 쓰러진 것이다. 모두가 화들짝 놀라 비명을 질러 댔다.
“으아아아아! 장문이이이인!”
“의약당! 의약당에서 사람을 불러와라! 장문인께서 쓰러지셨다!”
“장문인! 정신 차리십시오, 장문인!”
사람이 하루살이도 아닐진대, 왜 길 가다가 말고 옆으로 픽 쓰러진단 말인가!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쓰러진 장문인의 머리를 무릎 위로 누인 백천은 소매로 땀을 닦아 주고 손으로 그늘을 만들어 주었다.
그러자 잠시 후 현종이 천천히 눈을 떴다.
“장문인! 정신이 좀 드십니까! 장문인!”
“…….”
핏기 하나 없는 낯빛에, 갈라진 입술, 초점 없는 눈동자까지. 누가 봐도 반송장 꼴이었다.
초점 흐린 눈동자가 느릿하게 이곳저곳을 헤매더니 백천의 얼굴에 닿았다. 희게 질린 입술이 달싹이며 열렸다.
“아아…….”
“예, 장문인! 백천입니…….”
“……사부.”
엥? 누구요?
“……저를 데리러 오셨군요, 사부. 저는 정말 열심히…….”
“아아아악! 뭘 보시는 겁니까! 장문인! 장문인! 저 백천입니다!”
그러자 당황한 조걸이 허공을 향해 주먹질을 하며 외쳤다.
“훠이, 물렀거라! 물렀거라, 악귀야! 장문인은 안 된…….”
“야, 이 미친 새끼야!”
윤종의 돌려차기가 조걸의 얼굴에 작렬했다.
아악 비명을 내지르며 나가떨어진 조걸이 이번에는 정말 억울하다는 듯이 상체를 벌떡 일으켰다. 동시에 코에서 피가 주르륵 흐르자 조걸이 참지 못하고 소리쳤다.
“아니, 왜 때립니까! 이번에는 잘못한 것도 없는데! 악귀가 장문인을 끌고 가려 하지 않습니까!”
“악귀? 악귀? 야, 이 새끼야! 장문인의 사부시면 사조신데, 사조한테 악귀라니!”
“어?”
그게 그렇게 되나?
조걸과 윤종이 왁왁거리며 싸우는 와중에도 백천은 현종을 깨우느라 정신이 없었다.
“장문인! 장문인! 정신 차리셔야 합니다!”
“아아…… 사부……. 화산……. 지금의 화산을 보시면…….”
“비켜 보세요, 사숙!”
그때 나타난 당소소가 백천의 손을 훅 밀치더니 제 소매에서 커다란 대침을 뽑았다.
아니, 그건 대침이라는 말로도 다 설명할 수 없을 만큼…… 컸다.
“으랏차!”
푸우우우욱!
그 거대한 대침이 현종의 정수리에 거침없이 꽂혔다. 백천이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경악했다.
“히이이이이이익!”
푸우우웃!
현종의 머리에서 피가 살짝 뿜어져 나왔다. 잠시 후, 내내 흐릿하던 동공이 마침내 점점 또렷해지기 시작했다.
“……음? 내가 혹시 쓰러졌었느냐?”
“…….”
“이런……. 추태를 보였구나.”
현종이 아무렇지도 않게 몸을 일으켰다. 화산의 제자들이 사색이 되어 그런 그를 만류했다.
“자, 장문인! 지금 일어나시면 안 됩니다!”
“쉬셔야 합니다!”
“그러다 죽어요!”
“허허허허.”
하지만 현종은 제자들이 괜히 과하게 군다는 듯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오후 수련이 있는데 쉴 수는 없지. 하루를 쉬게 되면 이틀을 더 노력해야 하는 법이다. 너희도 늘 이 사실을 잊지 말거라.”
아니, 죽는다고!
그러다 진짜 죽는다고!
“허허허허.”
끝내 몸을 일으킨 현종은 휘적휘적 팔을 저으며 다시 걸어갔다. 태연히 걷는 그의 정수리에선 작고 빨간 샘이 퐁퐁 솟고 있었다.
“……소소야.”
“네?”
“빨리 저 침 좀 뽑아 드려라.”
“……네.”
백천이 양손으로 얼굴을 푹 감싸 쥐었다.
‘화산은 망했어.’
이제 돌이킬 수 없다.
십오 일 차.
“……아무래도.”
백매관에 옹기종기 모인 오검의 얼굴에는 더없이 확고한 각오가 어려 있었다.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
“동의합니다.”
“동의합니다!”
“혁명을!”
백천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나머지가 호응했다.
“이러다가 화산은 장문인을 잃게 된다.”
“……청명이 그 미친놈이 급기야…….”
현종과 현상, 그리고 현영의 몰골은 날이 갈수록 기괴해져 갔다. 살이 보기 좋게 올라 보기만 해도 인자함과 근엄함이 동시에 느껴지던 현종은 온데간데없고, 이제는 젓가락처럼 빼빼 말라비틀어진 사람만 화산을 유령처럼 배회했다.
“서 계시기만 해도 옷이 줄줄 흘러내리던데…….”
“저는 새벽에 소피보러 가다가 마주쳐서 비명 질렀습니다. 귀신인 줄 알았어요.”
“……진짜 등선하시겠던데.”
“하지만 방법이 없지 않습니까? 청명이 놈도 워낙에 똥고집이라 아무리 말려도 듣지를 않는데.”
그때 내내 말이 없던 유이설이 뜬금없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응? 사매?”
그러더니 말없이 허리춤에 매달린 검을 잡아 뽑았다.
스르르릉.
“장문인의 원수. 죽인다.”
“야야! 잡아! 쟤 빨리 잡아!”
당소소와 윤종이 몸을 날려 밖으로 튀어나가려는 유이설을 붙잡고 늘어졌다.
“진정하세요, 사고!”
“혼자서는 무립니다! 상대는 청명이라고요!”
“장문인의 원수!”
유이설의 이마에 살벌한 핏대가 섰다.
그녀에게 현종은 단순한 문파 장문인이 아니다. 아비의 스승이자, 할아버지이고, 어린 시절 자신을 구해 준 은인이다. 그러니 열이 받을 수밖에.
“후안무치! 방약무인! 오만불손! 극악무도!”
“……틀린 말 하나 없지만, 일단 좀 진정해라. 사매.”
백천이 강제로 유이설을 끌어와 앉힌다. 그러자 유이설이 뚱한 얼굴로 항변했다.
“전 침착해요.”
“그럼 검 좀 넣어!”
나까지 찔릴 뻔했잖아, 인마!
자리로 돌아온 백천이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일단…… 우리끼리 이러는 건 소용이 없다.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로 가야 하는 법.”
“네?”
백천의 두 눈이 새파란 안광을 내뿜었다.
“청명이 놈에게 가서 따지자! 우리가 전부 몰려가면 제아무리 그놈이라고 해도 듣는 척은 하겠지!”
“……걔가요?”
모두가 말만 안 했을 뿐, 눈으로 묻고 있었다. ‘그게 왜 말이 되는 소리라고 생각하세요, 사숙?’
하지만 백천은 굴하지 않고 단호하게 소리쳤다.
“조걸!”
“예! 사숙! 말씀만 해 주십시오! 저, 조걸! 오늘만을 기다렸습니다. 그놈의 목을…….”
“가서 혜연 스님도 모셔 와라!”
“……네?”
진지한 얼굴로 백천은 당당하게 어깨를 펴며 말했다.
“쪽수를 하나라도 더 늘려야지.”
“…….”
“뭐? 왜?”
“……아닙니다.”
모두 고개를 저었다. 백천이 많이 변했다, 변했다 하지만 이럴 때마다 적응하기가 참 힘들었다.
* * *
평상에 길쭉하게 누워 술이나 홀짝이던 청명은 우르르 몰려온 오검과 ‘여긴 어디? 나는 누구?’를 표정으로 말하고 있는 혜연을 물끄러미 보았다.
“왜?”
“……아니.”
“뭐 한다고 다들 몰려왔어? 시간이 남아돌아?”
반원형으로 청명을 둘러싼 이들이 백천에게 눈짓했다. 사숙이니 네가 말하라는 의미였다. 백천은 속으로 욕지거리를 했다.
‘개새끼들.’
평소에는 취급도 안 해 주다가 꼭 이럴 때만 대접을 깍듯하게도 한다.
“크흠. 청명아.”
“왜.”
“우리가 어…… 그러니까 우리가 네 지도 방식에 딱히 큰 불만이 있는 건……. 아니, 불만이야 항상 있지만 그 효용에 대해 의심하는 건 아니다.”
“그런데?”
서론부터 던져 놓고 슬슬 눈치를 살피던 백천이 넌지시 본론을 꺼냈다.
“장문인과 장로님들이 너무 힘들어하시는 것 같은데…… 수련 강도를 조금 조절하는 게 어떻겠느냐.”
“그래. 너무 심하다.”
“우리야 젊으니까 버티는 거지, 장문인과 장로님들은 연세가 있으시잖냐!”
윤종과 조걸의 맞장구에 힘입어 백천이 다시 힘 있는 목소리로 덧붙였다.
“그러다가 어디 크게 상하면 돌이킬 수 없어진다.”
“조금만 낮춰요, 사형. 예? 조금만!”
“장문인의 원수! 읍! 으읍!”
검을 뽑으려던 유이설이 조걸과 윤종, 당소소에게 잡혀서 뒤로 질질 끌려 나갔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청명이 피식 웃어 버렸다.
“그러니까, 그분들이 수련을 못 버틴다?”
“……아니, 뭐 꼭 그런 뜻은 아니지만…….”
“쥐가 고양이 걱정해 주고 있네.”
“……응?”
청명이 피식 웃고는 술을 꼴깍꼴깍 들이켰다.
“카아.”
그리고 몸을 벌떡 일으켜 평상에 걸터앉았다.
“백 번 말해 봐야 소용없겠지. 눈으로 보면 알 거야.”
“……그게 무슨 소리냐?”
“안 그래도 지금쯤이면 슬슬 효과가 나올 때가 됐거든.”
“……응?”
“보고 당황하지나 마. 낄낄낄낄낄.”
신나게 웃어젖히는 청명을 보며 백천의 얼굴이 참혹하게 일그러졌다.
‘저 새끼가 또 뭘 하려고…….’
어떻게 이 문파는 하루도 편할 날이 없는가.
이러다 내가 먼저 등선하겠네, 내가!
좋다고 실실 웃는 청명을 바라보는 그의 가슴은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는 불안으로 벌렁거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