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귀환-728화 (726/1,567)

728화. 더 훌륭해질 수도 있지! (3)

백매관 안에 까드득 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윽고 엄지손톱이 살짝 뜯겨 나갔다.

하지만 정작 손톱을 물어뜯는 이는 자신이 뭘 하고 있는지도 모르는 듯했다.

“저기…… 사숙.”

“응?”

“……그러다 피나겠습니다.”

까득.

참다못해 만류하는 말을 들으면서도 손톱을 다시 한번 물어뜯은 백천이 푹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어 윤종을 바라보았다.

“와, 씨!”

그제야 백천의 얼굴을 제대로 본 윤종은 순간 화들짝 놀라 뒤로 주춤 물러나고 말았다.

평소의 단정하고 고운 얼굴이 아니었다. 피부는 거칠기 짝이 없고, 눈 밑에서 시작된 검은 음영이 거의 턱 끝까지 내려온 몰골이 아주 반송장이 따로 없었다.

“아니, 뭘 잘못 드셨습니까? 얼굴이 왜……?”

“윤종아…….”

“예?”

“……괜찮을까?”

“…….”

백천은 말을 꺼낸 것만으로도 더 불안해지는지 귀신이라도 마주친 듯 얼굴이 더 희게 질렸다. 이제 아예 입술까지 덜덜 떠는 걸 보니 윤종마저 괜스레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그때 백천이 다시 물었다.

“진짜 괜찮을까?”

앞뒤 다 잘라 먹은 질문이지만 윤종은 그의 말을 찰떡같이 알아들었다.

“별걱정을 다 하십니다. 아무리 그래도 설마…… 우리한테 하는 식으로 하겠습니까? 청명이 놈도 머리가 달린 놈입니다.”

“머리는 달렸지.”

백천이 다시금 손톱을 물어뜯었다.

“……머리 안에 뭐가 없어서 그렇지.”

어……. 그건 반박하기가 좀 어려운데.

백천은 마치 정신이 반쯤 나간 사람처럼 힘없이 중얼거렸다.

“……우리야 이제 뭐…… 그래, 이미 버린 몸이니까.”

“잠시만요, 사숙. 남의 몸 마음대로 버리시면 안 됩니다.”

“그런데 장문인께서는…… 장로님들께서는 이번에 처음으로 청명이 놈을 겪는 건데.”

백천이 부들대는 손으로 머리를 감싸 쥐었다. 늘 지저분한 곳도 없이 결 좋고 깔끔하게 내려와 있던 머리는 이미 산발이 되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좋은 그림이 그려지지 않는다. 지금이라도 말리는 게 좋지 않을까? 말려야겠지?”

“아니……. 그래도 설마…….”

윤종은 백천을 달래면서도 말끝을 개운하게 끊질 못했다. 그도 슬슬 불안해진 탓이다.

“……그래도 그놈이 위아래는 있……. 아니, 없나? 아니, 있……. 없어?”

윤종의 얼굴이 점점 혼란으로 물들었다.

그게 그…… 위아래가 있는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고.

“불안하지?”

“……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어째 위장이 뒤틀리며 아파 왔다.

두 사람의 얼굴이 불안으로 점차 얼룩져 가자 옆에서 쉬고 있던 조걸이 피식 웃었다.

“하여튼 두 분 다 걱정도 많으십니다. 걱정도 많아.”

“응?”

“거 수련이라는 게, 빡세게 시키고 싶다고 다 생각대로 되는 게 아니잖습니까. 이게 뭐 검술이나 경공 같은 거면 죽어라 굴려 댈 수 있지만, 신공을 익히면서 무슨 수로 사람을 굴립니까? 기운이야 결국 자기가 움직이는 건데.”

“…….”

“…….”

조걸의 태연한 말에 두 사람의 얼굴이 멍해졌다. 조걸은 잠깐 주춤하며 고개를 갸웃했다.

“왜 그렇게 보십니까?”

“아니…….”

백천이 머뭇거리자, 윤종이 그의 말을 대신 해 주었다.

“네 입에서 바른 말이 나올 때도 있구나 싶어서.”

“아니. 이분들이…….”

조걸이 발끈하거나 말거나 백천과 윤종은 서로를 마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일리가 있네요.”

“그러게……. 확실히 그렇구나. 제아무리 청명이 놈이라고는 해도, 신공을 수련하는 사람을 갈아 댈 수는 없을 테니.”

이제야 비로소 조금이나마 안심이 되는 느낌이었다.

하나 그들과는 생각이 다른 사람이 있는 모양이었다.

“그럴까?”

모두의 시선이 한곳으로 쏠렸다.

여태 말없이 앉아 있던 유이설이 뚱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과연?”

“…….”

딱 두 음절만으로 사람을 이토록 불안하게 만드는 것도 능력이라면 능력이었다.

“사고 생각은 다르신 거예요?”

“어떻게든 괴롭힐 놈.”

“……그 말도 맞네요.”

화산의 제자들이 청명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확연히 알 수 있는 순간이었다.

“……슬쩍 가 볼까?”

“일반 제자들은 절대 접근하지 말라고 했잖습니까. 괜히 갔다가 걸리면 운암 사숙조께서 대노하실 겁니다.”

“……그래, 그러면 안 되지.”

백천이 몸을 살짝 떨었다.

매일 얼굴을 마주하는 운검이야 호통을 쳐도 너스레를 떨며 빠져나올 수 있다. 하지만 운암은 백천에게도 여전히 어려운 사람이었다. 차라리 운암보다는 현자 배들이 더욱 친숙할 정도이니 말이다.

‘문파에는 반드시 그런 분이 계셔야 하는 법이지.’

모두가 가족처럼 지내는 게 반드시 좋은 일은 아니다. 어느 순간에는 문파의 기강을 잡고 쓴소리해 줄 사람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운자 배에서는 운암이 그런 역할을 하고 있고, 백자 배에서는 백상이 그런 사람이다.

“끄응. 속이 타도 확인해 볼 수가 없으니.”

“일단 비명 소리가 안 들리니 조금은 안심해도 되지 않겠습니까?”

“……그것도 그런데…….”

백천이 막 한숨을 내쉬려는 찰나였다.

백매관 문이 벌컥 열리더니 백상이 안으로 급히 고개부터 들이밀었다.

“사형! 장문인과 장로님들께서 내려오십니다!”

“뭐?”

백천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문으로 돌진했다.

“비켜!”

“으악!”

심지어는 문을 반쯤 막고 서 있던 백상을 걷어차 치워 버린 후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려 나갔다. 그 뒤를 다른 오검이 급히 뒤따랐다.

“어디? 어디지?”

“저쪽입니다!”

백천의 시선이 윤종이 가리킨 곳으로 획 돌아갔다. 과연 화산 뒤쪽으로 이어지는 소로를 따라 몇몇 사람이 터덜터덜 걸어오는 모습이 똑똑히 보였다.

“멀쩡한데?”

“멀쩡하신데라고 해야지, 이 싸가지 없는 놈아!”

윤종이 반사적으로 조걸의 목을 잡고 졸랐다.

“켁! 케엑! 죄, 죄송!”

조걸의 목을 짤짤 흔들어 대는 윤종을 보며 백천이 식은땀을 흘렸다.

‘가만 보면 저 새끼도 항상 조걸이 놈 팰 준비만 하고 있는 것 같군.’

하지만 이건 누가 보아도 윤종의 잘못은 아니었다. 그 윤종을 저렇게 만든 조걸과 그 조걸을 저리 만든 청명이 놈의 잘못이었다.

“이, 일단 가 보자.”

“예!”

백천을 필두로 한 오검이 장문인이 오는 쪽을 향해 우르르 달려갔다. 일단 절뚝대거나 휘청대지 않는 것을 보면 그들이 우려했던 그런 일은 없었던 모양이다.

‘그래도 청명이도 사람이네.’

‘양심이 있으면 장문인께 그러면 안 되지.’

‘마귀 같은 놈이지, 진짜 마귀는 아니었네!’

모두가 한시름 놓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런데 그때였다.

“……어?”

“엥?”

“저, 저거…….”

장문인과 장로들에게 다가가던 발걸음이 점점 느려졌다.

“……자, 장문인?”

백천이 당황한 듯 현종을 불렀다. 그러자 현종이 고개를 슬쩍 들어 그를 마주 보았다.

움찔.

백천은 깜짝 놀라 언어를 잃은 사람처럼 더듬거렸다.

“아, 아니……. 왜…… 왜 이렇게 수척해지신……. 그…….”

그도 그럴 게, 현종의 얼굴은 말이 아니었다.

백천의 얼굴도 상태가 그리 좋지 않지만, 지금 현종의 얼굴에 비하면 한잠 늘어지게 잔 뒤 쌀뜨물로 세수까지 마친 뽀얀 얼굴이라 해도 될 정도였다.

‘피골이 상접했는데?’

‘아니, 이 미친놈이 대체 무슨 짓을 한거야?’

‘무서워.’

현종뿐 아니라 현영과 현상의 얼굴도 마찬가지였다. 하루 사이에 사람이 거의 목내이(木乃伊: 미라)가 되어 버린 것 같지 않은가?

“자, 장문인. 대체 무슨 일이…….”

현종은 아주 힘없이 꺼져 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별거…… 아니다.”

아니, 되게 별거 같은데요?

“아우. 개운하다.”

그때 별안간 들려온 목소리에 백천의 시선이 획 돌아갔다.

저 뒤쪽에서 청명이 놈이 잘 자고 일어난 고양이 같은 얼굴로 자박자박 걸어오고 있었다.

“야, 이 새끼야!”

순간적으로 눈이 뒤집힌 백천이 와락 달려들어 그의 멱살을 움켜잡았다. 아니, 잡으려 했다.

하지만 꿈은 그저 꿈일 뿐, 백천은 달려들었던 속도보다 더 빨리 튕겨 나가 바닥을 데굴데굴 굴렀다.

“헐, 씨. 뭐야.”

청명은 내뻗어진 제 주먹과 백천을 번갈아 보다 혀를 찼다.

“아, 내가 그런 거 하지 말라고 몇 번이나 말했잖아. 나도 모르게 반사적으로 주먹이 나간다니까?”

“끄으으……. 저 새끼가…….”

고개를 번쩍 들어 올린 백천이 원독 가득한 두 눈을 부라렸다.

“야, 이 미친놈아! 장문인께 무슨 짓을 한 거냐! 위아래도 모르는 놈 같으니!”

“아, 이거? 이건…….”

“법도도 모르고 예의도 없는 놈!”

“아, 그러니까 그게…….”

“육시를 할 놈! 치도곤을 내어 버르장머리를 고쳐야 할 놈! 허리를 분질러 놓…….”

“에라, 진짜!”

퍼억!

청명이 벗어 날린 신발이 백천의 얼굴에 틀어박혔다. 비로소 조용해진 백천이 옆으로 스르륵 쓰러졌다.

털썩.

“……아주 신이 났지, 신이 났어. 쯧쯧.”

쓰러진 그를 보며 청명은 혀를 차 댔다. 예전에는 그나마 좀 멀쩡했던 것 같은데. 어떻게 된 게, 가면 갈수록 상태가 안 좋아지는지 몰라.

그때 유이설이 빠르게 현종을 향해 다가갔다. 퍼뜩 정신이 든 윤종이 외쳤다.

“장문인, 괜찮으십니까? 너희도 가서 빨리 부축해 드려라!”

“예!”

유이설과 당소소, 조걸이 재빠르게 장문인과 장로들을 부축했다. 윤종은 사색이 된 얼굴로 청명에게 물었다.

“오늘 자하신공 익히는 거 아니었어?”

“맞아.”

“그, 그런데 왜 이런 것이냐? 설마 입마(入魔)라도……?”

“입마는 얼어 죽을. 그것도 뭘 좀 익혀야 걸리는 거지. 하루 만에 주화입마 들면 역사에 남을 일이지.”

“그, 그럼 왜?”

“아아.”

청명이 어깨를 으쓱했다.

“별거 아냐. 그냥 첫 운용을 하는데, 도통 감을 못 잡으시는 것 같아서.”

“같아서?”

“시간을 들여 할까 하다가…… 그것도 낭비다 싶더라고. 그래서 그냥 내가 몸 안으로 기운을 넣어서 강제로 돌려 버렸거든?”

“……남의 몸 안으로 기운을 넣어서 강제로 기운을 돌렸다고?”

“응.”

“어……. 그게 문제가 되는 건가? 진기도인이잖아. 그건 이전에도…….”

“아니지.”

“응?”

청명이 빙긋 웃었다.

“진기도인은 원래 기운이 흐르는 곳으로 기운을 보내는 거고. 이건 안 가던 곳으로 강제로 뒤틀고.”

뒤틀어?

“기혈을 뚫고?”

뚫어?

“긁어내고, 부수고, 으스러뜨리고, 찢어 가며!”

장로를 부축하며 듣고 있던 조걸의 등에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그, 그러니까 그럼 어떻게 되는 건데?”

“흐음. 어…… 뭐 큰 문제는 없지. 어쨌거나 첫 흐름을 잡는 데는 성공했으니까. 이제는 좋아질 일만 남았지.”

윤종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런데 장문인의 상태가 왜…….”

“별건 아니고, 결과적으로는 좋은 건데 평생 기운을 돌리던 데서 다른 곳으로 흐름을 바꾸다 보면…… 음, 그러니까 조금 아프거든.”

“……얼마나?”

“음. 그걸 어떻게 비유해야 하나?”

잠깐 고민하던 청명이 생각난 듯 환하게 웃었다.

“몸속에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손가락 두께로 구멍을 파내는 느낌이라고 하면 이해가 갈까? 기혈을 따라서 꼬불꼬불하게?”

“히이이이이익.”

윤종이 사색이 되어 뒤로 주춤주춤 물러났다. 핏기가 가신 얼굴로 땀이 비 오듯 쏟아졌다.

“야…… 야, 이 미친놈아 사람이 맨정신으로 그걸 어떻게 버텨!”

“버텨, 버텨. 다 할 수 있어. 저기 봐. 훌륭하게 버티셨잖아.”

저게? 넋이……. 아니, 영혼이 사라졌는데 이 새끼야?

“괜찮으세요, 장로님?”

윤종이 다가가 장문인의 상태를 살폈다. 그러자 초점이 사라졌던 현종의 눈에 희미하게 빛이 돌아왔다.

“윤종아…….”

“예, 장문인! 접니다! 저 윤종입니다! 정신이 좀 드십니까?”

“……문적(門籍).”

“예?”

“……저 새끼 문적 파서 쫓아내.”

“…….”

“……썩을.”

현종의 몸이 기어이 옆으로 털썩 넘어갔다.

“으아아! 장문이이이인!”

“장로님! 장로님, 정신 차리십시오!”

“이 미친놈아 뭘 하면 내공 익히다가 사람이 기절을 하냐!”

“의약당! 의약당으로 모셔라, 어서!”

난장판이 된 주변을 멀뚱히 보던 청명이 혀를 차 댔다.

“쯧쯧. 이리 나약해서야.”

뭐, 그래도 이제 곧 나약하지 않게 될 테니까 괜찮지.

청명은 기지개를 쭉 켰다.

하지만 이 순간에는 그조차도 알지 못했다.

그가 저지른 이 일이 화산에 어떠한 태풍을 몰고 올지 말이다.

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