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3화. 돌아왔습니다. (3)
제례는 사흘 동안 이어졌다.
직접 유해를 회수해 온 오검에게도, 화산에서 선인의 유해를 맞이한 다른 제자들에게도 이 제는 깊은 의미를 가졌다.
하지만 그들의 가슴에 차오른 회한이 아무리 깊다 한들, 현자 배에 비할 수는 없을 것이었다.
사락.
잿빛으로 타 버린 향 끝이 톡 떨어졌다. 향을 가만 바라보던 현종은 시선을 들어 제단을 올려다보았다.
“한때는…….”
다른 제자들은 예를 마치고 모두 숙소로 복귀하여, 지금 이곳에는 현영과 현상만이 남아 있었다.
“원망한 적도 있었다.”
현종의 목소리에서 짙은 회한이 묻어났다.
“아니……. 솔직하게 말하면 수도 없이 원망했다. 내가 짊어진 짐이 너무도 무거워서 이분들을 원망하지 않고서는 버틸 수 없던 시절도 있었다.”
“……장문인.”
현상이 안타까운 얼굴로 현종의 등을 보았다. 제단을 바라보는 그의 뒷모습이 퍽 쓸쓸해 보였다.
“하지만 이렇게 선인의 유해를 수습하고 나니…….”
현종이 두 눈을 감는다.
“내가 품었던 원망이 얼마나 배부른 소리였는지 비로소 알겠구나. 이분들을 원망해서는 아니 되었던 것을.”
무너져 가는 화산을 지켜 내는 것 역시 쉬운 일은 아니었다. 현종의 삶을 아는 이라면 그가 버텨 왔던 무게를 이해할 수밖에 없다.
하나 아무리 힘겨웠다 한들, 화산을 지키기 위해 목숨마저 기꺼이 내던진 이들을 어찌 원망할 수 있단 말인가?
“이해하실 겁니다.”
“…….”
현영이 다가와 나지막이 말하며 현종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제 자식이 못났다 하여 진심으로 욕을 하고 화내는 부모가 몇이나 있겠습니까. 다 이해하실 겁니다. 그리고 잘해 냈다고 칭찬해 주실 겁니다.”
“……그러실까?”
“예. 그러니까 어깨 좀 펴십시오. 사조께서도 훌륭하셨지만 저희도 열심히 했습니다. 지금의 화산을 보신다면 사조께서도 분명 흡족해하실 겁니다.”
현영의 말에 현종은 가만 고개를 끄덕였다.
“사조들께서 화산을 지켜 내셨다는 것은 알고 있다.”
그리고 새 향에 불을 붙여 향로에 꽂으며 나지막한 한숨을 뱉었다.
“힘겹기만 하던 시절에 나를 지탱해 준 것은 언젠가 죽어 사조들을 뵙게 될 때, 최선을 다했노라 당당히 말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의무감이었다.”
고단함과 슬픔이 묻어나는 현종의 눈이 살며시 감겼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분들이 목숨을 던져 지켜 낸 화산의 혼이…… 나를 이끌고 있었구나.”
말을 마친 그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가 바르게 서니 장로들도 그의 반걸음 뒤에 시립했다.
현종이 먼저 말없이 절을 했고, 장로들도 그 뒤를 이어 경건하게 절했다.
그렇게 사조에 대한 예의를 갖춘 그들은 소리 없이 뒤로 물러났다.
조사전을 빠져나오고도 현종은 바로 발걸음을 옮기지 못했다.
“닫을까요?”
“아니다.”
현상의 물음에 그는 고개를 내저었다.
“사조께선 백 년 만에 화산으로 돌아오신 것이다. 조금 더 보고 싶으실 터이니 앞으로 열흘간 조사전의 문을 열어 두도록 해라.”
“예. 그리하겠습니다.”
조사전에서 풍겨 오는 향냄새가 코끝을 스쳤다.
이제까지는 그저 사조들의 위패를 모셔 둔 곳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번 일을 겪고 조사전을 바라보니, 저 낡은 위패 하나하나에 어린 마음들이 느껴지는 것만 같았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현종이 빙긋 웃음 지었다.
“화산의 미래는 지금 이 순간에도 훌륭하게들 자라나고 있습니다. 전해 주신 것은 남김없이 후대로 이어 갈 테니, 편히 지켜보십시오.”
조사들의 위패를 두 눈에 가득 담고서야 현종은 고개를 돌렸다.
그 역시 언젠가는 저곳의 한자리를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때 함게 선 선조들에게 부끄럼 없는 이가 될 수 있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가자꾸나.”
“예, 장문인.”
현종이 옅은 미소를 띠며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런 그의 머리 위로 밝은 햇살이 한가득 쏟아졌다.
“읏, 차!”
턱! 턱!
청명은 어느새 봉긋 솟아오른 봉분의 위쪽을 팡팡 두드렸다. 그리고 손에 묻은 흙을 대충 털어 내며 그 옆에 털썩 주저앉았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화산의 정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하…… 새끼. 영광인 줄 알아. 내 손으로 무덤도 파 주고, 이 새끼야. 옛날 같으면 상상도 못 할 일이었어! 알어?”
청진이 이 말을 들을 수 있다면, 욕을 할지 고마워할지는 알 수 없다. 놈의 성격을 고려한다면 아마 좋은 말이 나올 가능성은 거의 없을 것이다.
“나도 참 착해졌다. 객사한 놈 뭐 예쁘다고 무덤까지 만들어 주고…….”
투덜거리면서도 청명의 손은 영 쉬질 못했다. 쉴 것처럼 주저앉아서도 자꾸 여기저기를 바쁘게 누비며 튀어나온 곳을 깎아 내고 모자란 곳을 채워 넣었다.
그렇게 모난 곳이 없다는 것을 몇 번이고 확인하고서야 그는 만족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주억거렸다.
뒤쪽으로는 커다랗게 자라난 매화나무가 가지를 무덤 위로 드리우고 있었다.
사실 볕이 아주 내리쬐는 양지도 아니고, 땅이 고르고 평평하여 보기에 좋은 곳도 아니다. 빈말로도 명당이라고는 할 수 없는 곳이었다.
겨울에는 칼바람이 칠 것이고, 밤마다 서리가 낄 것이다.
“어때? 맘에 들지?”
하지만 청명은 청진이 이 자리를 마음에 들어 할 것임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다. 바로 이곳이 화산파의 모습을 내려다보기에 가장 좋은 자리니까.
청진이 놈이라면 분명 이곳을 제 묏자리로 골랐을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 화산에서 바라보는 노을은 정말 근사하죠. 제가 죽을 때는 이 광경을 보며 죽었으면 좋겠습니다.
아마 그때 그 말을 여기서 했었지.
청명은 품 안에서 술병을 꺼내 곧장 마개를 따고 시원하게 들이켰다.
“카아!”
젖은 입가를 쓱 문질러 닦고 무덤을 보았다.
“뭐?”
분명 아무도 없건만, 청명은 누군가와 대화하듯 말했다.
“떼? 떼는 무슨 떼야, 이 새끼야! 어디 도사 새끼가 사치를 부리려고! 객사한 놈 묘 만들어 줬으면 됐지, 풀까지 입혀 달라고? 확 마!”
눈을 부라리던 청명이 결국 피식 웃고는 황토 위로 술을 천천히 붓기 시작했다.
“술이나 한잔해라. 사형이 떼는 못 입혀 줘도 술은 줄 수 있으니까.”
졸졸졸졸.
흙 위에 뿌려진 술이 무덤을 더욱 짙게 물들였다. 그 광경을 가만히 바라보던 청명은 무덤에 기대어 벌렁 드러누웠다.
“……그래도, 인마. 너는 운 좋은 거야. 다른 놈들은 돌아오지도 못했는데…….”
세상을 비춘 온화한 햇살이 그늘을 만든다. 얼굴을 덮어 오는 매화나무 그림자에 청명은 가만 눈을 감았다.
“걱정하지 마, 인마.”
나직한 목소리가 울렸다.
“나도 이제 예전 같지는 않으니까. 한번 뒈졌으면 조금이라도 철이 들어야지. 뭐…… 네놈이 보기에는 여전히 철이 안 들었을지도 모르지만.”
눈을 뜬 청명은 푸르른 하늘을 보며 느리게 중얼거렸다.
“……이제는 나도 네놈이 하던 말이 무슨 의미인지 알았으니 말이다.”
눈이 시릴 만큼 날이 푸르렀다.
“남은 이에게는 남은 이의 몫이 있는 법이지.”
상체를 일으킨 청명은 묵묵히 화산의 정경을 내려다보았다. 화산의 제자들이 오가는 모습과, 예전과는 달라진 전각들이 보였다. 손에 든 술병을 기울이며 목을 축였다.
이미 죽은 이들을 부여잡고 울고 날뛰어 봐야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남겨진 이가…… 함께 가지 못한 이가 할 수 있는 것은 고작 하나뿐이다. 저들의 죽음이 무의미해지지 않도록 하는 것.
“화산이 올바로 서지 못한다면…… 네 죽음도, 사형의 죽음도, 모두 개죽음이 되겠지.”
그렇게 만들 수는 없다.
그들이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바랐던 소망을 이뤄 내는 것. 그게 청명에게 남겨진 사명이었다.
“하여튼…….”
청명이 슬쩍 미간을 구기며 혀를 찼다.
“예전부터 니들은 손이 많이 갔지. 사형! 사형! 종남 애들이 괴롭혀요. 사형! 천마 죽여 줘요. 사형! 화산 다시 일으켜 주세요. 사형! 사형! 사형! ……바라는 것도 더럽게 많지, 망할 놈들.”
- 나는 안 그랬다.
“아니, 이 양반이! 댁이 제일 심했어!”
하늘을 향해 삿대질한 청명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귓가에 사제들이 종알거리던 목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다.
“……청진아.”
청명은 낮게 읊조렸다. 툭 솔직한 마음이 드러났다.
“나는 아직도 모르겠다. 왜 나만 혼자 이렇게 살아 돌아왔는지.”
흰 술병에서 흘러나온 맑은 술 줄기가 청명의 입 안으로 쏟아졌다.
독한 주향이 가득 퍼져 나가는데, 희한하게 오늘따라 술맛도 잘 느껴지질 않았다.
뭔가 말을 하려던 청명은 입을 꾹 닫았다. 굳어진 입매가 그 말을 막아 세우는 것만 같았다.
그렇게 다물려 있던 청명의 입은 잠시 후에야 천천히 다시 열렸다.
“걱정하지 마라.”
봉분을 더듬는 손끝이 흙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화산은 내가 반드시 예전처럼 만들 테니까. 절대 네 죽음을 개죽음으로 만들지는 않을 테니까.”
그러니까 그 일이 다 끝나면, 그때는.
그래. 그때는…….
“나…….”
“청명아아아아아아!”
우득.
순간 삐끗한 청명의 손이 무덤의 흙을 움켜잡았다.
“어디 있냐! 청명아아아아아아!”
“사혀어어어어어엉!”
“청명아아아아아아아아!”
“아오, 저 씨!”
청명이 볼을 파르르 떨며 이를 빠득빠득 갈았다.
아무튼 사람을 한시도 가만히 안 둔다니까! 진짜!
“아, 왜!”
청명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소리치자 그를 찾아다니던 오검이 고개를 획 돌려 일제히 이쪽을 바라보았다.
“거긴 왜 올라가 있어?”
“아, 알 거 없고! 왜 이렇게 사람을 불러 대?”
“장문인이 너 데리고 오라신다!”
“……응?”
윤종의 말에 청명이 고개를 갸웃하자 당소소가 재촉했다.
“빨리 내려와요, 사형!”
“밥 먹을 시간도 다 됐어. 얼른 갔다가 밥 먹자.”
“…….”
뭔가 또 소리를 빽 지르려던 청명은 결국 헛웃음을 터트렸다.
“내가 이렇게 산다, 청진아.”
이 나이에 저 새파란 것들이랑 어울려서.
“어휴.”
남은 술을 무덤 위로 모두 쏟았다. 독한 주향이 사방으로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청명은 중얼거렸다.
“나 바쁘다. 바로 옆에 있어도 자주는 못 온다.”
대답은 들려오지 않는다. 하지만 이미 들은 것 같았다.
“그래도…….”
그런 날이 있다.
아무 이유 없이, 보고 싶은 얼굴들이 자꾸 눈에 어른거리는 날.
“그런 날에는 놀러 올 테니까 너무 박정하다고 욕하지 마라. 나는 할 일이 많은 사람이거든! 엣헴!”
청명이 무덤을 향해 배를 쭉 내밀고 씩 웃었다.
“그러니…….”
그리고 천천히 눈을 감았다. 평소와는 달리 평온한 그의 얼굴에 맑은 미소가 번졌다.
“편히 쉬게, 사제.”
그 말을 마지막으로, 청명은 천천히 돌아섰다.
발걸음이 좀처럼 떨어지지 않…….
“아, 빨리 좀 오라고! 왜 이렇게 꾸물거려?!”
아오, 씨!
“간다! 간다, 이 새끼들아! 간다고!”
결국 고함을 내지른 청명이 오만상을 찌푸렸다.
“어휴, 귀찮은 놈들. 하여간 진짜 사람을 잠시도 안 내버려 두네! 에라!”
크게 욕을 해 대며 청명은 언덕을 뛰어 내려갔다.
그가 훌쩍 떠난 언덕 위에는 작은 봉분만이 덩그러니 남았다.
지금은 흙으로 덮여 볼품없지만, 곧 이 무덤에도 푸른 풀들이 자라날 것이다. 가을이 되면 낙엽으로 뒤덮이고, 겨울이 오면 새하얀 눈으로 희게 변해 가고.
그렇게 하루하루 지나 계절이 오고 가면 어느새 화산의 풍광에 자연히 물들어 갈 것이다.
세월이 많이 흘러서…….
바람에 깎이고 비에 다져져 누구도 이곳에 봉분이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는 때가 온다 해도, 화산의 혼만은 이곳에서 영원히 화산을 지켜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