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1화. 돌아왔습니다. (1)
파아아앗!
풍광이 이지러진다.
화산의 제자들이 검은 뇌전처럼 산을 타고 건너며 나아갔다.
백천의 시선은 줄곧 선두에서 달리는 청명에게로 꽂혀 있었다.
“사숙.”
윤종의 부름에야 백천이 슬쩍 고개를 돌렸다. 윤종의 표정이 살짝 떨떠름했다.
“만인방이 왜 우리를 그냥 보내 준 걸까요?”
“…….”
백천은 미미하게 눈살을 찌푸리며 고민했다. 이 말에는 그도 명쾌한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나도 모르겠구나.”
“이미 한번 전쟁을 치른 적입니다. 저 같았으면 절대 놓아주지 않았을 텐데…….”
장일소가 천우맹의 개파를 축하하기 위해서 화산을 방문했다고는 하나, 그게 화산과 만인방이 서로 화해를 했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들은 여전히 적이다.
백천이 쓰게 웃었다.
“……패군쯤 되는 이의 생각을 우리가 어찌 알겠느냐?”
실로 기이했다. 본디 사람의 인상이란 거듭 마주할 때마다 옅어지기 마련이다.
아무리 강렬한 존재감을 지닌 이라 해도, 여러 번 마주하게 된다면 그때부터는 익숙해진다. 익숙함은 편안함을 낳고, 편안함은 강렬함을 앗아 간다.
하지만 패군 장일소는 정반대였다.
일전에 보았을 때보다 이번에 보았을 때의 인상이 배는 더 강렬했다. 그의 웃는 낯, 나긋한 손짓 하나하나가 마치 눈앞에 새겨지기라도 한 것처럼 잊히질 않았고, 뒷덜미에 엉겨 붙기라도 한 듯 서늘했다.
이제껏 살면서 그토록 강렬한 존재감을 지닌 이를 본 건 이번이 처음, 아니 두 번째였다.
“그래도 운이 좋았네요.”
“……글쎄다.”
“예?”
백천의 시선이 청명의 등으로 향했다.
만일 이런 상황이 아니라 서로 거리낄 게 없는 상황에서 장일소를 마주했다면, 청명이 지금처럼 검을 섞지 않고 물러났을까?
아니. 아마 아닐 것이다.
적이라 판단한 이를 앞에 두고 물러나는 방법을 모르는 놈이다. 일행의 안위 때문에 망설이는 일이야 있을지 모르지만……. 그렇다 해도 지금처럼 이리 쉽게 물러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유가 있다면 단 하나.
백천의 시선이 청명이 둘러맨 봇짐으로 향했다.
‘참을 수 없었던 거지.’
죽음을 두려워할 놈이 아니다. 놈이 두려워한 것은, 기껏 수습한 저 유해가 이 머나먼 땅에 또다시 버려지는 것.
그 상황만은 피하기 위해 굴욕적이라면 굴욕적인 거래를 받아들인 것이다.
백천은 지금 청명이 어떤 심정일지 감히 상상하기 어려웠다.
“어떤 관계일까요?”
조걸이 슬쩍 대화에 끼어들었다. 빠르게 달리느라 숨이 가빠 오긴 했지만, 궁금함을 참지 못한 것이었다.
“십삼 대 제자면, 과거 마교와의 전쟁에 참여하신 분 아닙니까?”
“……그렇겠지.”
백천도 그 백골의 곳곳이 검게 물들어 있는 것을 똑똑히 보았다. 그들도 이미 겪어 보지 않았던가. 그건 마공에 당했을 때 나타나는 전형적인 현상이다.
“그런 분과 청명이 대체 무슨 관계일까요?”
“……후예 아니겠느냐?”
백천의 말에 조걸이 슬쩍 눈살을 찌푸렸다.
“물론 화산에 혼인이 금지된 것은 아니고, 자유로이 혼인을 할 수 있는 건 사실이지만…… 그래도 그 급박한 전쟁 와중에…….”
“이상한 소리를 하는구나. 당대의 십삼 대 제자라면 장로급이었을 터. 이미 손주를 보고도 남을 나이다.”
“아…….”
조걸이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청명이 놈이 저분의 후예라고 해도 이상할 것은 없지. 애초에 화산에 처음 들었을 때부터 화산과 자신의 관계를 설명하려 했다 하고.”
하지만 조걸은 여전히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이 있는 듯 다시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렇다면 청명이는 왜 화산으로 온 걸까요?”
“음?”
“다른 이들이야 화산을 등지고 제 발로 떠났으니 껄끄러움이 있다고 하지만, 저분의 후예라면 그런 것도…….”
“그야 모를 일이다.”
백천이 고개를 내저었다.
“선조께서 화산에 목숨을 바쳤다 해서 그 자손들이 끝까지 화산과 함께했다는 보장은 없지 않느냐.”
“……그렇기는 하지요.”
“어쩌면 그런 분의 후예임에도 화산을 떠났다는 죄책감에 오랫동안 돌아오지 못했을 수도 있지. 청명이 놈에게야 아주 선대의 일이니 별 관계없겠지만.”
그러자 이번에는 윤종이 눈살을 찌푸렸다.
“그런데 사람이 아무리 효심이 깊다고는 해도, 백 년 전에 돌아가신 선조의 유골을 찾았다고 해서 저리 통곡할 수가 있습니까?”
“…….”
“저는 청명이 놈의 저런 모습을 처음 봤습니다. 아니…… 저놈이 저럴 수 있다는 건 상상조차 해 본 적이 없습니다. 이건 도무지…….”
“…….”
백천 역시 그건 도무지 이해가 가질 않아 그저 청명의 등만 바라보았다.
알 수가 없다.
대체 저놈에게 어떤 사연이 있는지, 대체 무엇이 있기에 그런 모습까지 보여야 했는지.
하지만…….
“사질은 사질이야.”
그때 유이설이 툭 입을 열었다.
세 사람의 시선이 쏟아지자 유이설은 여전히 무표정하게 앞만 보고 달리며 말했다.
“알면 달라져?”
“……아뇨, 사고. 그런 게 아니라.”
“무슨 사연이 있든, 내 사질이야.”
그 말을 들은 백천의 입가에 미소가 어렸다.
엉뚱한 녀석이지만, 한 번씩 이리 핵심을 짚어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 준다.
“그렇구나.”
백천이 헛기침을 한차례 하고는 말을 이었다.
“그래, 나도 마찬가지다. 녀석에게 무슨 사연이 있든 놈은 내 사질이다. 설령 저놈이 화산을 등지고 떠났던 이들의 후예든, 아니면 화산에 큰 죄를 짓고 달아났던 이의 후예든, 어디서 사람을 수백 죽이고 화산으로 도망친 살인자 놈이든…….”
“사숙. 마지막은 다시 생각해 보십시오.”
“정신 나가셨습니까?”
“…….”
어, 좀 과했나?
“크흠. 여하튼.”
백천이 단호하게 딱 잘랐다.
“녀석의 입에서 어떤 말이 나오든 나는 놀라지 않을 것이다. 신경 쓰고 싶은 생각도 없다. 지금 놈 자체만으로도 감당하기 벅찬데 놈의 사연까지 무슨 수로 신경 쓰란 말이냐.”
“……그도 그렇죠.”
“그러니 쓸데없는 생각일랑 그만두거라. 일단은 화산으로 돌아가는 게 먼저다.”
“예.”
윤종이 차분히 답하며 슬쩍 청명의 등을 넘겨다보았다.
‘도망친 이들의 후예라.’
사실 그리 생각하는 게 가장 온당하다.
하지만 윤종은 알고 있었다. 아니, 그뿐 아니라 사실은 모두가 알고 있을 것이다.
청명에게 숨겨진 사연이 그리 단순하지만은 않다는 걸 말이다.
어쩌면 이번에 본 모습이, 때때로 청명이 보이던 기이한 무거움의 원인일지 모른다.
‘아직 우리가 부족한 거겠지.’
윤종이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충분히 믿을 만하다고 생각했다면 청명이 놈은 분명 제가 가진 사연을 이야기해 주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아직 아무런 말이 없다는 건, 그들이 여전히 부족하다는 뜻.
그러니 윤종은 청명이 놈을 닦달하지 않기로 했다.
‘언젠가는…….’
저 청명이 녀석이 언젠가 그들을 완전하게 믿고 의지할 수 있게 된다면, 그때는 반드시 이야기해 줄 것이다.
반드시.
“뒤처지지 마라, 조걸!”
“예, 사형!”
화산의 제자들이 저마다의 상념을 품고 달려 나갔다.
청명의 등을 쫓아서.
* * *
“흐으으음.”
화산의 제자들이 보이지도 않을 만큼 완전히 까마득히 멀어지자, 장일소는 재미있다는 듯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혼이라…….”
다시 웃긴 듯 낄낄 웃어 대던 장일소가 입을 틀어막았다. 그의 흰 손가락 사이로 조롱 어린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냄새나는 유골 쪼가리를 들고 혼이라니! 나름 머리가 돌아가는 놈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무튼 너무 재미있는 놈이야.”
“방주!”
호가명은 그런 장일소를 보며 참지 못하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대로 보내면 안 됩니다! 모르시겠습니까? 저자는 호랑이 새끼입니다!”
“가명아.”
장일소가 딱하다는 듯 눈썹을 휘며 혀를 찼다.
“왜 이리 흥분하고 그러니. 호랑이 새끼가 뭐 그리 대단하다고.”
“방주!”
호가명은 속이 터질 지경인지라 이까지 악물었다.
“호랑이 새끼를 본 사람은 누구나 키워 보려 합니다. 하지만 결국에는 다 큰 호랑이에게 물려 죽기 십상입니다.”
“…….”
“물론 방주께선 보통 사람이 아니지만, 저 호랑이 새끼도 보통이 아닙니다. 어쩌면 저놈의 송곳니가 언젠가 방주의 목에 틀어박힐지도 모릅니다! 그때 가서 지금의 결정을 후회해 봐야 아무 소용이 없단 말입니다!”
격렬하고 절절한 호가명의 외침에도, 장일소의 표정은 그저 심드렁하기 짝이 없었다.
“그래서?”
“추격하게 해 주십시오! 제가 저놈을 죽이고 돌아오겠습니다! 방주, 대계를 바라보다가 안위를 놓친다면 그보다 더한 실책이 어디 있겠습니까? 지금이라도 저놈을…….”
“가명아.”
말을 하던 호가명이 순간 흠칫하며 입을 닫았다.
장일소의 목소리가 평소와 다르게 차가웠다. 아니……. 차갑다기보다는 낮게 끓어오르는 것 같았다.
“안위라 했느냐?”
“……방주?”
장일소가 호가명을 느릿하게 돌아보았다.
광기로 일렁이는 그의 두 눈을 본 호가명은 저도 모르게 호흡을 잊고 말았다.
“네 말이 맞다. 언젠가는 내가 저 호랑이에게……. 아니, 저 괴물 놈에게 목이 잘려 뒈질지도 모르지.”
“…….”
“나도 알아. 생각이 있는 놈이라면 여기서 저놈을 죽여야지. 원한을 가진 호랑이 새끼를 죽이지 않고 들판에 풀어놓는 건 멍청하기 짝이 없는 짓이야. 제아무리 나약하고 미약하다 해도 삭주굴근(削柱掘根) 해 후환을 없애야지.”
“그런데 어째서…….”
“가명아.”
장일소의 말투야 언제나 그랬듯이 나긋했지만 그 안에 짐승의 목울음 같은 것이 들리는 듯했다.
“안위 따위가 다 무엇이냐.”
“…….”
“칼 든 놈이 제 안위를 걱정하는 순간 칼을 들고 살 자격 따윈 잃는 거야. 한번 절벽을 오르기 시작한 이상, 다시 내려가는 길 따위는 없다. 중간에 멈추는 것도 불가능하지. 절벽에 달라붙은 이는 오르고 또 오를 수밖에 없다!”
장일소가 양팔을 크게 벌렸다. 넓은 비단 소맷자락이 장엄하게 펄럭였다. 이 과장된 몸짓이 이토록 잘 어울리는 이는 천하에 오직 장일소밖에 없을 것이다.
“말해 봐라! 네가 아는 나는 누구냐! 네가 원하는 나는 누구더냐! 목숨을 돌보기 위해 더 높이 오를 길을 마다하고 골방에 처박힌 돼지 같은 나를 원하느냐? 아니면 목숨을 걸고서라도 절벽을 타다 떨어져 죽는 늑대 같은 나를 원하느냐!”
“방주…….”
“대답해라!”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울렸다. 장일소의 눈이 호가명을 찢어 죽일 듯 노려보았다.
“내가 누구냐!”
호가명이 눈을 감았다.
그건 외면이 아니라 뼈에 사무치는 납득이었다.
“당신께서는…….”
신음과도 같은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패군……. 패군 장일소이십니다.”
그 말이면 충분하다.
자신의 얼굴을 잡아 뜯듯 움켜잡은 장일소가 허리까지 구부려 가며 나지막이 웃었다.
‘아직은 안 돼.’
참을 수 없는 웃음이 자꾸 미어 터져 나왔다.
‘아직은 판을 뒤집을 때가 아니야. 아직은.’
화산신룡은 아직 해 줘야 할 역할이 있다.
안위? 목숨?
당연히 중요하다. 이 목숨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못 할 짓이 없다.
하지만 그에게 목숨보다 중요한 건 가치다.
그가 가장 참을 수 없는 것은 달라질 것 없는 싸구려 삶을 그저 연명하는 것이다.
‘이 정도가 아니야.’
신주오패?
만인방?
패군?
웃기지도 않은 소리였다.
그는 그 정도로는 절대 만족할 수 없다. 그렇게 타고났다. 이 세상을 모조리 집어삼키고 배 속에 넣고서도 그는 만족하지 못할 것이다.
이 지독한 허기를 채우기 위해서라면 뭐든 할 수 있다. 그게 설령 스스로의 목을 제 손으로 베어 내는 일이라고 해도 말이다.
장일소는 붉은 혀를 내어 입술을 천천히 핥았다.
‘이제 시작일 뿐이야.’
매섭게 노려봐 오던 청명의 눈빛을 떠올리며 장일소는 크게 웃어 댔다.
그런 그를 우러러보는 호가명과 만인방도들의 눈에 숨길 수 없는 공포와 경외가 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