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7화. 여기 있었구나. (1)
“왜!”
분노가 가득 실린 목소리가 울렸다.
아니, 어쩌면 슬픔이나 원망일지도 모른다.
“왜! 왜 못 가게 하는 겁니까, 왜!”
그 외침에도 먼 곳의 달만 바라보던 장년인이 가만히 고개를 돌렸다.
눈빛에 담긴 무게가 온몸을 짓눌렀지만 청명은 물러서지 않았다. 호수처럼 고요하게 가라앉은 눈빛과 타오르는 화산 같은 눈빛이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치열하게 맞부딪쳤다.
“정녕 몰라서 묻는 것이더냐?”
“장문사형!”
“네가 여기서 빠진다면 우리는 승리를 장담할 수 없게 된다. 아니, 필패(必敗)하겠지.”
으드드득.
청문의 말에 청명이 이를 갈아붙였다.
“놈이…… 놈이 실종됐습니다.”
“…….”
“그게 무슨 의미인지 모르시는 겁니까? 예? 청진이 놈이! 그 망할 새끼가 실종되었다고요, 십만대산에서!”
“안다.”
“장문사형!”
청문은 천천히 눈을 감았다.
표정은 담담했으되, 살짝 떨리는 눈꺼풀이 사실 지금 그의 심정도 말이 아님을 보여 주고 있었다.
“잃은 것은…… 누군가를 잃은 것은 우리뿐만이 아니다.”
“…….”
“모두가 잃었다. 그런데 어찌 우리만 떼를 쓸 수 있겠느냐?”
“떼를 쓴다고요?”
청명의 얼굴이 왈칵 일그러졌다.
“사제를 찾으러 가자는 게 떼를 쓰는 겁니까?”
“청명아…….”
“그 빌어처먹을 대의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그 망할 것 때문에 사제를 죽도록 내버려 두라는 말입니까! 아직 살아 있을지도 모르는데!”
청명의 목소리에 넘실거리는 노기에 청문마저도 순간적으로 말문이 막힌 듯 잠깐 입을 닫았다.
“그게 뭐라고! 빌어먹을! 그게 뭐라고!”
금방이라도 폭발할 것 같은 청명의 얼굴을 말없이 바라보던 청문의 입에서 회한 가득한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대의(大意)라…….”
이윽고 청문은 슬쩍 웃었다.
너무 나지막하여 헛웃음 같기도 하고, 비웃음 같기도 했으나, 어느 쪽이건 처연해서 차마 태연히 볼 수 없는 웃음이 청문의 입가에 어렸다.
“그런 것이 아직 남아 있을 것 같더냐? 이 내게?”
“…….”
“처음에는 그런 것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는 닳고 닳아 하나밖에 남은 게 없구나. 그게 뭔 줄 아느냐?”
“……뭡니까?”
“미래.”
그 단호한 단어가 청문의 입에서 나왔다.
“저들을 물리치지 못하면 우리에겐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그리고 저들을 물리치기 위해서는 반드시 네가 필요하다. 네가! 매화검존 청명이 말이다.”
“…….”
“그런데도 가겠느냐? 그런데도 너 홀로 이곳을 떠나 청진을 구해 오겠느냐? 네가 살려 낸 청진이 돌아와 우리가 모두 죽어 있는 모습을 보면 무슨 말을 하겠느냐? 살려 줘서 고맙다는 말이라도 할 것 같더냐? 이 미련한 놈아!”
꽉 깨물려 있던 청명의 입에서 결국 선명한 핏줄기가 흘렀다. 잇새로 고인 피는 마치 붉은 연지라도 바른 것처럼 그의 입술을 물들였다.
청문은 천천히 고개를 내저었다.
“녀석이 원하지 않을 것이다. 그 녀석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너도, 자신도 아니라 남겨진 아이들이니까.”
“…….”
비릿한 쇠 냄새가 났다.
입안에서 느껴지는 것이. 말끝에서 풍기는 향이.
그저 비릿하여 어질어질했다.
“정 그놈을 찾으러 가고 싶다면 이 전쟁이 끝난 뒤에 가거라.”
“사형!”
“우리만 잃은 것이 아니라지 않느냐!”
청문이 버럭 소리쳤다. 그에게서 찾아볼 수 없던 노기와 울분이 봇물 터지듯 터져 나왔다.
“놈을 당장 찾으러 가고 싶은 사람이 어디 한둘인 줄 아느냐! 너보다 내가 더하다! 내가! 이 망할…….”
결국 욕지거리와 함께 말끝을 흐린 그는 입술을 짓씹었다.
“망할…….”
그의 목소리가 형편없이 떨리고 있었다.
청문은 화산의 장문인이자 저 마교를 맞아 중원을 이끌고 있다.
얼마나 많은 짐이 저 어깨를 짓누르고 있을까.
“……내가 보냈다.”
“…….”
“녀석에게 위험한 임무를 맡긴 건 다름 아닌 나다. 원망하려거든 나를 원망해라.”
청문의 얼굴에선 어느새 감정이 씻긴 듯 사라져 있었다.
“화산의 장문인으로서 네가 청진을 찾으러 가는 것을 허할 수 없다. 네 자리로 돌아가 대기하거라.”
“…….”
청명 역시 감정이 사라진 얼굴로 그런 청문을 보았다.
서로를 볼 때마다 어려 있던 미소는 없었다. 두 사람은 철갑처럼 굳은 얼굴로 서로를 차게 응시했다.
청명의 입이 무감히 열렸다.
“장문인의 명이시라면.”
“…….”
“따라야겠지요.”
그 무감정한 음성에 청문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다만…… 사형.”
청명의 입가에 냉소가 어렸다.
“그렇게 얻은 것으로 잃은 것의 빈자리를 채울 수 있습니까?”
청문은 끝내 눈을 질끈 감았다. 차디찬 청명의 목소리가 칼날처럼 그의 가슴에 박혀 들었다.
“잃지 말아야 할 것을 잃어 가며 얻은 것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전 모르겠습니다.”
“……청명아.”
“저는…….”
청명의 입가를 타고 흐른 피가 아래로 점점이 떨어졌다.
“저는 이 결정을 죽는 그 순간까지 받아들이지 못할 겁니다.”
그 말을 끝으로 청명은 대답조차 듣지 않고 몸을 돌렸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청문과의 거리를 벌렸다.
주먹을 터질 듯 움켜쥐었다.
으드득.
이를 갈고 가슴을 쳐 봐야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렇게 말없이 발을 내딛던 그는 원독에 찬 눈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하지만 이내 보인 광경에 청명의 눈은 그 분노와 힘을 모두 잃고 말았다.
언제나 드넓어 화산 제자들을 모두 품고 의지하게 만들던 청문의 어깨가 힘없이 떨리고 있었다.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는 듯 몸을 반쯤 웅크린 채, 소리 나지 않게 흐느끼는 그의 뒷모습에, 청명은 차마 더는 보지 못하고 고개를 돌려 버렸다.
‘청진아…….’
- 사형.
티없이 웃는 청진의 얼굴을 떠올리던 청명은 떨리는 눈을 감아 버렸다.
미안하다.
미안하다.
……미안하다.
* * *
청명은 홀린 듯 발을 내디뎠다.
한 걸음, 또 한 걸음.
금방이라도 넘어질 듯 휘청대면서도 나아가고 또 나아갔다.
그리고 그런 그를 유이설이 말없이 뒤따랐다. 그녀의 두 눈에 청명의 뒷모습이 들어왔다.
저 등은 대체로 태산과도 같았다. 때로는 바다처럼 그들을 포용했고, 때로는 하늘을 찌르는 절벽이 되어 그들의 목표점이 되었다.
하지만 지금 청명의 등은 그저 애처롭다.
마치…….
‘아버지.’
그녀의 기억 속에 어렴풋이 남아 있던 아비의 등을 다시 한번 보는 듯했다.
반드시 해야 할 것을 이루지 못한 이의 등.
결코, 이룰 수 없는 것을 부여잡은 이의 등.
왜 그 마른 등이 지금의 청명과 겹쳐 보이는 걸까?
비틀대던 청명의 걸음이 점점 빨라졌다. 그에 맞추어 유이설 역시 걷는 속도를 높였다.
마침 두 사람을 발견한 화산의 제자들이 기이한 분위기를 감지했는지 유이설 쪽으로 달려왔다.
“사매?”
유이설이 검지를 입술에 가져다 댔다.
“방해하지 마요.”
백천은 그녀와 청명의 등을 번갈아 바라보고는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함께 말없이 청명을 뒤따르기 시작했다.
한 걸음.
한 걸음.
선인이 앞서고, 그 의지를 잇는 이들이 뒤를 따른다. 하지만 먼저 걷는 선인의 걸음은 확신을 담고도 애처로이 흔들리고 있었다.
앞에 솟은 산을 바라보는 청명의 눈빛은 과거의 그가 가졌던 것과 같다.
청진은…… 그럴 이가 아니다. 그렇게 손을 놓아 버릴 이가 아니다.
피를 너무 쏟은 육신이 서서히 멎어 가도, 그만 모든 것을 놓고 편해지고 싶다는 충동이 영혼을 갉아먹어도.
그놈은…… 손을 놓고 모든 걸 포기해 버릴 사람이 아니다.
저벅.
청명이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생각해라.’
내가 청진이었다면?
내가 그놈이었다면 어떻게 했을까?
이미 돌아갈 수 없다. 숨은 끊기기 직전이고, 사방에 가득한 마교 놈들을 뚫고 사형제들에게, 화산으로 돌아갈 방법은 없다.
그럼 어찌했을까?
백 년 전의 그가 지금 청명이 선 곳에 서 있었다면, 흐려지는 시야를 필사적으로 다잡으며 저 산을 본 순간 청진은 어찌하려 했을까?
홀린 듯 산을 오르는 청명의 발이 더욱 빨라졌다.
알다마다. 알다마다.
‘너라면 이리했겠지.’
아마 청명이라 해도 똑같았을 테니까.
그리 높지 않고, 그렇기에 화산일 순 없는 산.
하지만…… 이 먼 타지에서는 그나마 화산의 정취를 떠올릴 수 있는 작은 산.
‘돌아가야지.’
그래, 돌아가야지.
몸은 이곳에 있더라도, 화산으로 돌아가야지. 육신은 썩어 가도 화산으로 돌아가야지.
떠나온 곳. 우리가 살아온 곳.
청명이 죽어서도 잊지 못해, 결국 다시 돌아갔던 것처럼.
청진 역시 마찬가지였겠지.
산을 내딛는 청명의 발에 점점 확신이 더해졌다.
위로, 또 위로 단 한 순간도 쉬지 않는다. 망설임도 걸음을 옮길 때마다 사라져 간다.
이윽고 정상에 가까워져서야 청명의 걸음이 멈추었다.
청명은 멍하니 앞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런 그의 뒷모습을 화산의 제자들이 숨죽인 채 바라보았다.
대체 무엇 때문에 이런 느낌이 드는지 그들은 알지 못했다. 하지만 차마 청명에게 말을 걸 엄두도 나지 않았다.
‘여긴…….’
가만 주변을 둘러보던 윤종이 눈을 가늘게 떴다.
“사숙.”
“……왜?”
“여기…… 화산 같지 않습니까?”
“……산이 다른 곳보다 조금 가파르기는 하더구나.”
“아, 아니요. 그런 게 아니라…….”
윤종은 주변을 몇 번 돌아보다 백천과 시선을 마주쳤다.
“화산파가 있는 곳……. 예, 그곳과 비슷하지 않습니까? 이 산이 화산이라 치면 여기가 바로…….”
“…….”
그제야 백천이 다시 굳은 얼굴로 주변을 살폈다. 단정한 입술 새로 곧 탄식이 터져 나왔다.
“아…….”
윤종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알 것 같았다.
이 산을 화산이라 치면 지금 그들이 선 이곳이 바로 화산파가 있는 곳이다. 완전히 맞아떨어지지는 않지만 화산을 제 집처럼 여기며 살아온 이들이라면 분명 비슷하다 느낄 만한 곳이었다.
백천의 시선이 청명에게로 향했다.
‘그럼 너는…….’
그 순간 청명이 그 자리에 무릎을 아무렇게나 꿇고 앉았다. 두 무릎으로 바닥을 기며 자라난 수풀을 떨리는 손으로 쥐어뜯고, 맨손으로 바닥을 연신 더듬었다.
화산의 제자들은 말없이 그 광경을 그저 지켜보았다.
도울 엄두가 나지 않는다.
아니.
도와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건 그들이 섣불리 끼어들 만한 일이 아니다. 명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지금 이곳에 있는 모든 화산의 제자들이 같은 생각을 했다.
“……뭘 찾는 걸까요?”
속삭임에 가까운 당소소의 물음에 유이설은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 답했다.
“여우굴.”
“…….”
“굴을 팠을 테니까. 비급을 물고 나오려면.”
“아…….”
당소소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청명을 바라보았다.
그때 더듬더듬 바닥을 뒤져 가던 청명의 손이 별안간 우뚝 멈추었다. 멈춘 청명의 손끝이 작게 떨렸다.
길게 자라나 우거진 수풀을 걷어내니 이윽고 작은 구덩이 하나가 드러났다.
산에 저런 구덩이쯤이야 딱히 이상할 것도 없었다. 산짐승이 팠던 굴이 버려지고 세월의 흐름에 따라 무너진 듯, 아주 작은 구덩이니까.
하지만 그 순간 청명의 손은 이제 애처로울 만큼 덜덜 떨리고 있었다.
처음에는 더듬더듬 구덩이를 파내던 손이 점점 빨라지더니 이윽고는 광인처럼 땅을 파헤치기 시작했다.
“하아…… 으……!”
차마 다 터트리지 못한 괴로움이 실체 없는 소리로 그 입에서 터져 나왔다. 흩뿌려진 흙이 머리와 등으로 쏟아졌다. 그 광경을 바라보던 백천은 저도 모르게 그를 향해 한 발짝 다가섰다.
“청명아…….”
하나 그 순간 유이설의 손이 그의 어깨를 움켜잡았다.
백천이 돌아보니 유이설은 가만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
입술을 깨문 백천은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은 청명을 그저 지켜봐 주는 수밖에 없었다.
흙을 파내고, 자갈을 뽑아내고 맨주먹으로 바위를 후려쳐 깨부순 청명은 점점 땅으로 파고들었다.
거칠어진 숨소리가 이상하게도 흐느낌처럼 들려왔다.
땅을 파고 또 파내는 청명은 흙투성이였다. 이를 짓깨물고 오로지 이것만이 사명이라는 듯 정신 나간 것처럼 그렇게 땅을 파던 청명의 손이 일순 딱 굳었다.
흙 안으로 파고든 손끝에, 다른 감각이 걸린 것이다.
흙을 뚫고 들어간 손가락의 끝에 아무것도 잡히지 않는다. 그건 이 뒤가 비어 있다는 뜻이다.
청명의 숨이 점점 가빠졌다.
“…….”
그는 이제 조심스레 흙을 걷어 내기 시작했다.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섬세한 손길이었다.
그 양을 지켜보던 화산 제자들의 눈이 커졌다.
‘동굴?’
뭔지는 정확하지 않았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지금 청명이 걷어 내고 있는 곳에 사람이 들어갈 만한 공간이 보인다는 점이다.
이윽고 청명이 휘청거리며 그 안으로 들어섰다.
“……사숙.”
윤종의 말에 백천이 고개를 끄덕였다.
“……가 보자꾸나.”
백천은 청명이 들어간 동굴을 향해 허리를 굽히며 앞장섰다.
좁디좁은 통로였지만, 그 안으로는 생각보다 너른 공간이 자리하고 있었다. 아래쪽으로 가볍게 뛰어내린 백천은 고개를 들어 보이는 광경을 그 두 눈에 담았다.
‘청명아…….’
백천은 그 순간 어쩌면 조금 충격을 받았다.
청명의 작은 어깨가, 너무 작아서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은 어깨가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여 덜덜 떨리고 있었다.
그 어깨 너머로 보이는 것은…….
사람? 아니다. 가부좌를 틀고 있는 저것은 사람이 아니라 백골이었다.
썩어 뼈밖에 남지 않았음에도 생전의 자세를 유지하고 있는 백골. 그 백골에 걸쳐진 옷감은 생전의 형체를 짐작하기 어려울 만큼 바스라지고 낡아 있었다.
하지만 알 수밖에 없었다.
백골이 등진, 내공으로 다진 듯 반듯한 석벽에 손가락으로 파낸 듯한 웅장한 글귀가 새겨져 있었기 때문이다.
백천의 입에서 탄식이 새어 나왔다.
비록 내 몸은 이곳에서 잠드나
내 마음만은 머나먼 화산과 함께한다.
대화산파 십삼대제자 청진.
“어…….”
덜덜 떨리며 뻗어진 손이 정말 조심스럽게 그 글귀를 어루만졌다. 어깨가 형편없이 떨리기 시작했다.
“아아……. 아…….”
그 자리에 허물어지듯 무너진 청명의 입에서 끝내 억눌린 흐느낌이 터져 나왔다. 백천은 그 울음이 너무 아파 천천히 눈을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