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6화. 같이 돌아가자. (5)
“……답도 없네, 진짜!”
조걸이 오만상을 찌푸리며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러자 뒤를 따르던 윤종도 긴 한숨을 내쉬었다.
“이게 대체 며칠쨉니까!”
“……사흘인가? 아니면 나흘?”
“끄응.”
조걸은 앓는 소리를 내며 산을 휘 둘러보았다.
사흘이 넘어가도록 주위를 샅샅이 뒤졌지만, 아무런 흔적도 발견할 수 없었다. 분명 처음에는 의욕으로 가득 차 있었는데 이쯤 되니 어쩔 수 없이 힘이 빠졌다.
“아니, 사형. 제가 힘들고 귀찮아서 이러는 게 아니라…….”
“맞는 것 같은데?”
“…….”
조걸의 얼굴에 세상 억울한 표정이 떠올랐다. 한 번 더 면박을 주려던 윤종은 그 얼굴을 보곤 슬쩍 헛기침하며 시선을 피했다.
“크흠. 그럼?”
“……솔직히 산을 헤매고 다니는 게 뭐 그리 대단히 힘든 일입니까? 저 망할 놈이 시켜 대는 수련도 한 달 내내 하는데.”
“그렇긴 하지.”
이 산이 험해 봐야 화산만 하겠는가? 험준한 화산을 하루 종일 타며 수련하는 그들에게 이만한 산이야 아이들이 뛰노는 뒷동산이나 다름없다.
“그냥…… 이게 다 헛수고일 것 같아서 그러죠.”
“헛수고라니?”
저만치서 땅을 들쑤시던 백천이 눈살을 찌푸리자 조걸이 슬쩍 눈치를 보다 솔직히 입을 열었다.
“백 년이나 지난 일입니다. 솔직히 뭐가 남아 있을 것 같지는 않잖습니까.”
백천은 살짝 언짢은 얼굴로 그런 그를 보며 말했다.
“비급은 발견되지 않았느냐?”
“비급이 있다 해서 다른 흔적도 있다는 보장은 없잖습니까.”
“이놈이!”
윤종이 무어라 외치려 했지만 백천이 손을 들어 막았다.
“그리 심히 나무랄 것 없다. 딱히 틀린 말도 아니잖으냐.”
“그래도…….”
백천이 씁쓸한 얼굴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래, 걸이 네 말대로 애초에 흔적이랄 게 남아 있지 않다면 사흘이 아니라 열흘을 뒤져도 아무것도 찾을 수 없겠지.”
“제 말이요.”
“하지만 그건 해 보지 않으면 모르는 일 아니더냐?”
백천이 진중한 얼굴로 조걸을 바라보았다.
“우리는 지금 선인의 흔적을 찾고 있는 것이다. 그것도 후대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우신 분의 유해를 찾는 일이지. 겨우 사흘 찾아보고 헛수고란 말을 입에 올려서야 되겠느냐?”
그 눈빛에 서릿발 같은 기세가 어려 있어, 조걸은 움찔하며 고개를 푹 숙였다.
“그분들께서는 승리가 확실하지도 않은 일에 하나뿐인 목숨을 초개처럼 던지셨다. 너의 마음도 이해는 되나, 그건 그 은혜를 입은 사람으로서 할 말이 아니다.”
“……죄송합니다.”
“그리고 평소라면 너 역시 그런 말을 섣불리 할 사람이 아니지.”
백천은 조걸을 가만히 바라보며 물었다.
“말해 봐라. 왜 그러는 것이냐?”
“그게…….”
눈치를 살피는 듯하던 조걸이 갑갑한 마음에 머리를 벅벅 긁었다.
“찾으면 좋은 일이죠. 시간이 얼마나 걸리든 찾아낼 수만 있으면 다 좋은 겁니다. 하지만 시간은 시간대로 허비하고 결국 못 찾으면요?”
“…….”
“속이 썩을까 봐 그러는 거죠, 속이…….”
제 속을 두고 말하는 게 아니다. 아마도 청명의 속을 염려하여 말하는 것이리라.
슬쩍 고개를 돌린 백천은 이제 제법 익숙해지기까지 한 산세를 바라보았다. 마음 한구석에 자꾸 무게가 실렸다.
‘무리였나.’
아무리 샅샅이 뒤진다고 해도 이곳은 결국 산중이다. 이 산을 모두 파서 걷어낸다고 해도 백 년 전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는 보장은 없었다.
“그런데 청명이 놈은 어디로 갔습니까?”
“……혼자서 좀 찾아본다고 하더구나.”
“혼자서…….”
조걸은 잠깐 중얼거리다 한숨을 푹 내쉬고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끄응차!”
그리고 손에 쥔 검으로 다시 바닥을 찔러 대기 시작했다.
“으이구, 그래. 찾으면 되지. 빌어먹을, 어떻게든 찾으면 그만이지!”
괜스레 벌컥 소리를 지르며 앞으로 나아가는 그를 보며 백천이 차분히 말했다.
“조금만 더 힘을 내 보자. 비단 청명이 놈 때문만은 아니다. 우리가 화산의 제자라면 적어도 최선을 다했다는 말 정도는 할 수 있을 만큼 뒤져 봐야지.”
“예, 사숙.”
“예, 사숙. 힘내 볼게요!”
윤종과 당소소의 목소리에 다시 힘이 실렸다.
백천은 청명이 향한 방향 쪽을 물끄러미 넘겨다보다 다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졸졸졸졸.
맑은 개울물이 계곡을 타고 끊임없이 흘렀다.
청명은 커다란 바위 위에 걸터앉은 채 그 물줄기가 흐르는 것을 멍한 얼굴로 바라보고 있었다.
‘과욕이었나.’
물은 뒤돌아보는 법 없이 계속 흘러간다.
이곳이 백 년 전에도 계곡이었다 치더라도, 흐르고 있는 물은 백 년 전과 같을 수 없다. 이미 너무 긴 시간이 지나 버린 일의 흔적을 찾아낸다는 건 사실 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
‘청진아…….’
청명의 시선이 하늘로 향했다.
하늘은 야속할 만큼 깨끗하여 아무것도 보이질 않았다.
분명 얼마 전 꿈에서도 만났건만 청진의 얼굴이 잘 기억나질 않는다. 애를 쓰면 떠올릴 수는 있지만 조금씩 흐려져 가는 것을 막을 수가 없다.
그저 망연히 흐르는 냇물을 보던 청명은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미련이라…….”
어쩌면 지금 그가 하는 짓은 양손으로 흘러간 냇물을 다시 잡으려는 것과 다름없는지도 모른다.
멀고 먼 곳에서 청진이 지금의 그를 지켜보고 있다면 뭐라 했을까?
괜히 쓸데없는 짓 하지 말고 화산으로 돌아가서 제자들이나 키우라 하지 않았을까?
아니면, 어떻게든 흔적을 찾아서 화산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잔소리를 해 댔을까?
청명은 고민하다 고개를 내젓고 말았다.
‘모르겠구나.’
답을 찾을 수 있을 리 없다.
그가 홀로 답을 내린다고 해도 그건 진짜 청진이 한 말이 아니다. 죽은 이는 아무런 힘이 없고, 대답을 해 줄 수도 없으니까.
눈으로 볼 수 없고, 귀로 들을 수 없고, 손을 뻗어 만질 수 없다. 애처로이 손을 뻗어 봐야 잡히는 것은 허공뿐이다.
그의 안에서 얼마나 생생하게 살아 있든, 결국 다시는 마주할 수가 없다.
흐르는 물을 보던 청명은 생각했다.
어쩌면 자신도 저 물처럼 진즉에 흘러가 버렸어야 할 사람일지 모른다고. 그저…….
저벅.
그때 등 뒤에서 들려온 인기척에 청명이 고개를 천천히 돌렸다.
눈이 마주친 사람이 아무런 말없이 청명을 빤히 바라보았다. 의외의 손님을 보며 청명은 저도 모르게 실소를 흘렸다.
“왜?”
“그냥.”
뭐라 대답해야 할지 순간 갈피를 잃은 청명이 머뭇거리자, 유이설은 그가 앉은 바위 옆으로 다가와 털썩 걸터앉았다.
그리고 흘러가는 냇물을 말없이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잠깐의 정적 후에야 그녀가 입을 열었다.
“……전에.”
“응?”
유이설이 고개를 돌리지 않은 채로 말했다.
“다 같이 갔었잖아. 아버지가 묻힌 곳에.”
청명이 고개를 끄덕인다.
“혼자 가지 않아서 다행이었어. 혼자서 갔으면 어떤 얼굴로 봐야 할지 모르니까. 그래도 아버지가 내 주위에 사람들이 있는 걸 본다면 조금 마음 편할 테니까.”
청명이 새삼스러운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유이설이 내심을 풀어놓는 건 흔한 일이 아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을 많이, 조리 있게 하는 걸 듣는 것도 무척이나 생소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생소한 건 그녀가 지금 청명을 위로하려 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아버지는.”
유이설이 살짝 눈을 감았다. 긴 속눈썹 끝이 파르르 떨렸다.
“돌아가지 않으려 했어. 무학을 완성하지 않으면. 죽는 그 순간까지도 돌아가지 않으려 했을 거야. 그런데 마지막에는 결국 화산에 연락했어.”
“사고가 걱정돼서 그랬겠지. 아비니까.”
“……나도 그리 생각했어.”
하지만 유이설은 이내 가만히 고개를 내저었다.
“하지만 이제는 알 것 같아. 나를 화산에 보내고 싶은 것보다, 당신이 화산에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더 컸을 거야. 사는 동안 내내 그리워했으니까.”
“…….”
유이설의 얼굴은 평소처럼 무감해 보였다. 하지만 청명은 그 무심을 가장한 표정이 평소와 조금 다른 것을 알았다.
“이장을 할까도 생각했어. 그토록 돌아가고 싶어 하던 화산이니까. 어릴 때는 엄두도 못 낼 일이었지만, 이젠 내가 할 수 있으니까.”
“…….”
“하지만 그러지 않기로 했어.”
“……왜?”
유이설은 느리게 고개를 내저었다.
“의미 없으니까.”
“…….”
늘 고집스러울 만큼 굳게 닫혀 있던 입술 새로 나직한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아버지는 이미 화산으로 돌아왔어. 내가 화산에 있으면 아버지도 화산에 있는 거야. 그리고 아버지가 완성하려던 검을 내가 완성하면 생전의 염원도 이뤄지는 거지.”
청명의 입술이 꾹 닫혔다.
“이어 간다는 건…… 그런 거니까.”
그녀의 말에 청명은 먼 하늘을 바라보았다.
‘이어 간다라…….’
그런 말을 하고 싶은 거겠지.
설령 찾아내지 못한다 해도, 청명이 그 의지를 잇는다면 이미 화산에 돌아온 것이나 다름없다고.
‘내가 해야 할 말을…….’
청명은 지그시 눈을 감았다.
말주변 없는 유이설이 이 말을 청명에게 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생각을 거듭해야 했을까?
“……이어 간다라.”
틀린 말은 아니다. 청진은 누구보다도 후대의 화산을 생각하는 이였으니까.
그래. 그러니 청명이 다시금 그 뜻을 이어 갈 수 있다면 그걸로 된 것이다.
청명은 마침내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아쉬움이 없지는 않다. 미련이 없다고는 말 못 한다. 하지만 이곳에서 언제까지 시간을 보낼 수는 없는 일이다. 그에게는 아직 할 일이 많으니까.
“돌아가자, 사고.”
유이설과 청명의 시선이 마주쳤다. 청명은 유이설에게 슬쩍 웃어 보이곤 먼 하늘을 바라보았다.
‘언젠가 돌아오마.’
해야 할 일을 모두 끝내고 나서, 그때 다시 돌아와 찾으면 된다.
계속 등을 부여잡고 흐느끼는 미련을 억지로 떨쳐 낸 청명은 억지로 걸음을 옮겼다.
‘그때…… 그래. 그때 같이 돌아가자.’
하지만 몇 발짝 떼던 청명은 순간 우뚝 다시 멈추었다.
흡사 석상처럼 움직이지 않던 그가 아주 작게 중얼거렸다.
“……화산?”
- 당신이 화산에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더 컸을 거야.
차게 질린 손끝이 덜덜 떨려 왔다.
‘이 병신 같은…….’
뭘 생각했는가? 대체 뭘 찾고 있었는가?
청진이 대체 어디에서 뭘 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한 건가?
“……진아.”
- 제가 만든 비급으로 제자들이 무학을 익히고, 더 나은 화산을 만들어 갈 겁니다.
- 이게 제가 화산의 은혜에 보답하는 방법입니다.
유이설의 아비는 반쪽짜리 비급을 들고 어떻게든 그 무학을 완성시키려 했다. 그게 화산을 뛰쳐나온 데에 대한 속죄의 길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럼 청진은?
다시는 화산에 돌아가지 못할 거라는 사실을 알아챈 그가 뭘 하려 했겠는가?
- 그래서 제가 제일 중요한 것들은 이리 챙기고 다니는 겁니다.
“아…….”
돌려보낸다.
제 몸은 화산으로 돌아가지 못한다 해도 지니고 있던 비급만은 어떻게 해서든 돌려보내려 했을 것이다.
하지만 어떻게? 마교의 본거지나 다름없어 사방이 적이었던 이 십만대산 한가운데서 무슨 수로…….
청명의 시선이 여기저기로 분주하게 움직였다.
‘내가 청진이라면?’
몸은 상처 입었다.
추격하는 이들은 어느 정도 떨쳐 냈지만, 살아날 방도는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이런 곳에서 죽는다면 그가 지닌 비급들은 모조리 마교의 손아귀에 들어갈 것이다.
그렇다면…….
‘숨긴다.’
마교는 찾을 수 없는 곳에.
그리고…… 언젠가 그를 찾으러 올 사형제들은 찾을 수 있을 곳에.
마교의 마두들이 막아서도 반드시 뚫어내고, 목숨도 아끼지 않고 자신을 찾아 헤맬 사형제들은 발견할 수 있을 바로 그런 곳에.
- 사형이 있는데 제가 죽기야 하겠습니까?
청명의 손은 이제 사시나무처럼 떨리기 시작했다.
절대 죽지 않을 이. 절대 죽어서는 안 되는 이.
저 끔찍한 마교 놈들의 손에도 절대 패하지 않고 기어코 살아남아 언젠가는 그를 찾으러 올 사람.
“나였구나…….”
청명의 표정이 형편없이 무너져 내렸다.
“……나……였구나. 그게 나였어.”
그의 시선이 홀린 듯 옆으로 돌아갔다.
푸르디푸른 하늘 아래, 완만하게 이어진 산줄기. 화산과는 너무도 다른 능선이 이어지는 가운데로 유독 삐죽 솟은 봉우리가 보였다.
주변의 봉우리들과 달리 바위와 절벽으로 이루어진, 험준한 산.
그래……. 그래, 마치…….
“……청진아.”
청명이 홀린 것처럼 걸음을 옮겼다.
거기구나. 거기 있었구나.
내 사제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