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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귀환-710화 (708/1,567)

710화. 나는 확인해야 해. (5)

털썩.

이미 숨이 끊어진 시신이 쓰러지는 소리가 선명하게 퍼져 나갔다.

조금 이상한 일이었다.

서로 고함을 질러 대고, 병장기를 휘둘러 대는 전장에서 사람이 쓰러지는 소리가 들린다니.

그건 거꾸로 말하면 조금 전까지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던 전투의 흐름이 끊겨 버렸다는 것을 의미한다.

앞쪽에서 맹렬히 몰아붙이던 화산파 제자들의 검이 멈춘 순간, 철모방도들은 반격은 고사하고 달아날 생각조차 하지 못한 채 멍하니 고개를 돌렸다.

그들의 눈에 들어온 것은 목이 비틀린 채 죽어 있는 방주의 모습과, 심장이 꿰뚫린 채 쓰러진 허형의 시체였다.

결코 있을 수 없고, 있어서는 안 될 일을 목격한 눈동자가 갈 곳을 찾지 못하고 뒤흔들렸다.

허형의 꿰뚫린 가슴에서 흘러나온 피가 삽시간에 바닥을 붉게 적셨다.

그저 눈으로 보고 있는 것뿐이건만 그 식어 가는 피의 온도가 손끝에서 생생하게 느껴지는 것만 같았다.

방주와 그 방주가 데려온 빈객마저 저리 맥없이 쓰러진 걸 직접 확인했으니 철모방도들에게 더 이상 저항할 의지가 남아 있을 리 없었다.

방주의 원수를 갚는다?

웃기지도 않는 소리였다.

그럴 의리가 있는 이들이라면 사파가 아니다. 그들은 의리와 정이 아니라 강함과 이득에 이끌린다.

자신들을 보호해 줄 수 없는 방주는 더 이상 그 어떤 의미도 갖지 못한다.

‘어떻게 하지?’

그들이 갈피를 잡지 못하고 흔들리던 바로 그때였다.

찰박.

청명이 검을 휘둘러 피를 털어 내더니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허형의 가슴에서 뿜어져 나온 피가 밟히면서 작은 물소리를 냈다.

그 맑고도 섬뜩한 소리에 모두가 숨을 죽였다.

찰박. 찰박.

한 손에 든 검을 아래로 내린 채 무심히 걷는 청명의 시선은 당연한 수순으로 막위에게 가 닿았다.

그 시선 앞에 오롯이 놓인 막위의 얼굴은 희게 굳어 있었다.

그는 쓰러진 허형을 흘끗 보고 다시 다급히 청명을 주시했다.

‘허, 허형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허형의 무위는 결코 막위에게 뒤지지 않는다. 굳이 급을 나눈다 해도 겨우 종이 한 장 차이일 뿐이다.

그런데 그런 허형이 제대로 대항해 보지도 못하고 숨이 끊어졌다. 대단한 검기를 뿜은 것도 아니고, 어마어마한 내력으로 짓누른 것도 아니다.

그저 휘두르고, 찌르고, 벤다.

기본이라고밖에 칭할 수 없는 공격이 몇 번 이어지더니 허형의 심장이 꿰뚫려 있었다.

이 상황을 대체 뭐라 설명해야 한단 말인가?

무학을 모르는 이가 본다면 대단하다 할 것이다. 하나 무학을 제법 아는 이가 본다면 어마어마하다 할 것이다.

하지만 막위처럼 스스로의 경지를 자신하는 이들은? 아마 모두가 이 광경을 설명할 방법을 찾아낼 수 없을 것이다. 지금의 막위처럼 말이다.

저벅.

점점 깊숙한 상념 아래로 침전해 가던 막위를 현실로 끌어 올린 것은 청명이 내디딘 발끝에서 만들어진 발소리였다.

화들짝 놀라 도를 움켜잡은 막위의 귀에 낮은 청명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뭐가 그리 복잡해?”

고저가 없는 목소리를 들은 막위가 멍한 얼굴로 청명의 얼굴을 망연히 바라보았다.

“어차피 죽을 텐데.”

“…….”

막위는 대답 대신 도를 꽉 움켜잡았다.

맞는 말이다.

어차피 남은 것은 둘 중 하나가 죽는 결과뿐이다. 저놈이 얼마나 강한지, 어떻게 저리 강한지 따위가 지금 상황에서 대체 무슨 의미를 지닐 수 있단 말인가?

칼밥을 먹는 삶의 결말이란 대체로 이렇다. 제멋대로 칼을 휘두르며 살아가는 이는 언젠가는 자신보다 더 강한 자를 만나서 죽는 법. 막위 역시 언젠가는 당연히 이 날이 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게 설마 오늘일 줄은 몰랐지만.’

쿵쾅대던 심장이 차츰 가라앉았다. 공포에 질렸던 얼굴이 이내 평정을 되찾고 마침내는 호수처럼 고요해졌다.

저벅.

그 표정을 본 청명이 발을 멈췄다.

텅.

허리춤에 찬 도집을 바닥에 내던진 막위가 양손으로 도를 꽉 움켜잡고 청명을 겨누었다.

“……거령……. 막……위.”

부러진 턱 때문에 말을 할 때마다 고통이 밀려들고 발음이 새었지만, 그는 어떻게든 한 자 한 자 끊어 말을 해 냈다. 적어도 이 이름만은 확실하게 전달해야 한다.

“너…….”

그의 의도를 이해했다는 듯 청명의 입꼬리가 살짝 말려 올라갔다.

“청명.”

“……신룡.”

빤한 사실을 새삼스레 확인한 막위는 더없이 진지한 눈으로 청명을 쏘아보았다.

“마……지막……. 전…… 전부…….”

청명의 미소가 더욱 짙어진다.

“해봐.”

평소의 막위였다면 저 깔보는 듯한 태도를 절대 참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그는 조금도 흥분하지 않았다.

아마도 이 승부가 마지막이 될 것이기 때문에?

아니.

저자에게는 그럴 자격이 있기 때문이다.

강호는 결국 강자가 지배하는 곳. 강자에게는 오만할 권한이 있다. 막위는 누구보다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이 중 하나였다.

긴장이 허공을 휘감았다. 그는 도를 부러져라 꽉 부여잡았다.

머리는 차갑게, 가슴은 뜨겁게.

그가 평생을 일궈 온 무학을 지금 그의 도 끝에 담는다. 중요한 것은 이기고 지는 것이 아니다. 후회 없는 일도를 펼쳐 내는 것.

“후욱!”

내력을 있는 대로 실은 발이 바닥을 박찼다.

눈앞의 광경들이 일순 일그러졌다. 선명하던 풍경이 뒤틀리고 길게 늘어나며 오로지 그의 앞에 위치한 청명만이 더욱더 선명해졌다.

일생을 통틀어 단 한 번도 닿지 못했던 영역이다.

하필이면 마지막 순간에 닿았다는 것이 통탄스러우나, 이제라도 닿았다는 것으로 위안 삼을 수 있으리라.

부르르르.

단전에 남은 힘이 모조리 손을 타고 도에 맺혔다. 그 막대한 내력을 감당하지 못한 도가 거걱대며 비명을 질렀다. 금방이라도 도가 터져 나갈 듯 떨어 댔지만 상관없다.

어차피 이 일격이 마지막이다.

“흐아아아아아앗!”

커다란 기합이 그의 목구멍에서 터져 나왔다. 도기가 마치 작은 태양처럼 뭉쳐 열기를 뿜어냈다. 단 한 점의 미련도, 단 한 점의 내력도 남기지 않고 모든 것을 밀어 넣은 일도가 청명의 머리를 향해 내리쳐졌다.

그 순간 막위는 확신했다.

이 일도가 그의 생을 통틀어 가장 완벽한 일격임을 말이다.

콰아아아아아!

태산이라도 쪼개 버릴 기세로 청명의 머리를 향해 날아든다. 꼬리뼈 끝에서부터 전율이 타고 올랐다. 흡사 머릿속에 차가운 폭포수를 퍼붓는 듯 강렬한 쾌감이 스쳤다.

태어나서 느낀 중 가장 큰 쾌감 속에서 막위가 본 것은 비틀린 청명의 입꼬리였다.

파아아아앗!

그때까지도 늘어져 있던 청명의 검이 빛살처럼 솟구쳐 막위의 도를 후려쳤다.

카아앙!

검과 도가 맞부딪치는 순간 청명의 검이 도에 실린 막대한 힘을 감당하지 못하고 뒤로 튕겨 나갔다.

막위가 두 눈을 부릅떴다.

‘이겼…….’

검수가 전력을 다해 쇄도하는 중병을 정면에서 맞받는다는 건 자살행위나 다름없다. 화산신룡이 그걸 모를 리 없건만 한순간의 오만이…….

그리고 바로 그 순간이었다.

청명의 검이 튕겨 나간 속도보다 더 빨리 휘둘러지며 도를 다시 한번 때렸다.

카앙!

다시 한번!

카아앙!

또다시!

카앙!

한 번, 두 번, 그리고 수십 번!

물 흐르듯이 휘둘러진 검이 내리쳐지는 막위의 도를 눈 깜짝할 새에 수십 차례 가격했다.

커걱!

맞닿을 때마다 도의 위력이 조금씩 죽어 가더니 이내 뒤로 점점 밀리기 시작했다.

어느새 자신의 도가 처음 들어 올렸던 머리 위까지 되돌아와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막위가 입을 쩌억 벌렸다.

‘마, 말도 안…….’

어떻게 그가 도를 한 번 휘두를 시간에 수십 번의 검격을 가할 수 있단 말인가? 이건 그가 아는 무학의 상식을 한참 뛰어넘는 일이었다.

“으아아아악!”

막위가 핏발 선 눈으로 다시 한번 도를 내리누르려는 순간이었다.

파아아앗!

한 줄기 빛살처럼 움직인 청명의 검이 도를 잡은 막위의 손목을 갈랐다.

서걱!

깔끔하게 베인 손목에서 새하얀 뼈가 드러나며 핏물이 크게 솟구쳤다.

하나 청명의 검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서걱! 서걱! 서걱!

상완, 팔꿈치, 어깨, 옆구리.

청명의 검이 막위의 전신을 베고 또 베어 냈다.

서걱! 서걱! 서걱!

허벅지와 발목, 목 옆쪽, 아랫배.

전신의 근육을 일시에 빠르게 끊어 버린 청명은 앞으로 소나기처럼 쇄도해 막위의 상반신을 수차례 찔렀다.

푹! 푹! 푸욱! 푹!

순식간에 십여 개의 구멍이 뚫린 막위의 가슴과 배에서 피가 비처럼 쏟아졌다.

푸우우욱!

마지막 일격은 심장.

단숨에 심장을 꿰뚫어 버린 청명은 상대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피를 고스란히 맞으며 막위를 가만히 보았다.

피로 붉게 물든 얼굴에서 유일하게 제 색을 갖춘 눈동자는 컴컴하고 무심했다. 이미 삼도천을 반쯤 건너 버린 막위마저도 그 가늠할 수 없는 심연에 공포를 느낄 정도였다.

“……왜?”

힘겹게 열린 입술에서 신음 같은 물음이 흘러나왔다.

숨이 거의 끊겨 버린 그로서는 겨우 이 말밖에 할 수 없었지만, 청명은 그 말의 의미를 이해하고 있었다.

피에 젖은 청명이 입꼬리를 뒤틀며 말했다.

“무인?”

“…….”

“마지막에 와서 제대로 산 것처럼 입 털어 대지 마. 너는 그냥 쓰레기일 뿐이야.”

“…….”

“그러니 쓰레기답게 죽어.”

“……나는…….”

파아아아앗!

심장에서 뽑혀 나온 청명의 검이 막위의 목을 일시에 쳐서 날려 버렸다. 마지막 말 따위 들을 가치가 없다는 듯.

“퉷.”

청명은 입 안으로 밀고 들어온 피를 뱉었다.

지독한 피 냄새를 훈장처럼 풍기는 놈. 수십이 아니라 수백을 죽인 인간 백정.

그런 이에게 베풀 자격은 없다.

‘나라고 뭐가 다르겠냐마는.’

쇄액!

청명은 조소하며 가볍게 피를 털어 내고 납검했다.

그리고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막위의 시체를 짓밟으며 반쯤 허물어진 전각을 향해 걸어갔다.

저벅.

저벅.

그 발길에 담긴 무게가 전각을 가득 울렸다.

저벅.

마침내 전각에 들어서자 궁지에 몰린 생쥐 꼴로 덜덜 떨고 있는 진양건이 보였다.

눈이 마주친 순간 진양건의 얼굴에선 삽시간에 핏기가 모조리 가셨다.

“저…… 저……는…….”

그의 몸이 사시나무처럼 떨린다.

전신을 피로 적신 채 얼음장 같은 눈으로 바라봐 오는 청명을 보며 침착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그러기엔 진양건은 너무도 심약한 이였다.

뿌득.

그때 돌연 얼굴을 참혹하게 일그러뜨리며 이를 간 청명이 진양건을 향해 빠르게 다가왔다.

“히, 히익! 저, 저는! 저는!”

청명은 망설임 없이 목을 움켜쥐고 쓰러진 진양건을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단번에 벽까지 밀어붙여 처박았다.

콰앙!

“켁! 케엑!”

진양건은 목과 등에서 느껴지는 고통에 진저리를 쳤다. 하지만 진정으로 그를 두렵고 고통스럽게 하는 것은 당장에라도 그를 찢어 죽일 기세로 쏘아지는 청명의 눈빛이었다.

“자, 잘못했습니다! 살려…….”

“말해.”

말뜻을 바로 이해하지 못한 진양건이 영문 모를 얼굴로 청명을 보았다. 그러자 청명의 입술 새에서 지옥에서 흘러나오는 듯한 음성이 쏟아졌다.

“말해. 그 무공 어디서 났어?”

“무, 무공?”

꽈아아아악!

“꺼억…….”

청명의 손가락이 진양건의 목을 파고들었다. 진양건의 얼굴이 순식간에 검푸르게 죽어 가기 시작했다.

손은 본능적으로 목을 잡은 손아귀며 팔을 긁어 대었지만, 청명은 흡사 바위처럼 꿈쩍도 하지 않았다.

“말해. 죽여 버리기 전에!”

꽉 깨문 청명의 입술이 끝내 찢어졌다. 한 줄기 핏물이 턱을 타고 바닥으로 방울져 흘러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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