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4화. 화산파 새끼가 누구냐? (4)
“후욱! 후욱! 후욱! 후욱!”
진양건은 말 그대로 다리가 빠져라 달리고 있었다.
‘빌어먹을! 빌어먹을! 빌어처먹을!’
왜 상황이 이렇게 되었단 말인가?
거의 다 됐다. 정말 거의 다 됐었다. 느긋하게 돈을 챙긴 다음, 틈을 봐서 달아나기만 하면 될 일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난입한 저 이상한 놈들 때문에 일이 다 흐트러졌다.
‘빌어먹을! 대체 저놈들은 누구야?’
정말 화산파 놈들인가?
어쩌면 그럴지도 모른다.
물론 행색을 봐서는 도저히 그리 보이지 않지만, 구파일방급 제자가 아니고서야 저 적은 수로 금검부 놈들을 저렇게나 단번에 때려잡을 수 없을 것이다.
‘대체 어떻게 알고 이렇게 빨리……?’
작업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건만, 그 먼 섬서에서 이 사실을 어떻게 알고 제자들을 보낼 수 있었단 말인가.
아니, 사실 어떻게 알았는지도 중요하지 않다. 계산대로라면 그가 모든 작업을 끝내고 유유히 떠날 때까지 화산이 남창에 도착할 일은 없어야 했다.
그런데 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기에 갑자기 화산의 제자들이 나타났냐고!
진양건이 질린 눈으로 뒤를 흘끗 돌아보았다.
‘없지?’
제발! 제발 조금만 더 시간을 끌어…….
“야 이 새끼야아아아아아아!”
다시 앞으로 돌아왔던 진양건의 고개가 순간 뒤로 획 돌아갔다. 저 멀리 누군가가 점처럼 보이는 걸 확인하고 그는 화들짝 놀라 입을 쩍 벌렸다.
‘마, 망할! 이 쓸모없는 금검부 새끼들!’
그렇게 잘난 척 거들먹대더니, 고작 발목도 못 잡고 늘어지나!
“너 이 새끼 잡히면 뒈진다! 서! 안 서?”
‘그 말 듣고 누가 서겠냐, 이 미친 새끼야!’
거의 보이지도 않을 만큼 거리가 벌어져 있는데도 목소리는 이상하게도 똑똑히 들려왔다. 내공이 더없이 정순하고 강한 이들만이 이런 음성을 낼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진양건은 아예 남아 있는 내력을 모조리 쥐어짜 다리에 밀어 넣었다.
“후욱! 후욱!”
“근데 이 새끼가 뒈지려고? 다리에 힘 안 빼! 어쭈?”
있는 힘껏 달리면서 진양건은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저리 빨리 달리면서 말까지 할 수 있는 건가?
“오냐! 너 열심히 도망가라! 너 꼭 도망쳐라! 잡히면 나도 어떻게 할지 모르니까 절대 잡히지 마라, 절대!”
모골이 송연해졌다.
그럴 리 없건만 빠득빠득 이 가는 소리가 귓가에서 들리는 것만 같았다.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려 보니, 조금 전에는 거의 점처럼 보이던 이가 이제는 형체를 거의 알아볼 수 있을 만큼 접근해 있었다.
‘히이이이이이이익!’
순간 너무 기겁해 넘어질 뻔한 진양건은 가까스로 균형을 잡았다.
‘뭐가 이렇게 빨라?’
육안으로야 조금 커진 정도에 불과하지만, 거리가 거의 반 정도는 좁혀진 게 분명했다. 이대로라면 얼마 지나지 않아 저 답도 없는 놈의 손에 잡히는 결말이 나 버릴 것이다.
“어허! 더 빨리 뛰어야지, 이 새끼야! 대가리 안 깨지려면!”
“히이익!”
창백하게 질린 진양건이 더 죽어라 다리를 움직였다.
잡히면 죽는다.
다른 건 몰라도 이건 확실하다. 저 괴상한 놈의 목소리에 어려 있는 광기와 살기가 여실했다. 잡히는 순간 무슨 꼴을 당할지 너무 빤했다.
당장 조금 전에 저 무식한 놈이 사람을 미친 듯이 두들겨 패는 꼴을 두 눈으로 보지 않았는가?
허리에 찬 검이 장식품이 아닌 이상, 분명 검수일 텐데도 저 금검부의 고수들을 맨주먹으로 두들겨 패는 인간? 그런 인간한테 걸려서 뼈라도 추릴 수 있으면 다행이다.
그나마 다행인 건 어떻게든 달아나기만 하면 해결된다는 점이었다. 그는 이미 전표를 챙겼다. 저놈의 손아귀에서 빠져나갈 수만 있다면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신분을 바꾸고 떵떵거리며 살 수 있는 것이다.
“뭐 하는 거야, 이 빌어먹을 새끼들!”
진양건이 욕지거리를 하며 핏발이 선 눈으로 앞을 살폈다.
태행삼검과 분명 여기쯤에서 합류하기로 했건만, 이 쓸모없는 놈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이 병신 같은 놈들…….”
“왔느냐!”
그렇지!
그때 들려온 목소리에 진양건이 쾌재를 불렀다. 숨어서 기다리고 있던 태행삼검이 나무 뒤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진양건은 황급히 외쳤다.
“대형! 대형! 꼬리가 붙었습니다!”
“뭐?”
태행삼검의 첫째인 과혁소가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달려오는 진양건을 노려보았다.
“이 멍청한 놈이!”
“아, 아닙니다! 금검부가 아닙니다! 꼬리는 한 놈입니다!”
“한 놈?”
“저기, 저 뒤에…….”
태행삼검 바로 앞에 멈춰 선 진양건이 뒤쪽을 가리켰다.
과혁소는 미친 소처럼 거품을 물고 달려오는 청명을 보더니 눈살을 찌푸렸다.
“웬 거지새끼가?”
일단 보이는 이가 한 사람이니 과혁소는 코웃음을 쳤다.
“따라붙은 놈이 아주 없었으면 좋겠지만, 한 놈이라면 달라질 것도 없지. 죽여 입을 막는다!”
“예!”
그의 말에 태행삼검의 두 아우가 검을 뽑아 들었다.
그 틈을 타 슬슬 뒤쪽으로 물러난 진양건은 태행삼검을 내버려 두고 그대로 냅다 달리기 시작했다.
“저, 저 새끼?”
“대형! 저 새끼 튀는데요?”
과혁소는 피식 웃어 버렸다.
“내버려 둬라. 저놈을 정리하고 쫓아도 늦지 않다. 멍청한 놈이 우리 손을 벗어날 수 있을 거라 여기는 모양이지.”
과혁소의 시선이 어느새 그들 바로 앞까지 접근한 청명에게로 향했다. 그는 두 형제들 앞으로 몇 발짝 성큼 나서며 말했다.
“아직 젊은 놈인 것 같은데 죽어도 우릴 원망하지 마…….”
콰드드드득.
“…….”
종요의 입이 서서히 벌어졌다.
‘어?’
눈앞의 광경을 순간적으로 이해하지 못하고 멈춰 버린 것이다.
‘뭐지?’
그러니까…… 대형. 어…… 그…… 어, 그래. 대형!
대형인 과혁소의 얼굴에 무언가 틀어박혀 있었다. 길쭉하고 그…….
‘발?’
그제야 상황을 이해한 종요는 몸을 흠칫 떨었다.
직선으로 달려온 청명이 일순간 속도를 더 높여서 과혁소의 얼굴을 허공에서 그대로 밟아 버린 것이다. 저걸 밟았다고 봐야 할지, 차 버렸다고 해야 할진 도저히 알 수 없었다.
어쨌든 종요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얼굴에 커다란 발자국이 찍힌 채 서서히 뒤로 넘어가는 과혁소를 그저 멍하니 바라보는 것뿐이었다.
투웅!
그런 과혁소의 얼굴을 사뿐히 밟은 청명은 몸을 허공으로 붕 띄워 그대로 앞으로 다시 달렸다.
“아니, 뭔 시답잖은 것들이! 비켜 이 새끼들아!”
어……. 저기 그건 보통 밟기 전에 하는 말 아닙니까?
밟아 놓고 하신다고?
멍해진 종요의 정신을 현실로 잡아끈 건 둘째 형의 비명 소리였다.
“대혀어어어어어엉!”
마위량이 찢어지는 듯한 비명을 내지르며 과혁소에게로 달려갔다.
“이, 이 빌어먹을 새끼가!”
그러더니 두 눈에 핏발을 세우고는 청명을 뒤쫓으려 했다.
“으아아아아앗!”
그때 웬 거지들이 한 무리 더 나타났다.
백천이 이끈 오검이었다. 백천은 한눈에 상황을 파악하고는 소리쳤다.
“조걸! 윤종!”
“예, 사숙!”
“상대해라! 나머지는 나와 함께 계속 뒤쫓는다!”
“예!”
조걸과 윤종이 지체 없이 앞으로 튀어 나가며 두 사람에게 검을 겨누었다.
그러자 마위량이 귀신 같은 얼굴로 소리쳤다.
“이 어린 새끼들이 우리가 누군지 알고! 태행삼검이 만만해 보였다 이 말이지!”
“태행삼검?”
백천의 얼굴이 차게 굳어졌다.
“혹시 종남의 속가 제자인 그 태행삼검을 말하는 것이오?”
마위량이 움찔했다. 홧김에 말하긴 했지만 정체를 밝히면 안 된단 생각이 뒤늦게 든 것이다.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 이들을 모조리 죽여 버리면 말이 새어 나갈 일은 없을 터였다.
“오냐! 우리가 바로 그 종남의 속가인 태행삼…….”
“뭐, 씨바?”
갑자기 등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마위량이 화들짝 놀랐다. 하지만 뒤를 채 돌아볼 틈 따위도 없었다.
빠아아아아아악!
“꺽…….”
뒤통수를 덮친 어마어마한 격통에 그는 이내 눈을 까뒤집으며 앞으로 고꾸라졌다.
“종남? 뭐, 씨? 종남?”
달려가던 속도보다 더 빨리 돌아온 청명이 엎어진 마위량의 등에 올라타 뒤통수에다 주먹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그래! 아오, 씨바! 뭐가 좀 이상하더라! 이 새끼들이 종남이라고? 그래, 종남 새끼들이 아니면 우리한테 이렇게까지 엿을 먹일 놈들이 없지! 죽어! 죽어, 이 새끼야! 죽어!”
퍼억! 퍼억! 퍼어어억! 퍼억!
마위량의 얼굴이 점점 땅으로 파고 들어갔다. 그 참혹한(?) 광경에 백천은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저 새끼는 종남파랑 뭔 일이 있었던 거지.”
저 원한의 근원이 뭔지 이젠 너무 궁금했다.
“처, 청명아! 이러다 놓친다!”
“아오!”
청명은 벌떡 일어났다. 그러더니 여태 얼이 빠져 있는 종요의 뒤통수를 그대로 돌려 찼다.
빠각!
털썩.
그나마 곱게 쓰러진 종요를 한번 노려본 청명은 몸을 돌려 다시 냅다 달리기 시작했다.
“잡아! 저 새끼 놓치면 한 달 굶는 거야!”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좀! 소소야! 얘들 다 묶어 놔라!”
“네!”
당소소를 남긴 오검이 다시 전력으로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안 보인다! 어느 쪽이지?”
“저 옆쪽으로 갔던 것 같습니다!”
“잔말 말고 따라붙어!”
청명이 앞으로 쭈욱 치고 나갔다. 한 걸음에 십여 장 넘게 쭉쭉 치고 나가는 속도가 어마어마했다.
‘전생에 말이었나!’
오검 역시 속으로 욕을 해 가면서 죽을 둥 살 둥 그 뒤를 쫓았다.
그렇게 달리다 보니 얼마 지나지 않아 진양건의 모습이 오검의 눈에도 보이기 시작했다.
“저기 있다!”
“아니! 저 새끼는 또 뭐가 이렇게 빨라!”
조걸이 무어라 투덜거리는 순간, 가장 선두에 있던 청명의 눈이 번뜩였다.
파아아아앗!
이내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속도로 앞으로 쏘아졌다.
천하의 백천마저도 그 속도에 놀라 움찔할 정도였다.
“으라아아아아아앗!”
어느새 청명이 바로 뒤까지 따라붙은 걸 확인한 진양건이 비명을 내지르며 검을 뽑아 들었다.
“어쭈? 이 새끼가 검을 뽑네? 너 그거 휘둘렀다간…….”
우우우우우우우웅!
진양건의 검이 진동한다 싶더니 이내 붉고 흰 검기를 내뿜기 시작했다.
윤종과 조걸이 눈을 살짝 크게 떴다.
‘뭐야?’
그냥 사기꾼 놈에 불과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검기가 생각 이상이었다.
붉고 흰 검기가 어지러이 휘날리는 모습이, 마치 과거 종남이 보여 주었던 설영십이식과 매화검법을 섞어 놓은 것 같은 모양새였다.
하나 그래 봐야 어느 쪽의 이점도 제대로 살리지 못한 조악한 열화판에 불과할 뿐. 저 정도로는 청명을 막기는커녕, 생채기 하나 낼 수 없다.
백천은 청명의 다음 행동을 눈으로 미리 그려 보았다. 평소처럼 검기 안으로 뛰어들어 파훼하고, 상대의 턱을 노려 단숨에 제압할 것이다.
그런데…….
순간 백천의 눈앞에 이해할 수 없는 광경이 펼쳐졌다.
지옥의 악귀처럼 달려들던 청명이 진양건의 검기가 뿜어지는 순간 거짓말처럼 그 자리에 우뚝 멈춰 서 버린 것이다.
‘뭘 하려고 저러지?’
물론 살짝 놀라기는 했지만, 그때도 백천은 의심하진 않았다. 다른 놈도 아니고 청명이니까.
하지만 이어지는 광경에 백천은 이내 두 눈을 찢어져라 부릅뜨고 말았다.
파아아아앗!
진양건이 뿜어낸 어설픈 검기가 청명의 어깻죽지를 갈랐다.
“뭐야!”
“처, 청명아아아아아아!”
피부가 길게 갈라지며 핏물이 허공으로 치솟아 올랐다.
백천의 동공이 크게 흔들렸다.
저 청명이 놈이 저런 어설픈 검기에 다칠 리가 없다. 하지만 지금 그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지고 말았잖은가?
청명을 쫓아오던 오검은 모두 비명을 내지르며 다리에 전력을 실었다.
허공으로 치솟았던 피가 후드득 빗소리 같은 걸 내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가장 먼저 달려온 백천이 여전히 멍하니 선 청명의 어깨를 낚아채듯 움켜잡았다.
주저 없이 손으로 꽉 눌러 피가 줄줄 새는 상처를 지혈하며 백천은 참혹하게 일그러진 얼굴로 소리쳤다.
“야, 이 새끼야! 대체 너 뭐 하는…….”
하지만 그 고함은 청명을 마주한 순간 사그라들고 말았다.
“……청명아?”
굳어 버린 청명은 마치 석상 같았다.
백천은 그간 청명의 수많은 표정을 보았다. 수많은 얼굴을 보았다.
노해서 울부짖는 청명이 놈도 보았고, 기쁨에 차 뒤가 없이 웃어 젖히는 얼굴도 보았다.
하지만…… 지금 청명의 표정은 도저히 그 안에 서린 감정을 알아볼 수 없도록 기이했다. 청명을 가장 잘 아는 축에 속하는 백천마저도 알 수가 없었다.
멍한 것 같기도 하고, 슬퍼 보이기도 하고, 그리고 또…….
그때 굳어 있던 청명의 입이 느릿하게 열렸다. 이윽고 신음 같은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자하(紫霞)…….”
“……뭐라고?”
너무 작은 목소리라 다른 이들에겐 제대로 들리지도 않았다. 아니, 사실 크게 말해도 제대로 알아듣지 못했을 것이다. 주위를 둘러싼 오검의 신경은 생각보다 크게 갈라져 피를 콸콸 쏟는 청명의 어깨에 쏠려 있었으니까.
“사숙.”
“그래, 이 미친 새끼야! 왜 그런 눈 먼 칼에 처맞고 있어, 병신같이!”
“가자.”
“기다려! 일단 지혈부터…….”
“사숙.”
“…….”
“가자.”
청명의 눈이 어둡게 가라앉은 채로 일렁였다. 그 진지함을 느낀 백천은 입을 다물고 말았다.
‘대체 이게 뭔 일이지?’
상황이 생각과 다르게 흘러간단 걸 직감한 그는 고개를 돌려 진양건이 사라진 쪽을 보았다.
청명이 홀린 듯 앞으로 걸어 나갔다.
“확인해야겠어.”
진양건이 사라진 쪽으로 향하면서도 청명은 무언가 다른 걸 쫓는 듯 먼 곳을 보았다.
조악하기 짝이 없던 검기였지만, 그의 눈에는 분명히 보였다.
어설프지만 익숙한 형(形)에 어린 자줏빛 기운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