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3화. 화산파 새끼가 누구냐? (3)
“타아아앗!”
윤종이 검집째 검을 휘둘렀다.
검집을 씌운 채 휘두르면 당연히 검이 무거워지고 정교함도 떨어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런 건 이들을 상대함에 있어서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는다.
파아앗! 파앗!
섬전처럼 허공을 가른 윤종의 검이 달려들던 금검부 문도들의 이마를 정확하게 강타했다.
따악! 따아아악!
심한 부상을 입지 않을 정도로, 딱 의식을 잃을 정도로만.
상대를 상처 없이 제압하는 것은 상대의 목숨을 빼앗는 것보다 배는 더 힘들다. 하지만 윤종의 검은 아무런 문제도 없이 경쾌하게 움직였다.
“이, 이놈들이!”
“조심해라! 보통 놈들이 아니다!”
금검부의 문도들이 그런 윤종의 신위에 기겁하며 뒤로 물러났다.
“대체 어디서 이런 놈들이 나타났단 말이냐!”
“아니, 그러니까 화산에서 왔다고 말했…….”
“물러서지 마라! 사파 놈들에게 약한 모습을 보일 셈이냐!”
“사파 아니라고요!”
윤종이 다시 팔을 휘두르자 그의 검 끝에서 화려한 검기가 솟구쳤다.
“저 요사스런 검기! 이놈들 역시 사파가 맞구나!”
“아니라고!”
미치고 팔짝 뛰겠네, 진짜!
‘아니, 매화검법이라도 펼쳐 볼까?’
마음속에서 충동이 머리를 들었다. 하지만 윤종은 이내 고개를 내저었다.
매화검법은 변화가 너무 많아 시전하는 이조차 검기를 모조리 통제하기 어려운 검학이다. 그리고 그의 이십사수매화검법은 아직 완전하지 않다.
어설프게 펼치다가 누가 다치기라도 한다면 그때는 정말 그들이 화산파라는 사실을 숨기고 도주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것만은 죽어도 안 돼!’
사고는 청명이 놈이나 치는 거지, 그들이 치는 게 아니다.
그러니 일단은…….
“으아아아앗! 받아라! 이십사수매화검법 매화도도…….”
“하지 마! 이 미친놈아!”
윤종이 반사적으로 던진 검이 검집째 조걸의 뒤통수에 틀어박혔다.
“꺄울!”
조걸이 앞으로 달려들던 기세 그대로 바닥에 처박혀 저만치로 쭉 밀려갔다.
“……어…….”
설마 이렇게까지 정통으로 얻어맞을 줄은 몰랐던 윤종이 두 눈을 끔뻑였다.
“괜찮니?”
“…….”
“살아 있긴 하지?”
“……죽었습니다.”
“아, 그래. 다행이다.”
저벅저벅 다가가 검을 회수한 윤종이 짐짓 엄하게 훈계했다.
“사람이 다칠지도 모르니 육합검과 칠매검만으로 제압하거라!”
“……그게 사람 뒤통수에 칼 날린 사람이 할 말입니까?”
“너는 세니까 괜찮다.”
……도사란 무엇일까?
조걸은 무심코 고개를 돌렸다.
여러 ‘도사’들이 금검부의 무사들을 깔끔하게 때려잡는 모습이 또렷하게 보였다.
“죄송합니다! 나중에 사죄드리겠습니다! 딱히 고의는 아니……. 아이고야, 그걸 맞네. 좀 피하시지…….”
듣는 입장에서는 열불이 터지다 못해서 화병으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말을 아무 죄책감 없이 내뱉고 있는 백천부터.
“허리!”
빠아아아아악!
검집을 씌운 채라 베지 않는다 뿐이지, 한번 검을 들면 사정 봐줄 생각 따위는 추호도 없다는 듯 무섭게 검을 휘둘러 대는 유이설.
게다가…….
“칠매검 정도는 이제 나도 잘 쓴다고!”
자세히 보면 아직 어설프기는 하지만, 그래도 이제 제법 ‘검수’다운 모습을 보이고 있는 당소소까지.
그 숙련된(?) 싸움꾼들 앞에서 금검부의 무인들은 말 그대로 추풍낙엽처럼 쓸려 나갔다.
‘뭐 별수 없겠지.’
조걸이 보기에 저 인간 흉기들을 상대하기에 금검부의 무인들은 너무도 여리고 가냘펐다.
‘그래도 다행인 줄 아세요.’
그나마 여기에는 상식이 뭔지 아는 사람들만 있으니까.
고개를 돌린 조걸의 시야에 그 상식 없는 놈의 뒤통수가 들어왔다.
지금부터 저놈을 상대해야 할 이들을 애도하며 조걸은 다시 검을 꾹 움켜잡았다.
“흐흐흐흐.”
쥐를 궁지에 몰아넣은 고양이의 표정이 이러할까?
청명의 입가에는 더없이 만족스러운 미소가 어려 있었다.
“사, 삼……. 삼장로.”
그리고 그런 청명과 쓰러진 장로를 번갈아 바라보는 상만희의 얼굴은 점차 흙빛으로 물들었다.
‘삼장로가…….’
금검문의 삼장로인 오필(吳畢)은 그조차 함부로 할 수 없는 고수다. 아니, 실력이라는 측면만 따지자면 오히려 그보다 낫기까지 했다.
그런데 그 오필이 지금 눈을 까뒤집고 거품까지 문 채 쓰러져 있다.
“이, 이게 뭔…….”
“스으으으으읍! 하아아아!”
길게 심호흡을 한 청명이 고개를 소리 나게 좌우로 꺾었다.
“거기, 아저씨.”
“……예?”
상만희는 순간 그의 기세에 눌려 저도 모르게 존댓말을 해 버리고 말았다. 금세 제 실책을 알아챘지만, 청명은 그런 그가 말을 정정할 틈 따윈 주지 않았다.
“긴말하고 싶은 생각 없으니까 비켜 봐요. 내가 볼일이 있는 건 저 새끼니까.”
“그…….”
상만희는 어찌할 바를 모르고 마른침을 삼켰다.
그도 물러나고 싶은 마음이야 굴뚝같았다.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그가 이 미친놈을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은 명백하니까. 삼장로가 생채기 하나 내지 못한 상대를 그가 무슨 수로 막는단 말인가?
하지만 또 물러설 수도 없었다.
살다 보면 가끔 실리보다 체면이 더 중요할 때도 있다. 금검부의 부주가 정체도 알지 못하는 이의 협박에 굴복하여 화산의 제자를 내어 주었다는 소문이라도 돈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그날부로 금검부는 두 번 다시 남창 바닥에서 얼굴을 들고 다니지 못할 것이다.
한마디로, 장사 다 접어야 한단 소리다.
“이, 이놈! 네놈이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화산의 제자를 겁박할 수 있을 것 같으냐?”
그러니 이제 그가 믿을 건 화산의 위세뿐이었다.
하지만 그 말을 듣는 순간 청명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근데 이 양반 진짜 아까부터 사람 속 뒤집어지게 만드네. 그 눈치로 어떻게 부주 자리를 맡고 있지?”
“……뭐?”
“야, 이 답답한 아저씨야! 이제 눈치챌 때도 됐잖아! 우리가 화산파라니까!”
청명이 손가락을 들어 진양건을 가리켰다.
“저 새끼가 사기꾼이고!”
상만희가 청명이 가리킨 곳을 향해 천천히 시선을 돌렸다. 낯빛이 창백하게 질린 진양건이 있었다.
여전히 표정이야 여유로워 보였지만 낯빛이나 땀은 조절할 수 없는 법이다. 식은땀을 흘리며 창백하게 질린 그의 이마를 보며 상만희의 입이 서서히 벌어졌다.
“서, 설마…….”
그의 동공이 지진을 일으키는 순간.
“부주님을 지켜라!”
“이노오오오오옴!”
부주실에 청명이 들어간 것을 본 금검부의 무사들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부주실 안으로 박차고 들어왔다.
“아, 안 돼…….”
평소라면 그 드높은 충성심이 더없이 기꺼웠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상만희는 그 충성을 원망했다.
단숨에 부주실 안으로 날아든 이들이 사방에서 청명을 덮쳤다.
그리고 그 순간.
“아오!”
청명이 짜증을 내며 강하게 진각을 밟았다.
두 눈에서 새파란 광망을 뿜어져 나왔다. 이내 청명의 주먹이 선두에서 달려드는 이의 턱을 깔끔하게 올려 쳤다.
“왜!”
콰앙!
턱주가리를 직격당한 이는 마치 쏘아진 포탄처럼 일직선으로 위로 솟구치더니 그대로 천장에 꽂혔다.
“말귀를!”
콰앙!
깔끔한 돌려차기가 뒤이어 달려들던 이의 옆구리에 박혔다.
“꺽…….”
부풀어 오른 북 가죽에서 바람이 새어 나가는 듯한 소리와 함께, 새우처럼 허리가 꺾인 이가 달려오던 속도보다 더 빠르게 뒤로 튕겨 나갔다.
콰장창창!
날아간 몸이 벽에 처박혔지만, 안타깝게도 나약한 벽은 그의 몸을 붙들어 주지 못했다. 벽을 그대로 뚫어 버린 이의 모습이 애초에 없었던 것처럼 시야에서 사라졌다.
번쩍!
청명의 안광이 연이어 달려들던 이들에게로 쏟아졌다.
“……히익!”
그러자 맹렬히 달리던 이들은 뭔가 잘못되었다는 걸 뒤늦게 깨닫고 뒤로 물러나려 했다. 하지만 그들도 사람이니 전력을 다해 달려들던 몸을 바로 세우는 것은 불가능했다.
새파랗게 질린 그들의 눈앞에 세상에서 가장 심통맞은 얼굴이 불쑥 들어왔다.
“못 알아 처먹냐고오오오오오오!”
청명의 주먹이 허공을 가득 메웠다.
딱히 초식이라고 할 것도 없는 난잡한 주먹질이었다. 하지만 그 난잡한 움직임이 수십, 수백 개의 권영을 만들어 내고, 심지어는 그 권영이 말도 안 되는 속도로 쏟아진다면 그 자체로 이미 훌륭한 초식이나 다름없었다.
콰득!
선두에 선 이의 눈두덩에 동그란 주먹이 야무지게 틀어박혔다.
아찔하다는 말이 어울리는 아픔이 퍼졌다.
하지만 벌어진 입에서 고통의 비명이 채 흘러나오기도 전에 턱에 또 한 번의 주먹질이 가해지고, 이어 수십 차례의 난타가 비처럼 온몸에 쏟아졌다.
파바바바바바바바박!
그건 거의 주먹으로 만들어진 벽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거대한 벽이 무너져 사람들을 덮치는 듯, 주먹질이 모두에게 와르르 쏟아졌다.
“아아악!”
“아아아아악!”
“컥! 커허억!”
주먹에 맞은 이들은 아이가 전력으로 달려와 걷어찬 개구리처럼 허공으로 튀어 올랐다.
돌멩이나 개구리도 아닌 사람이 저 멀리 여기저기 뻥뻥 날아가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이게 과연 현실인지 확신할 수 없을 정도였다.
사방에서 달려들던 이들을 보기 좋게 모조리 날려 버린 청명은 운 좋게 미끄러지며 주먹질의 소나기를 피해 낸 이에게로 다가갔다.
순간적으로 사위가 조용해졌다.
그렇게 서로의 시선이 마주친 순간.
덥석.
넘어진 사내의 멱살을 냉큼 움켜잡은 청명은 두말할 필요도 없이 그 위로 올라타 주먹을 휘둘러 댔다.
“사람이, 어? 머리가 나쁘면 눈치라도 빨라야지!”
퍽!
“내가 말을 하잖아! 내가 화산파라고! 어? 화산파 못 들어 봤어?”
빠악!
“아니, 씨! 살다 살다 내가 화산파라는 걸 증명해야 하는 상황이 오네. 왜? 대가리에 매화라도 주렁주렁 꽂고 다닐까? 어? 아니면 매화검법으로 몸에 문신 좀 예쁘게 새겨 드려?”
빠아아아악!
털썩.
턱이 깔끔하게 돌아간 이가 거품을 문 채 결국 축 늘어졌다.
청명은 그제야 혀를 차며 몸을 일으켰다.
“그러니까 내가 말로 하자고 했잖아.”
언제? 대체 언제…….
하지만 안타깝게도 상만희는 그 의문을 마음속으로만 삼켜야 했다. 저 악귀 같은 놈이 돌연 그를 뚫어져라 노려보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득. 우득.
청명이 목을 풀고 주먹을 꽉 쥐자 섬뜩한 뼈 소리가 울렸다. 저런 소리야 살면서 셀 수도 없이 들어 보았겠으나 지금은 온몸에 소름이 오소소 돋았다.
“아직도 못 믿겠으면 어떻게, 그 몸으로 직접 확인해 보실래요?”
상만희가 고개를 격하게 붕붕 저었다.
솔직히 그는 이제 이놈이 화산파의 제자건, 철모방의 사주를 받고 화산을 사칭하는 놈이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그냥 딱 하나 확실한 사실만을 알게 되었을 뿐이다. 여기서 ‘그래도 나는 못 믿겠다’는 둥의 말을 소신 있게 내뱉었다간 그도 곧 주변의 사람들처럼 거품을 물고 쓰러져 경련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
청명이 고개를 갸웃했다.
“믿는 거예요?”
“미, 믿죠……!”
“그렇죠? 헤헤.”
상만희가 말까지 더듬으며 외치자 청명이 흐뭇하게 웃었다.
“역시 진심으로 대하면 통한다더니. 크으! 역시.”
“…….”
상만희는 넋을 놓고 말았다.
확실히 저놈이 진심으로 모두를 대하긴 했다. 사람을 저렇게까지 진심으로 패 대는 놈은 살다 살다 처음 봤으니까.
“부주님?”
“예? 아……. 아, 예!”
“이해하셨으면 옆으로 잠깐 비키…….”
히죽거리며 말하던 청명이 순간 움찔했다. 그러더니 좌우로 고개를 획획 돌렸다.
“어?”
그의 얼굴이 순식간에 흉신악살처럼 일그러졌다.
“이 새끼 어디 갔어?”
“예?”
상만희가 화들짝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진양건이 앉아 있던 자리가 텅 비어 있었다. 상만희가 그에게 내어 준 전표뭉치와 함께 사라졌다.
“어, 어디…….”
“아니, 이 새끼가 감히 도망을 쳐?”
청명의 두 눈에서 불이 뿜어졌다.
그는 뒤쪽에 활짝 열린 창을 획 노려보며 이를 갈았다.
“곱게 반만 죽여 주려고 했더니, 너는 그냥 뒈졌다! 이 사기꾼 새끼!”
금방이라도 앞으로 달려들 것 같던 청명이 고개를 획 돌려 상만희를 바라본다.
그 삐딱한 시선에 상만희가 저도 모르게 목을 움츠렸다. 청명은 짓씹듯 말했다.
“혹시라도 저 새끼 놓치면 댁도 뒈지는 거야.”
“……예?”
“금검부인지 나발인지 아주 내가 갈아 마셔 버릴 테니까. 꼭 잡으라고 빌고 있으쇼!”
콰아아아아앙!
그 말을 끝으로 바닥이 터질듯 일순간 솟아올랐고, 동시에 청명의 모습이 상만희의 눈앞에서 사라졌다.
상만희는 조금 전까지 청명이 서 있던 자리를 망연히 바라보았다. 그때 화산오검이 금검부를 모조리 정리하고 어슬렁대며 부주실로 들어섰다. 그들은 주변을 둘러보더니 한숨을 쉬었다.
“어디 갔냐?”
“그놈 토꼈나 보네.”
“청명이는 쫓아간 모양인데요?”
“하……. 진짜 오늘 더럽게 달리네. 가자!”
“예!”
이윽고 그들도 우르르 들어와선 창문 너머로 몸을 날렸다.
“…….”
얼결에 덩그러니 남겨진 상만희는 그 창을 바라보다가 몸을 돌렸다. 여기저기서 죽는소리, 앓는 소리, 곡소리가 흘러나왔다.
“끄으으응.”
“아……. 아이고. 나 죽는다…….”
“허, 허리가아…….”
“…….”
상만희는 그 자리에 철푸덕 주저앉았다.
“이……. 이게 대체 뭔 일이야. 이게…….”
청명이라는 태풍이 쓸고 간 자리에는 풀 한 포기 남지 않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