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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귀환-702화 (700/1,567)

702화. 화산파 새끼가 누구냐? (2)

“그…….”

잠깐 고민하던 상만희는 이내 머릿속에 떠오른 말도 안 되는 상념을 지워 냈다.

‘종남은 얼어 죽을!’

저 고매하신 구파일방의 제자가 미쳤다고 저런 거지꼴로 나타나겠……. 어? 거지? 그럼 혹시…….

아니, 개방은 일단 접어 두고!

“크흠!”

상만희는 크게 헛기침했다.

종남은 지금 봉문한 상태다. 물론 그새 봉문을 풀었는데 아직 여기까지 소식이 전해지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다 쳐도 기껏 봉문을 풀어 놓고 이 먼 남창까지 뭐 하러 오겠는가?

그러니 절대 종남은 아닐 테고…….

“너야?”

그때 괴인이 두 눈을 번들거리며 물어왔다. 상만희가 움찔하며 진양건과 그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러다 자신이 누구의 편을 들어야 할지 확실히 감을 잡고 목소리를 높였다.

“네 이놈!”

물론 진양건의 얼굴에도 당혹감이 역력하긴 했다. 하지만 이 상황에 당황하지 않을 사람이 어디에 있겠는가?

부처님도 저렇게까지 이상한 놈이 대문을 박살 내고 들어오는 걸 보면 좌정하다 뒤로 넘어가셨을 것이다.

“감히 이곳에서 난동을 피우다니! 여기에 누가 있는 줄 알고나 이러는 것이냐?”

“알죠.”

“…….”

“아니까 왔지. 그러니까 여기에 그 화산파 놈이 있다던데?”

“이놈이 그걸 알고도!”

상만희가 붉으락푸르락하며 일갈했다.

“화산파를 아는 놈이 화산파가 얼마나 무서운지는 모른단 말이더냐?”

“호오?”

그러자 청명의 고개가 살짝 삐딱해졌다.

“그리 말씀하시는 분은 화산파가 어떤 곳인지 잘 아시나 보죠?”

“당연하지!”

상만희가 무섭게 눈을 부라렸다.

“화산이 어떤 곳이더냐! 저 무당과의 비무에서 승리하고, 그 대단한 천우맹의 수좌에 앉은 문파가 아니더냐!”

“…….”

청명의 입가가 살짝 씰룩였다.

“그뿐이냐! 간악하기 짝이 없는 만인방의 무력대를 쓰러뜨리고, 사파의 괴수였던 적사도 엽평과 그의 수족인 적사대를 무찌른……. 너 근데 왜 웃냐?”

살짝 떨리는 청명의 손이 얼굴 쪽으로 향했다.

그리고 귀 밑까지 걸려 있는 입꼬리를 손끝으로 꾸역꾸역 끌어 내렸다.

“크흠. 이게 왜 자꾸……. 크흐흐흠!”

아무래도 생각보다 더 이상한 놈 같다는 생각에 상만희는 떨떠름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막아라!”

“부주님을 지켜라!”

그때 내문의 좌우로 난 낮은 담을 넘어온 금검부 무사들이 벼락처럼 달려와 상만희와 청명의 사이를 가로막았다. 순식간에 수십의 검이 청명을 겨누었다.

“쯧.”

청명은 그 꼴을 보고 혀를 찼다.

“하……. 나도 진짜 많이 착해졌다.”

옛날 같았으면 그의 앞에서 검을 뽑는 순간 정사마를 막론하고 염라 곁으로 보내 버렸을 것이다. 염라대왕도 ‘또 그 새끼가 보냈냐?’ 이런 소리나 하고 있었을 텐데.

눈앞에서 칼 뽑은 놈들을 보고도 이렇게 멀뚱멀뚱 지켜보는 날이 오다니.

“하아.”

이렇게나 착해졌는데, 왜 다들 못 잡아먹어서 안달인지 청명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안 그렇수, 사형?’

- 양심은 시전에다 팔아먹었냐, 이 새끼야!

……거, 입이 점점 험해지시네.

선계에서 신선 양반들이랑 말싸움 좀 심심찮게 하셨나…….

“휴우. 됐고.”

청명이 금검부의 무사들을 쭉 훑어보며 검을 들어 올리려는 순간이었다.

“멈춰어어어어어어어!”

“아직 안 늦었습니다! 아직 피는 안 보입니다!”

“잡아, 일단 저 새끼 잡아!”

뒤쪽이 소란스럽다 싶더니, 똑같이 거지꼴인 화산오검이 우다다 달려와 청명의 사방을 포위하듯 섰다.

“후욱! 후욱! 후욱!”

“아니, 뭔 문도들이 이렇게 많아?!”

“안 다치게 제압한다고 식겁했네.”

“……난 그냥 깠는데.”

“저도 그냥 찔렀는데요.”

숨을 헐떡이던 백천과 윤종, 조걸이 뜨악하며 유이설과 당소소를 바라보았다.

당당하게 턱을 치켜든 두 사람의 모습에 셋은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내저었다.

“크흠. 아무튼…….”

백천이 목을 가다듬으며 청명의 앞으로 나섰다.

“금검부의 부주 되십니까?”

“…….”

“만나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저희는 화산에서 온 사람들입니다.”

“화산?”

“예. 몰골이 좀 흉하기는 하나, 그건 섬서에서부터 여기까지 급하게 달려와서이니 양해 바랍니다.”

백천의 목소리는 실로 진지하고 당당했다.

“이곳에 화산의 제자를 사칭한 이가 있다 들었습니다. 이유야 어찌 되었든, 본산의 허락을 구하지 않고 화산의 제자라 자칭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 죄인 인도에 협조해 주신다면 화산은 이를 잊지 않을 것입니다.”

평소의 백천이 이렇게 말했다면 누구도 의심하지 않았을 것이다. 되레 그 헌앙하고 당당한 기세에 넋을 놓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지금은 아니었다.

“화산파?”

“그렇습니다.”

“그대들이?”

“예.”

“그 몰골로?”

“…….”

백천은 주먹으로 입을 살짝 가리며 작게 헛기침했다.

“외양은 그저 겉치레에 불과할 뿐입니다. 저희는 그저…….”

“물론 그 말은 나도 동의하지. 한데…….”

상만희가 뚱한 얼굴로 백천의 뒤쪽을 향해 턱짓했다.

“내가 알기로 화산은 협의지문이라고 들었는데…….”

백천의 시선이 상만희를 따라 뒤쪽으로 향했다.

박살이 나 버린 문 뒤쪽으로 쓰러진 허수아비처럼 여기저기 널브러진 금검부 문도들이 보였다. 한둘도 아니고 거의 쉰에 가까운 수였다.

잠깐 말을 잃었던 백천이 어색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이건 설명이 조금 필요…….”

“어디 세상에!”

“…….”

“어느 협의지문이 다짜고짜 남의 문파에 쳐들어와 문도들을 패서 쓰러뜨리고 객을 내놓으라며 강짜를 부린단 말인가! 내가 아는 화산파는 이런 일을 할 문파가 아니다!”

저기…… 그쪽이 아는 화산파가 어떤 곳인지는 잘 모르겠는데, 제가 아는 화산에서는 이건 일상입니다만…….

“네 이놈들! 저 철모방의 사주를 받고 수작질을 하러 온 게 분명하렷다!”

“수작질요? 철모방?”

상만희가 노기를 터트리며 이를 갈아붙였다.

“화산파 제자 분을 끌고 가서 화산에 도움을 요청하지 못하게 만들려는 수작 아니더냐! 내가 모를 줄 알고?”

탁!

가만 듣던 청명이 저도 모르게 주먹으로 손바닥을 쳤다.

“그럴싸한데?”

“야, 이 미친 새끼야! 뭐가 그럴싸해!”

“애초부터 말로 하자는 거 네가 들쑤셔서 이렇게 된 거잖아!”

“혼나야 해!”

“맞아, 혼쭐나야 해!”

돌연 지들끼리 툭탁대기 시작한 거지들(?)을 보며 상만희는 눈살을 찌푸렸다. 그때였다.

“부주님!”

싸움에서 유일하게 빠져 있던 윤종이 상만희의 뒤로 보이는 부주실을 곁눈질하며 말했다.

“지금 속고 계신 겁니다. 저 안에 있는 이는 화산파의 제자가 아닙니다! 저희가 진짜 화산파의 제자입니다!”

“……그대들이?”

“예, 그렇습니다.”

상만희는 멍하게 윤종을 바라보다가 오히려 되물었다.

“입장 바꿔 생각해 봅시다.”

“예?”

“댁들이 내 입장이라면 안에 계신 분과 그대들 중 누굴 화산의 제자라 생각하겠소?”

그 말에 오검이 죄다 안쪽을 향해 고개를 쭉 빼서 진양건의 모습을 보았다.

단정한 백의를 차려입고 도관을 쓴 모습이, 누가 보아도 고아한 도사 같았다.

“음.”

고개를 끄덕인 그들은 서로 눈을 마주쳤다.

오랜 세월 함께해 온 사형제지간답게 눈빛만으로도 마음이 전해졌다. 그들의 얼굴에 환하고 흐뭇한 미소가 드리워졌다.

‘이건 안 돼.’

‘나 같아도 속겠다.’

‘그래. 장문인도 속을 판이네.’

이건 애초에 글러 먹은 일이다.

어색하게 웃어 대는 화산의 제자들을 보며 상만희가 혀를 찼다.

‘대체 어디서 이런 경박스러운 것들이…….’

진양건에게서는 도인의 품격이 엿보일 뿐만 아니라, 행동 하나하나에 군자로서의 품격이 묻어났다. 반면 이놈들은 하는 양이 뒷골목 무뢰배나 다름없다.

세 살짜리 어린아이라도 누가 화산의 제자인지 분별하기 어렵지 않을 것이다.

“긴말할 것 없다! 감히 금검부에 쳐들어와 난동을 부린 대가를 톡톡히 치르게 해 주마! 뭣들 하느냐!”

그때 청명이 히죽 웃으며 사형제들을 향해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거봐. 내가 말했지? 말로는 안 된다니까?”

“너 때문이잖아! 이 새끼야!”

“언제는 말로 했냐? 한 번이라도 말로 좀 해 보고 그런 말을 해라! 제발 좀, 청명아!”

어깨를 으쓱한 청명은 이죽이며 상만희 너머의 진양건을 바라보았다.

“너 이 새끼 거기 딱 있어라.”

요란하게 목을 좌우로 꺾은 청명이 손을 늘어뜨리자 오검도 자연히 그의 좌우를 채웠다.

하지만 얼굴에는 불안한 기색이 가득했다. 일단 본능적으로 싸울 준비야 했지만 죄 없는 이들을 공연히 닦달하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던 것이다.

윤종이 급히 백천에게 물었다.

“사숙. 이래도 되는 겁니까?”

그러자 백천이 더없이 진중한 얼굴로 답했다.

“생각해 봐라, 윤종아.”

“예?”

“어차피 일은 저질렀잖느냐. 그런데 여기서 저 사칭범을 놓친다면 사고는 사고대로 치고, 얻는 건 아무것도 없지 않겠느냐?”

“…….”

“어차피 사고 쳤으면 무어라도 얻어야지. 일단 저 새끼부터 잡는다! 수습은 그 뒤에 어떻게든 되겠지!”

말문이 막혀 버린 윤종은 순간 회의감이 들었다.

이 인간이 정말 화산의 장문인이 되어도 괜찮은 걸까.

“뭣들 하느냐! 당장 제압해서 내 앞에 무릎을 꿇려라!”

“예!”

문도들이 청명 일행을 향한 포위망을 좁히기 시작했다. 상만희는 혀를 찼다.

비록 외원의 문도들이 처참하게 당하기는 했지만, 그들은 어디까지나 외원 무사들이다. 금검부의 진정한 힘은 지금 이곳에 있는 내원 무사들에게서 나온다. 게다가 뒤늦게 달려온 금검부의 장로들도 속속 합류하고 있다.

이젠 설령 저들이 진짜 화산파의 제자들이라고 해도 고작 여섯이선 절대 이길 수 없을 게 분명했다.

이미 결과는 나왔다고 생각한 상만희는 몸을 획 돌려 부주실 안으로 들어갔다.

진양건은 처음과 다름없는 자세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 황당한 사태에도 처음처럼 의자에 미동도 없이 앉아 있는 모습을 보니, 참된 군자라는 말이 절로 떠올랐다.

“소란을 겪게 해 드려 죄송합니다.”

“하……. 하하. 별말씀을 다 하십니다, 부주님.”

“곧 처리할 테니, 조금만 기다려 주십시오.”

“저를 찾아온 이들 같은데 제가 직접 상대하는 것이…….”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닭 잡는 데 소 잡는 칼을 쓸 필요가 있겠습니까! 저들은 저희가 처리할 테니 심려치 마십시오.”

“하하…….”

진양건은 작게 웃으며 밖을 힐끔 보았다. 그러다 상만희의 고개가 살짝 돌아간 틈을 타 재빨리 침을 삼켰다.

‘미치겠네!’

대체 뭐 하는 놈들인데 느닷없이 사칭범이니 사기꾼이니 해 가며 불러 댄단 말인가?

‘최대한 빨리 달아나야 한다.’

이미 그의 계획은 크게 틀어졌다. 저놈들이 사로잡혀 대면이라도 해야 하는 상황이 온다면 더욱 큰 차질이 생길 수도 있다.

“부주님.”

“예, 도장.”

신뢰로 가득한 상만희를 보며 진양건이 여유롭게 미소 지었다.

“화산에 증원을 요청하는 일이 가장 시급하니, 저는 바로 움직여 볼까 합니다.”

“아, 그러시겠습니까? 하지만 저놈들이 어떤 놈들인지 확인하지 않으셔도……?”

진양건은 단호한 얼굴로 고개를 내저었다.

“명성을 얻은 자에게는 언제나 파리가 꼬이기 마련이지요. 일일이 상대하다가는 끝이 없습니다.”

“아아, 과연!”

그는 전표뭉치를 갈무리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금 연통을 넣으면 사흘 내에는 답변이 올 것입니다. 그럼 그때 다시 말씀 나누시지요.”

“예. 그럼 잘 부탁드립…….”

그때였다.

“꺄아아아아아아아악!”

“히익?”

사람의 것으로 들리지 않는 비명이 들린다 싶더니 무언가 허연 것이 날아들어 진양건과 상만희의 사이에 놓인 다탁에 처박혔다.

와장창!

다탁이 말 그대로 박살이 나며 사방으로 비산했다. 동시에 비싼 다기들 역시 산산조각 나 쨍그랑대며 흩뿌려졌다.

“이…… 이 한심……. 헉? 사, 삼장로?”

거지들을 여기로 날리면 어쩌냐며 성내려던 상만희는 거품을 물고 쓰러진 이를 보고 순간 기겁했다.

금검부에서도 알아주는 고수인 삼장로가 눈을 까뒤집은 채 꿈틀거리고 있었다. 아주 경직되어 버린 듯 번쩍 들린 다리가 파들파들 떨리는데, 실로 소름 돋는 광경이었다.

“……사, 삼장로가…….”

상황이 단단히 잘못되어 간다는 걸 깨달은 상만희가 고개를 번쩍 들었다. 그리고…….

“증원?”

턱!

마침내 부주실 안으로 청명이 발을 들였다.

“여기 왔다, 이 새끼야. 화산에서 온 증원!”

지옥귀처럼 섬뜩하게 씨익 웃는 그의 입술 새로 새하얀 증기가 새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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