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1화. 화산파 새끼가 누구냐? (1)
“크르르르.”
입에서 증기를 뿜어내는 청명의 뒤로 흙을 발라 구워 놓은 듯한 상태의 오검이 엎어져 경련하고 있었다.
“……저 미친…….”
“아이고……. 아이고, 죽겠다…….”
현 강호에 존재하는 문파를 통틀어 최고로 꼽히는 화산의 후기지수들이 달리기만으로도 영혼이 몸을 이탈할 지경에 처해 있었다.
낙오하는 이를 들쳐 업고, 엎어지는 이를 잡아끌고, 쓰러지려는 이를 붙들어 가며 한 명도 빠짐없이 도착한 화산오검의 마음속에는 어느새 싹튼 서로에 대한 애정(?)이 가득했다.
‘그냥 엎어진 채로 두고 갈 것이지!’
‘독한 인간들! 굳이 부축해서 날 끌고 가겠다고…….’
‘지만 죽을 수는 없다 이거지?!’
그렇게 어찌어찌 남창에 도착한 그들은 하나같이 원독 가득한 얼굴로 청명을 노려보았다. 하지만 청명은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다는 듯 먹이를 노리는 맹수의 눈으로 남창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런데…….”
겨우 숨을 고른 백천이 청명에게 물었다.
“이제 어쩔 셈이냐?”
“…….”
“우리는 그 사람의 얼굴도 모른다. 그리고 화산의 제자를 칭하는 이가 아직도 남창에 있는지는 모르는 일 아니냐?”
“…….”
“그러니 일단은 객잔을 잡고 좀 씻기라도 하고 천천히 찾아 나서는…….”
“사숙.”
“응?”
하지만 청명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딱 잘랐다.
“그래 가지고 뭔 수로 화산을 이끌래?”
“…….”
“얼굴을 몰라? 남창에 아직 있냐고? 그런 게 다 무슨 상관이야?”
“……왜 상관이 없냐, 이놈아.”
“잘 봐. 무릇 사람을 이끄는 이에게는 용인술(用人術)이 중요한 거야.”
청명이 손을 살짝 들어 올려 가볍게 까딱 접었다.
그러자 좌우에 선 나무들 뒤에서 무언가 시커먼 것들이 섬전처럼 튀어나왔다.
“헛!”
“습격이냐?”
엎어져 있던 오검이 화들짝 놀라 몸을 일으키는 순간.
“화산신룡을 뵙습니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남창에 어서 오십시오!”
환영 인사가 튀어나왔다.
모두가 멍한 얼굴로 납작 엎드린 이들을 바라보았다.
“……거지?”
“개방입니다, 사숙! 개방!”
“개방은 거지 아니냐?”
“……아니, 이 양반 인성도 나날이 상태가 안 좋아져.”
그러거나 말거나 개방도들은 청명의 눈치를 힐끔힐끔 보며 잽싸게 말했다.
“화음 분타주님께 말씀 전해 들었습니다. 협조할 수 있는 것은 모조리 협조하겠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백천의 뒤통수에 식은땀이 맺혔다.
‘아니…….’
물론 화산과 개방……. 아니, 정확히는 청명이 놈과 개방은 사이가 나쁘지 않으니 서로 협조하는 게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문제는 도무지 ‘협조’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저 태도였다.
‘대체 개방에 무슨 소문이 퍼진 거야?’
의문이 들긴 했지만 솔직히 그 답을 알고 싶진 않았다. 알면 속만 터질 게 분명했다.
“그놈은?”
청명의 말에 개방도들이 재빨리 몸을 일으켰다.
“아직 남창에 있습니다.”
“바로 안내하겠습니다!”
“가자!”
“예!”
거지들이 바로 달려 나갈 기세로 움직이자 백천과 조걸이 기겁하며 소리를 질렀다.
“자, 잠깐 숨 좀 고르고…….”
“또 뛰냐?! 또?”
청명이 고개도 돌리지 않고 외쳤다.
“그 새끼 잡아 놓고 쉬면 돼! 뭐 해! 가!”
“예!”
개방도들이 전력으로 죽어라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뒤를 청명이 놈이 지체 없이 따라붙었다.
“아오, 씨! 진짜!”
“그만 뛰자! 좀 그마아아아안! 이 새끼야아아아!”
오검도 눈물을 뿌리며 그런 청명 뒤로 따라붙었다.
사실 청명의 말도 그리 틀린 건 아니었다. 괜히 시간을 끌었다가 문제를 일으킨 이가 남창을 빠져나가기라도 하면 그걸 쫓느라 한참을 더 달려야 할 테니까.
하지만 문제는 지금 그들이 말 그대로 숨이 깔딱깔딱 넘어가기 일보직전이라는 점이었다.
‘빌어먹을 새끼!’
‘사칭을 해도 왜 하필 화산을 사칭해서!’
‘잡히면 아주 갈아 마셔 버리겠다!’
그들의 모든 분노가 저 남창 어딘가에 있는 사칭범에게로 쏠리고 있었다.
안다.
이 고통의 원인이 사칭범에게만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오히려 정확하게 따지자면 청명이 놈에게 있다는 것을.
하지만 태풍이 불어 집이 무너지고 날아간다면 누구라도 태풍을 원망하기보단 집을 얼기설기 지어 놓은 이를 비난하지 않겠는가. 고통의 원인인 태풍을 원망하는 건 의미가 없으니까.
마찬가지로 청명이 놈을 원망하는 데에도 별 의미가 없다. 저 청명이 놈이 저렇게 날뛰도록 만든 놈이 잘못한 것이다.
“누군지는 몰라도 일단 죽빵부터 갈겨 놓고 시작합시다!”
“엄청 글러 먹은 소리지만, 적극 동의한다!”
“죽여!”
두 눈에 핏발을 세우고 이를 악문 화산의 제자들이 금검부를 향해 달렸다.
“응?”
금검부의 정문을 지키고 있는 위사 조무성(曺茂星)은 이쪽을 향해 달려오는 한 무리의 사람들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뭐야?”
“왜 그러는가?”
“저기 보게, 저기!”
같이 번을 서던 염공(廉拱) 역시 조무성이 가리킨 쪽을 보고는 움찔했다.
“웬 거지들이……?”
뿌연 흙먼지가 묻다 못해 황토색으로 물든 옷에, 머리카락도 본래의 색을 알아보기가 힘들 정도였다. 봉두난발 사이로 드러난 얼굴에서 땟국이 줄줄 흘렀다.
“정지! 정지이이이!”
염공이 벼락같이 고함을 지르며 거지들 앞을 막아섰다.
끼기기긱!
그러자 선두에서 달리던 젊은 거지가 다리를 앞으로 쭉 뻗어 미끄러지며 몸을 멈춰 세웠다. 염공이 엄히 일렀다.
“이놈들! 여기가 어디라고 소란을 피우는…….”
“됐고!”
하지만 선두에 선 거지는 다짜고짜 말허리를 잘랐다.
“안에 화산이 어쩌고 하는 나부랭이 들어갔죠?”
“화산?”
염공이 눈을 가늘게 뜨고 거지를 살피다 화를 냈다.
“이놈들이 실성했나? 어디 화산파의 고수 분께 나부랭이라는 표현을 써! 경을 칠 놈들 같으니라고!”
그리고 허리에 찬 금빛 검집을 탁 소리 나게 쳐 보였다.
“혼쭐을 내 주어야 옳겠지만, 손님이 와 계시니 이번 한 번은 곱게 보내 주겠다. 감사하며 썩 물러가라. 다시 소란을 피우면 무사하지 못할 줄 알아라.”
“있구나!”
수백 마디 말 중에서도 저 들을 것만 듣고 남은 말은 머릿속에서 지워 버리는 데 특화된 인간이 바로 청명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이번에도 모든 말을 들은 그의 머릿속에 남은 단어는 ‘화산파’와 ‘고수’, 그리고 ‘손님’뿐이었다.
청명이 눈을 번뜩이며 콧김을 뿜었다.
“요 사기꾼 새끼가!”
그가 번을 서던 이들을 밀치고 안으로 들어가려 하자 두 사람이 동시에 어깨를 콱 움켜잡아 왔다.
“그런데 이놈이!”
“어허, 소형제! 이 친구의 말을 듣지 못했나. 어서 물러나게.”
제 어깨를 슬쩍 본 청명의 눈이 가느스름해졌다.
이에 화들짝 놀란 백천이 황급히 앞으로 나섰다.
“잠시!”
일단은 정중히 포권부터 한 그는 사정을 침착히 설명했다.
“저희는 섬서의 화산에서 왔습니다. 남창에 화산의 제자를 사칭하는 이가 있다 하여 조사차 나온 길이니, 귀문의 협조를 바랍니다.”
그러자 두 사람이 고개를 갸웃하며 백천을 바라보았다. 함께 온 다른 이들에 비해서야 몰골이 조금 낫긴 했지만 아까 보았던 화산파의 고수에 비하면 거지꼴이긴 매한가지였다.
“……어디서 오셨다고?”
“섬서성의 화산파입니다.”
“아……. 댁들이?”
염공이 대놓고 낄낄 웃어 대었다. 조무성은 대놓고 웃지는 않았지만, 웃음을 아주 참지는 못했는지 고개를 슬쩍 돌리고 입꼬리를 움찔거렸다.
“하하하하하하핫!”
한참 몸을 흔들어 가며 웃던 염공이 별안간 버럭 고함을 쳤다.
“이놈들이 정말 크게 혼쭐이 나야 정신을 차리겠느냐!”
“……예?”
“화산파가 어떤 곳인지 알고 네까짓 놈들이 화산을 사칭한단 말이냐! 화산파 분들은 고매한 도사 분들로 정평이 나 있다! 그런데 어디 전쟁터에서 사흘은 굴러먹은 꼬락서니로 화산을 운운하느냐!”
백천이 원망스러운 눈으로 청명을 흘겼다.
‘그래서 씻고 오자고 했잖아, 이 새끼야!’
“쯧쯧. 말세로다, 말세야. 어디 어린놈들이 태연하게 사기를 치느냐! 내가 조금 전에 화산파 분을 직접 뵙지 못했다면 깜빡 속을 뻔했구나! 잔말할 것 없다. 아직 나이가 어려 보여 봐주려 했다만, 더 이상 귀찮게 한다면 네놈들에게 세상이 얼마나 각박한 곳인지 알려 주겠다! 당장 꺼져라!”
염공이 흉흉한 기세를 뿜어냈다.
깊게 한숨을 쉰 백천이 처연한 얼굴로 청명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청명이 히죽 웃었다.
“뭘 그렇게 어렵게 생각해. 우리가 진짜 화산파라는 걸 증명해 드리면 되잖아.”
“……어떻게?”
“어떻게……. 어떻게라…….”
청명의 얼굴에 사악한 미소가 맺혔다. 그 표정을 본 백천이 움찔하며 뒤로 한 발짝 물러섰다. 본능적인 움직임이었다.
“그러게……. 어떻게 증명을 해야 하나. 하아, 거참 어려운 일이네. 어려워.”
“처, 청명아?”
“너무 어려워서 나는 이거 말고 도무지 다른 방법이 생각이 안 나네.”
청명의 손이 검집을 움켜잡는 순간 백천은 저도 모르게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청명이 히죽 웃으며 말했다.
“저기 두 분.”
“음?”
“이건 정말 어쩔 수 없는 일이니 양해 부탁드릴게요. 나는 꼭! 이 안으로 들어가야 되거든요.”
“이놈이 그래도……!”
“사전에 다 좋게 말씀은 드렸으니까 이제부터는…… 그쪽 책임이에요!”
청명이 두 눈이 새파란 빛을 내뿜었다.
* * *
“여기 있습니다.”
금검부주 상만희가 전표 뭉치를 진양건에게 내밀었다.
진양건은 탁자에 놓인 전표 뭉치를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얼굴이야 태연하기 짝이 없었지만, 탁자 아래로 숨은 그의 손은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부르르 떨렸다.
‘이게 다 얼마냐……. 이걸 진짜로…….’
살면서 상상도 제대로 해 본 적 없는 거액을 앞에 둔 그는 순간 마른침을 삼키려다 필사적으로 진정했다.
진양건은 허벅지를 움켜잡으며 떨림을 억누르고는 최대한 태연히 말했다.
“상 대협께서 화통하시단 말씀이야 익히 들었지만, 설마 이렇게 단호히 결정을 내리실 줄은 몰랐습니다.”
“저희가 어찌 감히 화산을 의심하겠습니까? 협의지문으로 이름 높은 화산을 의심한다면 천하가 저희를 욕할 것입니다.”
진양건이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며 이제 떨림이 가라앉은 손을 천천히 탁자 위에 얹었다.
“이 모든 돈들은 굶주린 이들을 위해 사용될 것입니다. 그리고 저의 사문은 가난한 이를 도운 금검부의 협의를 결코 외면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게만 해 주신다면 더 무엇을 바라겠습니까! 감사합니다. 진 대협! 아니, 도장!”
상만희가 진양건의 손을 덥석 잡았다.
진양건이 여유로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전표 뭉치를 챙기려 다른 손을 뻗었다.
콰아아아아아아앙!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응?”
“엥?”
하지만 별안간 밖에서 들려온 커다란 폭음과 비명에 상만희와 진양건의 고개가 동시에 획 돌아갔다.
“……뭐.”
콰아아아아아아앙!
연이어 들려온 소리에 상만희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스, 습격? 철모방인가?”
그의 시선이 재빨리 진양건에게로 향했다.
“도, 도장. 철모방이 습격해 온 모양입니다.”
그러자 진양건이 살짝 질린 얼굴로 어색하게 웃었다.
“하하. 하룻강아지가…… 범 무서운 줄 모른다더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처리하겠습니다.”
“역시!”
상만희의 얼굴에 급격히 화색이 돌았다.
“같이 나가시지요!”
“아. 저는 우선 이 전표부터 갈무리를 하고…….”
“……예?”
상만희가 멍한 눈으로 진양건을 바라보았다.
그 의혹 어린 시선에 진양건은 식은땀을 흘리며 이를 악물었다.
“부주님!”
그런데 그때 사색이 된 총관이 문을 박차고 들어왔다.
“무슨 일이냐! 철모방이냐! 이놈들이 여기에 누가 있는 줄 알고…….”
“아, 아닙니다! 철모방이 아닙니다.”
“응? 철모방이 아니라고?”
예상 밖의 대답에 상만희의 얼굴이 멍해졌다.
철모방이 쳐들어온 게 아니라면 이 난데없는 폭음은 대체 뭐란 말인가?
“그럼 누구냐?”
“그, 그게…….”
총관이 우물쭈물하며 진양건을 슬쩍 바라보고는 입을 열었다.
“화, 화산……. 본인들이 화산파라고 칭하는 이들이 몰려와 난장을 피우고 있습니다. 보, 본부의 제자들이 막고는 있으니 역부족입니다…….”
“화산?”
상만희가 이게 대체 뭔 소리냐며 면박을 주었다.
“화산이라니,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 화산파가 왜 여기에서 난장을 피워?”
“그건 저도 잘…….”
“대체 누가 화산을 사칭하여…….”
바로 그때였다.
콰아아아아아앙!
“아아아아아아아아악!”
커다란 폭음과 함께 부주실이 있는 전각 앞에 설치된 내문이 터져 나갔다. 동시에 대문 위로 금검부의 제자들 몇이 아이에게 걷어차인 개구리처럼 날아 바닥에 철푸덕 엎어졌다.
상만희는 믿지 못할 광경에 두 눈을 끔뻑였다.
그리고 보았다.
박살이 나 버린 대문을 통해 웬 괴인이 어슬렁어슬렁 걸어 들어오는 모습을 말이다.
전신에 흙먼지를 뒤집어 쓴 그의 눈에선 새파란 빛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절로 오금이 저리는 광경이었다.
“흐으으으으.”
괴이한 소리를 내며 느릿하게 고개를 좌우로 돌린 괴인의 시선이 상만희에게로 정확히 꽂혔다.
“화산파 새끼가 누구냐?”
괴인, 청명의 두 눈에서 불길이 뿜어져 나왔다.
“어떤 새끼가 화산을 입에 올렸어? 나와! 안 나와?”
“…….”
……종남에서 오셨나?
그 말을 들은 상만희가 한 첫 생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