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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귀환-699화 (697/1,567)

699화. 매화검수라고, 들어 보았소? (4)

“빌어먹을 놈아! 아파 죽는 줄 알았다!”

“적당히 쳤어야지!”

태행삼검이 언성을 높이며 항의하자 진양건은 낄낄대며 웃었다.

“거기 어디 보는 눈이 한둘이었는지 아십니까? 어설프게 힘을 뺐다가는 바로 걸렸을 겁니다.”

“그래도 정도가 있지! 네놈도 한번 얻어맞아 볼 테냐!”

마위량이 금방이라도 진양건에게 달려들 듯 몸을 움찔하자 과혁소가 손을 내저어 막았다.

“됐다!”

“대형!”

“됐다고 하지 않느냐!”

과혁소는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맞는 말이다. 어설프게 했다가는 의심만 살 뿐이지. 맞아 죽은 것도 아닌데, 이 정도는 감수해야지.”

“좋아.”

과혁소가 느리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진양건을 매서운 시선으로 보며 말했다.

“지금부터 네놈의 역할이 중요하다. 내 말이 무슨 말인지 알고 있겠지?”

“물론입니다. 대형.”

“이 정도면 금검부(金劍府)도 움직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안 그래도 발등에 불이 떨어져 있는데, 바로 옆에 화산의 고수가 나타났다는 소식까지 들리면 애가 닳을 수밖에 없겠지.”

“예.”

“명심해라. 저들이 손을 내민다고 좋다고 덥석 물었다가는 모든 일이 수포로 돌아간다. 우리가 기다리고 있었다는 인상을 줘서는 안 된다!”

그러자 진양건이 피식 웃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 정도는 알고 있습니다.”

“입만 산 놈 같으니…….”

과혁소가 주변을 슬쩍 돌아보았다. 인기척은 없지만 괜히 불안하다는 듯 말이다.

“가라. 네가 여기에 우리와 함께 있는 모습이 들키기라도 하는 날에는 모든 게 허사가 된다. 이제 일이 더 진행되기 전까지는 찾아오지 말아라.”

“예, 대형. 금검부에서 찾아오면 따로 연락을 드리겠습니다.”

“그래. 너를 믿겠다.”

진양건이 고개를 살짝 숙여 인사하고는 몸을 돌렸다. 그리고 미련도 없다는 듯 관제묘를 빠져나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멀어졌다.

“쯧.”

진양건이 더 이상 보이지 않을 만큼 멀어지자 마위량의 입에서 혀 차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음흉한 놈 같으니.”

마위량은 영 못마땅한 얼굴로 과혁소를 돌아보았다.

“대형. 저 새끼를 믿어도 되겠습니까?”

“나는 우리 형제들 말고는 아무도 믿지 않는다.”

“…….”

“하지만 저 쥐새끼는 의심할 필요가 없지. 저놈 역시 우리가 아니면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까.”

“그건 그렇습니다만…….”

“됐다.”

과혁소가 손을 휘휘 저었다.

“어차피 이번 일이 끝나면 다시 볼 일 없는 놈이다.”

그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그려졌다.

“어쨌든 상황이 생각보다 더 잘 풀리는구나. 그 패군이 화산을 직접 방문해 준 덕분에 일이 두 배는 더 편해졌다.”

“하늘이 우리를 돕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렇지.”

과혁소와 마위량이 마주 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런데 그때 잠깐 조용하던 태행삼검의 막내 종요(鍾繇)가 떨떠름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그런데 대형…….”

“음?”

“정말 이래도 되는 겁니까?”

“이제 와서 그게 무슨 소리냐?”

종요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아무래도 저는 마음에 걸립니다. 이거 잘못하다가는 저희는 물론이고, 종남의 위신도 땅에 떨어질 텐데…….”

“이놈이!”

과혁소가 눈을 부라리자 종요가 찔끔해 목을 움츠렸다.

“종남? 빌어먹을! 우리가 왜 종남의 위신까지 생각을 해야 한단 말이더냐! 그 잘난 종남이 우리에게 뭔 짓을 했는지 벌써 잊었느냐?”

“그건…….”

“속가들이 강호에서 활동하는 것을 빤히 알면서도 상의 한 마디도 없이 봉문 해 버린 곳이 종남 아니더냐?”

“대형……. 하지만 본산은 우리에게 있어서 부모와 같은 곳이 아닙니까.”

“부모? 말 잘했다! 자식만 부모에게 효도한다더냐? 부모에게도 자식을 지켜야 할 의무가 있지 않느냐!”

“…….”

“말도 없이 자식을 내팽개치고 달아난 부모의 체면을 우리가 왜 생각해야 하느냐!”

종요는 그 말에 차마 대꾸하지 못하고 몰래 한숨만 쉬었다.

과혁소의 심정도 이해는 갔다. 종남이 봉문 한다는 말을 듣고 모두가 얼마나 당황했던가?

본산은 속가에게 있어 든든한 뒷배와 다름이 없다. 속가는 그 뒷배를 유지하기 위해 본산에 매년 일정액을 상납하고, 본산은 그 속가에게 문제가 생겼을 때 해결해 주는 역할을 한다.

이건 사승관계이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계약관계나 다름이 없다.

그런데 종남에서 말없이 봉문을 해 버리며 이 계약을 순식간에 파기한 셈이 된 것이다.

덕분에 본산을 믿고 활동하던 속가들은 하루아침에 날벼락을 맞은 꼴이 되어 버렸다.

태행삼검 역시 강호를 종횡해 왔고, 그 과정에서 그들에게 악감정을 쌓은 이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그동안 종남의 위세 때문에 감히 그들에게 함부로 하지 못하던 이들이 소식을 듣자마자 칼을 갈고 나선 덕분에 큰 곤욕을 치러야 했다.

“긴말할 것 없다! 본산이고 나발이고 우리부터 살아야지!”

종요가 영 찝찝한 얼굴을 거두지 못하자 마위량이 달래고 나섰다.

“막내야. 일만 잘 처리된다면 본산에 누가 될 일은 없을 것이다. 그래서 저놈이 필요한 것 아니더냐?”

“……그건…….”

“대형의 계획대로만 흘러간다면 여기서 벌어진 모든 일의 책임은 종남이 아닌 화산이 지게 될 것이다. 그러니 이건 오히려 본산을 돕는 일이라 할 수 있지.”

“그 말이 맞다!”

마위량과 과혁소가 동시에 같은 이야기를 하니 종요도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꼭 그렇게 돼야 합니다.”

“이를 말이냐.”

과혁소의 눈이 빛났다.

“이제는 칼로 먹고사는 것도 신물이 난다. 이 일만 잘 풀리면 우리는 거액을 챙겨 강호를 떠날 수 있을 것이다. 그럼 이제 여생을 편히 사는 것만 남은게지.”

종요가 떨떠름한 얼굴로 물었다.

“그런데 혹여 저놈이 입을 털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

“입을?”

과혁소는 비뚜름하게 웃었다.

“그럴 수도 있겠지. 하지만 일이 마무리된 후라면 저놈의 말을 들어 줄 사람은 염왕(閻王)밖에는 없을 것이다.”

“…….”

“너무 걱정하지 말거라. 나는 지금의 상황이 하늘이 우리를 돕기 위해 만들어 준 상황 같구나. 하늘의 도움이 없었다면 우리가 하필 매화검법과 비슷한 검을 쓰는 놈을 찾아내고, 저 장일소가 직접 화산에 오르는 일이 생겼겠느냐?”

마위량이 연신 동조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대형.”

과혁소는 살짝 누그러진 얼굴로 종요를 보았다.

“네가 정 마음에 걸린다면, 일이 끝난 후에 벌어들인 돈의 일부를 본산에 보내면 될 일이다.”

“알겠습니다, 대형.”

종요가 순순히 대답하니 과혁소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어서 다친 몸이나 돌보거라. 저 쥐새끼가 허튼 짓을 하지 못하도록 감시해야 할 테니까.”

“예!”

곧장 자리를 잡고 운기에 들어가는 동생들을 보며 과혁소가 눈을 빛냈다.

‘멍청한 쥐새끼 하나 찾아낸 덕에 일이 쉽게 풀리는군. 금검부가 이 떡밥을 물어야 할 텐데.’

* * *

높은 주루의 창가에 기대앉아 아래를 내려다보던 진양건이 피식 웃었다.

‘멍청한 놈들.’

어제 호들갑을 떨어 대던 태행삼검의 몰골을 생각하니 자꾸만 웃음이 삐져나왔다.

본디 강호인이란 어떤 상황에서도 제 속내를 감출 줄 알아야 한다. 같이 일을 하는 내내 적의를 드러내는 얼뜨기들이 대체 어떻게 저런 명성을 얻었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아마 일을 끝나면 나를 제거하고 돈을 독차지하려 들겠지.’

진양건은 또 한차례 웃어 버렸다.

저놈들은 분명 모든 죄를 그에게 뒤집어씌우고 제거해서 저지른 일을 덮어 버릴 작정이겠지만, 그 빤한 수작에 당해 줄 진양건이 아니었다.

모든 일이 끝났을 때, 저들은 단 한 푼도 손에 쥐지 못한 채 망연자실하게 될 것이다.

‘화산. 화산이라…….’

그의 입가에 흐뭇한 미소가 피어났다.

설마 저 화산이 이리 잘나가게 될 줄이야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덕분에 큰일을 도모하게 되었으니, 더없이 감사할 일이었다. 이번 일이 잘 풀린다면 매일 아침 눈을 뜰 때마다 화산이 있는 방향으로 삼배를 올리는 것도 마다하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여튼 이제 내 사문이나 다름없는 곳이니까. 크큭.”

사특한 웃음소리가 나직이 울렸다. 그때 주루의 계단을 통해 한 무리의 사람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진양건은 재빨리 표정을 정비했다.

낯이야 금세 감쪽같이 태연해졌지만 그의 심장은 전력으로 달린 후처럼 쿵쾅대며 뛰기 시작했다.

모습을 드러낸 이들의 왼쪽 가슴에 검의 형상이 금사로 수놓인 게 보였기 때문이다.

‘금검부!’

내심 쾌재를 부른 진양건이 탁자 아래서 주먹을 움켜쥐었다.

찾아올 거라 생각하고 벌인 일이기는 하지만, 이렇게나 빨리 움직이다니!

위로 올라와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이들이 진양건을 발견하고는 빠르게 다가왔다. 그러더니 더없이 공손한 자세를 포권 했다.

“혹시 진양건, 진 대협 되십니까?”

짐짓 창밖으로 시선을 주고 있던 진양건은 천천히, 최대한 느긋해 보이도록 고개를 돌려 앞에 선 이들을 바라보았다.

“제가 진모입니다. 그런데 귀하들께서는?”

“저희는 금검부에서 온 사람들입니다. 부주께서 진 대협을 객으로 청하시어 말씀을 나누고자 하시는데,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금검부를 방문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흐음…….”

진양건은 고민을 하는 척 낮게 침음성을 흘리다 앞에 놓인 술잔을 들어 천천히 들이켰다.

탁!

그리고 잔을 소리 나게 내려놓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으나, 금검부의 부주이신 상 대협의 인품은 내 익히 들었소이다. 그런 분께서 초청해 주시는데 거절하는 것은 예의가 아니겠지.”

진양건은 자리에서 여유롭게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부드러운 미소를 입에 머금은 채 정중히 손짓했다.

“앞장서시오.”

“감사합니다! 대협을 모셔라!”

“예!”

좌우로 선 금검부 고수들의 호위를 받으며 진양건은 천천히 주루를 내려가기 시작했다.

‘이제 얼마 안 남았다.’

그의 입가에 남들 몰래 미묘한 미소가 스쳤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는 전혀 알지 못했다.

살면서 단 한 번도 마주해 보지 못한 재앙(災殃)이 지금 그를 향해 어마어마한 속도로 달려오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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