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8화. 매화검수라고, 들어 보았소? (3)
“굉장했지?”
“말이라고 하는가!”
대화를 나누는 이들의 얼굴은 잔뜩 상기되어 있었다.
물론 강호에서 무인들이 실력을 겨루는 일이야 드물지 않다. 하지만 이리 백주대낮에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출신 문파의 이름을 내건 채로 겨루는 경우는 흔히 보기 어렵다.
그 드문 광경을 직접 목격했으니 당연히 할 말이 많을 수밖에.
“과연 화산파더구만! 태행삼검이면 그래도 나름 하북 쪽에서는 명성이 있는 이들인데!”
“에이, 이 사람아! 태행삼검이 뭐 그리 대단한가. 그래 봐야 본산의 제자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
“우리가 본산 제자들을 볼 일이 뭐가 있는가? 그 양반들이야 천외천에 사는 신선 같은 이들이고! 태행삼검 정도면 굉장한 고수들이지!”
평범한 이들은 평생 구파일방 본산 제자들의 얼굴 한 번을 보기도 어렵다. 그러니 태행삼검 정도만 되어도 웬만한 곳에서는 고수 행세를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이들을 단 일 검에!”
“검기 화려한 거 보았는가? 그게 요즘 유명한 화산의 검기인 모양이로군.”
“으음. 그런데 내가 생각한 것과는 좀 다르던데…….”
“뭐가 말인가?”
“화산의 매화검기는 하나하나가 꽃잎처럼 휘날린다고 들었는데, 좀 전에 본 건 꽃잎이라기보다는…….”
“예끼, 이 사람아! 뭔 미련한 소리를 하고 있는가! 점창의 사일검법이 해를 꿰뚫는다고 해서 정말 해를 뚫어 버리겠는가? 해남의 장풍파랑검법이 파도처럼 밀려온다고 해서 진짜 파도를 만들겠냐 이 말일세.”
면박을 준 사내가 한심하다는 듯 혀를 차 댔다.
“무릇 무학이란 과장되기 마련일세. 애초에 사람이 검을 휘둘러서 꽃잎 같은 검기를 만들어 낸다는 게 어디 말이나 되는 소린가? 그럴싸하게 비유하다 보니 나온 말이지.”
“듣고 보니 그렇구먼. 일리가 있어.”
“그 정도면 충분히 꽃 같은 검기였지! 나는 오히려 보고 나니 화산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겠더구만. 아무리 속가라고는 해도 종남의 제자를 셋씩이나 일 검에 쓰러뜨리다니 말이야! 모르긴 몰라도 그 유명한 화산신룡이나 화정검에 필적하는 실력 아니겠는가?”
“에이! 그건 너무 갔지! 어디 천하제일기재라는 화산신룡에, 화산 후기지수 중 최강이라 불리는 화정검까지 나온단 말인가?”
“음? 으음……. 확실히 내가 좀 과했군. 여하튼 그 이름이 나올 만큼 대단한 신위였다는 말이지! 왜 이런 이가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았는지가 더 궁금하네.”
“나도 그건 동감이네. 확실히 대단했지.”
삼삼오오 모인 이들은 모두 그 비무에 대해 떠드느라 여념이 없었다.
“거기에다 협객 아닌가!”
“그렇지! 화산이 하북에서 협의를 행했다는 말은 들었네만, 정말 제자들이 하나같이 협의지심이 뛰어날 줄은 몰랐네. 모른 척 가 버렸어도 아무도 몰랐을 텐데.”
“그러니 화산의 이름이 천하에 울리고 있는 것 아닌가?”
그때 한 사내가 고개를 돌렸다. 진평이었다.
그 양에 내내 흥분해서 얘기하던 한 사람이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자네는 왜 말이 없는가?”
추궁을 당한 진평의 얼굴에 살짝 떨떠름한 표정이 스쳤다.
“아니 그…….”
살짝 망설이던 그는 조금 어색하게 입을 열었다.
“화산에서는 본 적이 없는 얼굴 같아서.”
“허허. 이 양반도 참. 자네가 화산에 잠시 들렀다 해서 제자들을 모두 알겠는가?”
“아니…… 그런 게 아니라 문파마다 기본적인 복색이라든가, 분위기라는 게 있지 않은가?”
“쯧쯧쯧. 애초에 명문들은 사문 내에서 입는 의복과 외부에서 입는 의복이 다르지 않은가. 거기에 화산처럼 속가 기질이 강한 문파들은 외부 활동을 할 때, 편한 사복을 입게 해 주기도 하지 않는가.”
“그건 그렇지만…….”
진평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역시 화산을 아주 잘 아는 것은 아니라, 정확하게 뭐가 문제인지 말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뭔가 알 수 없는 찝찝함이 자꾸 남아 그를 괴롭혔다.
“끄응. 그래, 그냥 기분 탓이겠지.”
“쯧쯧. 이 사람아. 멍청한 소리 그만하고 생각을 좀 하게. 그 협객 분이 혹여 사칭이라고 해 보세. 저 화산이 가만히 있겠는가?”
그 말을 들은 진평은 순간 등에 소름이 내달리는 걸 느꼈다.
다짜고짜 사람의 얼굴에 발을 꽂아 버리던 화산신룡의 뒷모습이 순간 생생하게 눈앞에 펼쳐졌다.
‘그래, 알면 못 하지.’
힘 센 놈은 무섭다. 하지만 힘세고 미친놈은 더 무서운 법이다.
“그, 그렇지. 설마 아니겠지.”
하지만 만약에 정말 뭔가 문제가 있는 거라면?
아마 그자는 살아서 지옥을 보게 될지도 모른다.
* * *
파아아아앗!
조걸이 전력을 다해 앞으로 달려 나갔다.
몸이야 전에 없이 가벼웠다.
그도 그럴 게, 예전엔 언제나 쇠로 된 수레를 끌고 달렸다. 겨우 쉬나 싶으면 대련이니 뭐니 해 가며 사람을 신나게 두들겨 패고, 이 모든 게 좀 익숙해질 때가 되면 은근슬쩍 다리를 걸어 놓고 되레 성질을 내질 않나…….
‘생각하니 또 열받네. 저 망할 새끼!’
여하튼 그런 말도 안 되는 이동만 해 왔었는데 지금은 끌어야 할 수레도, 짊어져야 할 짐도 없이 맨몸으로 달리기만 하면 되니 이보다 홀가분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지금 조걸은 새삼 깨닫고 있었다.
많은 짐과 수레 때문이 아니라, 그냥 저 망할 놈과 함께 이동하는 것 자체가 문제였다는 사실을 말이다.
“헤엑! 헤에에엑! 더, 더는 못 간……. 헤엑……. 헥!”
“저, 저 미친놈이…….”
“야! 멈춰! 멈춰 봐! 이 새끼야, 멈춰 보라고!”
숨이 턱 끝까지 차올라 할딱대며 달리던 백천이 결국 힘껏 바닥을 박차고 몸을 날렸다. 그리고 앞에서 달리던 청명이 놈의 허리춤을 잡고 늘어졌다.
“뭐야!”
청명이 두 눈을 부라리며 획 돌아보았다.
백천은 이를 악물고 악을 썼다.
“더는 못 달린다, 이 새끼야! 사람 죽일 일 있어?!”
“뭐 얼마나 달렸다고 엄살이야!”
“미친놈이!”
“응? 소소는 어디 갔어?”
“……일찌감치 낙오돼서 유 사매가 끌고 오고 있다.”
그 말에 뒤쪽으로 고개를 쭉 빼 본 청명은 한심하단 얼굴로 혀를 찼다.
“쯧. 이렇게들 체력이 약해서야 어디다 쓰겠어!”
“뭐, 이 새끼야?”
“누가 체력이 약해?”
“다시 말해 봐!”
“엄마야. 왜들 이래?”
별생각 없이 타박했는데 백천, 윤종, 조걸이 워낙에 살벌한 얼굴로 이까지 빠득빠득 가니 청명도 살짝 움찔했다.
화산파 출신인 세 사람은, 싸움을 못한다는 말은 참을 수 있지만 체력이 약하다는 말만큼은 참을 수 없었다. 이건 그동안 그들이 해 온 수련에 대한 모독이었다.
“야, 이 미친놈아! 말도 이렇게는 안 달려!”
“당연히 그래야지! 무학이나 익힌 것들이 말보다 못해서 될 일이야?”
“……어?”
듣고 보니 그 말도 맞는 것 같은데?
말문이 막힌 조걸이 도움을 청하듯 돌아보자 백천이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얘는 왜 날이 갈수록 머리를 쓸 생각을 안 하는 걸까?
“이렇게 가다가는 강서에 도착하기도 전에 우리가 먼저 쓰러지겠다. 그럼 오히려 시간이 지체되지 않느냐! 급한 건 알겠지만 진정 좀 해라, 이놈아!”
“내가 지금 진정하게 생겼어?”
청명이 막 뭐라 말을 하려는 찰나, 뒤쪽에서 당소소를 들쳐 업은 유이설이 달려왔다. 순식간에 그들의 앞까지 도착한 그녀는 당소소를 조심히 바닥에 내려놓았다.
“끄으으……. 이, 이 사형 새끼……. 이…….”
그 와중에도 손에 비침을 꽉 움켜잡은 당소소를 보니, 윤종은 괜히 소름이 돋아 팔뚝을 슥슥 쓸었다.
“봐라. 소소도 못 버티잖아.”
“쯧쯧. 당가도 다됐…….”
“뭐, 이 새끼야……. 아, 현기증이…….”
풀썩.
다시 쓰러진 당소소를 보며 모두가 침묵했다.
‘……얘도 날이 갈수록 거칠어져.’
‘기절했는데 침은 잡고 있네.’
영 정신을 못 차리는 당소소를 보던 백천이 청명에게 물었다.
“대체 왜 이렇게까지 서두르는 거냐? 그놈이 우리 소식을 알고 도망칠 것도 아니고.”
“그래. 그리고 분타주님 말대로라면 지금까지 딱히 사고를 친 것도 없다고 하지 않느냐? 사고 칠 사람이면 벌써 쳤겠지.”
윤종도 옆에서 거들었다. 그러자 청명이 빙그레 웃었다.
“사숙이랑 사형은 좋겠다.”
“……왜?”
“그리 생각 없이 살 수 있어서.”
“…….”
청명의 얼굴이 일순 와락 일그러졌다.
“그럼 빌어먹을, 사기꾼이 내가 사기 친다고 사전 경고 하고, 그럴 기미 다 보여 주고 사기를 쳐? 원래 사기꾼은 사기 치기 직전까지는 세상에서 제일 멀쩡한 사람인 거야!”
어……. 그것도 맞는 말이지.
“사기 치길 기다렸다가 잡으면 늦는다고! 이 새끼 하는 꼴을 보면 분명 뭘 저질러도 저지르려고 대기 타고 있다니까!”
“아니, 그걸 네가 어떻게…….”
그 순간 조걸이 팔을 번쩍 들었다.
“저는 이 말만은 청명이의 말을 백번 신뢰해도 된다고 봅니다!”
“응? 어째서?”
“원래 비슷한 부류끼리는 서로 알아보지 않습니까? 저 새끼 눈으로 봐서 사기꾼이면 사기꾼인 겁니다.”
“설득력이…… 있어!”
명쾌한 그 답에 백천이 전율을 느낀 찰나 청명에게 걷어차인 조걸이 비명을 지르며 나가떨어졌다.
“확 씨!”
“벌써 패놓고 확 씨는…….”
청명이 백천을 향해 눈을 부라렸다.
“여하튼 내 촉에는 이 새끼 벌써 뭔가 저지르고 있어. 내가 이런 새끼들 어디 한둘 본 줄 알아? 내 인생에 또 사기당하는 일은 없어!”
“……언제 또 당했는데.”
“있어, 그런 게!”
청명이 강서성 방향을 향해 시선을 획 돌렸다. 그리고 씹어뱉듯 말했다.
“냄새가 난다고, 냄새가…….”
“그러니까 좀 씻고…….”
“카아아아악!”
청명은 화를 꾹꾹 누르며 한 글자씩 씹어서 뱉었다.
“한 시진! 딱 한 시진만 쉬어 간다. 그 뒤에는 강서까지 쉬지 않고 달릴 테니까 다들 그렇게 알아! 낙오하면 두고 갈 거야!”
백천은 저도 모르게 한숨을 쉬었다.
‘사기꾼이고 나발이고 저놈 때문에 먼저 죽겠다.’
* * *
“끄으으응.”
“너무…… 너무 세게 맞았어.”
“그 빌어먹을 놈이…….”
해가 완전히 지고 어둠이 내려앉은 밤. 태행삼검은 산중에 있는 관제묘 안에서 상처를 돌보고 있었다.
터진 살에 붕대를 감던 그들은 분을 참지 못하는 듯 이를 빠득빠득 갈았다.
“그놈을 가만둬야 하는 겁니까?”
“아파 죽을 것 같습니다, 대형.”
“시끄럽다!”
태행삼검의 수장인 과혁소가 두 동생들을 매섭게 노려보았다. 그 눈빛에 찔끔한 두 사람이 얼른 목을 움츠렸다.
“아니, 그게 아니라…….”
“그래도 이건 좀 심하잖습니까.”
“쯧.”
과혁소는 혀를 차며 제 어깨를 내려다보았다. 검붉게 피멍이 든 어깨를 보니 그도 노화가 치밀기는 매한가지였다.
“이 망할 놈이…….”
세 사람이 한창 진양건에 대한 분노를 피워 올리던 그때였다.
퉁!
누군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울렸다. 세 사람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졌다.
하지만 그들이 뭔가 반응할 시간도 없이 관제묘의 문이 활짝 열렸다.
“너…….”
“너 이 새끼!”
관제묘의 앞에 선 이를 확인한 태행삼검의 얼굴에 노기가 들불처럼 일었다.
관제묘에 나타난 게 조금 전 그들과 비무를 했던 진양건이었기 때문이다.
진양건은 백색 장포 자락을 휘날리며 뚜벅뚜벅 관제묘 안으로 들어섰다.
금방이라도 무언가가 터질 듯 일촉즉발의 긴장감이 차올랐다.
그리고 그 순간.
“야, 이 새끼야! 이렇게 세게 팬다고는 말 안 했잖으냐!”
태행삼검의 둘째, 마위량(馬位糧)이 버럭 소리 치자, 진양건이 빙그레 미소 지었다.
“하하. 그렇지요. 하지만 덕분에 다들 멋지게 속아 넘어가지 않았습니까!”
진양건의 얼굴에 득의양양한 기세가 번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