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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귀환-696화 (694/1,567)

696화. 매화검수라고, 들어 보았소? (1)

강서성(江西成) 남창(南昌).

강서를 대표하는 도시인 남창은 다른 성들을 대표하는 도시들에 비한다면 그리 크지 않은 편이다.

당장 위쪽에 위치한 호북성의 무한이나, 우측에 위치한 절강의 항주, 안휘의 합비등에 비한다면 그 명성이 다소 애매한 곳이 남창이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성도는 성도. 오늘도 남창의 번화가에는 사람들이 발 디딜 틈 없이 오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건 남창에서 가장 커다란 주루인 백학루(白鶴樓) 역시 마찬가지였다.

백학루의 최상층을 가득 채운 이들은 거나하게 취해 뭔가에 대해 떠들어 대기에 여념이 없었다. 중원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하남에서 이역만리처럼 떨어져 있지만, 이곳의 이들의 입에 가장 많이 오르내리는 화제는 단연코 천우맹에 대한 것이었다.

“그래서!”

한 사내가 불콰하게 달아오른 얼굴로 침을 튀겨 가며 뭔가를 설명했다.

“그리고 화산이 안쪽으로 쫘악 걸어오는데! 크하, 그게 정말!”

“오!”

“어떻던가?”

주변에 앉은 이들이 눈을 빛내며 사내의 말을 경청했다.

지금 그들의 앞에 앉은 이는 저 먼 섬서까지 가서 천우맹의 개파식을 눈으로 보고 온 이였다. 한 마디, 한 마디에 관심이 갈 수밖에 없다.

“내가 중원 사람이라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히 뭔가 다르더군. 품격이 느껴진다고 해야 하나?”

“예끼, 이 사람아! 화산이 아무리 요즘 잘나간다고는 하지만, 새외오궁의 일원인 북해빙궁이나 남만야수궁에 비할 수야 있겠는가? 심지어 거기에 사천당가도 있었다면서!”

“이런, 쯧쯧! 자네가 그 자리에 있었는가?”

“……그건 아니지.”

“눈으로 안 봤으면 말을 말게! 내가 거길 다녀오기 전까지 어디 화산을 취급이나 하는 사람이었던가?”

아니다.

그들의 앞에 있는 이, 그러니까 진평(陳萍)은 평소 화산을 평가절하 하던 이였다. 화산이 아무리 날고 긴다 해도 결국 구파일방에도 들지 못하고 그저 그런 문파로 남아 결국 몰락할 거라는 말을 습관처럼 해 대지 않았던가?

“눈으로 보지 않으면 모르네, 눈으로!”

“얼마나 대단했기에…….”

“강호에 떠도는 소문은 화산을 반도 표현하지 못했다니까! 이 사람들아, 생각해 보게. 자네들 말대로 사천당가나 북해빙궁, 남만야수궁이 어디 보통 문파들인가?”

“그렇지.”

“그런 문파들이 생각도 없이 순순히 맹주의 자리를 내어 주고 화산을 천우맹의 상좌(上座)로 인정하겠는가?”

“으음. 듣고 보니…….”

목소리를 높여 열변을 토하던 이가 술잔을 낚아채듯 가져가 한입에 털어 넣었다.

“크으! 목이 타는구먼!”

그러더니 술병을 획 잡았다. 하지만 남은 술 따윈 없이 텅 비어 있었다. 그는 조금 난처하게 얼굴을 찌푸렸다.

그러자 그가 무어라 말을 하기도 전에 주변에서 빠르게 술을 추가로 주문했다.

“점소이! 이보게, 점소이! 뭐 하는가! 여기 빨리 술을 내어 오게! 좋은 걸로! 그리고 적당한 냉채도 하나 내오고!”

“예이! 예이! 지금 갑니다아!”

새 술이 오고 나서야 사내는 흡족한 얼굴로 잔을 채우며 다시 입을 열었다.

“여하튼 섬서에서 화산을 두 눈으로 보았다면 다들 내 말에 동의했을 걸세. 화산은 생각보다 더 대단한 문파더구만. 물론 머릿수야 조금 부족한 면이 있겠지만, 그런 게 문제가 되었다면 화산의 명성이 지금처럼 하늘을 뚫지는 못했겠지.”

“그렇지. 그렇지.”

“이미 화산은 섬서의 패자라고 할 수 있겠지만, 내가 봤을 땐 겨우 그 정도에서 멈추지는 않을 것 같다 이 말이지. 두고 보게. 천우맹과 함께 화산은 날개를 달게 될 테니까! 화산이 저 구파일방보다 더 대단한 문파로 불리게 될 날이 멀지 않았네.”

“오……. 그렇게나.”

“하기야, 떠도는 들어 보면 저 말이 그리 허황된 건 아니란 말일세. 만인방의 장일소마저 화산을 견제하려 방문했다고 하지 않는가.”

“대단하군. 장일소라니…….”

주변 탁자에 앉은 이들도 이젠 하나같이 이들의 대화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체면을 차리느라 귀만 쫑긋대는 이가 있는가 하면, 아예 의자를 돌린 채 대놓고 관심을 보이는 이들도 있었다.

“이보시오.”

그때 잠자코 듣고 있던 이들 중 하나가 넌지시 입을 열었다.

“그곳에 분명 구파일방에서 온 손님들도 있었을 텐데, 그들은 어땠소이까?”

“어땠느냐니? 그게 무슨 말이오?”

“혹여 언짢은 기색을 보이지는 않았소이까?”

“아아.”

무슨 말인지 알겠다는 듯 사내가 피식 웃었다.

“내가 보기에는 그런 기색이 없었소이다.”

“아……. 그렇소이까?”

질문을 한 사내가 의외라는 듯 반문하며 고개를 갸웃했다.

“구파일방의 입장에서는 그 천우맹이 그리 달갑지는 않았을 텐데.”

“몰라서 하는 소리요. 설사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곳에서 그런 내색을 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을 거요. 그만큼이나 천우맹의 기세가 대단했다 이 말이지.”

“아아.”

진평이 히죽 웃었다.

“모르기는 몰라도 아마 곧 구파일방도 천우맹의 눈치를 봐야 할 때가 올 거요.”

“에이. 그래도 그렇지, 그게 말이나 되는 소리요?”

“하하하. 그렇게 생각하는 게 상식적이지. 하지만 생각해 보시오. 처음 화산이라는 이름을 들었을 때, 그들이 저 종남을 봉문시키고 섬서의 패자가 될 거라 생각한 이가 누가 있었소이까?”

“……그야.”

모든 이들의 입을 다물었다.

확실히 이 말에는 반박할 수가 없었다. 구파일방 중에서도 나름 명성 높던 종남이 멸문 직전까지 몰렸던 화산에게 망신을 당해 봉문을 하리라고 생각한 이는 아무도 없었으니까.

물론 그 안에는 복잡한 사정이 있지만, 이들이 그런 사정을 알리도 없었고, 굳이 신경을 쓸 필요도 없었다.

“종남도 그리되었는데, 구파일방이라고 그러지 않으리라는 법이 없지. 아마 지금쯤 종남도 봉문을 풀기가 두려울 거요. 하핫!”

바로 그 순간이었다.

콰아아아앙!

누군가 탁자를 강하게 내리쳤다.

그 요란한 소리에 내내 떠들던 중인들이 화들짝 놀라 일제히 한곳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구석에 앉아 조용히 술만 마시고 있던 험악한 인상의 중년인이 두 눈을 부라리며 진평을 노려보고 있었다.

“듣자 듣자 하니…… 뚫린 입이라고 잘도 지껄여 대는구나!”

그 살벌한 기세에 움찔한 진평이 조개처럼 입을 다물었다.

‘누, 누구…….’

그는 눈만 바삐 움직여 중년인의 복장을 살폈다. 활동하기 편한 무복의 어깨에는 어디선가 본 듯한 표식이 새겨져 있었다. 이윽고 진평의 얼굴이 하얗게 질리기 시작했다.

‘조, 종남…….’

물론 종남은 봉문에 들어간 지 오래다.

봉문을 했으니 종남의 제자가 강호를 활보하는 일은 있을 수 없다. 하지만 봉문 한 것은 어디까지나 본산. 종남의 속가제자들은 본산의 봉문과 관련 없이 강호를 종횡하고 있다.

종남의 드높았던 위상을 증명하듯 속가 역시 수가 적지 않았다. 불행하게도 지금 진평은 그 종남의 속가 중 하나를 바로 앞에서 만나 버린 것이다.

“섬서의 패자가 누구라고?”

사내가 살벌한 기세로 물었다.

그래도 백학루의 최상층에 모인 이들은 나름 제 실력에 자신이 있는 이들이건만, 그 흉흉한 기세 앞에서는 입도 벙긋 못 하고 마른침만 삼켰다.

“내가 웬만하면 참고 넘어가려 했건만! 종남이 화산의 눈치를 보느라 봉문을 풀지 못한다고? 그 말 다시 한번 내 눈을 보며 해 보거라.”

“아, 아이고, 대협. 그런 것이 아니옵고…….”

진평이 진땀을 빼며 허둥지둥 수습하려 했지만 사내의 얼굴은 조금도 풀릴 기미가 없었다. 그때 사내의 일행이 말했다.

“대형, 진정하시오. 멋모르고 지껄인 말에 왜 그리 화를 내고 그러시오.”

“그럼 저 방자한 주둥아리를 그냥 내버려 둬야 한단 말이냐?”

“물론 그런 의미는 아니지요. 말이란 내뱉으면 주워 담을 수 없는 법. 당연히 대가는 치러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말려 줄 줄 알았던 사내의 일행들까지도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침내 그들이 누군지 알아본 이들이 살짝 질린 얼굴로 외쳤다.

“……태행삼검(太行三劍)이다!”

“저, 저들이 왜 여기에?”

태행삼검.

태행산을 중점으로 활동하는 검수들이다. 종남의 속가 출신으로, 굳이 새로운 속가 문파를 만들지 않고 강호를 주유하는 이들이기도 했다.

종남의 속가로서 지닌 자부심이 상당하다 알려진 그들이 면전에서 그런 말을 들었으니 참지 못하는 것도 당연했다.

가장 먼저 화를 냈던 이의 옆에 선 사내가 진평을 향해 말했다. 냉엄한 인상을 지닌 이였다.

“종남이 화산을 두려워한다고 했소?”

“……그, 그러니까 제 말은 그게 아니옵고…….”

“아니라면 어째서 그런 말을 한 거요?”

“…….”

사내가 딱하다는 듯 혀를 찼다.

“강호에서 책임지지 못할 이야기를 함부로 지껄이다가는 목이 잘려도 할 말이 없다는 사실을 잊은 모양이로군. 어찌하겠소? 그 방자한 혀를 내어 놓겠소? 아니면 손목을 내어 놓겠소?”

“대, 대협! 소인이 잠시 정신이 나가 망언을 지껄였습니다. 부, 부디…….”

사색이 된 진평이 용서를 구했지만, 세 남자의 얼굴은 싸늘하기만 했다.

“망언을 지껄였으면 대가를 치러야지.”

사내들이 천천히 다가오자 진평은 절망하여 눈을 질끈 감았다.

‘마, 망했구나.’

태행삼검이 대단한 고수들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감히 진평이 상대할 만한 이는 아니었다.

그리고 대단한 고수가 아니라는 말도 종남의 본산 고수들과 비교했을 때의 이야기다. 평범한 강호인들에게는 저승사자나 다름없는 이들이 아닌가?

그런 이들이 저리 진노하여 압박해 오니 그 자리에서 오줌을 지리지 않은 것만으로도 용한 일이었다.

“사, 살려 주…….”

진평이 아예 바닥에 납작 엎드려 용서를 빌려 하는 바로 그 순간이었다.

“……그리 틀린 말도 아닌 것 같소만, 굳이 그리 사람을 겁박할 필요가 있겠소?”

움찔.

진평을 향해 다가가던 세 사람의 걸음이 멈추었다. 그들은 일제히 한곳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백색 장포를 입은 한 사내가 창가 자리에 앉아 홀로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태행삼검 중 하나의 얼굴을 굳히며 나지막이 물었다.

“틀린 말이 아니라고 했소?”

“조금 과하기야 했지. 하지만 그런 말조차 하지 못하게 입을 틀어막는다면 대체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소?”

“…….”

“본디 떳떳하지 못한 이들만이 타인의 입을 틀어막고 단속하는 법이지. 그대들이 지금 저 사람을 겁박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 아니오?”

태행삼검의 얼굴이 일제히 차가워졌다.

“너는 누구냐?”

“무명소졸이라 딱히 내세울 만한 별호는 없소이다.”

“별호도 없는 신출내기가 감히 그따위 말을 지껄인다고?”

“하하.”

짧게 웃은 사내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명성이 있다 해서 그른 것이 옳은 것이 되지 않고, 명성이 없다 해서 불의를 보고 참아야 할 이유는 없소. 적어도 매화검을 든 이라면 당연히 그래야 하는 법이지.”

“매화검?”

태행삼검의 얼굴에 싸늘한 기운이 내려앉았다.

사내의 장포 가슴께에 새겨진 꽃 문양이 그제야 눈에 들어왔다.

물론 그들은 속가 제자들이고 종남에서 하산한 지 오래되었다 보니 직접 화산의 매화 문양을 눈으로 본 적은 없다. 하지만 현재 천하에서 꽃 문양을 징표로 삼는 문파가 또 어디 있던가?

“너…… 너 이놈! 화산에서 온 놈이냐?”

사내의 입가에 미소가 피어났다.

“그게 뭐가 중요하겠소? 중요한 것은 내게 그대들의 불의를 그저 보아 넘길 생각이 없다는 것이지. 이쯤에서 물러나시오. 그렇지 않으면 그대들은 내 검이 얼마나 날카로운지 보아야 할 것이오.”

“이놈이!”

챙! 챙챙!

태행삼검이 일제히 검을 뽑아 들었다.

그러자 사내가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내저었다.

“그대들은 내 검이 매정하다 탓하지 마시오.”

스르르릉.

사내의 허리춤에서 천천히 검이 뽑혀 나왔다.

주루 안이 순식간에 팽팽한 긴장감으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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