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1화. 뭘 사칭한다고? (1)
“기본적으로 검진이란…….”
묵직한 운검의 목소리가 사위로 퍼져 나갔다.
“효율적으로 합공하기 위한 방식이라 할 수 있다.”
도열한 제자들은 모두 눈을 빛내며 운검의 말을 경청했다. 백매관주인 운검이야 본디 제자들의 존중을 받는 이였지만, 그간의 사건들 이후로는 누구 하나 그를 존경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그러니 한눈을 판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기본적으로 검수의 검은 일정한 투로를 그리기 마련이다. 수련을 거듭할수록 투로는 더 정교해지지. 하여, 실전에서 실력을 제대로 발휘하기 위해서는 정해진 투로대로 검을 이끄는 것이 최고다.”
운검이 모두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하나, 여러 사람이 함께 싸우며 공간이 협소해지게 되면 본래 자신들이 펼쳐 내던 투로로 검을 펼치기가 힘들어진다.”
제자들은 일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대별채와의 전투 때 뼈저리게 느낀 것이다.
어깨를 서로 붙여야 할 만큼 모여든 상황이 되니 옆 사람이 다칠까 봐 제대로 검을 휘두를 수 없었다. 심지어는 휘두른 검이 적이 아닌 동료의 검과 부딪히며 위기를 맞은 적도 몇 번이고 있었다.
“검진이란 웅크린 채 적을 맞이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좁은 공간에서 제 실력을 제대로 발휘하기 위한 방편이다. 그러니 모두 이 수련에 최선을 다해 주기를 바란다.”
“예, 관주님!”
우렁찬 대답이 울렸다. 의욕으로 가득 찬 기세에 운검은 빙그레 미소 지었다.
‘좋구나.’
화산이 예전과 어떻게 달라졌는지 대라 하면 수도 없겠으나, 백매관주의 운검의 입장에선 가장 먼저 꼽을 것이 바로 제자들의 배우려는 의지였다. 실로 기꺼운 일이었다.
“나와 사제들이 우선 시범을 보일 터이니 일곱 명이 조를 짜서 따라하면 된다.”
“예!”
“검진을 활용하며 사용하는 무학은 딱히 정해진 것이 없다. 숙련이 된다면 가장 익숙한 검을 검진의 운용에 따라 사용하면 된다. 다만 처음 배울 때는 복잡한 투로를 가진 검법을 사용하기에 무리가 따를 테니, 우선은 칠매검만을 사용하도록 한다.”
“명심하겠습니다!”
“좋다.”
운검이 사제들과 함께 북두칠성의 모양으로 진을 갖춰 섰다.
“화산의 칠성검진은 무극, 태극, 삼재, 사상, 오행, 육합, 칠성, 팔괘, 구궁으로 이어지는 원리 중, 칠성의 원리를 따른다.”
그때 조걸이 손을 번쩍 들었다. 운검이 고개를 끄덕였다.
“말하거라.”
“굳이 칠성의 원리는 따르는 이유가 있나요?”
“……그건 나도…….”
잠깐 주저하던 운검의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그러자 윤종의 팔꿈치가 사정없이 조걸의 옆구리를 파고들었다.
“끄으윽!”
옆구리를 부여잡은 조걸이 몸을 구부리며 끅끅거렸지만, 누구도 그 모습을 동정 어린 시선으로 봐 주지 않았다.
‘하여튼 저놈의 주둥이.’
‘청명이가 없으면 저게 지랄이네, 저게.’
‘저게 콱 뒈지려고. 감히 사숙을 곤란하게 만들어?’
백자 배들은 두 눈에서 불꽃을 품었고, 청자 배들 역시 눈으로 삿대질을 해 댔다.
“크흠.”
운검은 어색하게 헛기침하고는 말했다.
“검진을 창시하신 선인께서 나름의 의도를 담았겠으나, 나의 무학이 아직 미천하여 그 뜻을 모두 짐작하기 어렵구나.”
“괜찮습니다, 관주님!”
“다 뜻이 있겠지요!”
“칠성이고 뭐고 배우면 그만이지요! 그게 뭐가 중요하겠습니까!”
정말이지 눈물 나는 가족애였다.
그 가족애에 홀로 끼지 못한 조걸은 물기가 찔끔 어린 눈을 깜박이며 중얼거렸다.
“……그냥 물어본 것뿐인데.”
“닥쳐라.”
“확 마!”
그리고 결국엔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다 어디서 많이 듣던 말들인데.’
청명아. 너 이런 기분이었구나.
내가 미안하다.
“크흐흠.”
운검은 크게 헛기침하고 검을 들었다.
“다들 잘 보도록 해라. 몇 번이고 다시 보여 주겠지만, 그렇다 해서 대충 봐서는 안 된다.”
“예!”
제자들의 큰 대답 소리와 함께 운검이 천천히 검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진을 이룬 일대제자들의 검도 움직였다.
‘절도 있네.’
‘하나처럼 움직이는데?’
‘그런데…… 저럴 거면 평소에 검을 휘두르는 것에서 위치만 달라진 것 아닌가?’
여러 개의 검이 완벽하게 똑같이 움직이고 있었다.
사실 여기까지는 딱히 대단할 게 없었다. 평생을 함께 수련해 온 사형제들에게 검의 속도와 방향을 맞추는 것 정도는 일도 아니기 때문이다.
청자 배든 백자 배든 오전에 단체 수련을 할 때마다 이미 비슷한 수련을 하고 있지 않은가?
하지만 검진의 힘이 드러난 것은 바로 그 순간부터였다.
휘익!
선두에 선 운검의 검이 점점 빨라지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던 검들은 점차 흐트러지기 시작했다.
‘벌써?’
아니, 아니다.
흐트러지는 것이 아니라 각기 다르게 움직이는 것이다. 그 증거로 검진을 이루는 이들이 서로 다른 검법을 보이고 있음에도 투로가 조금도 겹치지 않았다.
‘저게 되네?’
‘신기하다.’
화산의 제자들은 놀란 눈으로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이미 집단전을 경험한 터라, 저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알기 때문이었다.
‘이게 검진이구나.’
제 실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오히려 검진이 필요하다는 운검의 말을 모두가 비로소 완전히 이해했다.
하지만 검진의 변화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검을 움직이던 이들이 보법을 밟기 시작했다.
“어엇?”
“저, 저…….”
선두에 섰던 운검이 뒤로 물러나자 뒤쪽에 있던 운암이 앞으로 뛰쳐나오고, 다시 뒤섞이는 듯 좁아졌다가 넓게 거리를 벌린다.
북두칠성의 형태를 그리던 검진이 원형을 이루었다가, 일자로 변했고, 또다시 칠성의 형상으로 변하는 등, 눈이 어지러울 만큼의 변화가 펼쳐졌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검은 멈추지 않았고, 투로 역시 거짓말처럼 겹치지 않는다.
화산의 제자들의 눈이 점점 더 진중해졌다.
검진을 익힌다는 게 생각보다 더 쉬운 일이 아니리란 걸 직감한 것이다.
그리고 검진을 전수하기 위해 각기 바쁜 와중에도 검진을 수련했을 운자 배들이 얼마나 고생했을지 확실히 알 수 있기도 했다.
뒤쪽으로 물러났던 운검이 검을 강하게 휘두르며 앞으로 나왔다.
그러자 그 주변으로 사형제들이 어지러운 보법을 밟았다. 마치 몸으로 매화검법의 투로를 그려 내는 듯한 형상이었다.
지켜보던 백천의 입이 저도 모르게 서서히 벌어졌다.
‘굉장하다!’
이토록 완벽하게?
그의 입에서 막 탄성이 터져 나오려는 찰나, 운검이 먼저 입을 열었다.
“이것이 칠성검진이다. 모두 똑바로…….”
그리고 그 순간.
따아아아아아아아악!
엄청난 소리가 울려 퍼졌다. 모두가 저도 모르게 찔끔 눈을 감았다.
“…….”
잠시 후 슬며시 눈을 떴을 때, 선두에 선 운검의 좌측 무릎에 목검 하나가 닿아 있었다.
아니…….
지금은 그저 닿아 있는 걸로 보이지만 저게 닿으려면 저게 어……. 어…….
운검의 눈썹이 움찔움찔 경련을 일으켰다.
목검의 주인이 난처한 듯 뒷머리를 긁적였다.
“미, 미안하네, 사제. 이게 연습 때는 분명 잘됐는데…….”
“…….”
운암이 겸연쩍은 얼굴로 사과하자 운검은 파들파들 떨리는 입술을 억지로 열었다.
“괘, 괜찮…습니다, 사형……. 그럴 수 있지요.”
“많이 아픈가?”
“……괜찮습니다.”
이를 지켜보는 제자들의 머리가 식은땀으로 축축히 젖어들었다.
‘진짜 아프겠다.’
‘와, 소리……. 죽는다. 저거 죽어.’
‘이 와중에 표정이 안 변하시네. 나 같으면 저 자리에서 데굴데굴 굴렀을 텐데.’
아무리 목검이라고는 하지만, 전력으로 휘두른 검에 제대로 얻어맞았다. 고통이 없을 리 없었다. 하지만 운검은 그 와중에도 최대한 표정의 변화를 억누르고 있었다. 모두가 그 정신력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때.
“……풉!”
손으로 가린 조걸의 입에서 억눌린 웃음소리가 비집고 나왔다.
“근데 이 새끼가?”
그리고 그 웃음이 채 끝맺어지기도 전에 윤종의 주먹이 조걸의 턱을 사정없이 돌려 버렸다.
“꺄악!”
그 자리에 철푸덕 엎어진 조걸을 향해 백자 배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밟아!”
“이게 미쳐 가지고. 웃어?”
“날이 갈수록 애새끼가 상태가 안 좋아져!”
“아주 밟아! 더 밟아!”
눈을 살짝 크게 뜨고 그 광경을 보던 윤종은 슬쩍 한 걸음 물러났다.
열심히 밟아 대는 백자 배들 사이로 드문드문 청자 배가 보이는 것 같은데. 어…….
이윽고 그는 시선을 슬쩍 돌려 그 광경을 외면했다.
“끄으으……. 웃음이 나오는 걸 어쩌라고…….”
흙투성이가 된 조걸이 억울한 얼굴로 항변했지만, 주변을 둘러싼 이들의 발이 다시 들리자 그 자리에 납작 엎드릴 수밖에 없었다.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알면 됐다.”
사형제들이 혀를 차며 멀어지자 조걸의 눈에서 다시 눈물이 찔끔 배어났다. 그는 비 맞은 강아지처럼 처연한 얼굴로 윤종에게로 터덜터덜 다가가 물었다.
“사형.”
“왜.”
“요즘 다들 저한테 너무 각박한 것 같지 않습니까?”
“걸아.”
“예, 사형.”
“사람들이 다 같은 말을 하고, 같은 행동을 한다면 우선 내가 잘못된 건 아닌지 한 번쯤은 의심해 보아야 하지 않겠느냐?”
“그게 뭔 소립니까?”
“……아니다.”
이 새끼는 청명과는 다른 의미로 또라이다.
살짝 뒤로 돌아 얻어맞은 부위를 다스리고 있던 운검이 크게 헛기침을 하고는 모두를 바라보았다.
“너희가 눈으로 보았다시피, 검진의 수련은 홀로 하는 수련보다 몇 배는 더 위험하고 어렵다. 집중하지 않는다면 아차 하는 사이에 부상을 입을 수 있다. 알겠느냐?”
“예, 관주님!”
“그래. 그럼 이제 일곱씩 짝을 맞춰서 칠성의 방향대로 서 보거라.”
명이 떨어지기 무섭게 제자들이 거리를 벌리고 짝을 맞춰 섰다.
“검 끝은 각 방위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두어야 한다.”
운자 배들이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검진의 형태를 수정해 주었다. 그 과정을 거치고 나니 나름 멋들어진 검진이 완성되었다. 백 명이 넘는 제자들이 각자 검진을 그리며 서자 그 위압감이 제법 대단했다.
“흐음.”
운검은 흡족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시작은 우선 칠매검부터 펼쳐 보이는 것으로 하자꾸나. 각자 방위를 다르게 섰다고는 하나, 그만한 거리에서 제대로 검을 펼치는 건 어려울 것이다. 좌우에 선 사형제들을 생각하여 늘 거리를 인지하고 검을 최대한 좁게 펼쳐야 한다.”
“예!”
“시작하거라!”
스슷!
선두에 선 백천의 기수식과 함께 화산의 제자들이 일제히 검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각기 다른 방향으로 선 제자들이 검을 펼치는 광경은 거대한 화원을 연상시켰다.
‘좋구나.’
운검과 운암의 입가에 뿌듯한 미소가 피어났다.
아마 과거의 화산에서는 이런 광경이 흔했을 것이다. 그 광경이 이 시대에 다시 되살아난다는 사실에 가슴속이 벅차오르는 기분이었다.
‘잘하는구나.’
처음 펼쳐 보는 검진임에도 다들 훌륭하게 검을 그려 내고 있었다. 물론 가장 단순화시킨 초보적인 형태이기는 하나, 그럼에도 검진은 검진. 이리 검이 뒤섞이지 않는다는 것은 이들이 이제는 정말 호흡만으로도 서로의 생각을 알 수 있는 진짜 사형제가…….
따아아아아앙!
“…….”
“아니, 이 새끼야! 이쪽까지 넘어오면 안 되지!”
“아니! 사형이 갑자기 검을 뒤틀어서 그런 것 아닙니까?”
“네가 느리니까 내가 뒤튼 것처럼 보이지!”
“뭐요?”
부드럽게 웃고 있던 운검의 눈가가 움찔했다.
“아악! 야! 검 똑바로 안 휘둘러? 눈 멀었어?”
“제가 먼저 휘둘렀는데 사형이 팔을 들이민 거 아닙니까?”
“그런데 이 새끼가 지금 누구한테 대들어?”
한번 시작되니 연무장을 채운 검진들이 하나둘 속속들이 붕괴되어 갔다.
사실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일이었다. 처음 펼치는 검진인데 잘하면 그게 더 이상한거지.
문제는…….
“이게 사숙 대가리를 쳐?”
“고, 고의가 아닙니다, 사숙!”
“고의가 아니야? 네가 청명이 말을 못 들은 모양인데. 중요한 건 처맞았다는 거지, 왜 처맞았느냐가 아니다!”
“…….”
“아, 거 칼 좀 똑바로 휘두릅시다, 사형!”
“오, 그래? 내가 제대로 휘두르는 게 뭔지 보여 줘?”
“다 덤벼, 이 새끼들아!”
운검은 결국 눈을 질끈 감았다.
‘대련 시간이 아닌데.’
사람은 얻어맞으면 우선은 왜 맞았는가를 생각해 봐야 하거늘, 이놈들은 일단 맞았다 하면 이유고 자시고 일단 고스란히 돌려줘야 직성이 풀리는 모양이었다.
채 말릴 새도 없었다. 사방에서 검이 날라 다니고, 주먹이 붕붕 휘둘러졌다. 단전에서 밀려나온 한숨이 운검의 입에서 새어 나왔다.
‘여기가 도관이라니.’
정말 말도 안 되는 소리다.
“검아.”
“예, 사형.”
그때 운암이 운검을 보며 밝게 웃었다.
“……힘내거라.”
“…….”
“그럼 우린 이만.”
“…….”
재빠르게 연무장을 빠져나가는 운자 배들을 보며 운검의 한숨은 더욱더 깊어만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