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8화. 세상은 혼자 사는 게 아니다. (2)
“그래서…….”
“…….”
도관을 쓴 중년인의 얼굴이 서서히 일그러졌다. 그러자 앞에 앉은 젊은 청년이 움찔하여 어깨를 움츠렸다.
딱히 이상한 광경은 아니다.
나이 든 연장자가 어린 제자를 나무라는 거야 흔하디흔한 일이니까.
하지만 그 꾸지람을 듣는 이가, 문파의 장문인과 장로들마저 두 손, 두 발 들어 버린 화산의 개차반 청명이라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진다.
통제가 불가능한 개망나니.
같은 문파 사람들도 눈만 마주쳤다 하면 삼십 장 이상 거리를 벌린다는, 화산 역사상 최악의 망종이 저렇게 어깨를 움츠리는 건 상당히 진귀한 풍경이었다.
“그런데 제가 여기 있다고는 누가…….”
“왜? 누군지 알려 주면 찾아가서 패기라도 하게?”
“헤헤……. 제가 설마 그럴 리가요. 저 요즘 마음잡은 것 아시잖아요.”
“마음을 잡아? 네가?”
“…….”
청명은 조용히 이를 갈았다.
‘누가 꼰질렀는지 걸리면 가만두지 않겠다.’
다른 양반들이 찾아와 훈계를 하면 코웃음을 치고 달아나 버리면 그만이다. 하지만 아무리 청명이라 해도 청문만은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그러니까…….”
“……예, 사형.”
청명이 슬쩍 청문의 눈치를 살폈다.
‘아오, 씨.’
항상 인자함이 깃들어 있던 눈가에 깊은 고랑이 패여 있다. 이건 적어도 잔소리를 한 시진은 들어야 한다는 뜻이었다.
“저기 그것 좀 가져오너라, 그…….”
“헉! 회초리요? 사형! 저도 이제 나이가……!”
“……물. 물 가져오너라.”
“…….”
청명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는 힘없이 일어나 문 앞에 놓인 물병을 가져왔다.
“여기요.”
“앉아라.”
“눼.”
청명이 다시 털썩 앉으니 청문은 바짝 타던 목을 축였다. 그리고 한숨을 푹 내쉬었다.
“청명아.”
“예, 사형.”
“……사제가 네게 검법에 대해 물어본 게 큰 잘못이더냐?”
“아니죠.”
“강해져 보고 싶은 사제가 큰 용기를 내서 너에게 검을 물어본 게 잘못이더냐 이 말이다.”
“……아니요.”
청문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그럼 왜 팼느냐?”
“…….”
“왜 팼냐고, 왜! 애가 뭘 모르면 물어볼 수도 있지! 그걸 물어봤다고 애를 패? 네가 그러고도 도사 놈이냐?! 어?”
“사, 사형! 언행일치를 좀! 그 주먹 내려놓으시고!”
“내가 성질이 뻗쳐서, 내가!”
대현검 청문.
인(仁)을 알고, 도(道)를 알며, 그 현기가 바라보는 이들의 마음마저 평온하게 만든다는 화산의 대제자. 다음 화산의 장문인 자리를 맡아 놓다 못해, 화산의 문도들마저 현 장문인의 금분세수를 은근히 바라도록 만드는 장본인.
천하에 이름이 높은 검수이자 도인.
하지만 그 대현검 청문조차 이 망둥이 앞에서는 이성이 남아나질 않았다.
“그거 하나 물어봤다고 애를 두들겨 패서 의약당에 실려 가게 만들어? 너는 참회동에 꿀이라도 발라 놨느냐? 왜 그렇게 참회동에 못 들어가서 안달이냐?”
“꿀이라뇨. 제가 참회동을 얼마나 싫어하는데. 그 빛도 안 드는 데서 일주일씩 있으면 아주 그냥…….”
“아주 그냥?”
“……나가기만 하면 여기 들어오게 만든 놈을 아주 패 죽여 버리겠다는 살기가 충천…….”
“나도 패라, 이놈아! 나도 패!”
결국 참지 못한 청문이 손에 잡힌 서진을 청명에게 집어 던졌다. 하지만 청명은 재빠르게 낚아채더니 헤헤 넉살 좋게 웃을 뿐이었다.
“에이. 말이 되는 소리를 하셔야지. 제가 어떻게 사형을!”
“……사제는 때려도 되고?”
“사제는 맞아야죠.”
“사숙은?”
“사숙도 헛소리하면 맞는 거죠.”
“…….”
침묵을 틈타 서진을 잽싸게 제자리로 돌려놓은 청명이 어색하게 웃었다. 청문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왜 때렸느냐?”
“사형. 오해를 하신 모양인데, 제가 그놈이 그걸 물어봐서 팬 게 아닙니다.”
“그럼?”
“저도 사형한테 들은 말이 있잖습니까. 귀에 못이 박이다 못해 정(釘)이 박히도록 들었는데, 제가 설마 다짜고짜 패기야 했겠어요?”
“그러니까 왜 팼냐고.”
또 그때가 떠올라서 화가 치미는지 청명이 씩씩거리며 말했다.
“아니, 제가 나름 자세하게 설명도 해 주고 시연까지 해 줬단 말입니다.”
“……그런데?”
“세 번이나 알려 줘도 이게 알아 처먹지를 못하잖아요! 그러면서 자꾸 알려 달라고!”
“…….”
“알려 줘도 못 알아먹을 놈이 왜 자꾸 알려 달래! 사람 엿 먹이는 것도 아니고!”
살짝 말문이 막힌 청문은 청명을 보다 한숨을 푹 쉬었다.
“청명아.”
“예?”
“답답하더냐?”
“…….”
청명이 삐쭉대던 입을 다시 밀어 넣었다.
그는 청문의 이런 면이 좋았다. 다른 이들이라면 일단은 그게 말이 되냐며 다짜고짜 화를 냈을 것이다. 하지만 청문은 화를 내기 전에 그의 입장에서 한 번은 더 생각을 해 주었다.
“딱히 답답한 건 아닌데…….”
청명이 작게 중얼거렸다.
“어차피 안 되는 거잖아요.”
“…….”
“노력해서 되는 게 있고, 안 되는 게 있는 건데 뭘 그리 아등바등하는지 모르겠어요.”
청문은 아무 말 없이 그런 그를 바라보기만 했다. 괜히 뜨끔한 청명은 고개를 숙였다.
“청명아. 그 녀석들은 네 사제들이다.”
“…….”
“물론 네 입장에서는 답답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너도 언젠가는 너 혼자서는 감당할 수 없는 일을 만날 것 아니냐?”
“…….”
“그럼 그때는 어쩌겠느냐?”
“제가 더 세지면 되는 것 아닌가요?”
“그래도 안 되면?”
“그럼 더 세져야죠.”
“…….”
청문이 아연한 얼굴로 바라보자 청명은 고개를 내저었다.
“답답하게 들리실 거란 건 알아요. 그런데, 사형.”
“음?”
“제가 저 녀석들을 가르쳐서 화산이 세지는 속도보다 그냥 저 혼자 수련해서 세지는 게 더 빠르다고요.”
“…….”
“발목이나 안 잡으면 돼요. 그럼 제가 다 알아서 한다니까요. 소림이고 무당이고, 그냥 제가 다 때려잡을게요. 사형은 굿이나 보시다가 떡이나 잡수시면 돼요.”
“…….”
“헤헤. 이왕이면 떡 하나 정도는 나눠 주시면 좋고.”
청문은 코로 길게 숨을 내뱉었다. 청명은 지레 찔려 움찔했지만, 사실 그를 바라보는 청문의 시선에 깃든 건 안쓰러움이었다.
다른 이에게는 청명의 저 말이 면피를 위한 황당한 변명으로밖에 안 들릴지 모른다. 그러나 청문에게는 너무나 안타깝게 느껴졌다.
‘어울릴 수가 없겠지.’
청명이 보는 세상과 다른 이들이 보는 세상은 다르다.
어떤 이가 눈앞에 보이는 것에서 한 가지를 알아챌 때, 청명은 열 가지, 스무 가지를 한꺼번에 본다. 그런 둘이 서로 대화가 통하겠는가?
청명에게는 청문조차도 답답하기 짝이 없는 우둔한 이로 보일 것이다. 그럼에도 사형이랍시고 회초리 운운하는 사람이 바로 청명이다.
“청명아.”
“예.”
“홀로 어디까지 가려 하느냐?”
“…….”
“그래. 네 심정도 이해한다. 네가 혼자서 강해지는 게 다른 녀석들을 끌고 가는 것보다 화산에 몇 배는 더 이득이라는 것도 알고 있다.”
“그래요, 그렇다니까요.”
“하지만 그럼 너는 얼마나 더 치열하게 살아야 하는 것이냐?”
청문이 조용히 고개를 젓고는 말을 이었다.
“모든 것을 버리고 홀로 가는 것처럼 보이겠으나, 그건 사실 거꾸로 모든 것을 짊어지고 가는 길이다. 이 화산의 운명을 너 혼자 감당할 수 있겠느냐?”
“…….”
“그래, 가능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건 가파른 절벽을 맨손으로 오르는 것과 다르지 않다. 수없이 절벽을 오른 이도 한순간의 실수로 저 아득한 아래를 향해 떨어지지 않더냐. 평생을 그런 긴장과 부담 속에서 살 수 있겠느냐?”
청명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청문의 목소리에 더할 수 없을 만큼 진심이 실려 있었기 때문이다.
“설령 가능하다고 해도, 나는 청명이 네가 그런 삶을 살지는 않았으면 좋겠구나.”
“사형.”
청문이 가만히 미소를 지었다.
“내가 보기에는 저들이 느린 게 아니라 네가 너무 빠른 것이다.”
“…….”
“무작정 달려 나가면 뒤따라오는 이들이 보이지 않지. 처음에는 한두 번 돌아보겠지만, 그때마다 눈에 보이는 이가 없으면 결국에는 다시는 돌아보지 않고 달리게 되는 법이란다.”
청명은 말없이 청문을 바라보았다.
그는 때때로 청문이 하는 말을 알아듣기 힘들었다. 이성과 논리로써 해석될 말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청명아.”
“네, 사형.”
“세상은 혼자 사는 게 아니다.”
“…….”
“누구도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다. 네가 말하는 그 답답한 아이들이 없으면 가장 답답해지는 건 다름 아닌 너다. 내 말이 무슨 뜻인지 알겠느냐?”
“예, 사형. 알아요. 알긴 아는데…….”
“조금 늦춰 주거라.”
청명은 갑갑한 마음에 한숨을 푹 쉬었다.
“무슨 말씀이신지는 알겠는데요. 그게……. 예. 솔직히 그게 의미가 없잖아요. 제가 아무리 기다리고 늦춰 줘도 결국 따라올 생각이 없으면…….”
“정말 네 사제들이 너를 따라잡으려 하지 않는다 생각하느냐?”
“…….”
“네가 세운 가시 때문에 차마 네 앞에서는 그런 생각을 드러내지 못하는 게 아니라?”
“그건…….”
청문은 결국 조금 안쓰러운 마음으로 빙그레 웃었다.
‘녀석도 참.’
그는 안다.
다른 이들은 몰라도 그는 알고 있었다.
옆에 같이 서 줄 사람을 가장 기다리는 건 오히려 청명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그렇지 않다면 청명이 그의 말을 이리 고분고분 들을 리가 없다.
이미 무력으로는 청문을 추월한 지 오래다. 문파의 장로들조차 검으로는 청명을 어쩌지 못한다. 그리고 그 사실을 청명이 가장 잘 알았고, 딱히 쉬쉬하지도 않았다.
키워 주다시피 했다는 그 이유 하나만으로 저 안하무인인 녀석이 청문의 말만 철석같이 따를 리는 없었다.
청명도 아는 것이다.
청문과의 관계마저 끊어져 버린다면 결국 그는 혼자가 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우리와는 다른 게지.’
청명에게 있어서 세상은 화산이다.
세상을 보다 도사가 되기로 마음을 먹고 화산에 오른 이들과는 다르다. 청명은 눈으로 세상을 볼 수 있게 된 때부터 오로지 화산에만 머물렀다.
그런 그가 어떤 마음으로 화산을 바라보는지 청문이 어찌 짐작할 수 있겠는가?
“청명아.”
“예, 사형.”
“화산을 위해 사제들을 지켜보라 하는 것이 아니다.”
“…….”
“너를 위해 보거라. 너를 위해서. 너도 언젠가는 등 뒤를 받쳐 줄 이들의 소중함을 깨달을 날이 올 것이다.”
그러자 청명이 더없이 진중한 눈으로 청문을 바라보았다. 그 사뭇 진지한 얼굴에 청문은 기껍게 미소 지었다.
“그래, 좀 알겠…….”
“아니, 그것도 최소한의 쓸모가 있을 때에야 의미가 있죠! 저것들이 등을 받칠 판이면 나도 다된 거지! 검 내려놔야지.”
“…….”
“뭔 말이 되는 말씀을 하셔야 듣죠! 예? 쟤들이 뭐요? 에헤이! 제가 뒈져서 다시 태어나지 않는 이상은 그럴 일 없습니다.”
청문이 허허 소리 내어 웃었다.
“청명아.”
“네!”
“회초리 가져오너라.”
“…….”
“어서!”
“하. 하하……. 하하하.”
청명이 어색하게 웃으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사형!”
“응?”
“사형의 말씀 뼈에 새기도록 하겠습니다. 사제들을 잘 돌보란 말씀 완벽하게, 너무 이해했습니다. 분골쇄신하겠습니다.”
“…….”
“그럼 저는 이만!”
그러더니 뒤도 돌아보지 않고 문을 박차고 나가 내달렸다.
“저, 저놈이! 거기 안 서느냐! 가 봐야 화산이지! 네가 어디로 도망가겠다고!”
“수련하러 갑니다!”
벌써 저 까마득한 데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청문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너무 많은 것을 바라는 게지.’
사람이란 완전할 수 없다.
한 분야에 특출한 재능을 가진 이는 다른 부분에서 부족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청명은 비할 바 없는 무재를 타고났지만, 그 때문에 사람과 어울리고 사람을 포용하는 방법을 모른다.
그리고 그 점이 청명을 점점 더 고립시키고 있었다.
강해진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하지만 함께 기뻐해 줄 이가 없이 홀로 강해지는 데 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가?
청문과 화산이라는 이름이 아직은 청명을 붙들어 주고 있지만, 그 고삐조차 언제 풀릴지 모를 일이었다. 저러다 언젠가 청명의 두 눈에서 눈물 흐르는 날이 오지나 않을까, 청문은 늘 애가 끓고 속이 탔다.
청명이 박차고 나갔던 문을 도로 닫던 청문은 순간 눈에 걸리는 무언가에 멈칫했다.
조금 전까지 청명이 앉아 있던 자리에 웬 풀뿌리 같은 게 놓여 있었다.
“……삼인가?”
산삼(山蔘).
수련을 하러 깊은 산속으로 들어갔다가 발견한 모양이었다.
“……녀석.”
청명이 두고 간 삼을 물끄러미 보고 있자니 안쓰러움은 배로 커졌다. 저 풀뿌리에서 청문을 위하는 청명의 마음이 느껴졌고, 또 한편으로는 편한 연무장을 두고 남들 눈에 띄지 않는 깊은 산속으로 수련하러 가는 청명의 뒷모습이 눈에 선해서였다.
그 서툰 모습을 떠올리니 마음 한구석이 아려 왔다.
“언젠가는…….”
언젠가는 저 아이도 마음을 줄 이들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청명이 다른 이들의 사이에서 티 없이 웃는 모습을 한 번이라도 볼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을 텐데.
“아직은 멀구나.”
그럼에도 이 화산이 저 아이를 온전히 품을 날이 올 것이다.
진정 그리 믿고 싶은 청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