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8화. 내가 주인인데 왜 사과를 해? (2)
콰당!
코에서 피를 분수처럼 뿜으며 엎어진 양경의 몸이 움찔움찔 경련했다.
한참 동안 멍하니 그 광경을 바라보던 이들의 정신이 점점 돌아오기 시작했다.
‘내가 뭘 본 거지?’
‘……세상에.’
철담호 양경.
강호 전체를 통틀어 보면 그리 유명한 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호남에서는 나름 명성이 있는 이다. 그가 문주로 있는 청백파도 결코 무시할 만큼 한미한 곳은 아니었다.
그런데…….
‘한 방에?’
‘아니, 잠깐 지금 사람 얼굴을 발로 찼잖아?’
‘철담호가 저리 쉽게?’
‘이, 이래도 되는 건가?’
사람은 너무 어이가 없는 광경을 봐 버리면 잘잘못을 따질 엄두도 내지 못한다.
청명이 철담호를 일격으로 조져 버렸다는 사실과, 화산에서 가장 유명한 도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화산신룡이 찾아온 객을 냅다 까 버렸다는 사실이 지켜보는 이들의 어처구니를 날려 버렸다.
“야……. 야 이 미친…….”
조걸은 말도 잘 나오지 않는 듯 더듬대며 입을 열었다.
그의 뒤에 선 화산의 제자들도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청명을 보기만 했는데, 동공이 연신 흔들렸다.
‘저 미친놈이.’
‘여윽시 청명이다. 진짜 뒤도 안 돌아보고 들이받아 버리네.’
‘쟤는 대체 뭘 먹고 자랐기에 저렇게 되지?’
그나마 다른 제자들은 경악하는 수준에서 끝날 수 있었지만, 조걸만은 그럴 수가 없었다.
“아, 아니……. 아니, 이 미친놈……. 와…… 진짜…….”
숨이 껄떡껄떡 넘어가는 조걸을 보며 청명이 태연하게 말했다.
“사형.”
“으응? 응?”
“저 새끼 당장 내쫓고 소금 뿌려.”
“…….”
“잔칫집에 재수 없게. 쯧!”
그래, 청명아. 심정적으로는 완벽하게 동의한다.
하지만……!
“객으로 온 사람을 내쫓으면 어떡하냐! 이 또라이 새끼야!”
“객은 개뿔이! 나는 저런 거 손님으로 받은 적 없어!”
“아니, 뭘 좀 돌아가는 상황이라도 파악을 하고 패든가! 이 새끼야, 너는 어째 매번 머리보다 발이 먼저 움직이냐?”
“보나마나 개소리했겠지. 내가 뭐 하자고 그 개소리를 일일이 듣고 있어, 귀 아프게.”
맞는데! 저 새끼가 한 게 개소리는 맞는데!
그렇다고 그걸……. 우와…….
“빠, 빨리 사과드려라!”
“왜?”
“손님을 팼으면 사과를 드려야 할 것 아냐! 주인이 됐으면 당연히!”
청명이 ‘이건 또 무슨 새로운 개소린가?’ 하는 얼굴로 조걸을 바라보았다.
“아니, 내가 주인인데 왜 사과를 해?”
“천우맹 발족을 축하해 주러 오신 분들 아니냐!”
“아니, 그러니까 저 양반은 축하하러 온 사람이고, 나는 주인인데 내가 왜 사과를 하냐고.”
“…….”
도무지 어디서부터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까마득할 정도로 감이 잡히지 않았다. 결국 차마 입을 떼지 못한 조걸은 멍하니 서 있기만 했다. 청명은 다시 한번 태연히 말했다.
“손님이고 나발이고 개소리하면 처맞아야지.”
솔직히 조걸은 박수라도 치고 싶은 심정이었다. 목 안에선 심산유곡의 맑은 냇물이 흐르는 것 같다.
하지만 그는 이 상황을 즐겨도 될 사람이 아니라 수습해야 할 사람이 아닌가?
“이, 이제는 그러면 안 된다고!”
“응?”
그는 파랗게 질린 얼굴로 말했다.
“맹의 결성을 축하하러 오신 분들이 아니냐! 그럼 잘 대접하고 돌려보내야 맹의…….”
“뭐?”
청명은 정말로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사형 바보 아냐?”
“……어?”
“우리가 대장인데, 왜 우리가 눈치를 봐?”
“…….”
청명이 얼굴을 와락 일그러뜨렸다.
“아니, 남들 눈치 볼 거면 맹을 안 만들었지! 그럴 거면 그냥 화산에서 우리끼리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사는 게 낫지! 내가 맹을 만들어서 힘이 더 세졌는데, 왜 내가 남의 눈치를 봐야 하냐고. 마음에 안 드는 새끼들 다 후려 까려고 만든 맹인데!”
뭐? 진짜 그래서 만든 거였어?
아니, 설사 그런 이유로 만들었다고 해도, 그걸 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 말로 하면 어떡하냐, 이 미친놈아!
“깝치면 그냥 까! 다 죽여 버려!”
“…….”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아니, 충분히 알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때때로, 꽤 자주 실감하게 된다.
‘이 새끼는 상상 이상으로 미친놈이야. 아주 돌아 있어.’
이게 과연 생각하고 움직인 건지, 아니면 움직이고 나서 생각한 건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문제는 어느 쪽이라고 해도 무섭다는 점이다.
“끄……. 끄으으으…….”
그때 바닥에 처박혔던 철담호 양경이 부들부들 떨며 몸을 일으켰다.
아무리 중소문파라고는 하나, 일문의 문주가 삼대제자에게 걷어차여 날아간 것은 말이 되지 않는 일이다. 그러나 이제는 화산의 제자들뿐 아니라 모두가 그 사실에는 그리 놀라지 않았다.
화산신룡은 애초에 무당의 장로도 때려잡는 놈이니까.
“이……. 이익!”
양경은 피가 볼썽사납게 줄줄 흐르는 코를 움켜잡고 신음했다.
그나마 그가 자신의 얼굴을 볼 수 없다는 게 다행이었다. 만약 자기 얼굴에 찍힌 커다란 발자국 모양의 멍을 눈으로 확인했다면 졸도해 버렸을지도 모른다.
“이…… 이런 빌어먹을!”
그는 두 눈에 핏발을 세우며 청명을 노려보았다. 금방이라도 달려들 것처럼 흉악한 살기를 내뿜는 모습에 주변인들이 마른침을 삼켰다.
하지만 정작 그 눈빛을 받는 당사자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뭘 꼬나봐? 눈 예쁘게 안 떠? 확 그냥!”
원시천존이시여. 아무리 봐도 이 새끼는 도사가 아닙니다.
어떻게 좀 해 주십시오! 제발!
양경은 치미는 분노를 누르며 이를 악물었다. 부들부들 떨리는 주먹만 봐도 지금 그가 얼마나 큰 노화를 참아 내고 있는지 쉬이 짐작할 수 있었다.
“이게!”
그는 울분을 토해 내듯 소리쳤다.
“이게! 화산이 다른 문파를 대하는 방식이오? 이게?!”
그의 외침에 청명의 눈이 다시 희번덕거렸다.
“아니, 근데 저 새끼가 진짜 뒈지려고?”
“참아라, 청명아! 더 이상은 안 된다!”
“이 새끼야, 여기서 더 패면 진짜 돌이킬 수 없어진다고!”
“잡아! 저 새끼 잡아!”
제자들이 우르르 달려들어 청명을 잡고 늘어졌다.
“놔 봐! 이거 안 놔? 확 마!”
곧장 튀어 나가 버릴 듯 으르렁대는 화산신룡과 그런 그를 잡고 늘어지는 화산의 제자들.
화산에서는 너무도 평범한 일상이지만, 이런 광경을 살면서 처음 보는 이들은 다들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여기 도가문 아니었던가?’
‘이쯤 되면 태상노군도 돌아누우시겠는데?’
‘화산신룡이 저런 성격이었던가?’
‘근데 웬 족제비까지 사람을 잡고 늘어지지?’
지금 천하에서 가장 이름을 날리는 문파라고 할 수 있는 화산과, 천하제일후기지수로 온 강호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는 화산신룡의 실체가 만천하에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아니, 놔 봐. 안 팰게. 아, 안 팬다니까!”
“그러고서 팰 거잖아!”
“내가 언제 안 팬다고 하고 팬 적 있어? 한 입으로 두말한 적 있냐고?”
“수도 없이 많지, 이 새끼야!”
“어, 그래?”
화산제자들이 하는 양을 황당하게 보던 양경은 결국 노화를 참지 못하고 목이 터져라 소리쳤다.
“지금 나와 장난치자는 거요?”
그 우레와 같은 목소리에 화산 제자들이 양경을 돌아보았다.
“내 강호의 동도들에게 오늘 일을 있는 그대로 전하겠소! 화산이 힘없는 이들을 핍박한다고! 축하를 위해 찾아온 객을 핍박할 만큼 안하무인이라고 말이요.”
청명이 피식 코웃음을 쳤다.
“그러세요.”
“후회해도 소용없소! 나는 절대 사과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오!”
“그러시라니까.”
“다시 말하지만 절대로…….”
“아, 말귀를 못 알아 처먹나!”
청명이 눈을 부라렸다.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이 양반아! 누가 말렸어?”
“…….”
양경은 움찔하며 말을 잃고 말았다. 이쯤 되면 당연히 조금 접고 들어올 줄 알았는데 되레 큰소리를 치니 당황한 것이었다.
‘이 새끼는 대체 뭐지?’
생각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지금 자기가 얼마나 큰 사고를 쳤는지 모를 수 없다. 머리에 피가 몰려 실수를 저지른 이는 곧 자신이 저지른 일의 여파를 실감하고 움츠러들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놈은 이만한 일을 저질러 놓고도 움츠러들기는커녕 더 크게 성질을 내고 있지 않은가?
“이, 이 일의 여파를 감당할 수 있겠소?”
“그걸 왜 네가 걱정하세요? 내가 알아서 할 일이지.”
“…….”
“거 심성 되게 고우신 분이네. 왜 우리 일을 댁이 걱정해? 그리고! 그렇게 착하실 거면 진즉부터 좀 착하시지! 왜 이제 와서 착한 척이야, 가증스럽게. 확 대가리에서 피를 쭉 뽑아 버릴라!”
허허.
우리 청명이도 많이 착해졌네. 안 깨고 피만 뽑는다니.
“다 됐으니까 꺼지시고. 어디 하고 싶은 대로 마음껏 해 보세요.”
일이 좀처럼 생각같이 풀리질 않으니 양경은 슬쩍 도움을 구해 보려 뒤를 돌아보았다. 이 자리에 모여 있는 사람들의 여론을 모으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와 눈이 마주친 이들은 하나같이 슬그머니 딴청을 피우며 그의 시선을 외면했다. 마치 더는 엮이고 싶지 않다는 것처럼 말이다.
‘아, 아니…… 왜?’
조금 전까지는 그의 편에서 함께 목소리를 높여 주던 이들이 아닌가? 그런데 왜 이제는 이렇게 시선을 외면하는가?
이는 양경이 한 가지 사실을 간과했기 때문이었다.
이곳에 모인 이들은 이미 화산의 힘을 실감했다. 그럼에도 조금 전에 그들이 목청을 높일 수 있었던 이유는, 화산이 체면이나 행사 때문에라도 결코 그들에게 강압적으로 나오지 않을 것이라는 짐작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짐작이 청명의 발길질 한 번에 깔끔하게 날아갔다.
화산은 이미 섬서의 작은 문파가 아니다.
무력이라는 측면에 있어서라면 아직 구파일방급에 미치지 못할지도 모르나, 영향력이라는 측면에서는 구파일방의 웬만한 문파는 비교도 되지 않을 지경이었다.
세상 어떤 문파가 새외를 지배하는 두 문파를 고개 숙이게 만들 수 있다는 말인가.
“이…….”
상황이 심상치 않게 돌아가자 궁지에 몰린 양경은 이를 악물었다.
“그렇다면 화산은 중원의 문파가 아니라 새외의 문파를 비호한다고 봐도 되겠소이까?”
그리고 비장의 무기를 꺼냈다.
중원의 문파라면 이 말에 쉽사리 대답할 수 없을 것이다. 중원의 문파가 새외의 문파를 비호한다는 말이 나오기 시작하면 이는 문파의 평판에 치명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어 들려온 대답은 그런 양경의 예상을 완전히 벗어났다.
“그럼 어쩔 건데요?”
“…….”
양경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그럼 지, 지금 화산이…….”
“아니, 이 양반은 아까부터 자꾸 입 아프게 뭐 빤한 걸 물어보고 있어. 댁들이 우리한테 해 준 게 뭐가 있다고 내가 빙궁이랑 야수궁을 두고 댁들을 비호해야 해?”
“…….”
“새외고 나발이고 뭐가 중요해! 어디 내 앞에서 한 번만 더 야만인이니 뭐니 입 털어 봐. 아주 껍데기를 깨끗하게 벗겨 버릴 테니까!”
“이, 이 무도하기 짝이 없는…….”
“뭐, 무도? 하, 말 잘 꺼냈다. 내가 무도한 게 뭔지 한번 보여 줘?”
조금 힘을 풀었던 화산의 제자들이 다시 기겁하며 청명을 잡고 늘어졌다.
“아! 자꾸 애 좀 건드리지 마세요!”
“지, 지금 그러시면 안 되는 거 안 보이세요!”
“튀십쇼! 빨리!”
애초에 청명을 말려서는 답이 나오지 않는다는 걸 이해한 화산의 제자들이 양경을 향해 다급히 고함을 질러 댔다.
어찌할 바를 모르며 양경이 우왕좌왕하던 바로 그때였다.
“무슨 일이냐.”
나직한 목소리에 중인들이 황급히 좌우로 갈라섰다. 그리고 그 길을 따라 현종이 천천히 걸어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