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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귀환-663화 (661/1,567)

663화. 이게 누굴 건드려? (3)

야수궁이 끌고 온 개는 무려 백 마리에 달했다.

“아니. 오는 애들을 어떻게 밀어 냅니까.”

“그럼 굶어 죽는 애들을 그냥 버리고 옵니까?”

“중원인들은 정이 없네, 정이.”

“전각도 삐까뻔쩍하구먼! 돈이 없는 것도 아니고!”

“…….”

되레 힐난의 눈빛을 받은 화산의 제자들은 아무런 항변도 하지 못했다. 나름 도가의 가르침을 설파하는 도인인데, 죽어 가는 개들을 내버려 두고 왔어야 한다고 비난할 수는 없잖은가?

졸지에 개들이 굶어 죽어도 신경 쓰지 않는 무신경하고 돈만 밝히는 말코 놈들이 될 위기에 처한 화산은 야수궁의 만행(?)을 그저 묵과할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우려했던 개 관리 문제가 의외로 쉽게 해결되었다는 점이었다.

하악!

착!

하악!

차악!

중인들은 펼쳐지는 희한한 광경에 눈을 연신 끔뻑였다.

“저게 지금 무슨 광경이지?”

“……그러게.”

“보고도 모르겠구만……. 두 눈을 분명 뜨고 있는데도 말야.”

그들의 시선은 모두 한곳으로 쏠려 있었다.

너무 작아 앙증맞다는 말이 딱 어울릴 만한 새하얀 앞발이 아래를 가리켰다.

그러자 크기별로 정렬한 개들이 즉시 재빠르게 바닥에 엎드렸다.

획!

조그만 발이 다시 위를 가리키자 개들이 벼락같이 몸을 일으켰고, 발이 허공에서 한 바퀴 원을 그리자 개들이 바닥을 데구루루 굴렀다.

“……저게 뭐냐고.”

“내가 지금 꿈을 꾸고 있나?”

눈으로 보지 못했다면야 믿지 못하는 게 당연하겠지만, 지금 화산에 오른 이들은 눈으로 본 사실도 믿기 어려울 수 있단 걸 처음으로 실감하는 중이었다.

새하얀 털 뭉치 같은 작은 족제비가 발을 까딱댈 때마다 사람만큼 큰 개들이 이리저리 몸을 뒤집어 댔다.

얼마나 격하게 뒤집는지 저러다가 탈이라도 나지 않을까 걱정이었다.

“아, 아니 한입거리도 안 되어 보이는데.”

“지금 그게 대수인가? 애초에 왜 개가 족제비의 명령을 듣는지부터가 문제 아닌가?”

“……나는 족제비가 앞발로 개들을 가리키는 것부터 이상한데.”

뭔가…… 하나부터 열까지 상식적인 구석이 없었다.

하악!

족제비가 못마땅한 눈치로 살짝 이를 드러내자 병졸처럼 줄을 맞춰 선 개들이 하나같이 덜덜 떨면서 꼬리를 말았다.

새하얀 족제비는 그제야 마음에 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봐도 사람 같은데. 저게 어딜 봐서 족제비라는 거지?’

‘어쭈? 배 내미는 꼴 좀 보게?’

족제비가 꼭 사람처럼 구는 양에, 모두가 신기해하고 또 황당해했다.

“저게 영물이라는 건가?”

“화산에는 영물도 있구먼.”

“……나는 영물이라는 게 그냥 이야기에만 나오는 건 줄 알았는데.”

이제 중원에서는 영물이라는 것을 찾아보기 어렵다 보니, 다들 생소하고 기이하다 여길 만했다.

하악!

백아가 앞발을 옆으로 획 꺾자 개들이 우르르 전각 뒤쪽으로 달려갔다. 애초에 개들이 있지도 않았던 것처럼 깔끔하게 정리된 연무장을 보며 중인들이 너나 할 것 없이 감탄하고 박수를 쳤다.

“이게 야수궁의 실력인가?”

“눈 두고 뭘 봤는가? 저 족제비는 화산 제자가 키우던 걸세!”

“에엥? 그런데 왜?”

“……난들 알겠는가?”

이건 정말이지 사정을 짐작할 엄두조차 나질 않았다. 그러니 모두가 그저 혀를 내두르는 수밖에 없었다.

‘아까부터 뭐가 좀 많이 이상한데.’

‘뭐 하나 확실히 이해가 가는 게 없구먼.’

중인들은 슬슬 화산이 평범한 문파와는 뭔가 다르다는 걸 실감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황당한 심정은 화산파 역시 함께 느끼고 있었다.

“……처리했네.”

“저거 진짜 의외로 쓸모가 많습니다. 처음엔 진짜 목도리 말고는 쓸모가 없어 보였는데.”

“너보다는 낫지.”

“……이럴 겁니까?”

조걸이 으르렁대자 윤종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기왕 하는 김에 이 새끼도 좀 훈련시켜 주지 그랬냐, 백아야.’

청명이는 무리더라도 조걸 정도는 어떻게 할 수 있지 않을까? 이놈도 짐승의 일종이니.

“……사실 개가 문제가 아니지.”

백천이 떨떠름한 얼굴로 시선을 돌렸다. 청명이 맹소에게 짖고……. 아니, 항의하고 있었다.

“개장수예요? 여기 완전 개판 됐잖아요! 예?”

“으하하하핫! 그런 사소한 건 신경 쓰지 말고! 자, 자! 내가 자네 만나는 자리라 운남의 술을 가져왔네! 시원하게 한잔하지 않겠는가?”

“몇 동이나요? 많이 들고 오셨어요?”

“아주 술독에 빠져 죽어도 될 만큼 들고 왔지! 가져오느라 고생 좀 했네! 어떤가? 지금 맛보기로 한 잔?”

“좋죠!”

백천의 커다란 두 손이 얼굴을 감쌌다.

‘개가 무슨 문제인가. 사람이 문제지, 사람이.’

아니, 정확히는 사람 같지도 않은 것들이 문제지.

서글픈 화산이어라.

이곳에는 사람 같은 짐승과 짐승 같은 사람이 공존하고 있었다.

“백천 도장.”

“예? 아, 예! 소가주님.”

그때 당패가 빙긋 웃으며 백천에게 다가왔다.

“야수궁이 도착했으니, 식솔을 좀 선별해 화음에 내려 보내려 합니다.”

“화음에요?”

“예. 이곳에 온 이들이 모두 화산에 묵을 수는 없으니, 일전에 말씀드렸던 임시 숙소를 개방하고 이를 관리할 이들이 필요합니다.”

“아!”

백천이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소가주님.”

진심이 담긴 감사 인사에 당패는 고개를 내저었다.

“이건 화산의 일이 아니라 천우맹의 일입니다. 자꾸 그리 제가 도움을 준다는 식으로 말씀하시면 서운합니다.”

“아…….”

“그리고…….”

당패가 빙긋 웃었다.

“설사 천우맹의 일이 아니라 화산만의 일이라 할지라도 화산과 당가는 남이 아니지 않습니까.”

당패의 눈을 본 백천이 이내 함께 웃었다.

“그렇죠. 남이 아니…….”

“거기.”

그러나 감동의 맥을 툭 끊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움찔한 당패와 백천이 천천히 뒤를 돌아보았다.

“소, 소소.”

“소소야…….”

당소소가 이마에 핏대를 세운 채 두 사람을 바라보고 있었다.

“남들은 응대하느라 바빠 죽을 판인데, 두 분은 아주 신선놀음을 하고 계시네요?”

“…….”

“…….”

“피곤해 보이시는데 어떻게, 대침 하나 놔 드릴까요?”

“……죄, 죄송합니다.”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뭐 해요! 움직여!”

“넵!”

당패와 백천이 다급하게 달려가며 속삭였다.

“그런데 소소는 원래 저랬습니까?”

“……원래 저렇게 심하지는 않았는데 애가 화산에 가더니 눈에 살기가…….”

“……저희가 죄송합니다.”

“이곳이 화산이구나!”

맹소가 뭔가 감회에 젖은 얼굴로 주변을 둘러본다.

“생각하던 것보다는 화려하군. 도관이라고 해서 그저 소박하고 조용한 곳일 거라 생각했거늘.”

“사람이 많아서 그렇죠, 뭐. 그리고 당가가 힘 좀 써 줬고요.”

“시끌벅적한 것은 좋은 일이지.”

맹소는 크게 미소 지었다.

“내가 살아생전 중원에, 그것도 화산에까지 와 볼 일이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화산신룡 덕분에 내가 호강을 하는군.”

“앞으로는 자주 오셔야 할 거예요.”

“하하핫. 그래야지! 그래야지!”

맹소가 크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뒤쪽에서 현종과 당군악이 걸어 나왔다. 야수궁이 도착했다는 소식을 듣고 직접 맞이하러 온 모양이었다.

“오! 당가주! 그리고 옆에는…….”

현종을 본 맹소의 눈빛이 달라진다.

“화산신룡.”

“네.”

“저분이 화산의 장문인이신가?”

“아, 처음 보시죠? 네. 화산의 장문인 현종진인이세요. 제가 소개를…….”

하지만 맹소는 청명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성큼성큼 현종을 향해 다가갔다. 그 움직임이 얼마나 우악스럽고 위협적인지 중인들이 저도 모르게 일제히 맹소를 바라볼 정도였다.

일일이 소개해 주지 않아도 그 기세와 태도만으로도 맹소가 남만야수궁의 궁주임을 알아보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한쪽은 남만야수궁의 궁주.

그리고 반대쪽은 사천의 지배자인 사천당가의 가주와 최근 가장 기세가 좋은 화산의 장문인.

현 강호를 뒤흔드는 세 거인이 만나는 광경에, 모든 이들이 마른침을 삼켰다.

‘뭐지?’

‘무슨 일이라도 터지는 건가?’

맹소는 한눈에 봐도 우악스럽다. 외양은 야인이라는 말로도 부족하다. 거기에 그는 중원의 예의에 익숙지 않은 새외의 무인이 아니던가?

예상치 못한 일이 터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모두의 눈이 긴장으로 물들었다.

잠시 후, 현종이 빙그레 웃으며 포권 했다.

“화산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궁주님. 남만야수궁의 대한 소식과 궁주님에 대한 이야기는 당가주님과 제자들에게 많이 들었습니다. 진즉에 찾아뵙고 인사를 드렸어야 했는데 경황이 없었습니다. 무도한 저를 용서해 주십시오.”

그 낮은 자세를 본 맹소가 콧김을 킁 하고 내뿜었다.

앞으로 내밀어진 공수에는 똑같이 포권으로 답하는 것이 예의. 하지만 맹소는 그 예의 대신에 다른 방법을 택했다.

쿵!

뒤로 한 발 물러나 깊이 허리를 숙인 것이다.

“으응?”

“어?”

모두가 그 광경을 보고 의문 어린 음성을 뱉었다.

맞포권을 하는 것은 서로가 동등할 때 차리는 예의이다. 하지만 지금 맹소는 포권을 하지 않고 고개를 숙였다.

‘화산을 윗 문파로 인정하겠다는 건가?’

‘아니. 그렇다고 해도 저건…….’

모두가 그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런데 그때 맹소가 우렁우렁한 목소리로 입을 뗐다.

“대!”

대? 무슨 대…….

“대 화산파의 장문인을 만나 뵙게 되어 더없는 영광입니다!”

중인들의 입이 일순 쩍 벌어졌다.

‘뭐, 뭐라고?’

‘저게 무슨 소리야?’

무려 남만야수궁이다.

물론 중원인들은 은근히 새외의 문파를 배척하고 무시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리고 실제로 새외사궁의 힘이 구파일방의 수좌들에게 미치지 못하는 것도 사실이었다. 하나, 그렇다고 해도 새외사궁의 일원인 남만야수궁이다.

최근 화산이 떨치는 기세가 대단하다 해도 아직은 감히 남만야수궁에 범접할 만한 문파가 아니었다.

그런데 지금 그들의 눈앞에서 야수궁주 맹소가 화산의 장문인에게 극공경의 예를 표하고 있다.

현종조차도 당황한 기색으로 얼굴을 붉혔다.

“구. 궁주님. 과한 예는 받기 어렵습니다.”

“아닙니다!”

하지만 맹소는 고개를 번쩍 들더니 가뜩이나 부리부리한 눈을 더 부릅뜨며 외쳤다.

“이제야 찾아뵙게 되어 죄송하기 한량없습니다. 남만야수궁의 모든 궁도들을 대표하여, 그리고 운남을 살아가는 모든 이들을 대표하여! 운남을 지켜 주신 매화검존의 은혜에 감사드리고 매화검존의 사문인 화산에 더없는 감사를 드리는 바입니다!”

맹소는 양손을 가슴 앞에 모으더니 다시한번 깊숙이 고개를 숙였다. 비록 예의 방식은 중원과 다르나, 지금 그가 진심으로 예를 표하고 있는 것은 누가 보아도 자명했다.

그러다 보니 조금 전 맹소의 발언에 더욱 신빙성이 더해졌다.

“매화검존이 운남을 구했다고……?”

“매화검존이 누군데?”

“그 있잖은가! 백 년 전에 마교와 싸울 당시에 천하삼대검수였던.”

“뭐? 화산이 천하삼대검수를 배출했었다고? 그런데 나는 왜 몰랐지? 그리고 남만야수궁이 저리 예를 표할 정도면 활약도 엄청났었단 것 아닌가? 그런데 왜 나는 들은 바가 없지?”

“나, 나도 처음 듣는 이야긴데?”

중인들의 얼굴에 혼란이 스쳤다.

하지만 그들이 생각을 정리할 틈도 없이 다시 맹소가 쩌렁쩌렁하게 소리쳤다.

“구명의 은혜는 무엇으로도 갚을 수 없는 법! 남만야수궁은 화산의 영원한 친구가 될 것이고, 화산의 적을 곧 야수궁의 적으로 여길 것입니다! 장문인께서는 이런 야수궁의 뜻을 저버리지 말아 주십시오!”

현종은 순간 코끝이 찡한 느낌에 살짝 고개를 돌려 먼 하늘을 바라보았다.

누구도 알아주지 않았다.

화산으로 이리 사람들이 몰리는 것을 보면서도 마음 한편에 아쉬움을 내내 품고 있어야 했던 이유는, 누구도 화산이 과거엔 이런 모습이었다는 것을 모르리란 생각 때문이었다.

그런데 지금 맹소가 모든 이들이 보는 자리에서 자신의 자세를 낮춰 과거의 화산과 매화검존의 이름을 언급해 주고 있지 않은가.

“……이미 오래 전 일입니다. 굳이…….”

“아니 될 말씀!”

맹소가 버럭 고함을 질렀다.

“야수궁을 구하고, 운남을 구하고! 더 나아가서는 천하를 그 간악한 마교의 마수에서 구해 낸 매화검존의 은혜를 논하는 일에 시간이 무슨 상관이란 말입니까!”

“…….”

“백 년이 아니라 천 년이 지난다고 해도 잊혀서는 안 될 일입니다!”

“……참으로 감사한 말씀이십니다.”

고개를 든 맹소가 씨익 웃었다.

“운남에서 좋은 선물을 가져왔습니다! 나눌 이야기가 많으니 안으로 드시지요.”

“그래야지요.”

그 충격적인 광경을 지켜본 모든 이들은 황망함을 숨기지도 못한 채 세 사람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묘한 정적이 흘렀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기이한 소리가 아주 조그맣게 들려왔다.

“꺄르륵…….”

사람들의 고개가 획 돌아갔다.

양손으로 입을 틀어막은 청명이 어깨를 들썩대고 있었다.

“꺄륵…….”

“…….”

근데 저 새끼는 왜 웃는 거지?

이유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그때.

“빙궁이다!”

“북해빙궁이 도착했다!”

충격을 진정시킬 틈도 없이 커다란 목소리가 산문 밖에서부터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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