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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귀환-659화 (657/1,567)

659화. 뭐가 이렇게 많이 와? (4)

“끄으응. 여기가 화음이구나!”

영소문의 고한위는 저 멀리 보이는 민가를 보며 마침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백 리만 더 멀었다면 지금쯤 바닥에 드러누워 더는 못 가겠다고 고함을 내지르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다행히도 목적지인 화음이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얼마나 열심히 달려왔는지 다리가 다 후들거릴 판이었다.

그의 사제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모두 반쯤 시체가 된 낯빛으로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아니, 사부님.”

고한위는 선두에 서서 화음을 물끄러미 보는 제 스승에게 볼멘소리를 했다.

“이렇게까지 고생해서 와야 할 곳입니까? 그래 봐야 화산인…….”

“모르는 소리 하지 말거라!”

하지만 그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스승이 고개를 획 돌리며 일갈했다.

“너는 이 일이 얼마나 큰일인지 모르느냐?”

“…….”

스승인 장용의 목소리가 우렁우렁 울렸다.

“무려 사천의 지배자인 사천당가와 요즘 귀가 따갑도록 명성을 떨치는 그 화산파가 손을 잡은 일이다. 거기에 새외의 패자들까지 힘을 보탰다.”

“……하지만 그래 봐야 구파일방이나 오대세가에 비하면 조족지혈이 아닙니까?”

“쯧쯧. 이리 생각이 짧아서야!”

“…….”

장용은 영 못마땅한 얼굴로 고한위를 보았다.

“이건 단순히 지금의 세력만 보고 판단할 일이 아니다. 구파일방에 속한다고 봐야 할 화산과 오대세가인 사천당가, 거기에 지금껏 단 한 번도 중원의 문파와 손을 잡은 적이 없었던 새외사궁까지 발을 걸친 일이 아니더냐!”

“그렇긴 합니다만…….”

“지금이야 다들 눈치를 살피고 있지만, 이게 정말 뭔가 된다는 판단이 서게 된다면 눈치를 보던 문파들이 우르르 천우맹에 가입하려 들 것이다.”

고한위는 설명을 듣고도 영 이해가 안 간다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그럼 저희도 그때 가입을 하면 될 일이 아닙니까?”

“이 멍청한 놈!”

쩌렁쩌렁 울리는 고함에 고한위가 기겁하며 귀를 막았다.

“그래서야 다른 문파들과 다를 게 없어지지 않느냐! 모든 일은 기회가 될 수 있는 법! 천우맹에 가입하는 것은 나중에 선택할 일이라고는 하나, 미리 눈도장을 찍어 놓으면 천우맹의 중진들이 우리 영소문을 기억할 것 아니더냐.”

“……굳이 그렇게까지…….”

“쯧쯧쯧. 언젠가 문주가 되어야 할 대제자라는 놈이…….”

장용이 혀를 차고는 말을 이었다.

“눈도장에는 돈이 들지 않는다. 발품을 팔아 이득을 볼 수 있다면 남는 장사지. 그러니 잔말 말고 따라오너라!”

“예.”

결국 순순히 대답하는 고한위를 보던 장용은 영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며 성큼성큼 다시 걷기 시작했다.

‘이래서 요즘 것들은…….’

저리 생각이 없어서 이 험난한 강호를 어찌 버텨 나가려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세상일이라는 건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 그러니 될 수 있는 한 많은 곳에 발을 걸쳐 둬야 한다. 특히나 사천과 하북 사이에 어정쩡하게 발을 걸친 영소문 같은 곳은 더더욱 눈치를 잘 봐야 했다.

‘천우맹의 개파식에 참가했다고 구파일방이 대놓고 면박을 주지는 못하겠지. 그 체면에.’

살짝 불편한 눈총을 감수하는 한이 있더라도 천우맹과 우호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다면 어떻게 생각해도 남는 장사다.

물론 천우맹 쪽에서는 적극적으로 회유하려 들겠지만, 그들도 크게 아쉬울 건 없으니 적당히 엉덩이를 빼면 된다.

‘세상은 먼저 움직이는 자의 것이지!’

중요한 건 선점하는 것이다.

천우맹이 훗날에는 어떨지 모르지만, 지금은 한 사람이 아쉬울 터! 이럴 때 생색을 내는 게 중요하다.

“어서 서둘러라! 다른 문파들이 도착하기 전에 화산에 올라야 한다.”

“예!”

그들은 곧 부푼 마음으로 들어섰다.

하지만 장용은 이내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현실에 맞닥뜨려야 했다.

“…….”

“…….”

화음현의 입구에 들어선 그들은 모두 저도 모르게 입을 쩍 벌렸다.

이상한 점?

딱히 없다.

듣던 대로 화음은 대도시라고는 할 수는 없지만, 나름 갖출 것은 다 갖춘, 제법 큰 곳이었다.

문제가 있다면…….

“이게 다 뭐야?”

그 작다고 할 수 없는 화음에 인파가 끝도 없이 넘실거리고 있다는 점이었다.

“……사부님?”

“어, 어어?”

넋을 놓은 채 화음을 멍하니 보던 장용이 커다란 두 눈을 끔뻑였다.

‘이게 무슨 일이야?’

그의 눈이 자연스럽게 인파를 이루는 이들의 허리춤으로 향했다. 허리에 저마다 병장기를 하나씩 달고 있는 것으로 보아 무인들인 게 분명했다.

“아니, 뭐가 이렇게…….”

“비키시오!”

그때 뒤쪽에서 달려온 이들이 장용의 어깨를 치고 지나갔다.

“악!”

느닷없는 충격에 두어 걸음 튕겨 나간 장용이 곧 눈을 부라리며 버럭 소리쳤다.

“어떤 놈들이냐! 감히 우리 영소문을…….”

“뭐?”

그러자 앞으로 달려가던 이들이 고개를 획 돌렸다.

그와 동시에 장용의 입이 자연스레 닫혔다.

장용 역시 나름 산전수전을 겪은 자. 상대의 험악한 인상이나 날카로운 눈빛에 겁을 먹을 만큼 머저리는 아니었다. 그를 입 다물게 한 것은 험악한 인상이 아니라 상대의 가슴에 새겨져 있는 표식이었다.

서로 교차된 세 개의 검.

‘사, 삼검문.’

광동에서 저승사자와 같은 위명을 떨친다는 삼검문의 표식이 틀림없었다.

‘저, 저 인간들이 왜 여기까지…….’

하지만 길게 생각할 시간이 없었다. 그는 빠르게 몸을 바로 세우며 말했다.

“사, 삼검문의 영웅 분들이셨습니까. 제가 그만 몰라뵙고…….”

“쯧.”

그러자 먼저 부딪쳤던 험악한 인상의 사내가 눈을 부라리며 말했다.

“운 좋은 줄 알아라. 여기가 화음이 아니었다면 혼쭐이 났을 것이다.”

“…….”

“어디서 어중이떠중이 같은 것이…….”

“사형, 이러실 시간이 없습니다! 빨리 화산에 올라야 합니다.”

“빌어먹을! 뭔 놈들이 이리 많이 몰려왔단 말이냐. 끄응! 늦으면 문주께 치도곤을 당할 테니 다들 서둘러라!”

“예!”

부리나케 다시 달려가는 삼검문 문도들의 모습에 장용은 연신 마른침을 삼켜 댔다.

‘아니, 그 먼 광동에서 여기까지…….’

놀랄 일은 이걸로 끝이 아니었다.

그들의 앞쪽으로 누런 황의를 입은 이들이 우르르 몰려가고 있었다.

“조현문이다!”

“귀주의 조현문이야! 세상에, 저들도 왔구나!”

장용의 눈이 더 커졌다.

‘조현문?’

웬만해서는 귀주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는 그 조현문 말인가?

“현모방도 왔다!”

“저, 저기 항산파 아닌가? 아니, 항산파까지 오다니……!”

기겁한 장용이 황급히 고개를 획 돌렸다.

과연, 눈부신 백의를 입은 검수들이 절도 있는 걸음으로 화음에 들어서고 있었다.

‘세, 세상에, 항산파라니.’

영소문도 나름 중소 문파들 중에서는 힘깨나 쓴다고 자부할 수 있는 곳이다. 하지만 지금 이름이 울리고 있는 문파들은 감히 영소문을 가져다 댈 곳들이 아니었다.

구파일방이나 오대세가 같은 천하의 명문들에게는 견줄 수 없지만 각 지역의 패자를 자부하고도 남는 문파의 이름들이 동네 애 이름처럼 연신 여기저기서 들려오고 있었다.

‘화, 화산이…… 천우맹이 이 정도였단 말인가?’

고한위의 어리석음을 탓했던 그조차도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던 건 매한가지였다.

천우맹의 영향력은 이미 그가 생각한 바를 아득하게 뛰어넘고 있었다. 아직 개파조차 하지 않았음에도 말이다.

‘이들이 모두 화산을 오른다고?’

대체 이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인가?

무인들이 개미떼처럼 뭉쳐 저마다 화산의 진입로로 몰려 갔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이곳저곳에서 문제가 일어났다.

“딱히 바빠 보이지 않는데, 길을 양보하는 건 어떻소?”

“뭐라고? 지금 해보자는 것이오?”

“하하하. 화산 앞마당이라고 너무 허세를 부리는 것 같구려. 여기가 화음이 아니었다면 감히 내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었겠소?”

“이 작자가?”

서로 길을 양보하라고 언성을 높이는 이들은 물론이고.

“밀치지 말라고 하지 않았소!”

“뒤에서 미는 걸 나보고 어쩌라는 거요?”

“무인이라는 이들이 그것 하나 버티지 못한단 말이오? 그런 실력으로 여긴 뭐 하러 왔소?”

“오호라? 내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확인해 보시겠다? 주둥아리로만 나불대지 말고 어디 한번 겨뤄 보는 건 어떻소?”

“누가 못 할 줄 알고?”

아예 금방이라도 칼을 뽑을 듯 으르렁대는 이들까지 있었다.

하나같이 바삐 산 정상에 오르려 하는데, 길이 좁아 한 번에 오를 수 있는 이들의 수가 한정되다 보니 모두 조급한 모양이었다.

‘이, 이러다가 정말 큰 사고라도 나는 거 아닌가?’

장용은 순간적으로 밀려드는 긴장에 차가워진 손끝을 꾹 말아 쥐었다.

그때였다.

“팽가다!”

“팽가가 왔다! 하북팽가다!”

진입로에 모여 있던 이들의 고개가 뒤쪽으로 획 돌아갔다.

“어?”

입구 쪽에 주저앉아 있던 장용의 얼굴이 시뻘겋게 물들었다. 하필 이곳에 있다 보니 모두가 그를 바라보는 것처럼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구석으로 물러나는 대신 뒤를 돌아보았다.

“오…….”

좌우로 물러난 영소문 제자들 사이로 이쪽을 향해 다가오는 몇 명의 무인들이 보였다.

강렬한 붉은색 무복, 가슴팍에 새겨진 다섯 마리 범.

거기에 누구라도 시선을 뺏길 수밖에 없는 거대한 도(刀)까지.

‘하북팽가.’

하북의 패자이자 오대세가의 일원인 하북팽가마저 이 화음에 그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그 수는 다섯에 불과했지만, 그들이 내뿜는 존재감은 이곳에 모인 모두를 압도하고도 남았다.

“음.”

선두에 선 팔척장신의 장년인이 화음에 모인 무인들을 쭉 훑어보더니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핫. 많이도 왔구나.”

“아무래도 저희가 조금 늦은 모양입니다.”

“흐음. 문제로군. 식이 시작하기 전에 먼저 화산에 올라 장문과 가주를 뵈어야 할 텐데 말이야.”

주변을 다시 한번 둘러본 팽가인들이 거침없이 앞으로 걸어간다.

모여 있는 인파의 끝에 도달한 사내는 빙그레 미소 지으며 입을 열었다.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우리가 먼저 산을 올라도 괜찮겠소이까?”

가장 뒤에 있던 이는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팽가를 한번 보더니 화들짝 놀라 옆으로 비켜섰다.

“오, 오르시지요.”

“감사하외다.”

그게 신호라도 된 듯, 어깨가 맞닿을 만큼 좁게 모여 있던 이들이 좌우로 분분히 물러나 팽가를 위한 길을 터 주었다.

조금이라도 일찍 가기 위해 칼부림조차 마다하지 않으려던 이들이건만, 하북팽가라는 이름 앞에서는 하나같이 순한 양이 되어 버린 것이다.

왜 강호인들이 한 줌의 명성에 목숨을 걸고, 어떻게든 조금이라도 더 강해지려 하는지를 극명하게 보여 주는 광경이었다.

중인들이 터 준 길로 유유히 걸어가던 이가 입을 열었다.

“다른 오대세가는 아직 도착하지 않았겠지?”

“글쎄요. 벌써 도착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다들 오기는 할 겁니다. 이걸 눈으로 보지 않을 수는 없을 테니까요.”

“그렇겠지. 재미있는 개파식이 될 것 같구나. 어서 가서 화산 장문인께 인사를 드려야겠지. 가자꾸나!”

“예!”

순식간에 속도를 높이는 하북팽가의 식솔들을 보며 화음에 모인 모두가 마른침을 삼켰다.

‘오대세가가 모두 온다고?’

‘그럼 구파일방도 오는 것 아닌가?’

‘이거, 어쩌면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큰일이 벌어질지도 모르겠군.’

‘하북팽가가 화산의 장문인께 인사를 드린다니. 화산이 언제 이리 대단한 문파가 되었지?’

여러 가지 생각이 교차했지만 결론은 단 하나였다.

‘어서 산을 올라야 한다!’

‘이건 꼭 내 눈으로 봐야 해!’

한껏 분위기가 달아올랐다. 그들은 모두 험준하고 드높은 화산의 등산로를 향해 몸을 날렸다.

제각각의 호기심과 열망, 그리고 기대를 품은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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