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8화. 뭐가 이렇게 많이 와? (3)
그건 ‘신기’라는 말이 어울리는 광경이었다.
뚝딱! 뚝딱!
“여기 기둥을 올려야 하네!”
“알겠습니다! 안쪽은 제가 맡을 테니, 형님은 바깥쪽을 맡으십시오!”
순식간에 기둥이 올라가고, 마술처럼 벽이 섰다. 잠깐 눈을 돌렸다가 다시 보면 새로운 게 올라가 있는 지경이었다. 심지어 숙련된 목수들 수십이 달려들어야 할 수 있는 이 일을 고작 두 사람이 해치워 버리고 있었다.
당가의 이 엄청난 능력은 단순히 건물 증축에만 머물지 않았다.
“흐음. 이건 영 마음에 안 드는데?”
“조금 오래돼 보이지요. 하지만 양식을 아예 바꿀 순 없습니다.”
“그렇지. 양식은 그대로 보존하되 자재를 좀 더 고급지게 바꿔 보자꾸나. 석재 가져온 것 옮겨 오거라!”
“예!”
뭔가 뚝딱대기 시작하니 평범하기 그지없던 건물 외벽이 바뀌고 처마의 방향이 묘하게 변했다. 크게 손을 댄 것도 아닌 것 같은데, 자재나 시공 방식에 조금씩 변화를 주는 것만으로 건물들이 고급지게 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여기 매화를 새기면 되겠군!”
“이쪽에다가도!”
“일단 꽃밭처럼 만들어 보자고! 받은 게 있으면 이 정도는 해야지!”
전각의 기둥들에 화산의 상징인 매화가 새겨지기 시작했다. 빠르게 새겨지는 매화가 어찌나 생생한지 금방이라도 바람에 흩날릴 것만 같았다.
“우와…….”
“세상에…….”
“이래서 장인, 장인 하는구나.”
전문적인 일에서 모조리 밀려나 단순 노동을 하게 된 화산의 제자들은 입을 쩍 벌리고 그 기적에 가까운 광경을 바라보았다.
당가에서 온 서른 명의 장인이 화산 전체를 말 그대로 개변시키는 중이었다.
“표 아저씨! 거기는 건들면 안 돼요!”
“응? 이건 너무 낡았는데?”
“그래도 그건 화산의 역사가 어린 기둥이란 말이에요! 거긴 보존할 수 있게 해 주세요!”
“흐음. 그럼 깎지는 말고, 칠을 한 다음에 위에 문양을 새겨 넣자꾸나. 화산의 상징이 되는 글귀 같은 게 있으면 더욱 좋겠지.”
“그건 괜찮을 것 같아요. 일단 기다려 주세요. 제가 장문인께 말씀드려 볼게요.”
“알겠다.”
그리고 혹시 당가와 성향이 다른 문제는 당소소가 나서서 야무지게 중재하고 있었다.
“진짜 대단하네.”
화산의 제자들이 달라붙어 일하고 있을 땐 솔직히 언제 끝날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그런데 당가의 장인들이 투입된 지 반나절 만에 눈이 돌아갈 만큼 뭔가가 바뀌고 있었다.
게다가 당가가 이끌고 온 것은 장인들뿐만이 아니었다.
“이번 행사에 쓸 고급 다기들과 선물을 담을 상자들입니다.”
“세상에…….”
당군악이 풀어 내는 짐들을 바라보며 현영은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이리 고급스러운 것들을…….”
“선물은 화산의 매화차와 운남에서 가져온 최고급 차면 충분할 것입니다. 이 상자에 담아내면 더욱 좋겠지요.”
“정말 감사합니다, 당가주님.”
“별말씀을.”
당군악은 빙긋 웃었다.
“이 행사는 화산의 단독 행사가 아니라 천우맹의 행사입니다. 그러니 저희가 돕는 것이 너무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그, 그렇긴 한데…….”
확실히 일이라는 건 경험이 중요하다.
화산과 현영도 나름 열의를 가지고 일하기는 했지만, 당가와는 비교 자체가 불가능했다. 특히 당가는 이런 부분에 있어서 천하에서도 수위를 다투니 언감생심 화산이 들이댈 만한 곳이 아니었다.
“그리고 미리 화음에도 말을 전해 두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화음에 말씀이십니까?”
“예.”
당군악이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행사에는 초대한 이들뿐 아니라 구경꾼들도 몰리기 마련입니다. 그들을 모두 화산에 수용할 수는 없으니 화음에 있는 객잔들에 미리 언질을 해 두어야 합니다. 화음이 그리 크지 않은 곳이라 객잔이 충분치 않아 보이니, 제 생각엔 임시 거처를 미리 마련해 두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임시거처라 하시면……?”
“보통은 천막 같은 걸 치곤 합니다. 하지만 화산은 앞으로도 객을 받을 일이 많을 것 같으니 이 기회에 음식을 제공하지 않는 숙소를 마련해 돈을 받는 것도 나쁘지 않아 보입니다.”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현영은 멍하니 고개를 끄덕였다.
“죄송합니다. 보통은 은하상단과 이야기하여 처리를 하는 편인데…….”
“상단에는 상단의 일이 있는 법입니다. 게다가 긴 시간을 두고 증축을 하는 것과 바삐 움직이는 것은 또 다른 일 아니겠습니까. 은하상단 역시 이런 일을 진행해 본 적은 없을 테지요.”
현영이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고개를 끄덕였다.
“가주님의 말씀이 옳습니다. 이리 와 주셔서 너무 큰 힘이 됩니다.”
“당연히 제가 해야 할 일입니다. 좀 더 빨리 오지 못해 죄송합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그저 감사드릴 뿐입니다.”
빙그레 웃은 당군악은 슬쩍 화산의 전경을 살폈다. 그리고 장인들에게 다시 추가로 지시했다.
“중앙 연무장에서 개파식을 시행해야 할 텐데, 연단이 너무 낮은 게 마음에 걸리는군.”
“부수고 새로 지을까요?”
“연무장이라는 것은 문파의 무학을 익히는 곳이다. 그 높이와 크기에 다 나름의 이유가 있는 법. 어찌 함부로 부순단 말을 입에 담느냐?”
“……제가 생각이 짧았습니다.”
“가대를 제작하거라. 들고 나르는 건 문제없으니 무게는 신경 쓰지 말고 웅장하게. 보이지 않는 곳에 옮겨 두었다가 필요할 때마다 지금 있는 연단 위에 덮어씌울 수 있게 제작하거라. 평소 관리가 필요 없도록 소재를 엄밀히 선정하고.”
“예, 가주님!”
일사천리라는 말은 이럴 때 쓰는 것이다.
당군악은 사천당가 가주의 품격을 보여 주겠다는 듯이 화산에 든 그때부터 모두를 깔끔하게 진두지휘하고 있었다.
“이 감사를 어찌 표해야 할지…….”
현종의 말에 당군악이 고개를 내저었다.
“아닙니다. 장문인. 제가 괜한 호들갑을 떨어 오랜 화산의 역사가 어린 곳을 뒤흔들어 놓는 게 아닌지 걱정입니다.”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화산의 선조들께서도 기꺼워하실 것입니다.”
현종은 모르겠지만, 그가 뱉은 말은 사실이었다.
당장 화산의 변화를 지켜보는 청명의 입이 찢어질 듯 벌어지고 있었으니까.
“그, 혹시 도금은 안 되나요? 금은 안 챙겨 오셨어요?”
“……청명아. 저리 가 있거라.”
“아니면 백금도 괜찮은데. 그게 아니면 옥이라든가.”
“저리 가 있으래도.”
“아니, 당가에는 돈이 많다니까요! 우리보다 훨씬 많아요!”
“제발…… 그 입 좀 다물어…….”
“괜찮습니다, 장문인.”
당군악이 나지막이 소리 내어 웃었다.
“자네 마음에 든다니 다행이군.”
“헤헤. 역시 일은 전문가가 해야 하는 법이죠!”
청명이 히죽 웃으며 고개를 돌렸다.
장인이 아닌 사천당가의 식솔들은 은하상단이 날라 온 물건들을 부지런히 이리저리 배치하고 있었다. 초대한 이들과 중진들의 면면을 감안하여 체계적으로 자리를 나누는 일은 아무래도 화산보다는 당가가 좀 더 잘할 수밖에 없었다.
“궁주님은요?”
“오고 계실 거네. 한 사흘 뒤까지 도착하면 된다고 말해 두었지만 그 급한 성정을 감안한다면 내일쯤 도착하겠지.”
“……이번에도 짐승들을 끌고 오는 건 아니겠죠?”
“내가 말렸으니 이번에는 참겠지……. 장담은 못 하겠네만.”
청명이 다시 한번 히죽 웃었다.
그는 당군악의 이런 점이 마음에 들었다.
다른 이들이라면 자신이 하는 일을 내세우기에 여념이 없을 테지만, 당군악은 이게 자신이 당연히 해야 할 일인 것처럼 군다.
이건 화산과 당가를 서로 나누지 않겠다는 의미였다.
‘한 식구라…….’
청명이 슬쩍 고개를 돌렸다.
‘놈이 보면 좋아했을 텐데.’
과거에도 당가와 화산은 꽤 친분이 있는 관계였지만, 당보와 청명의 사이처럼 격의 없는 관계는 아니었다.
백 년이나 지난 지금에서야 과거 당보가 원했던 관계가 이루어진 것이다.
괜스레 코를 한번 훔친 청명이 태연하게 입을 열었다.
“언제쯤 끝날까요?”
“길어도 이틀은 넘지 않을 걸세.”
“이틀이나요?”
“건물을 단장하고 사람들이 쓸 물품을 정리하고, 숙소를 새로 증축하는 것은 별일도 아닐세. 주방을 늘리는 건 시간이 조금 걸리겠지만, 그래도 오늘 내로 끝낼 수 있네.”
전각 두어 개 정도는 반나절 안에 지어 버릴 수 있다는 패기.
사천당가의 위엄을 전신으로 느낀 화산의 중진들은 박수를 치고 싶은 마음을 필사적으로 억눌렀다.
“그런데 왜 이틀이에요?”
“문제는 그다음이지. 이건 객을 받는 일이지 않은가.”
“네?”
당군악은 조금 떨떠름한 눈으로 꼬질꼬질해진 화산의 제자들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접대를 해야 할 이들이 화산, 야수궁, 북해빙궁이란 말이지.”
“…….”
“두드려 패지나 않으면 다행인데…….”
“…….”
당군악의 얼굴에 진한 수심이 어리기 시작했다.
독랄하고 성격 나쁘기로 따진다면 천하에서 수위로 꼽히는 사천당가이건만, 천우맹을 구성할 문파들에 비하면 군자 중의 군자였다.
중원의 예와 법도에는 쥐톨만큼도 관심이 없는 야수궁과 척박하기 짝이 없는 북해에서 생존하느라 거칠기가 독 오른 살쾡이 같다는 북해빙궁……. 거기에 현재 중원 최고의 개차반 문파라 불려도 할 말이 없는 화산까지.
‘뭐가 잘못 모였어.’
이 정도면 사파도 상종하기 싫다고 도망갈 판이었다.
“접객해야 할 이들을 교육하고 성질을 죽이게 만드는 데 이틀은 걸리지 않겠는가?”
“……그냥 사고 치면 절벽에서 던져 버린다고 하면 되지 않을까요?”
“그래서 사고를 안 치던가?”
“치죠.”
청명이 산뜻하고 상큼하게 대답했다.
“우리 사형들은 절벽에 던져지는 거 정도로는 굴하지 않거든요! 다들 대장부들이라!”
“……대장부는 그런 걸 뜻하는 말이 아닐세.”
당군악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러니 미리 교육해야지. 이번 행사는 최대한 사건, 사고 없이 마치는 게 목표네.”
뒤이어 당군악이 ‘그게 잘될까 모르겠지만.’ 하고 중얼거렸지만, 그 말은 청명의 귀에 들리지도 않았다.
당군악은 곧 허리를 쭉 펴고 말했다.
“천우맹이 천하에 그 이름을 날리는 자리일세. 그 어떤 흠조차 보이지 않아야 할 게야.”
당군악의 말에 청명이 고개를 끄덕였다.
세상일이라는 건 뜻도 중요하지만, 그 모양새도 더없이 중요한 법이다. 이왕이면 있어 보이는 게 낫다.
다만…….
“여기! 여긴 어떤가?”
“어디?”
“바닥에 청석이 밋밋한 게 마음에 걸리는군! 여기도 매화를 새겨 볼까?”
“바닥에다가? 벽에 새기는 걸로는 부족한가?”
“이왕이면 많을수록 좋지! 새겨 보세!”
“좋지!”
청명의 볼이 살짝 움찔했다.
“기와! 기와에 새겨 보자!”
“여기 조경이 마음에 안 들어! 저기 내려가서 매화나무 몇 그루 뽑아 오게! 여기다 심으면 되겠군!”
“좁아! 좁다고! 이 담벼락 허물어 버리게! 새로 담을 올리면 되니 넓혀 보자고!”
“…….”
그런데…… 좀 과하지 않나?
화산파 이상으로 매화에 집착하는 이들을 보며 청명이 슬쩍 당군악을 바라보았다. 당군악은 조금 겸연쩍은 얼굴로 입을 가리며 헛기침했다.
“크흠, 자네가 그때 기둥에 매화를 새겨 주고 가지 않았는가.”
“그랬죠.”
“그 이후로 이상하게 당가 내에서 물품에 매화 문양을 새기는 게 유행이 되어서……. 이러다간 당가의 상징이 매화로 바뀔 판이네.”
“…….”
“신나서 저러는 거니 그냥 내버려 두게나.”
“…….”
잔뜩 신이 나서 매화를 새겨 대는 장인들을 떨떠름하게 보던 청명은 이내 빙그레 웃고 말았다.
‘에휴, 모르겠다.’
매화 많으면 좋은 거지 뭐.
그렇게 이틀에 걸친 단장의 시간과 교육(?)이 지나갔다.
준비를 마친 화산을 향해 천하의 군웅들이 구름처럼 몰려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