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7화. 뭐가 이렇게 많이 와? (2)
“저기! 저기에다 쌓아라!”
“예, 장로님!”
“식기는 모두 왔느냐?”
“지금 확인했습니다. 제대로 도착한 것 같습니다!”
“그럼 이대제자들에게 시켜서 한번 세척을 하도록 해라. 사람 입이 닿는 물건이니만큼 꼼꼼해야 한다!”
“예!”
현영의 눈이 이쪽저쪽을 재빨리 누볐다.
‘끄응. 정신이 없구나.’
이전에 화종지회를 치르면서 손님을 받기는 했지만, 그들은 소수였던 데다 화산에서 묵어 가지 않았었기에 별로 신경 쓸 것이 없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많은 손님이 화산을 방문한다. 심지어 모두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이들이다 보니 하나부터 열까지 모조리 신경이 쓰이지 않는 곳이 없었다.
“장로님! 애들 보냈습니다!”
“그래, 수고했다.”
재빨리 고개를 끄덕인 현영은 눈을 살짝 가느스름하게 뜨고 머릿속을 정리했다.
‘이러면 식기 쪽은 되었고…….’
하지만 바삐 물건을 장만하는 것보다 더 큰일인 쪽도 있었다.
“야, 잡아! 잡아!”
“거기 꽉 잡으라고! 떨어지면 다친다고!”
“……다쳐요? 이거 좀 맞는다고?”
“……응?”
현영은 목재 더미를 전각 위로 들어 나르는 이들을 보며 헛웃음을 흘렸다.
지금 저들은 손님들을 맞을 방을 새로 단장하는 중이었다. 평범한 이들에게라면 위험하고 어려운 일이겠지만, 하나하나가 인간 거중기(擧重機)나 다름없는 놈들이다 보니, 아무리 무거운 목재라도 가뿐하게 날라 대고 있었다.
그동안의 수련이 헛되지 않았던 모양으로, 제자들 하나하나가 건장한 장정 스무 명분의 일을 척척 해냈다.
문제는…….
콰당탕탕!
“야, 씨! 여기에다 나르면 안 된다니까, 이 새끼들아!”
“어? 사숙이 이리로 보내라고 했는데?”
“이 새끼야! 가벽이 거기가 아니라고 백 번 말했잖아! 밑에다 줄 다 그어 놨는데 왜 굳이 그걸 무시하고 다른 데다 벽을 다는 거냐, 왜!”
“이, 이게 아닙니까?”
“으아아악! 빌어먹을!”
현영은 슬그머니 고개를 돌려 버렸다.
처절하게 들려오는 백천의 비명이 실로 마음 아팠지만, 안타깝게도 그를 도울 수가 없었다. 저기까지 신경을 썼다간 몸이 스무 개라도 부족할 테니까.
“그리고 너는, 이 새끼야! 차라리 안 보이는 데 박혀 있기라도 해라. 왜 여기서 술을 퍼먹냐! 도움도 안 되는 게!”
“허……. 짱박히면 짱박혔다고 욕하고, 옆에 있으면 옆에 있다고 욕하고. 대체 어느 장단에 춤을…….”
“죽어어어어!”
현영이 안쓰러운 얼굴로 전각 위를 흘끗 바라보았다.
‘고생하거라.’
뭐 어쩌겠는가? 대제자쯤 되면 감수해야지.
“준비는 잘 되어 가느냐?”
그때 등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현영이 재빨리 돌아보며 살짝 고개를 숙였다.
“오셨습니까.”
“바빠 보이는구나.”
어느새 지척까지 다가온 현종이 빙그레 웃었다.
그는 돌아가는 모양새를 훑어보더니 미묘한 얼굴로 말했다.
“그런데 현영아.”
“예, 장문인.”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느냐?”
“예?”
순간 현영이 획 고개를 돌려 현종을 빤히 보았다. 눈빛에 어린 흉흉함을 보며 현종은 움찔했다.
“아니. 내 말은 그저 며칠 머물렀다 가는 것뿐인데, 굳이 이렇게까지…….”
“그 며칠이 문제지요, 며칠이!”
현영이 눈을 부라리며 언성을 높였다.
“사람이 한둘 오는 것도 아니니 최소한의 구색을 갖춰야 하는데 이놈의 문파에는 그 사람들이 먹을 때 쓸 식기도 없고 수저도 없습니다!”
“그게 왜 없…….”
“왜 없긴 왜 없습니까! 다 팔아먹었으니 없지!”
“…….”
화산 역시 과거에는 대문파였으니 이런저런 행사를 치르기 위한 집기는 당연히 존재했다.
문제는 문파의 세가 기울던 시절에 그걸 모조리 팔아 치웠다는 점이다. 당장 먹을 게 없어 굶어 죽을 판인데, 오지도 않을 손님을 위한 집기를 남겨 둘 이유가 있었겠는가.
“다들 무인들이니 웬만한 건 알아서 하겠지만, 그래도 최소한의 물품은 준비해야지요. 지금 해야 할 일이 한둘이 아닙니다. 그 많은 이들을 먹이려면 주방도 증축해야 되고, 식당도 당연히 더 지어야 합니다. 게다가 먼지가 쌓이다 못해 낡아 무너질 판인 접객청도 모조리 보수해야 합니다.”
“모, 모조리?”
“생각 같아서는 그냥 싹 무너뜨리고 다시 지어 버리고 싶은데…….”
“지, 진정하거라.”
“쯧.”
현영은 영 못마땅한 얼굴로 접객청을 보수하고 있는 이들을 바라보았다.
“시일이 촉박하니 이번에는 일단 적당히 넘겨야지요.”
현종은 몰래 가슴을 쓸어내리며 어색하게 웃었다.
‘그런 것치고는 뭘 많이 하는 것 같은데…….’
일단 한쪽 벽면이 모조리 뜯겨 나간 접객청만 보더라도 ‘적당히’란 말은 그리 적절치 않아 보였다.
그런 현종의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현영이 슬그머니 말했다.
“그냥 대충 구색이나 맞추면 된다 싶었는데, 막상 일을 진행하다 보니 사람이 그렇게 되질 않습니다. 이 하나하나에 화산의 체면이 걸려 있다고 생각하면 신경이 여간 쓰이는 게 아닙니다, 장문인.”
“허허. 체면이 뭐가 그리 중요하겠느냐. 마음이 중요한 게지.”
“압니다.”
현영이 머리를 긁적였다.
“그래도 장문인께서 천우맹의 맹주가 되시는데, 저 사천당가나 새외 문파들에 비해 과히 못한 모습을 보일 수는 없지요. 당가에 다녀온 아이들의 말을 들어 보니 거기는 삐까번쩍하다던데.”
“그들은 속문이 아니더냐. 도문이 과히 사치를 부리면 되레 손가락질을 받는 법이다.”
“하지만 부족해 보여도 손가락질하는 게 사람입니다. 넘치게는 준비 않더라도 모자라지는 않아야지요.”
전각 쪽을 보던 현영이 다시 말을 이었다.
“당가나 빙궁처럼 인연이 닿고, 마음이 맞는 문파만 모인다면 저도 이렇게까지 하진 않았을 겁니다. 하지만 이번 행사에는 그들뿐만 아니라 천하의 문파들이 모두 모이지 않습니까?”
“그렇지.”
“그들에게 화산을 비웃을 여지를 주고 싶지 않습니다. 겉모습에 집착한다고 한심하게 여기실 수도 있지만, 이런 제 마음도 이해해 주십시오, 장문인.”
“그래. 그래. 내 어찌 네 마음을 모르겠느냐.”
현종이 고개를 끄덕였다. 현영이 저 좋자고 하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모를 그가 아니었다.
“다만 그…….”
현종이 말끝을 흐리며 슬쩍 접객청을 바라보았다.
“여기 못 어디 갔어?”
“저쪽에 박았는데요?”
“그걸…… 그걸 왜 거기에 박아, 이 새끼야, 왜! 아니, 이 미친놈아. 문에 왜 못질을 하냐고오오오오오! 눈이 없어? 그건 옹이구멍이냐? 새로 뚫어 주랴?”
“죄, 죄송…….”
“…….”
현종이 떨떠름한 눈으로 현영을 보며 물었다.
“……괜찮겠느냐?”
“……어떻게든 되겠죠.”
세상일이라는 게 언제나 마음처럼 되진 않는 법이다.
“그러니까 이걸 이렇게?”
“세로로 해야 한다고 말했잖느냐, 이 자식아! 긴 쪽이 위로 가게 해야 한다고! 대체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듣느냐? 내가 어떻게 할까?”
“어…… 그럼 이렇게?”
“반만 돌리라고 반마아아아아안!”
윤종이 분노를 참지 못하고 조걸의 멱살을 움켜잡은 채 짤짤짤 흔들어 댔다.
하지만 조걸은 여전히 자기가 뭘 잘못했는지 모르는 눈치였다.
“그래 봐야 같은 나무인데 대충 박으면 되는 거 아닙니까?”
“끄, 끄윽.”
윤종이 비틀거리며 자신의 심장께를 움켜잡을 때, 옆쪽에서는 다른 누군가가 고통받고 있었다.
“사, 사고오오오! 거기에 못 박으면 안 돼요!”
“어째서?”
“여긴 못 박는 데가 아니잖아요. 문이에요! 문! 열리는 곳이라고요! 문이 열려야 사람이 드나들잖아요.”
“여기가?”
“주, 주세요. 제가 할게요! 제가!”
“그럼 나는 여기.”
“거기도 아니라고요오오오!”
모두가 의욕은 넘친다.
어째서인지는 모르겠지만, 화산의 제자들은 다들 굉장한 기세로 전각을 부수고 수리하는 데 집중하고 있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의욕이라는 게 반드시 좋은 결과만 가져오진 않는다.
“사숙! 목재 더 올릴까요?”
“그만 올리라고! 그만! 내가 그만 올리라고 했잖아!”
“그럼 이제 뭐 할까요?”
“하지 마! 아무것도 하지 마! 하지 말라고 아까도 말했잖느냐!”
백천의 얼굴이 참혹하게 일그러졌다.
모든 일에는 전문가가 있다. 그리고 그 전문가의 필요성을 이번 기회에 뼈저리게 실감하는 백천이었다. 무식하게 힘만 세고 의욕만 넘치는 초보자 수십 명을 데리고 일을 하려니, 일 자체보다 그들을 통제하다 숨이 넘어갈 판이었다.
“칼질하는 것 말고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것들…….”
“참나, 무인이 칼질만 잘하면 됐지.”
“너 아직도 어디 안 처박혔냐! 들어가라고, 좀!”
안 그래도 속이 뒤집어지다 못해 와르르 무너지는데 옆에 아예 자리를 깔고 앉아 술을 홀짝이는 청명이 놈을 보고 있자니 활활 타는 불에다 기름을 끼얹는 느낌이었다.
“거 대충해, 대충. 칼밥 먹는 놈들이 뭐 그리 좋은 데서 잘 필요가 있나.”
“……내가 알아서 할게.”
반쯤 타 버린 듯한 백천의 힘없는 목소리에 청명이 피식 웃었다.
‘말은 저렇게 해도 다들 신난 얼굴이네.’
그럴 만도 하겠지.
사실 각 문파의 중진들이 화산을 방문하는 일이 청명에게는 익숙하다 못해 흔하게 느껴졌다.
한창 화산이 강호의 중심이던 시절에는 사문 내에서 사형제들 얼굴 보는 것보다 모르는 손님 얼굴 보는 게 더 쉬울 지경이었으니 말해 무엇 하겠는가?
하지만 그건 청명의 경우였다.
지금 제자들은 다 쓰러져 가는 전각에서 저들끼리 소꿉놀이만 해 왔다. 그러니 구파와 오대세가를 비롯한 각 문파의 중진들이 화산을 축하하기 위해 몰려온다는 게 얼마나 신기하고도 뿌듯하겠는가?
‘멋모르고 저러는 거지.’
그놈들이 무슨 생각으로 여기에 오는지는 짐작을 해야 할 텐데.
“이거 오늘 내로 마무리는 되겠어?”
“네가 쫑알대지만 않으면 얼마든지 가능하다.”
“유 사고가 문을 거꾸로 달고 있는데?”
“으아아아! 안 돼!”
부리나케 달려가는 백천을 보며 청명이 고개를 휘휘 저었다.
‘아무려면 어때.’
건물 좀 못 지으면 어떠냐. 건강하면 그만이지!
청명은 뚫린 벽 너머로 보이는 화산의 정경을 물끄러미 보았다. 다시 화산에 돌아왔던 그날과 비교해 보면 정말 상전벽해라는 말도 우스울 정도였다.
이제 곧 이곳으로 천하의 명문이 모여들 것이다.
그중 대부분은 ‘그 천우맹이라는 게 얼마나 대단하신지 내 눈으로 한번 봐 주겠다’는 아니꼬운 심사로 방문하겠지만…… 그래도 결국 올 수밖에 없다는 게 중요했다.
‘그럼 슬슬 나도 좀 도와 볼까…….’
청명이 미적미적 몸을 일으키던 그때였다.
“장로니이이이이이임!”
식기를 씻으러 갔던 삼대제자 중 하나가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산문을 박차고 달려 들어왔다.
“뭐, 뭐냐!”
“습격이야?”
“그, 그게 아니라!”
숨을 몰아쉰 삼대제자가 현영을 향해 외쳤다.
“옵니다!”
“응? 누가?”
“당가! 사천당가 분들이 산을 올라오고 계십니다!”
“버, 벌써?”
현영이 당황한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
아니, 서찰이 도착한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이곳까지 당도한단 말인가? 성격이 급한 것도 정도가 있지!
“주. 준비가 아직 덜 됐는데!”
현영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반쯤 허물어 놓은 전각에 이리저리 어지럽게 널려 있는 물품들을 보며 그는 당황한 나머지 머리를 움켜잡았다.
“일단 보이는 거라도 좀 정리를……!”
하지만 아무 의미도 없는 외침이었다.
“사천당가 분들께서 도착하셨습니다!”
“히익! 자, 장문인!”
“그, 그래. 간다!”
현종도 기겁하여 부리나케 산문 쪽으로 달려 나갔다.
문이 활짝 열리자 그 앞에 도열해 있는 당가 사람들이 보였다. 선두에 선 당군악을 발견한 현종은 재빨리 다가가 그의 양손을 움켜잡았다.
“당가주님. 어찌 이리 빨리 오셨습니까?”
당군악이 빙그레 미소를 지어 보였다.
“잘 지내셨습니까, 장문인.”
“당가주께서 마음을 써 주신 덕분에 큰 문제는 없었습니다.”
“하하. 제가 한 것이 없는데.”
두 사람이 반가이 대화를 나누는 와중에 청명이 터덜터덜 걸어와 현종의 옆에 섰다.
“오셨어요?”
“오랜만이군, 화산신룡.”
“일찍 오셨네요?”
“내가 객이라면 천천히 왔겠지.”
당군악의 시선이 현종과 청명의 뒤쪽으로 향했다. 아니나 다를까 한창 단장하느라 정신없는 모습에, 그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말했다.
“손을 거들러 왔습니다.”
“……예?”
“당패.”
“예, 가주님!”
“장인들을 투입해라. 손님들이 오기 전에 완벽하게 끝낸다.”
“예, 가주님. 다들 들어가자!”
“예!”
뒤쪽에 도열해 있던 당가의 식솔들이 저마다 공구를 빼 들더니 안쪽으로 우르르 쏟아져 들어갔다.
“……엥?”
“어?”
화산의 문하들은 어안이 벙벙하여 그 모습을 멍하니 보았다.
“걱정하실 것 없습니다. 이럴 것 같아 제가 숙련된 장인들을 데리고 왔습니다.”
빙그레 미소 짓는 당군악을 보며 현종은 실감했다. 이런 게 바로 천군만마를 얻은 심정이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