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6화. 뭐가 이렇게 많이 와? (1)
화음현.
“자, 자! 실으라고!”
“절대 떨어뜨리면 안 되네! 귀한 물건이야!”
“돈을 후하게 쳐준 만큼, 물건이 상하는 일은 절대로 없어야 하네! 알겠는가?”
“걱정하지 마십시오!”
화산으로 오르는 진입로에 짐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그리고 건장한 장정들이 커다란 봇짐을 하나씩 짊어지고는 결연한 얼굴로 화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이거 오늘 내로 다 갈 수 있을까?”
“사람이 부족할 것 같은데.”
“끄응. 오늘 내로 꼭 도착하기로 했는데.”
상인들은 초조한 마음에 체면도 잊고 발을 동동 굴렀다.
“잘되어 가고 있는가?”
“소단주님!”
그때 황종의가 다가와 묻자 그들은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가볍게 인사를 받은 황종의는 쌓인 짐들을 보며 물었다.
“어떠한가?”
“물품은 모두 준비되었습니다. 하지만 산 위까지 물품들을 나르는 게 쉽지 않습니다.”
“인부를 대량으로 고용했지만, 화산 정상까지 짐을 지고 올라갈 만한 이들이 많지 않습니다. 이게 워낙 건장하고 체력이 좋아야 하는 일이라…….”
“흐음.”
황종의가 산더미 같은 짐들을 보며 턱을 쓰다듬자 상인들 중 하나가 넌지시 물었다.
“이전까지는 물품을 여기까지 실어 오면 화산 분들이 와서 옮겨 주셨는데, 어떻게 이번에는…….”
“쯧.”
하지만 말이 끝나기도 전에 황종의가 눈을 가늘게 뜨며 혀를 찼다. 상인은 찔끔하여 목을 움츠렸다.
“그건 화산파에서 우리의 사정을 봐준 것이네. 대체 어느 상단이 중간까지만 물건을 옮기고 받는 이에게 가져가라 한단 말인가?”
“……그, 그게.”
“지금까지 그랬다고 해도, 계속 그렇게 할 수는 없는 노릇이네. 화산 분들 역시 예전처럼 시간이 남지 않아. 귀한 분들이 아닌가?”
“그, 그렇지요. 그렇고말고요.”
그들이 처음 거래를 텄을 때의 화산과 지금의 화산은 다른 문파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상인들 역시 지금까지 화산파의 제자들이 물건을 옮겨 주는 것을 이제껏 지켜봤기에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것이다. 만일 오늘이 첫 거래였다면 화산파의 제자들이 물건을 옮기겠다고 내려온 순간 황송해서 어쩔 줄 몰랐을 것이다.
‘화산의 위상이 끝도 없이 오르는구나.’
새삼 깨달은 상인들이 새삼스럽게 화산을 올려다보았다.
곧 무너질 것 같았던 문파가 몇 년 사이에 이렇게 강대해질 거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상단주님의 선견지명이 얼마나 뛰어났는지 알 것 같습니다.”
“그렇지.”
황종의는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고소를 머금었다.
‘아버지께서 뛰어난 것인지, 화산신룡이 너무 특별했던 것인지는 조금 생각해 봐야 하겠지만.’
다른 이들은 화산의 성장에 주목하지만, 황종의는 다른 것을 보았다. 몇 해 전 만난 그 어린 소도장이 이렇게까지 세상을 뒤흔들 것이라 누가 상상이나 했던가?
‘아버님의 진짜 능력은 다름 아닌 사람을 보는 눈이다.’
황종의는 청명이 특이하다고 생각했을 뿐, 특별하다고 생각하지는 못했다.
아버지가 그의 특별함을 알아보고 다 쓰러져 가던 화산에 막대한 투자를 마다하지 않았기에, 지금의 은하상단이 커다란 이문을 손에 쥐게 된 것이다.
지금 이곳에 쌓여 있는 물품을 공급하는 대신 받게 될 돈도 어마어마하지만, 화산이 주도하는 무역에 참여하면서 받는 돈에 비하면 이마저도 조족지혈에 불과하지 않은가?
“잘 듣게.”
“예. 소단주님.”
“앞으로는 될 수 있는 한 화산파 분들의 시간을 빼앗지 말아야 하네. 익숙해지는 것을 늘 경계해야 해. 다른 곳에 요구하지 못할 것을 친분을 명목 삼아 요구하는 것은 상인의 도리가 아닐세.”
“며, 명심하겠습니다, 소단주님.”
“유 행수.”
“예!”
“인부들을 추가로 더 고용하도록 하게.”
“예? 하지만 주변에 적당한 인부는 모조리 다 끌어왔습니다.”
“짐을 지지 않은 인부들을 산 중턱으로 올려보내게. 거기에서 교대하여 짐을 올려도 되지 않겠는가?”
“아……! 그러면 되겠군요.”
“꼭 둘로 나눈다고 생각하지 말고, 중간중간에 적당한 곳을 확인해 보고 집결지를 만들게나. 앞으로도 화산으로 물건을 나를 일이 많아질 테니, 지속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마련하게.”
“명대로 하겠습니다, 소단주님!”
황종의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당부를 이었다.
“물건이 상하지 않도록 각별히 조심하고. 이번 회가 열리는 동안에는 꾸준히 물품을 공급해야 할 것 같으니 차질 없도록 하게나.”
“예!”
“일 보게.”
부리나케 달려가는 행수를 보며 황종의는 슬쩍 웃었다.
‘화산의 약진이라.’
더없이 기껍고 즐거운 일이다.
과거에는 어쨌든 은하상단이 은근히 화산을 도와주는 모양새였다. 하지만 이제는 되레 은하상단이 화산의 도움을 받는 처지가 되었다.
상인이란 결국 이문을 얻는 게 최우선이니 이 사실에 껄끄러울 이유는 조금도 없었다. 다만…….
‘슬슬 다른 상가들도 화산에 줄을 대려 난리를 치겠지.’
아니나 다를까.
화산신룡이 북경 쪽의 운남차 판권을 금선상단에게 넘겼다는 말을 들었다.
은하상단이 선을 대고 있는 거래에 비하면 아직은 조족지혈에 불과하지만, 이런 일이 지속되다 보면 어느 순간 그들이 뒤로 밀리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었다.
친분과 거래는 별개인 법. 은하상단 역시 화산의 주거래처로 남을 만한 가치를 지속적으로 증명해야 한다.
“이 개파식이 그 기회가 되겠지.”
화산뿐만 아니라 강호의 명문이라 할 수 있는 수많은 문파들이 몰려올 것이다. 은하상단의 힘을 과시하는 데 이보다 적당한 장소는 없다.
‘그리고 화산 역시 이 일을 계기로 다시 천하에 그 지위를 확고히 하겠지.’
구파일방이라는 다른 이가 세운 질서가 아닌, 천우맹이라는 새로운 질서를 바탕으로.
“바람이 부는군.”
나직이 중얼거린 황종의는 동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화산으로 바람이 불어오고 있었다. 이제껏 없었던 커다란 바람이 말이다.
강호는 조용했다.
언제나 크고 작은 사건으로 들썩이기 마련이라지만, 최근 몇 해 동안은……. 아니 적어도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사람들의 흥미를 자극할 만한 큰일이 벌어지진 않았다.
그런데 최근 들어 하나의 이름이 자꾸 조용한 강호를 들쑤시기 시작했다.
- 화산이 종남을 이겼다는데?
- 화산이 천하후기지수비무대회에서 제일 좋은 성적을 거뒀다는구먼.
- 그 화산이 저 만인방의 무력대를 베었다는데? 이게 말이나 되는 일인가?
- 화산이 녹림의 대별채를 토벌했다고 하는군! 그 대별채를 말이야!
- 화, 화산이 무당과의 비무에서 승리했다는군! 심지어 무당은 일대제자들이 나오고 화산은 이대제자들이 나왔는데 말이야! 그리고 그 화산신룡이 무당의 장로를 쓰러뜨렸다지 않는가!
화산, 화산, 화산.
어딜 가도 화산의 이름이 나왔고, 어딜 가도 화산이 이룬 일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이러다가 화산파가 진짜 천하제일문파가 되는 게 아닌가?”
“그게 말이나 되는가? 저 쟁쟁한 문파들을 두고!”
“꼭 그리 생각할 일이 아니라니까! 불과 몇 해 전에 화산이 이리 될 거라 생각한 이가 누가 있었는가? 딱 두 해만 전에 화산의 이대제자들이 무당의 일대제자를 상대로 비무를 벌일 수 있단 말을 누가 했다면 몰매를 얻어맞았을 텐데?”
“……그건 그렇지.”
“모를 일이야. 정말 모를 일이라니까?”
세상 사람들의 이목이 온통 화산에 집중되었다.
누군가는 새로이 승천하는 신흥강호의 이름에 흥분했고, 누군가는 잊혔던 이름이 다시 들려오는 것에 묘한 감흥을 느꼈다. 그리고 누군가는 강호의 균형을 뒤흔드는 새 이름의 출현을 불쾌히 여기기도 했다.
하지만 세간의 사람들이 어떤 감정을 가지든, 지금 가장 화제를 끌고 다니는 문파가 화산임을 부정할 수 있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화산이 천하에서 가장 강한 문파는 아니나, 천하에서 가장 관심을 받는 문파임은 분명했다.
그리고…….
그런 관심에 쐐기를 박는 소식이 들려왔다.
- 화산이 천하의 문파들에 배첩을 날렸다!
- 화산이 당가와 야수궁, 북해빙궁과 손을 잡고 천우맹이란 새로운 맹을 만든다.
- 섬서 화산에서 개파식이 벌어질 예정이다!
이 말을 처음 들었던 이들은 그저 웃어넘겼다.
하지만 같은 말이 두 번, 세 번 들려오고, 그 배첩의 존재를 눈으로 확인한 이들까지 나타나기 시작하니 이제 더는 그저 웃어넘길 수 없게 되었다.
“새로운 맹이라니! 이건 또 무슨 소리야? 무림맹은 이제 더는 활동을 안 하는 게 아니었나?”
“무림맹이 아니라 천우맹이라니까! 구파일방과 오대세가가 뭉친 곳이 아니라 화산과 당가가 손을 잡고 새외의 문파들과 연합한다지 않는가?”
“이, 이런 일이 예전에도 일어난 적이 있나?
“없지! 당연히 없지! 애초에 새외의 문파와 연합을 한 적도 없는 데다가, 저 화산은 원래 구파일방 아니었는가.”
“그, 그렇지.”
“구파일방과 오대세가가 각자 따로 연합을 하는 것도 전례가 없는 일이지!”
“그, 그럼 어떻게 되는 건가?”
“난들 아는가!”
사람들은 이 일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조차 갈피를 잡지 못했다.
사천의 패자인 사천당가와 운남의 지배자인 야수궁, 그리고 북해의 왕이라 할 수 있는 북해빙궁. 거기에 지금 천하에서 가장 유명한 문파라고 할 수 있는 화산파가 연합을 할 거라고 누가 상상이나 할 수 있었겠는가?
이 일이 대체 강호에 어떤 파장을 가져다줄지 선뜻 예상할 수 있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럼 구파와 적이 되는 건가?”
“예끼, 이 사람아! 연합을 만든다고 적이 될 건 뭔가? 그냥 소속이 갈리는 거지.”
“하, 하지만 그러지 않을 거라면 굳이 맹을 만들 필요도 없잖은가. 아무래도 좀 이상한데.”
“저 문파들이 모이면 굉장하기야 하겠지만, 그래도 어디 구파일방에 비빌 수 있겠는가? 그리고 내가 알기로는 화산이 구파일방에도 배첩을 날렸다고 하는군. 적이 될 거라면 초대했겠어?”
“그도 그런데…….”
하지만 대부분은 느끼고 있었다.
이 일이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구파가 가만히 있을까?’
‘그럼 당가가 오대세가에서 빠지게 되는 건가?’
‘새외사궁 중 둘이 참여한다면 남은 둘은 어떻게 되는 거지? 포달랍궁이야 워낙 멀고 강호에 관여하지 않으니 그렇다 치고, 남해태양궁은 어쩔 셈이지?’
최근의 강호는 고요한 호수와도 같았다.
하지만 저 화산이 자꾸만 그 고요한 호수에 돌을 던져 댄다. 파문이 점점 커져 파도처럼 몰아치라고 말이다.
“그, 그럼 개파식은 언제 하는 건가?”
“이달 말에 한다는구먼.”
“이달 말? 그렇게 빨리?”
“그렇지.”
“이, 이럴 때가 아니지!”
“어디 가는가?”
“섬서로 가 봐야지!”
“에잉? 섬서에?”
“개파식인데 설마 구경 오는 사람들을 내쫓지는 않을 것 아닌가? 어쩌면 역사적인 순간이 될 수도 있는데, 가서 이 두 눈으로 똑똑히 봐야지!”
“그렇게까지?”
“말리지 말게! 나는 갈 걸세!”
한껏 높아진 화산의 명성에 배첩이 쐐기를 박은 셈이었다.
급변하는 정세에 주판알부터 튕기는 이도, 그렇지 않은 이들도 모두가 한 가지만은 확실하게 인식했다.
강호의 균형이 조금씩 흔들리고 있다는 것을.
지독했던 마교와의 전쟁 이후로 유지된 강호의 질서가 뒤흔들리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말이다.
말에도 기세가 있다. 잔잔하게 퍼져 나가던 소식은 어느 순간 들불처럼 타올랐고, 이내 폭풍이 되어 중원을 휩쓸기 시작했다.
화산이 일으킨 태풍이 이 강호를 어디까지 끌고 갈지, 지금은 누구도 쉬이 예상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