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귀환-652화 (650/1,567)

652화. 죽으면 얼마든지 쉴 수 있어! (1)

콰르르르릉!

쿠르르르릉!

“이, 이게 뭔 소리야?”

“어디 산사태라도 난 거 아냐?”

내내 허리를 숙이고 밭을 갈던 이들이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높은 산 위에서 바윗덩어리가 구르는 것 같은 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저, 저쪽인 것 같은데?”

“엥?”

누군가가 가리킨 방향으로 시선을 돌려 보니 과연 저 길 끝에서부터 거대한 먼지구름이 뭉게뭉게 피어오르고 있었다.

“저, 저게 뭐야?!”

“외적이라도 쳐들어왔나?”

“아니! 이 양반아! 여기가 어디라고 외적이 쳐들어오는가? 왜구도 여기까진 못 들어와.”

“그, 그러니까 하는 말 아닌가! 저게…… 대체……?”

난생처음 보는 황당한 광경에 밭을 매던 이들은 모두 농기구를 잡은 채 그 양을 멍하니 보기만 했다.

“……점점 다가오는 것 같은데?”

“어? 어어…….”

먼지구름은 과연 이쪽으로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그 사실을 깨닫고 보니 밀려드는 속도가 실로 대단했다.

“도, 도망가야 하는 것 아닌가?”

“뭔 줄 알고 도망을 쳐?”

어찌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는 사이 먼지구름은 순식간에 그들이 있는 곳을 향해 돌진해 왔다.

잠시 후 그 사달을 일으키는 것의 정체를 확인한 농부들은 저도 모르게 입을 쩍 벌렸다.

“사람?”

“수, 수레 같은데?”

검은 옷을 입은 한 무리의 인파가 몇 개씩이나 되는 수레를 끌며 어마어마한 속도로 달리고 있었다.

그리고 금세라도 부서질 듯 덜컥대는 선두의 수레 위에 담력도 좋게 선 웬 놈이 삿대질을 해 댔다.

“어쭈? 느려지지? 오호라? 이제 무당도 잡았겠다, 수련이 만만하지? 오냐! 오늘 어디 하늘이 노란색이 될 때까지 달려 보자!”

“으아아아아! 이 개새끼야아아아아!”

“죽여라! 차라리 죽여, 이 새끼야!”

“죽이긴 왜 죽여! 세상에 죽는 것보다 편한 게 어디 있어? 헛소리하지 말고 달려! 오늘 낙오되는 놈은 밤새 나무에 거꾸로 매달아 놓을 테니 어디 한번 뒤처져 봐!”

“아아아아아악!”

모두가 미친 소처럼 입에 거품을 물고 두 눈에 핏발을 세운 채 달려 나갔다.

콰르르르르릉!

우레와 같은 같은 수레바퀴 소리가 스쳐 지나갔다. 뒤이어 부옇게 일어난 커다란 먼지구름이 멍하니 그 양을 지켜보던 농부들을 뒤덮었다.

“…….”

“…….”

어느새 저 멀리 사라져 버린 수레의 뒤꽁무니를 바라보다 누군가가 가만히 입을 열었다.

“이게 뭔 조화여…….”

“외적도 아닌 것이…….”

그때 한 사람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데 방금 그 양반들 가슴팍에 꽃 자수가 놓여 있지 않았던가?”

“그랬던 것도 같은데?”

“에잉. 사내놈들이 망측스럽게 뭔 꽃 자수란 말인가.”

“아, 아니, 망측스러운 게 아니라…… 가슴에 꽃 자수가 놓여 있는 옷이면 요즘 그 화산인가 뭔가 하는 거기 아닌가? 무한에서 무당과 비무를 해서 이기고 무당 장로를 상대로 이겼다는 그 문파 말일세.”

“응?”

모두가 새삼스럽게 그들이 사라져 간 방향을 바라보았다. 이젠 먼지구름도 서서히 내려앉고 있었다.

하나…….

“아니겠지.”

“에이, 이 사람아. 말이 되는 소리를 하게. 그 고매하신 도사님들께서 무슨 소 새끼처럼 수레를 끌고 간다는 말인가?”

“천벌을 받을 소리!”

“그, 그런가?”

모두가 눈살을 찌푸렸다.

“무당을 이겼으면 금의환향을 해도 모자라지 않은가. 마차를 타고 가도 성에 차지 않을 텐데, 달구지를 마소 대신 끌고 가는 게 말이나 되는가!”

“아암! 화산이 돈이 없는 문파도 아닐 텐데!”

“……듣고 보니 그렇구먼. 그럼…… 저 사람들은 대체 뭐지?”

“알게 뭔가. 어디서 죄 짓고 도망가는 망종들이겠지.”

“딱 봐도 인상이 산적 아니었는가! 큰일 날 뻔했지.”

모두가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관인들은 뭐 하나 몰라. 저런 놈들 안 잡아가고.”

“예끼! 관인은 무슨 관인인가. 산적 하면 화산이지! 저놈들도 화산파에 걸리면 다 박살이 날 걸세.”

“무당이 아니라?”

“산적은 화산이지! 화산!”

처음 화산이 아니냐 말했던 이가 조금 머쓱한 얼굴로 다시 농기구를 제대로 잡았다.

‘그런데 아까 그 사람들이 화산파 맞는 것 같은데?’

하지만 그 말을 차마 입 밖으로 낼 수는 없었다.

털썩! 털썩! 털썩!

수레가 멈추자마자 화산의 제자들이 신음도 내지 못하고 그 자리에 쓰러졌다. 반쯤은 입에 게거품을 물고 있었고, 남은 반은 그럴 힘조차 없어 보였다.

“빠져 가지고!”

다른 사람이 끄는 수레에 올라타서 한 점 불편함 없이 안락하고 편안하게 이곳까지 온 청명이 두 눈을 부라렸다.

“뭐 얼마나 왔다고 엄살이야! 나 때는, 어? 등에 천근을 짊어지고 사흘 만에 중원도 횡단하고 그랬어!”

평소 같았으면 저 개소리에 활기찬 욕으로 화답해 주었겠지만, 지금은 모두 입을 뗄 힘도 없었다.

‘어떻게 이렇게 힘들 수가 있지?’

‘죽을 것 같다. 진짜 죽을 것 같아.’

‘옥황상제시여. 저는 아직 갈 때가 아닙니다!’

널브러진 화산의 제자들을 보며 청명이 혀를 찼다.

“무당 놈들이랑 드잡이 좀 하고 나니까 자기가 뭐라도 된 것 같아?”

“…….”

“그래, 자신감 좋지. 그런데 자신감이 자만심이 되는 순간 없는 것만 못해지는 거야.”

말을 하던 청명이 슬쩍 등 뒤를 돌아보았다. 마치 지나 온 행적을 다시 바라보듯.

“사형들이야 이겨서 희희낙락하겠지만, 무당 놈들은 이번 패배에 제대로 이를 갈 거야. 오늘부터……. 아니, 이미 이를 갈아 대며 수련에 매진하고 있겠지. 반면에 사형들은 그 작은 승리에 도취돼서 느슨해졌고. 그럼 다음에 이길 사람이 누구일까?”

그러자 바닥에 엎드려 헉헉대던 조걸이 벌떡 몸을 일으키며 손을 들었다.

“뭐야? 말해 봐.”

“나는 도취된 적 없는데?”

“엎드려.”

“……제길.”

조걸이 다시 엎어졌다.

“사람은 잘한다고 박수 쳐 줄 때 이를 더 악물어야 하는 거야! 뭐 좀 됐다고 긴장 풀고 놀기 시작해 봐. 지금까지 쌓아 놨던 것 다 날려 먹는 거? 순식간이지! 못 이기던 놈들한테 이기니까 기분이 좋아? 이겼던 놈들한테 지면 절벽에서 뛰어내리고 싶어져!”

“벌써 뛰어내리고 있잖아! 이 새끼야!”

“한두 번 뛴 것도 아니다, 이 새끼야!”

“어쭈? 반항을 해?”

화산의 제자들은 눈물을 머금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썩을 놈이 더럽게 바른말만 해 대네.’

‘이래서 예로부터 바른말하던 사람들이 일찍 죽었구나!’

새삼 역사의 진리를 깨닫는 화산의 제자들이었다.

사실 나름 무당의 일대제자들을 상대로 선전했으니 슬슬 반항을 해 볼 만도 하건만, 저 악마 같은 놈은 하필 무당의 장로를 때려잡아 버렸다. 그걸 눈앞에서 봤으니 도무지 반항을 할 수가 없었다.

모두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건 성격도, 직위도 아니고 실적이라는 사실을 뼈저리게 실감해야 했다.

게다가…….

“끄응. 망할 놈.”

“그냥 콱 뒤로 넘어져 코나 깨져 버리지!”

“그럼 제가 가서 그 뒤에다 대침 하나 박아 놓을게요!”

백천을 비롯한 오검과 당소소, 심지어 혜연마저 원독에 가득 찬 눈으로 청명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게 수레 하나씩을 맡은 이들은 그냥 달리는 것만으로도 벅찬 속도를 무게까지 진 채 전신으로 이겨 내야 했다.

“…….”

그런 이들이 옆에서 달리고 있으니 나머지 제자들은 엄살을 부릴 엄두도 낼 수 없었다.

청명은 그 원망을 온몸으로 받으며 웃었다.

“사람이란 게 말이야. 뭐 대단해 보여도 별것 없어. 전력으로 질주하면 한 시진도 못 버티거든. 경지가 높아지니 수련이 쉬워져? 그건 하던 수련을 똑같이 하니까 그런 거고!”

그의 눈알이 점점 희번덕거리기 시작했다.

“수련은 힘들어야 수련이지! 안 힘들면 그게 수련이야? 휴식 끝났어! 다들 일어나서 달려!”

“아악! 빌어먹을 새끼!”

“언젠가는 진짜 죽인다!”

그때 뒤에서 그 양을 지켜보며 고개를 내밀고 있던 운검이 감탄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들 입으로는 죽어라고 욕을 해 대지만, 몸은 착실하게 준비를 하는군.’

사실 이 녀석들 모두 수련을 즐기는 게 아닐까?

“청명아.”

“넵!”

운검의 부름에 청명이 빠르게 몸을 획 돌렸다.

“딱히 네 수련에 딴죽을 걸고 싶은 생각은 없다만, 조금 과하지 않겠느냐? 다들 먼 여행과 연이어 있었던 전투에 지쳤을 텐데.”

청명이 슬쩍 뒤쪽을 돌아본다.

모두 다시 달릴 준비를 하느라 이쪽에 관심이 없는 걸 확인한 후, 그는 다른 이들이 들을 수 없게 작은 목소리로 답했다.

“그러니 이럴 때 수련을 해야 됩니다.”

“응?”

운검이 의문을 표하자 청명은 어깨를 으쓱했다.

“수련은 다양하게 할 수 있지만, 상황은 만들어 낼 수 없거든요. 언젠가는 정말 피로에 짓눌려서 운공으로도 회복할 수 없을 만큼 몸이 무거워진 채 싸워야 할 때가 올지도 모르죠.”

“으음. 그렇지.”

“그럴 때 버티게 해 주는 게 경험이잖아요. 사람은 한번 버텨 낸 건 몸으로 기억하거든요.”

운검은 새삼 새로이 감탄하여 청명을 바라보았다.

‘단순히 체력 훈련이 아니구나.’

운검 역시 제자를 가르치는 입장이다. 그러다 보니 때때로 청명이 제자들을 가르치는 방식에 놀랄 때가 있었다.

겉으로 보기엔 그저 무자비하게 괴롭히는 것으로 보이는데, 그 수련 속엔 운검조차 짐작할 수 없을 만큼 깊은 의도가 숨어 있을 때가 많았다.

‘지금까지 이런 수련이 얼마나 많았을까?’

화산의 제자들은 단순히 강해진 게 아니다.

과거에는 종남의 종자만 들려도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움츠러들던 녀석들이, 이제는 무당의 일대제자들을 앞에 두고도 기죽지 않는다.

이건 단순히 실적만으로 가능한 게 아니다.

마냥 괴롭히는 것처럼 들렸던 청명의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화산 제자들의 의식을 꾸준하게 바꿔 온 것이다.

‘이건 거의 세뇌에 가깝군.’

이게 정말로 청명이 의도했던 것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지만 말이다.

“그렇다 해도 휴식은 필요하지 않겠느냐?”

“곧 하게 될 거예요.”

청명이 먼 곳을 바라보았다. 이제 저 멀리 어렴풋하게 화산의 산등성이가 보이기 시작했다.

“화산에 돌아가면 이제 바빠질 테니까요. 앞으로 한동안은 천우맹이다 뭐다 신경 쓰느라 제대로 수련을 봐주지 못할 거예요.”

목소리에 슬쩍 걱정이 묻어났다. 이내 저를 바라봐 오는 청명의 은근한 시선에 운검이 피식 웃었다.

“걱정하지 말거라. 내 수련에 전념하느라 아이들을 봐주지 못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헤헤. 그런 의도는 아니었고…….”

청명이 어색한 얼굴로 뒷머리를 긁는다.

‘녀석 하고는.’

천우맹 발족 준비는 이제 끝났다. 하지만 그건 준비가 끝난 것일 뿐, 할 일을 마쳤다는 의미는 아니다.

누가 뭐라 해도 천우맹은 청명을 중심으로 만들어지는 단체다. 당연히 그가 직접 나서야 할 일이 많을 것이다.

그 중요한 일을 앞에 두고도 제자들의 수련을 신경 쓰는 사람이 청명이다. 그 기특함이야 말로 해서 무엇 하겠냐마는…….

‘흐음.’

여전히 청명의 말은 논리적이고, 지금까지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가만히 청명을 바라보던 운검이 넌지시 입을 열었다.

“청명아. 네가 무엇을 생각하는지 내 모두 알지는 못한다.”

“……예?”

청명이 되묻자 운검은 빙긋 웃었다.

“하지만 부족하나마 모두 노력하고 있으니 너무 서둘러 가지 말거라.”

“…….”

청명은 조금 어색한 얼굴로 뒷머리를 긁적였다.

“부족하다는 의미는 아니었어요.”

“그래. 그렇구나.”

운검은 그저 빙긋 웃기만 했다. 청명은 다시 한번 겸연쩍게 뒷머리를 긁적이며 슬쩍 시선을 돌렸다.

그때 준비를 마친 화산의 제자들이 기합을 내질렀다.

“가자아아아아아!”

“화산! 화산에만 도착하면 이 지랄도 끝난다!”

“차라리 빨리 가자!”

미친 소처럼 눈을 부라린 채 짓쳐 달리는 화산의 제자들을 보며 청명이 살짝 미묘한 얼굴로 운검을 바라보았다.

“저보다 저 양반들이 더 서두르는 것 같은데요.”

“…….”

그거야 뭐, 이제 어쩔 수 없지 않느냐.

하하…….

또다시 한바탕 요란하게 달려 나가는 화산 일행의 앞으로 드높이 솟은 화산이 점차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43